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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2003년 올해의 인물'로 새만금 생명평화를 위한 '삼보일배'와 부안 핵폐기장 투쟁현장을 지켰던 문규현 신부(58, 부안 본당신부)를 선정했습니다. 문 신부는 지난 3월 수경 스님, 김경일 교무, 이희운 목사 등 성직자 3명과 함께 부안 해창갯벌부터 서울 광화문까지 65일간의 '삼보일배' 고행을 통해 새만금 간척사업의 부당성을 온몸으로 호소했습니다.

문 신부는 또 지난 여름 부안군이 핵폐기장 유치를 신청하면서 이 문제가 지역현안으로 떠오르자 반년 가까이 지역주민, 시민단체들과 함께 핵폐기장설치 반대투쟁을 이끌어오고 있습니다. 문 신부가 봉직하고 있는 부안성당이 '반핵의 성지'로 일컬어지고 있을 정도로 그는 지역주민들의 정신적 기둥 역할을 해 왔습니다.

<오마이뉴스>는 금년 한 해 우리사회의 대표적 논쟁적 사안 두 가지, 즉 '새만금'과 이른바 '부안사태'와 관련해 생명·평화운동을 펼치며 합리적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동시에 성직자로서 늘 약자들의 편에 서온 문 신부를 여러 후보들 가운데 '올해의 인물'로 최종 선정하였습니다... 편집자 주


▲ 지난 7월 22일 부안 수협앞에서 열린 `핵폐기장 건설 반대 및 군수퇴진을 위한 부안군민 일만인 궐기대회`에 참석한 문규현 신부.
ⓒ 오마이뉴스 권우성
'운동권 신부'라는 선입견과 달리 문규현 신부는 부드럽고 공손하다. 거리의 시위현장에서 마이크를 잡고 쩌렁쩌렁하게 구호를 외치다가도 기자가 "건강은 괜찮으세요"라고 인사라도 드리면 "네, 좋습니다"라는 웃음띤 대답이 돌아온다.

<오마이뉴스>가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는 기자의 전화 연락을 받고도 그는 "제가 한 게 뭐 있나요, 다 우리 군민들이 한 거고..."라며 겸연쩍어 했다. 문 신부의 형이자 동지인 문정현 신부도 지난 2001년 오마이뉴스 '올해의 인물'에 선정된 바 있어 형제가 모두 <오마이뉴스>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셈이다.

문 신부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삼보일배 내내 나 자신의 '조급하고 배타적인' 태도를 성찰했다"며 "사회보다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 더 어렵다"고 털어놨다.

89년 임수경씨의 귀국을 돕기 위해 방북했던 일로 널리 알려진 문 신부는 "생명과 평화는 통일의 과정이기도 하며 통일의 내용이기도 한 것이다, 이것은 분리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우선 순위를 가릴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라며 현재 자신의 화두가 생명과 평화임을 분명히했다.

지친 몸을 아직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있는 그는 그의 내년 소망은 "일시적인 싸움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생명과 평화 운동을 일구는 일"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 그는 생명평화재단을 준비하고 있는데 "흩어져있는 뜻과 꿈과 능력을 모아보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305km 삼보일배, 초인적 고행...부안성당은 '반핵의 성지'

한편 <오마이뉴스>가 선정하는 2003년 '올해의 인물' 문규현 신부는 올 한해를 뜨겁게 달궜던 환경이슈인 '새만금 삼보일배'와 '부안 사태'의 정점에 서있던 인물이다.

그만큼 올해 언론에 가장 많이 노출된 성직자이다. 봄에는 수경스님, 김경일 교무, 이희운 목사, 김숙원 교무와 함께 새만금 갯벌을 살리기 위한 65일간의 삼보일배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출발지인 부안 해창갯벌에서 도착지인 서울 광화문까지의 거리는 약 305km. 약 12만 번의 걸음과 4만 번의 절이 있어야 닿을 수 있는 먼길이다. 뜨거운 아스팔트에서도 비가 내리는 흙길에서도 삼보일배는 계속됐다.

