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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 정개특위 선거법 소위에서 전자서명제 도입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일부 의원들은 "흑색선전을 막기 위해 전자서명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중이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국회 정개특위 선거법 소위에서 일부 의원들이 선거기간 동안 인터넷언론사나 정치인들의 홈페이지에 '전자서명제'를 통한 실명 확인 제도를 도입하려 하고있어 파문이 일고 있다.

선거법 소위 위원으로 참석하고 있는 장성원 민주당 의원, 김학원 자민련 의원은 지난 26일과 27일 열린 회의에서 "선거기간 동안 전자서명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은 각 언론사 홈페이지나 인터넷매체 홈페이지는 물론, 선거관련 글이 올라올 '가능성'이 있는 모든 인터넷 홈페이지에 전자서명 시스템을 구축해 흑색선전을 유포하거나 후보자를 비방하는 네티즌들을 그야말로 '발본색원',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견 그럴듯한 논리다.

그러나 사실 전자서명제 도입을 주장하는 의원들은 이 시스템이 어떤 것인지도 잘 모르고 있다. 전자서명제가 어떻게 작동하는 것인지, 얼마나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필요한지, 무엇보다 이 제도 도입이 가져올 엄청난 부정적 효과가 어떤 것인지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아니, 차라리 '인터넷'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표현해야 정확할 것이다.

선거기간 전자서명제? 의원님들, 무식한 겁니까 용감한 겁니까

27일 열린 선거법 소위 회의에서는 이같은 의원들의 '무지(無知)'가 그대로 드러났다. 전날 회의에서 전자서명제 도입이 여야 의원간 논란으로 보류되자, 소위에서는 신용섭 정통부 정보보호심의관을 불러 전자서명제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신 심의관은 전자서명제를 도입할 경우 각 사이트마다 프로그램 구축에 ▲1∼2개월 가량의 시간 소요 ▲서버 1대당 최소 2000만원의 비용 ▲네티즌 1인당 연간 5000원의 이용료 등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전자서명제의 본래 목적이 "인터넷 뱅킹과 사이버 증권거래 등 전자거래의 위조·변조 방지와 신원확인"이라는 점도 자세히 설명했다.

신 심의관의 설명이 끝나자 김학원 자민련 의원은 "절대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김 의원은 "선거에서 허위사실 유포, 흑색선전하는 것이 제일 악질범"이라며 "선거기간 동안만 (전자서명제를) 하자는 것인데, 그것도 (네티즌들이) 불편하다면 이것은 허위사실을 하겠다는 선전포고나 마찬가지"라는 해괴한 논리를 폈다.

▲ 장성원 민주당 의원.
ⓒ 오마이뉴스 이종호
장성원 민주당 의원의 반응은 더 가관이었다. 소위 시작 후 자리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던 장 의원은 전자서명제를 반대하는 유시민·천정배·원희룡 의원과 김학원 의원 사이에 설전이 일어나자 뜬금 없이 "전자서명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 뒤 장 의원은 "더 이상 이야기 할 것도 없다"며 "정치적으로 말씀드리면 인터넷 음모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주장했다.

김학원·장성원 의원의 주장에는 전자서명제 도입에 대한 사회적 비용이나 부작용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었다. 오직 '네티즌=흑색선전=처벌'이라는 한가지 논리만이 있을 뿐이었다.

두 의원의 주장대로 전자서명제가 도입된다면, 앞으로 선거와 관련된 보도를 하는 모든 언론사들은 '서버 1대당' 최소 2000만원의 비용을 들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또 약 70여일 남은 17대 선거 보도를 하려면 지금부터 재빠르게 전자서명 시스템을 만들기 시작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모든 포털사이트, 정치관련 인터넷 동호회, 정당과 정치인 홈페이지는 물론, 총선에 출마하는 예비후보자들의 홈페이지도 수천만원씩 들여 전자서명제를 도입해야 한다. 여기에 드는 사회적 비용은 어마어마해서 추산조차 되지 않는다.

네티즌 5000원씩 이용료 부담

사회적 비용 지출에 네티즌들도 예외는 아니다. 현재 무료로 사용되고 있는 전자서명제는 올해 하반기가 되면 약 5000원씩의 이용료를 받을 전망이다. 네티즌들은 '글 한번' 올리기 위해 5000원씩의 비용을 내야 하는 것이다. 또 전자서명 프로그램이 설치된 컴퓨터가 아닌 곳에서 글을 올리기 위해서는 프로그램을 따로 다운 받아 일일이 컴퓨터에 설치해야 한다.

중요한 점은 글도 잘못쓰면 흑색선전 유포자로 법적 처벌까지 받을 각오도 해야 한다. 그야말로 '빅브라더'의 시대가 오는 것이다.

문제는 또 있다. 김학원 의원과 장성원 의원의 주장은 이같은 조치를 '선거기간'에만 한정하자는 것이다. 말하자면 선거운동 기간 15일을 쓰자고 수천만원씩의 비용을 지출하라는 얘기다.

거시적으로 보자면 전자서명제 도입은 지난 수년간 인터넷을 통해 이뤄진 유권자들의 활발한 정보교류와 정치참여, 그로 인한 정치개혁 성과를 아예 없애버린다는 점에서 치명적인 결점을 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주장하는 의원들은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으로 밀어붙이는 중이다.

온라인상에서 흑색선전을 예방하자는데 토를 달 네티즌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전자서명제를 도입해 효과를 볼 것인지, 또 그 효과가 부정적인 '반대급부'보다 더 나은 것인지는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전자서명제 도입을 반대한 유시민 열린우리당 의원은 이날 회의가 끝난 뒤 "의원들이 인터넷과 현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며 "흑색선전을 막으려는 네티즌들의 자정 노력, 인터넷의 순기능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없다"고 지적했다.

선거법 소위는 28일 전자서명제를 다시 논의할 예정이지만, 김학원·장성원 의원 등이 완강하게 도입을 주장하고 있어 또 한 번 갈등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덧붙이는 글 |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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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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