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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군이 이라크 저항세력 용의자를 체포해 끌고 가고 있다. 미군의 이같은 무리한 수색작전이 이라크 민중들의 반감을 사고 있다.
ⓒ 미 국방부
난장판 정치권, 파병에는 '의기투합'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추가 파병을 해야한다고 주장했던 정부가 미국의 강경자세로 제2차 6자회담이 사실상 무산되는 분위기임에도 파병 동의안의 국회 통과를 서두르고 있다. 더구나 청와대와 여야 4당은 파병 지역과 전투병 비율, 시기 등을 국민들에게 전혀 공개하지 않고 '밀실 야합'으로 추가 파병을 강행할 태세다.

노무현 대통령과 4당 대표는 지난 14일 청와대에서 만나 3000명선의 파병에 합의했다.

노 대통령은 "기본적인 안정 문제를 고려해 독자적 지역안을 만들게 됐다"고 설명한 뒤 "정부는 오늘로 결심했고, 이를 다듬어 지체없이 파병안을 국회에 제출할 것"이라며 원만한 처리를 당부했다.

윤 대변인은 "대체로 평화재건을 위해 일정지역에 3000명을 추가 파병하는 것에 대해 4당 대표들이 이해를 표시했다"며 "4당 대표들은 당에서 당론을 모으는 절차를 밟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한국군의 파병규모는 기존 서희·제마 부대를 합쳐 최대 3600~3800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이는 미국의 동맹국 가운데 1만1000명을 파병한 영국에 이어 2번째다.

지난 12일 351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이라크 파병반대 비상국민행동'과 국회 반전평화의원 모임 소속 정범구(무소속)·김영환(민주당) 의원 등은 이들이 지난 8일 공개 제안한 '이라크파병 국민토론회'를 청와대가 거부했다고 말했다. 최근 여론 조사를 보면 추가 파병에 대한 국민들의 반대가 거의 60%에 이른다.

대선자금과 노대통령 측근비리 특검 등으로 정치권과 극한 대립을 벌이던 청와대는 유독 추가 파병에 관해서만은 '원만한' 합의를 이뤘다.

파병구실 찾기에 급급한 한국 정부

사담 후세인이 미군에게 체포되자 한국 정부는 환영을 표하면서 추가 파병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이런 한국 정부의 '파병 구실 찾기식' 행태가 계속 국민들의 불신을 불러왔다.

지난 10월17일 한국 정부는 이라크 추가 파병을 결정했다. 미국이 제안한 '미국 주도하의 다국적군 구성'안이 유엔 안보리를 통과한 지 불과 이틀만이었다. 당시 정부는 유엔 결의안이 통과되었기 때문에 추가 파병에 대한 국민들의 반발이 누그러질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이후 이라크 저항세력의 공격이 더욱 거세지면서 이런 기대는 사라졌다. 오히려 터키, 파키스탄 등은 파병을 철회하는데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만 파병을 고집하면서 '부시의 푸들'로 전락했다.

6자회담을 앞두고 한국 정부는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파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미국의 강경자세로 6자회담이 무산됐다. 이에대해 정부는 아무런 설명이 없다.

이번 후세인의 체포도 마찬가지다. 후세인은 초라한 은신처에 숨어있다가 붙잡혔다. 그가 여기서 이라크 저항세력을 지휘했다고 볼 수 없다. 이라크 저항세력은 후세인 충성파, 이라크 민족주의자, 아랍권 무자헤딘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후세인의 체포가 충성파들에게 영향을 줄지 모르지만 이라크 민족주의자나 아랍권 무자헤딘들에게 별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다.

이라크 저항세력들은 이제까지 후세인과는 별개로 자생적으로 생겨나 움직였다. 지난 7월22일 후세인의 두 아들인 우다이와 쿠사이가 사살당했을 때 미국은 이라크 저항세력의 공격이 둔화될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오히려 공격은 더 강해졌다.

미국의 일방적인 이라크 침공은 똑같이 북한한테도 반복될 수 있다. 진보진영이 지난 4월 이라크 파병 때 극력 반대했던 중요한 이유였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추가 파병이 미칠 장기적인 문제는 도외시한채 국민 반발을 피할 만한 구실 만들기에 골몰하고 있다. / 김태경
파탄난 북핵문제 연계론

노무현 정권이 추가 파병의 이유로 든 것은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한미동맹의 공고화였다. 이라크에서 어려운 상황에 빠진 미국을 도와줌으로써 동맹의 도리를 다하고, 이를 통해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바라는 한국 정부의 입장을 미국이 고려해주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다르게 돌아갔다. 제2차 6자회담의 연내 개최는 사실상 무산되는 분위기다. 더구나 현재 북미간의 시각차, 특히 미국의 강경자세라면 내년 1월은 물론이고 그 이후까지 당분간 6자회담이 다시 열리기는 힘들다는 게 지배적인 시각이다. 또 설사 6자회담이 열린다고 하더라도 현재 미국의 태도라면 성과를 내기 힘들다는 의견이 많다.