특히, 수경 스님은 서울 입성을 눈앞에 앞두고 실신해 병원에 실려갔지만 휠체어에 앉은 채 다시 삼보일배 현장에 나섰다. 서울에 도착하던 순간, 성직자들은 모두 눈물을 흘렸다. 말 그대로 '초인적'인 이 고행은 새만금 간척사업을 다시 사회의제로 떠올렸다. 수많은 시민사회단체와 종교인, 대학생, 정치인, 문화예술인, 일반 시민이 삼보일배에 동참했다.

삼보일배를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하던 문규현 신부는 부안군이 핵폐기장 유치를 신청하면서 다시 핵폐기장 투쟁에 나섰다.

처음 투쟁이 시작된 7월 한여름부터 12월 현재까지 부안성당은 '반핵의 성지'로 일컫는다. '핵폐기장백지화 핵발전소추방 범부안군민대책위원회'가 성당 건물에 둥지를 텄고, 주민들은 성당 앞마당에서 집회에 들고나갈 피켓과 플래카드를 만들었다. 핵폐기장 수배자들은 경찰을 피해 몇 달째 성당에 묵고 있다.

문 신부는 지난 11월 20일부터 12월 13일까지 31일동안 단식투쟁을 벌였다. 12월 12일 새만금 사업중지 행정소송에 열리는 서울 행정법원을 방청하러 온 그는 9kg가 빠져 초췌해진 모습이었다.

담담하게 웃으며 "내가 죽어서 된다면야"라고 말하던 문 신부는 다음날 부안에서 열린 총력결의대회에서 다시 특유의 우렁찬 목소리로 "우리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라고 외쳤다. 부안에서 핵폐기장이 완전 백지화될 때까지, 그리고 정부의 핵발전 정책이 끝나기 전까지 부안군민과 문규현 신부는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문 신부와의 인터뷰는 '올해의 인물' 선정 직후할 예정이었으나, 마침 성탄절 행사로 문 신부가 시간을 내기 쉽지 않아 서면인터뷰로 대신해야 했다. 다음은 문 신부와의 일문일답이다.

▲ 지난 5월 15일 문규현 신부, 수경스님, 김경일 교무, 이희운 목사가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위에서 49일째 삼보일배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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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평화운동은 이 시대 민주화 투쟁... 내가 변하면 세상도 변할 것"

- 최근 근황과 건강은 어떠신가요.
"65일간의 삼보일배를 마치자마자 부안 핵폐기장 유치 반대 운동에 나서야 했으니, 사실 제 몸에게 제가 참말로 미안합니다. 최근에는 한달여의 단식을 마치고 아직 죽을 먹으며 건강을 회복하는 중인데, 그래도 숨을 쉬고 걸을 수 있으니 힘들지만 괜찮습니다. 수경스님이나 김경일 교무님, 이희운 목사님 모두 건강이 좋지 않아 병원을 왔다 갔다 하고 있습니다. 모두들 달리 활동하시기가 쉽지 않은 상태입니다."

- 삼보일배와 부안 핵폐기장 투쟁 현장을 지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권력, 자본, 관료들이 똘똘 뭉쳐서 물질만능과 개발지상주의를 무슨 지상낙원인양 퍼뜨린다는 점, 소수의 이익을 위하여 자연과 그 자연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을 철저하게 제물 삼고있다는 점이 너무도 선명하게 다가왔습니다. 예전에는 군사독재와 반군사독재, 반민주와 민주, 이런 구도였고, 국가의 물리력은 전자를 사수하기 위하여 복무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환경과 평화를 위한 운동은 결코 낭만이 아닙니다. 이 시대의 민주화 투쟁이며 반독점 운동이요, 생명권과 생존권을 지키는 치열한 운동입니다.

내 눈앞에서 그저 농꾼, 어부, 시골 촌부일 뿐인 군민들이 방패에 찍혀 수없이 실려갈 때, 군민들의 정당한 투쟁이 지역이기주의로 매도당할 때 정말 힘들었습니다. 내 몸이 고단함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팔십 먹은 노인들이 이 눈 내리는 추운 밤에도 촛불집회에 참석하는 걸 보십시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태풍이 치든 명절이든, 하루도 거르지 않고 촛불을 드는 군민들의 모습이 제게는 가장 감동적입니다."

