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눈 내린 강변마을 풍경
ⓒ 김도수
봄에 씨앗을 뿌려 김장을 하는 늦가을까지 주말이면 밭농사 지으러 잘도 가던 고향마을에 발걸음이 뜸해졌다. 겨울철은 농사일이 없으니 내게도 농한기 철이 된 셈이다.

혹한의 겨울철, 고향마을 집에 가서 하룻밤 자기 위해 아버지가 늘 주무시던 따뜻한 아랫목에 누워있으면 자리다툼을 벌이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저녁을 먹고 나서 이불만 폈다 하면 아버지가 주무시는 뜨끈뜨끈한 아랫목에 누워 자려고 나보다 두 살 많은 형과 네 살 어린 누이 동생은 서로 싸웠다. 아버지 곁에 자려고 서로 자리다툼을 벌이고 있으면 아버지는 하룻밤씩 돌아가면서 공평하게 재웠다. 따뜻한 아랫목에 잠이 들던 그 긴 겨울 밤이 어린 우리들에겐 참으로 행복한 밤이었다.

어머니는 구들장이 빨리 식지 않도록 부엌 아궁이를 철판조각으로 꽉 틀어막았다. 그러나 앞 강에 얼음이 잡히는 새벽녘이면 우리들은 언제나 허리를 구부리며 자고 있었다. 구들장이 식어갈수록 가족들은 꼽추허리가 되어 서로가 서로의 몸을 밀착시켜 잠을 잤다.

시골집의 따끈따끈한 아랫목

▲ 강줄기 꽁꽁 얼음 잡힌 마을 앞 강
ⓒ 김도수
주말에 고향 집에서 자다 보면 딸내미와 아들녀석이 한밤중에 오줌을 누고 오거나 새벽녘에 잠깐 눈을 뜰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아이들은 얼굴이 시리다며 이불을 얼굴까지 끌어다 덮는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벽 속에 보온재와 이중으로 된 유리창이 외부공기를 차단하고 있기 때문에 보일러를 조금만 가동 해도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가 있다.

하지만 시골집 안방은 한지(韓紙) 한 장으로 칼 바람을 차단하고 있으니 외풍이 심할 수밖에 없다. 외풍 없는 따뜻한 아파트에서 잠을 자다 찬 바람 솔솔 파고드는 시골집에서 잠을 자니 애들은 얼굴이 시리다며 이불을 끌어덮는 게 당연한 일이다.

도시에서만 살아왔던 아내는 아파트처럼 외풍 없는 집으로 개조를 하자고 여러 번 제의를 했다. 하지만 부모님들이 짓고 살았던 가옥구조를 내가 쉽게 개조하지 않으려 하니 아내는 이제 더 이상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혹한의 겨울철, 시골집에서 자며 외풍을 견디며 살아왔던 우리 조상들의 가옥구조를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체험시키는 것도 훌륭한 생활공부라 생각해 문종이 한 장 바르고 살아왔던 고향 집을 나는 아직도 그대로 보존하며 지낸다.

밥솥 아궁이에 저녁밥만 해먹고 잤던 것에 비하면 지금은 24시간 기름보일러가 펑펑 돌아가니 구들장 뜨끈뜨끈한 쇠죽 방이나 다를 게 없다며 구식 털털한 이야기나 해대는 나를 설득시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어서 아내는 아마 개조하는 것을 일찍 포기했을 것이다. 나도 외풍 없는 따뜻한 집으로 개조도 하고 싶지만 부모님들이 살았던 가옥구조를 손댄다는 게 부모님께 죄스러워 문종이 한 장에 칼 바람 막아내는 안방에서 잠을 자고 있는 것이다.

▲ 눈 내리는 강변마을에 고향에 찾아온 윗집 현석이네 가족들
ⓒ 김도수
우리 집은 원래 큰 방과 작은 방 그리고 조그마한 광이 하나 있었다. 그런데 예전에 이 집을 사서 몇 년간 살았던 사람이 방을 하나로 크게 터서 보일러를 놓았다. 큰 방문 두 개와 뒷문 한 개 그리고 작은 방 한 개까지 모두 네 개의 문짝이 각각 창호지 한 장으로 밖의 공기를 차단하고 있다. 방벽은 단열재도 넣지 않는 황토 흙만 발라놓았다. 때문에 창호지 곳곳에 자연스레 찢어진 구멍들, 그리고 문짝과 문짝 사이에 벌어진 문틈 사이로 찬바람이 숭숭 파고 들어와 외풍이 심하다.

뚫린 구멍을 창호지로 바르고 문짝 틈 사이에 문풍지를 발라서 외풍을 막아도 어디에서 그렇게 찬바람이 솔솔 파고 들어오는지 뜨끈뜨끈한 방바닥과는 다르게 잠을 자려고 이불 속에 들어가 누우면 얼굴이 차갑기만 하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안방 아궁이에 저녁밥 짓는 불 이외에는 땔나무를 아끼기 위해 별도로 군불을 지피지 않았다. 그래서 올망졸망한 자식들은 잠자리에 들 때면 언제나 뜨끈뜨끈한 아랫목에 주무시는 아버지 곁에서 잠을 자려고 서로 다투었던 것이다. 어머니가 시집 올 때 혼수용품으로 장만해오신 오신 빛 바랜 솜이불 하나로 아홉 식솔들 덮고 자는 밤이면 발목이 여기저기서 삐쭉삐쭉 튀어 나왔고 그 때마다 식구들은 등을 구부린 채 잠을 자고 있었다.

