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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악관, 경비가 삼엄해서 숲 사이로 간신히 카메라에 담았다
ⓒ 박도
2004년 2월 3일(화)

입국 나흘째 날이다. 사흘 밤을 잤으나 아직도 온몸이 가뿐치 않다. 거기다 이른 아침부터 비까지 내린다. 이런 때는 “뜨끈뜨끈한 온돌방에 지지면 온몸의 피로가 싹 가시겠다”고 권 선생이 말했다.

세미나 참석을 위해 캐나다에 가신 이도영 박사로부터 내일 오후에는 합류하겠다는 전화가 왔다. 가까운 친지의 상까지 당해 장례식을 마친 뒤에 오시겠단다. 그때까지 시차 적응을 해서 정상의 몸을 만들어 둬야겠다.

“나이 앞에 장사가 없다”더니 시차 적응을 못해 헤매고 있다. 많은 분께서 조금도 부담을 갖지 말라지만 어디 그게 쉬운 일인가? 부담을 갖지 말라면 더 부담이 간다. 하지만 그 말씀에는 뜨거운 애정이 담겨 있음을 느낀다.

▲ 워싱턴 거리(1)
ⓒ 박도
인터넷 연결을 위해 주태상씨가 오전 10시 정각에 왔다. 새 프로그램까지 깔아 와서 진땀을 흘렸으나 연결되지 않았다.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으면 고국에 송고를 할 수 없다. 많은 분들이 나에게 미국행을 명령한 것은 이곳에서 활동을 생생하게 중계해 달라는 뜻이 담겨있을 것이다.

이곳에서 후원하시는 분운 PC방이나 대학 휴게실 같은 곳을 이용해 송고하는 방법을 제시했지만 많이 불편할 것 같아서 나는 결단을 내렸다. 거리가 다소 멀더라도 인터넷 선이 연결된 숙소를 구하자고.

주태상씨가 백방으로 알아본 결과, 20여 분 떨어진 곳에 값도 싼 모텔이 있다고 하여 즉시 체크아웃을 하고 비를 맞으며 숙소를 옮겼다. 짐을 내린 후 노트북을 꺼내 인터넷을 연결하자 연결 성공을 알리는 신호음이 들려 쾌재를 불렀다.

▲ 국회의사당
ⓒ 박도
그새 나도 인터넷 문명병에 단단히 중독된 듯하다. 짐을 풀지도 않고 먼저 고국으로 보내는 제3신 기사를 써서 보냈다.

허용씨가 밥솥을 가지고 와서 권 선생이 그새 저녁밥을 지어놓았다. 어른 대접은커녕 오히려 밥을 받아먹어서 송구스럽기 짝이 없다.

서울에서 가지고 온 김과 고추장 멸치볶음에 이재수씨가 주고 간 깻잎 절임을 먹자 입안이 산뜻한 게 갑자기 행복했다. 확실히 한국 사람은 고추장 된장 깻잎을 먹어야 입맛이 산뜻하고 밥을 먹은 것 같다.

▲ 경비가 삼엄한 백악관 언저리
ⓒ 박도
2004년 2월 4일(수) 입춘

이도영 박사가 장례식에 참석 후 오후에 도착한다고 했다. 그분이 와야 체계적으로 검색작업을 할 수 있다. 오전에 숙소에서 빈둥거리기보다는 워싱턴 거리나 산보하려고 주태상씨를 불러 안내를 부탁했다.

워싱턴은 미 합중국의 수도답게 도시 계획이 잘되고 고풍이 깃든 도시였다. 하지만 백악관 언저리는 경계가 삼엄해 정·사복 경찰이 길을 메웠고 상공에는 헬기가 계속 돌고 있었다.

자유와 평화의 상징 백악관이 이제는 테러의 표적으로 전전긍긍하는 것은, 마치 남의 곳간 양식을 노리다가 내 곳간의 금은보화를 잃는 어리석음을 저지르는 것 같아 한국의 한 무명작가가 미 지도자에게 정문일침을 가한다.

▲ 이도영 박사
ⓒ 박도
진정한 세계 평화와 자유를 위한다면 남의 주권도 존중해 달라. 당신 나라의 한 주보다 작은 한반도를 ‘결자해지’ 곧 묶은 자가 풀어주듯이, 이제는 지구상의 하나뿐인 한반도의 분단을 풀어주는 게 정녕 대국다운 아량이고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는 길이 아닐까?

지나가는 나그네가 무심코 장난 삼아 던진 돌에 맞은 개구리가 치명상을 입듯이, 강대국들이 자기네 맘대로 그어 놓은 삼팔선, 휴전선 때문에 우리 겨레는 그동안 얼마나 서로 반목, 시기, 갈등, 저주의 나날을 보냈던가.

피를 나눈 형제끼리 한 하늘을 서로 함께 이고 살 수 없는 원수로 살지 않았나?

왜 우리 한반도가 분단되어야 하나? 우리는 전쟁을 일으킨 적도, 패전국도 아니다. 우리나라가 분단돼야 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태평양전쟁이 끝난 지 60년이 되었는데도 여태 분단의 멍에를 짊어지고 사는 우리 겨레는 정말 억울하다.

다른 건물과는 달리 유난히 삼엄한 백악관을 숲 사이 틈새로 간신히 카메라 앵글에 담았다. 문득 김남주 형의 <조국은 하나다>라는 시구가 내 가슴을 울렸다.

오후 5시, 이도영 박사가 숙소 문을 두드렸다. 초면이었지만 지기지우를 만난 듯, 그 반가움이야.

▲ 미 연방 최고 재판소
ⓒ 박도
▲ 워싱턴 거리(2)
ⓒ 박도
▲ 워싱턴 거리(3)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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