- 자기 성찰의 고행인 65일간의 삼보일배 동안 가장 크게 성찰하신 것은 무엇인지.
"삼보일배는 참으로 느리고 느린, 어떤 사람 표현대로 차라리 기어간다는 표현이 맞는 아주 느린 기도였습니다. 그 한없이 느린 여정을 가면서 나는 우리가 얼마나 '빠름'이라는 속도에 젖어있는지를 사무치게 체험했습니다. 우리 곁을 무심히 지나쳐 질주하는 수많은 차량들, 그 속도는 철저히 오직 앞만 보고 저 혼자 가는 존재였습니다.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도 모르게 그 속도에 익숙해져 있는지 모릅니다. 잠시 멈추어 깊은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나와 환경과 관계들을 찬찬히 둘러보는 것이 너무 어려워졌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자연 앞에 감사하며 그 경이로움 앞에 큰절 한 번 올리기란 더더욱 쉽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운동이나 싸움도 그 모습을 닮아있지는 않은가 자문하게 되었습니다. 조급하고, 성과에 집착하고, 배타적이고, 쉽게 단념하고, 눈에 보이는 것들을 더 찾아다니고... 가장 무서운 적은 우리가 극복하고자 하는 것을 닮아 있는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고난의 삼보일배와 기도를 통해 내 안의 화를 없애고, 더 인내심 있고, 더 수용적인 사람이 되어보려 하지만, 그런 바람과는 다른 표현을 하고 있는 저를 보곤 합니다. 그래도 저는 죽을 때까지 변화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보다 어려운 것이 나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요, 내가 변화하면 세상도 변화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 5월 23일 문규현 신부와 수경스님이 서울에 입성한 직후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 처음에는 새만금간척사업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었다고 들었습니다. 새만금의 뭇생명들을 주목하신 이유와 계기는?
"1999년에 나는 전북 부안에서 광야의 외침과도 같은 작은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것은 새만금 갯벌을 살려달라는 어민들과 부안 지역 젊은이들 몇몇의 절규였습니다. 사실 당시 나는 새만금 갯벌에 대한 이해나 관심은 적었고 다만 그들의 외침이 하도 작고 미미해서 그저 힘을 돋우어 주려는 마음으로 함께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점점 더 어민들과 새만금 갯벌이 겪고 있는 고통 자체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동시에 내 자신이 바로 범죄행위에 연루돼 있음을 뼈아프게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나는 새만금간척 피해를 겪고 있던 김제의 본당 신부로 지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때는 간척사업의 심각성도 잘 몰랐고 무심하기조차 했습니다. 나는 파괴되고 있는 갯벌과 산과 바다를 끼고서 드라이브도 하고, 더러는 손님들에게 죽음의 현장을 감춘 풍경의 '아름다움'을 말하곤 했던 것이다. 부끄러운 일이었고 참으로 죄스러운 내 모습이었습니다."

- 전북도민들은 새만금간척사업을 반대하면서도 일면 지역적인 소외감과 저개발 상황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저는 전북에서 나고 자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전북 개발을 가로막는 배신자'라는 욕을 무수히 듣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뒤집어 생각해봐도, 이것은 죽음의 길이지 생명과 평화의 길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릅니다.

지역적인 소외감과 저개발 상황을 인정합니다. 도민들의 상대적 박탈감과 아픔에 공감합니다. 하지만 새만금 간척을 통해서 그걸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환상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정치모리배들의 주장일 뿐입니다. 농지든 공업용지든 택지든 쓸모있는 땅으로 만들기 위해서 수십 년 걸리는 이 사업에서 도민이 입는 혜택은 없습니다.

소수 건설업자들과 관료들, 정치인들만 살찌울 뿐입니다. 십 년이 넘게 공사를 해왔는데 전북에 그 덕 입었다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새만금을 살리고 간척에다 퍼붓는 돈을 전북개발에 쏟는다면 훨씬 훌륭한 대안이 만들어지리라 생각합니다."

