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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역사책이라고 하면 역사학을 전공한 학자의 노작을 거론하고 그 중에서도 대가라고 칭송받는 저자의 역사책이 으뜸으로 손꼽힌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 모두가 역사임이 분명하다면 역사 기술은 과거라는 틀에 담은 정지한 시간의 묶음이 아닌 현재 진행으로 끊임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풀어내는 것이리라.

때문에 역사책은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자만이 쓸 것은 아니다. 시간의 흐름에 자신을 내 맡긴 모든 사람, 그 누구라도 쓸 수 있고 또 그 누구라도 써야 한다. 때로는 학문으로 역사를 공부하지 않은 이가 쓴 역사책은 그 시각이 틀에 박히지 않고 어느 대학자의 계보에 속하지 않아 신선하다.

<세계사 편력> 역시 역사학자의 학문적 성과물이 아니다. 저자 자와할랄 네루는 인도가 오랜 식민 통치에서 벗어나는데 간디와 더불어 큰 역할을 한 사람이며 독립 인도의 초대 총리를 역임했다.

자연과학과 법학을 공부했고 정치가의 길을 걸었다. 그럼에도 이 책 구석구석에는 세계사를 바라보는 일관된 시각과 당대의 삶과 연관된 기술이 생생하다. 그것은 저자가 20세기 초반의 제국주의를 온 몸으로 겪으며 그 질곡의 시간을 뚫고 나오려고 몸부림 친 장본인이기에 가능했던 것이리라.

영국의 식민 통치자에 의해 구금되어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혼란스런 세상에 홀로 남은 딸에게 자신이 올바르다고 믿는 세계로 나아가기 바라는 마음을 담았기에 책의 부제도 ‘아버지가 딸에게 심어준 역사관ㆍ세계관’이다.

이 책은 원시시대부터 시작하는 방대한 세계사의 흐름을 다룬다. 그렇다고 원시시대부터 이 책을 저술할 당시인 1930년대까지 세계사의 사건을 일일이 열거하여 읽는 사람을 따분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역사를 만들어가는 사람으로서 학문적 규율에 구속되지 않는 과감함을 발휘해 구성은 자유롭다.

저자가 주목한 세계사의 두 축은 서구의 제국주의와 그 아래 신음하는 민중이다. 제국주의가 어떤 방식으로 폭력을 휘두르고 그 세력을 어떤 교묘한 방법으로 유지하는지에 관심이 집중된다. 제국주의의 폭력 아래 숨죽이며 살아가는 민중의 삶에 관심을 집중한다. 인도에 국한한 고통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제국주의라는 세계적인 폭력에 고통받는 피해자를 모두 말한다. 인도를, 남아메리카를, 조선을, 중국을, 아프리카를, 유럽의 약자를 말한다.

흔히 우리는 독일과 일본의 패망으로 제국주의는 종말을 고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저자의 시각을 빌자면 제국주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제국주의의 시대도 이미 지나 더 진보하고 더 완전한 방법으로 바뀌고 있다. (중략) 다만 그 나라의 재화나 또는 재화를 낳는 요인을 차지하는 것이다. 이런 식은 자기 이익을 완벽하게 챙기고 근본을 지배할 수 있으며, 동시에 그 나라의 통치와 치안에 대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지낼 수 있는 방법인 것이다. 실효면으로 보면 그 나라와 인민은 모두 지배를 받고 아주 쉽게 근본이 장악되어 버렸다. (중략) 그 현대적 형식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경제에 있어서의 제국주의가 되었다.

다분히 혁명가다운 시각이며 어떤 면에서는 피해자의 과격함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시각의 바탕에는 어느 한 계층의 안위와 안전보다는 민족과 민중 전체의 안녕을 걱정하고 그것을 담보하는 길만이 약소국이 좇아야 할 과제라고 본 저자의 세계관이 자리하고 있다.

너무나 궁핍한 생활을 하는 노동자와 농민은 막연한 민족주의적인 몽상보다는 오히려 빈 뱃속을 채우는 데에 더 관심이 있다. 민족주의 내지 독립이 더 많은 식량과 더 나은 생활 여건을 가져다 주지 않는 한 그들에게는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우리 나라 문제는 단순히 정치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사회적인 문제이다.

지금의 우리와는 처지가 다른 70년 전의 시대를 산 저자의 시각을 가감 없이 받아들일 수는 없다. 저자는 정치가이기 전에 계급의 최상위층에서 자라 지도자로서 역할을 하던 사람이란 점을 감안해야 하고 당시는 생존이 급급한 절박한 상황이었음을 감안해야 한다. 그런 고려 뒤에 우리가 취해야 할 것을 찾아야 한다.

그럼에도 단순히 정치적인 성공과 독립의 완성만을 바라는 것은 완전한 평화와 안녕이라고 할 수 없다는 그의 뜻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울림을 이끌어 낸다. 세계사의 흐름을 단순히 강자의 승리와 패자의 반격이라는 외형적인 대사건만을 볼 게 아니며(저자에게 나폴레옹은 잔악한 폭군일 뿐이다) 몽상적인 전체의 행복이 아닌 개개인의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해 본다. 역사란 대단한 사람들이 남긴 업적의 기록이 아닌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것이어야 옳다.

참으로 위대란 인물은 남녀를 막론하고 왕좌나 왕관이나 보석이나 칭호로 위세를 부린 사람들이 아니다. 참된 역사는 여기 저기 흩어진 몇몇 개인이 아니라 하나의 민족을 형성하고, 일터에서 생활필수품이나 귀중품을 생산하며 여러 사람과 서로 긴밀한 협력을 하고 있는 민중들을 다루어야 할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국가를 지칭하면서 영국, 미국, 러시아라고 하지만 결코 그것이 그 나라 전체를 말하는 게 아니라고 못박는다. 그렇게 부르는 것은 잘못된 교육에 습관이 든 결과이며 '나라'의 의미가 정부인지, 왕인지, 민중인지 파악해야 한다고 거듭 말한다. 허울에 속지말고 진실의 실체를 알아가는 게 역사를 배우는 참뜻인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자꾸 내 주의와 우리의 역사를 돌아보게 된다. 뭔가 거대하고 웅장한 것에 현혹되어 진짜 내가 원하는 게 뭔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나 자신에게 되묻는다.

답은 잘 나오지 않는다. 오랜 습관과 교육의 틀을 쉽게 벗어날 수도 없는 탓이다. 머릿속이 더 복잡해진다. 그러나 머릿속이 복잡한 것은 어쩌면 내가 세상의 풍파를 온 몸으로 부딪쳐 본 적이 드문 탓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자꾸 생각만 말고 부딪쳐 보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그 부딪침으로 지금과 다르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갈 수 있는 세상보는 눈이 생긴다면 더 없이 좋겠다. 그리고 함께 가는 이들에게 이 책 <세계사 편력>을 권하겠다.

세계사 편력 1 - 아버지가 딸에게 들려 주는 세계사 이야기, 개정판

자와할랄 네루 지음, 곽복희 외 옮김, 일빛(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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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기업하면서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려고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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