어머님이 홑청에 풀을 먹여 까실까실한 솜이불을 덮고 자는 밤이면 나는 이불을 얼굴에 살살 문지르며 잠이 들곤 한다. 얼굴에 까실한 감촉이 느껴지는 이불을 덮고 자는 새벽녘, 시린 얼굴위로 이불을 끌어당기며 잠에서 잠깐씩 깨어날 때면 그 때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 많은 자석들, 어치게 해서든지 등짝에 지게는 안 짊어지게 해놓고 우리가 죽어야 헐턴디….”

긴긴 겨울 밤, 안방 윗목에는 물을 먹을 수 있도록 숭늉 한 그릇이 항상 놓여져 있었다. 그러나 아침에 일어나보면 숭늉그릇 옆에는 찬물 한 그릇이 하나 더 놓여져 있었다. 숭늉이 떨어져 어머님이 부엌에 길어다 놓은 물동이에서 찬물을 떠 다 놓은 것이다. 아홉 식솔들 밤새 꼽추허리가 되어 솜이불 속으로 파고드는 혹한의 긴 겨울 밤이면 아침에 일어나 윗목에 놓여져 있던 찬물 그릇을 부엌으로 내다 놓으려 하면 살얼음이 잡혀있었다.

▲ 우리 집 안방 문
ⓒ 김도수
살얼음 잡히는 날 아침이면 아버지는 두 손을 앞 뒤로 비벼대며 꼭 한마디씩 하셨다.
“하따, 엊저녁에 무던히도 추웠는갑다. 웃묵에 놓아둔 찬물이 다 얼어불었당게.”

어머니 시집 올 때 혼수용품으로 장만해온 솜이불 거죽은 파란색이었다. 자식들을 낳아 키우다 보니 이불이 작아 어머니는 솜을 더 넣고 이불을 늘렸는데 파란색 거죽이 모자라자 빨간색 거죽을 한쪽에 이어 씌웠다. 우리 집 이불을 보고 있으면 나는 꼭 태극무늬가 떠올랐다.

어머니는 저녁을 지을 때면 이불이 따뜻해 지도록 벽장 속에서 미리 꺼내 놓으라고 했다. 그 일은 나보다 두 살 많은 바로 위 형과 내 몫이었는데 어쩌다 형과 내가 깜박 잊어버리고 솜이불을 벽장 속에서 꺼내놓지 않으면 어머니께 몹시 혼이 났다. 잠자기 바로 직전, 차디찬 벽장 속에서 이불을 꺼내 놓고 잠자리에 들려면 식구들은 이불이 차가워 몸을 움츠리며 이불 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이불이 차가워 한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가 이불이 따뜻해지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들은 잠이 들곤 했다.

고향 집을 사고 난 뒤로 겨울철 집안에 일이 있거나 명절이 돌아와 고향 집에서 잠을 자면 형님들은 방안을 한번 빙 둘러본다.

“요로케 작은 방에서 쌀 가마니까지 놓고 그 때 어치게 그 많은 식구들이 다 잤는가 몰라.”
형님들과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다 새벽녘 잠에서 깨어나면 “쇠죽 방처럼 등짝은 뜨건뜨건헌디 왜 이리 얼굴이 춥다냐” 며 형님들도 이불을 얼굴까지 끌어당긴다.

▲ 옆집 사랑 방에는 메주가 달리고...
ⓒ 김도수
솜이불을 얼굴까지 끌어 당기며 잠을 잤던 고향 집 안방에 누워 잠을 청한다. 올망졸망한 자식들 모두다 떠나간 고향 집 안방은 지금 윗목 아랫목 구별이 없이 기름 보일러가 밤새도록 펑펑 돌아가며 쇠죽 방처럼 뜨겁기만 하다.

하지만 시린 외풍만은 여전해 “아빠, 얼굴이 시려요” 하며 이불을 뒤집어 쓰고 새근새근 잠이든 아이들 모습을 바라보면 참 예쁘기만 하다. 부모님이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던 새벽녘 목소리가 아직도 안방에 소곤소곤 들리는 듯 하다.

10원짜리 고스톱을 치며 시끄럽게 떠들던 아내와 이이들이 곤한 잠에 빠져든다. 고요한 산골마을에 눈만 펑펑 내리고 이 집 저 집에서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만이 정적을 깨뜨리며 윙윙거린다. 아버지의 고단한 숨소리와 어깨가 시리다며 돌아누운 어머니의 모습을 그리다 나도 아랫목에서 스르르 깊은 잠에 빠져든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정겹고 즐거워 가입 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염증나는 정치 소식부터 시골에 염소새끼 몇 마리 낳았다는 소소한 이야기까지 모두 다뤄줘 어떤 매체보다 매력이 철철 넘칩니다. 살아가는 제 주변 사람들 이야기 쓰려고 가입하게 되었고 앞으로 가슴 적시는 따스한 기사 띄우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