"부안군민, 밟아도 일어나는 풀잎들의 함성
핵발전 안전성 대한 모든 정보 공개되어야"


- 핵폐기장 투쟁을 통해 지역문화와 정서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부안군민들이 장기간 투쟁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어디에서 나온다고 보십니까?
"부안군민들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대단'합니다. 아, 이것이 밟아도 밟아도 일어나는 풀잎들의 함성이고 생명력이구나 싶어 감탄스럽습니다. 군민들은 매일 자신들을 업데이트하고 있습니다.

부안군민이 실현하고자 하는 것은 여지없이 짓밟힌 자신들의 주권과 존엄성의 회복입니다. 돈과 공권력으로 무지랭이들을 기죽이고 구워삶는 것이 통하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군민들은 부안독립공화국과 자주권을 선포할 만큼, 동학의 후예라는 자부심과 긍지로 가득합니다. 또 한편 군민들의 보여주는 엄청난 힘은 이들이 땅과 바다에 의지해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땅과 바다는 군민들에게는 생명과 생존이고, 태어난 곳이며 죽어 묻힐 곳입니다. 그런 곳에 핵폐기장이 들어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자신들의 삶의 터전과 후손들의 미래가 망가질 것이 뻔한 것을 두고볼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 7월 22일 오전 전북 부안군 수협앞에서 8천여명의 군민이 참석한 가운데 `핵폐기장 건설 반대 및 군수퇴진을 위한 부안군민 일만인 궐기대회`가 열렸다. 군청으로 행진을 하던 시위대가 부안우체국앞에서 저지하는 경찰과 격렬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문정현 신부와 문규현 신부 형제가 쓰러져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 일각에서는 이제 부안이 사실상 승리했다고 보기도 하지만, 부안군민들은 아직까지 마음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현 부안상황과 정부의 태도를 어떻게 보시는지….
"윤진식 산자부 장관이 사퇴했습니다. 그러면서 정부가 내놓은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아무 것도 없습니다. 부안군민에게 여전히 이 정부는 대책없는 정부이고, 폭군일 따름입니다. 부안군민들은 하루라도 빨리 예전과 같은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가길 열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명시적인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 상태에서 군민들은 여전히 정부를 불신하고 있습니다.

노 대통령 스스로는 변하기 어렵겠구나,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겠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노 대통령 스스로 자신을 너무 좁고 작은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걸 보면 참 안타깝고 연민의 정이 느껴집니다. 변화가 가능하다면 그건 오직 그 변화를 절실히 원하는 사람들의 힘에 의해서일 것입니다."

- 아직 핵발전 정책은 근본적인 변화가 없습니다. 부안사태를 계기로 핵정책을 전환시키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핵발전과 안전성에 대한 정보가 공개되고 모든 과정이 투명해져야 합니다. '핵마피아'라 부르는 소수가 돈과 정보를 독점하고 국민들에게 일방적인 내용만 강요하고 있습니다. 또, 얼마 전에 시민사회종교단체가 정부에게 범사회적인 국가 에너지정책 전환을 위한 논의기구를 만들자고 제안한 바 있는데, 이처럼 에너지 문제를 국가 발전과 국민의 안전과 평화로운 미래 만들기의 관점에서 총체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한 전기공급 문제 차원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으로 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NGO들이 더 많이 생겨났으면 하는 바람도 갖고 있습니다."

- 많은 부안군민들이 핵폐기장에는 반대하지만 새만금 간척사업에는 찬성합니다. 군민들의 이같은 정서를 어떻게 보시는지...
"처음에 대다수의 부안군민들은 새만금 간척은 찬성했지만, 핵폐기장은 반대했습니다. 같은 환경문제에 대해서 서로 상반된 입장을 취한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군민들은 큰 인식의 전환을 겪고 있습니다. 핵에너지 정책의 전환 없는 핵폐기장 건설은 부안 뿐 아니라 전국 어디에도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새만금을 추진한 정부의 도덕성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갖고 새만금 간척의 환경적 측면에 대한 이해에서도 의식의 변화를 겪고 있는 중입니다.

또한 위도 주민들이 핵폐기장 유치 신청을 하게 된 배경에는 새만금 사업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도 한 몫을 한 터라 '결국 핵폐기장의 시발은 새만금'이라는 인식이 퍼져 왔습니다. 새만금 간척을 찬성하던 어떤 할머니는 핵폐기장 반대 싸움에 나서면서 '내가 힘만 있다면 저놈의 원수같은 방조제를 망치로 깨버리고 싶다'고 분통을 터트리셨습니다."

"생활 속에서 생명평화 가꾸는 운동 꿈꾼다"

- 성당을 대책위 사무실로 쓰는 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제직과 운동을 병행하면서 갈등이나 고민은 없으신가요?

"내게 피해가 전혀 없어도 남이 아프면 관심과 연민을 보여야 하는 게 그리스도인의 자세입니다. 종교적인 것이란 저 세상이 아닌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이며, 생명과 살림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죽음의 문화 한 복판에서도, 척박한 광야에서도 생명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고 살리는 일에 힘쓰는 것이 가장 종교적인 것입니다.

더군다나 부안군민들은 성당의 신도들입니다. 따라서 당연히 성당은 고통받는 사람들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오랫동안 성당이 많은 사람들에 의해 사용되면서 어려운 점도 있지만, 군민이 겪는 불편함과 고통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저와 우리 신도들은 우리 성당이 군민들을 품는 피난처요, 안식처가 되어줄 수 있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기뻐하고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이게 사제 생활이요, 신앙생활입니다."

- 통일운동에서 환경운동으로 방점을 옮기신 것으로 보는 사람도 있는데 실제로 그렇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여러 사람들이 내가 소위 환경운동에 뛰어든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고 심지어는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한창 민족통일운동을 할 때이지 그런 작은 일에 매달려 있느냐는 거였습니다. 하지만 나는 통일운동가가 아닙니다. 그저 예수 그리스도 생애를 따르는데 평생을 바치고자 하는 사제일 뿐입니다. 내게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나를 어디로 부르고 계신지 예민하게 귀 기울이고 적절하게 응답하는 일입니다.

사목 현장에서 내가 만나는 모든 사안은 소중합니다. 그러는 중에 새만금을 만났고, 생명과 평화는 나의 화두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통일은 평화를 위한 길목이며, 평화는 통일의 도착점입니다. 생명과 평화는 통일의 과정이기도 하며 통일의 내용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것은 분리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우선 순위를 가릴 수 있는 문제도 아닙니다."

▲ 산업자원부가 부안 핵폐기장에 대해 사실상 재검토 방침을 발표한 가운데 13일 오후 전북 부안 반핵민주광장에서 '부안 반핵·생명·평화를 위한 범국민대회'가 열렸다. 대회 앞줄에 나란히 앉은 문정현 신부(왼쪽)와 문규현 신부
ⓒ 오마이뉴스 남소연
- 지난 2001년에는 문정현 신부님이 <오마이뉴스> '올해의 인물'로 선정됐습니다. 형제 두분이 모두 말하자면 '운동권 신부'인데, 신부님에게 형님(문정현 신부)은 어떤 존재인가요?
"1976년 5월 3일 제가 사제서품을 받은 다음날 바로 당시 서대문 구치소를 찾았습니다. 박정희 정권의 탄압으로 투옥되어 있던 형님에게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형님, 기뻐해 주십시오. 이제 형님의 길, 사제의 길을 함께 가겠습니다. 외로워 마십시오, 여기 동반자가 있습니다.' 그 때는 형님이 교회 내외적으로 곤궁에 처해있을 때여서 형님은 나에게 그렇게 어려운 고난의 길을 굳이 갈 이유가 있겠냐고 걱정을 했습니다. 그 후 28년 세월, 형님이 가시는 사제직은 언제나 나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오늘까지 형님은 나의 동지요, 나의 스승이요,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 내년에 소망하는 것이나 개인적으로 성취하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혹 새만금과 핵폐기장 투쟁이 끝난다면 새로 시작하고 싶은 일은 없는지요?
"이렇게 일시적인 싸움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생명과 평화운동을 일구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뜻을 같이 하는 분들과 좀더 일상적으로 행하기 위하여 생명평화재단을 준비중에 있습니다. 말처럼 거창한 것은 아니고, 흩어져있는 뜻과 꿈과 능력을 모아서 더 열심히 생명 평화의 세상을 향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는 취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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