정부는 이달 초까지만 해도 2차 6자회담 개최에 자신감을 보였다. 지난 주초부터 2차 6자회담의 연내 개최가 물건너갔다는 국내외 외신보도가 나올 때도 '속단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이런 자세를 보인 것은 미국의 태도 때문이었다. 한국은 지난 10월17일 이라크 추가 파병을 발표했다. 이로부터 3일 뒤인 10월20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 때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대북 안전을 문서로 보장하겠다'고 공동성명을 통해 공언했다.

이에 고무된 한국은 노 대통령부터 외교·안보 부문의 고위 관료들까지 이구동성으로 '6자 회담의 성공', '북핵문제의 원만한 해결'을 단언했다. 그러나 갑자기 6자 회담이 열리기 힘들게 되자 정부는 당황했다. 지난 13일 이수혁 외교통상부 차관까지 중국에 급파해 사력을 다했지만 연내 6자회담은 무산되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으로서는 믿었던 부시 정권한테 따귀를 맞은 셈이다.

회담 무산의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의 강경태도다. 북한은 지난 9일 외무성 대변인의 말을 통해 '북핵포기-대북 안전보장'이라는 일괄타결안을 미국이 한꺼번에 받아들일 수 없다면 최소한 차기 6자회담에서 '말 대 말'의 공약과 함께 '첫단계 행동조치'라도 합의할 것을 요구했다.

북한은 첫 단계 조치에 대해 "우리가 핵활동을 동결하는 대신 미국에 의한 '테러지원국명단' 해제, 정치ㆍ경제ㆍ군사적 제재와 봉쇄철회, 미국과 주변국에 의한 중유·전력 등 에너지 지원과 같은 대응조치가 취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10일 부시 미 대통령은 북한의 제안을 그대로 거부했다. 그는 백악관에서 원자바오 중국 총리와 회담한 뒤 "미국의 목표는 북한 핵 프로그램의 동결을 위한 것이 아니다"면서 "목표는 핵무기 프로그램을 입증할 수 있고 돌이킬 수 없는 방식으로 폐기하는 것"이라며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북한 노동신문은 15일 "미국이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를 주장한다면 우리 역시 미국에 완전하고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안전담보를 요구할 대등한 권리를 갖고 있다"고 맞받아쳤다.

미국의 강경태도에 북핵문제의 중재로 나섰던 중국은 상당한 불만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8일 일본 <교도통신>은 "중국은 한미일 3국이 마련한 2차6자회담 공동성명 문안을 전달받은 뒤, '이 정도의 문안내용으로는 6자회담의 합의도달에 도움이 되지 않는 만큼 북한과 협의할 의향이 없다'는 입장을 3국에 다시 통보했다"고 보도했을 정도였다.

설사 기적적(?)으로 6자회담이 연내 열린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추세라면 단순한 '말 잔치' 이상의 성과를 내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 지난 13일 오후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반전평화공동행동(준) 주최로 `12-13 한국-중동 반전행동` 집회가 열려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결정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추가파병=전술적 문제, 북핵=전략적 문제

노 대통령은 지난 3일 국회 이라크 조사단을 만난 자리에서 "국회동의안 처리까지 많은 논쟁이 있겠지만 정부로선 이라크 파병 동의안을 지체없이 추진할 생각"이라며 "북핵 문제 등 한반도 안보와 관련한 중요한 현안이 있는 만큼 이를 풀어가야할 입장에 있는 우리로서는 어느 때보다 돈독한 한미관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11월28일 SBS와의 대담에서 노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북핵 문제가 있고, 이를 풀어야 하는데 북핵 문제를 풀 때 결국은 미국이 결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미국은 북한을 고립된 상태로 봉쇄하고 상당기간 가도 미국으로선 큰 영향 없다. (미국은) 얼마든지 긴 시간 봉쇄할 수 있으나, 한국은 굉장히 어려운 지경에 빠지게 되므로 북핵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해결이 잘 될까, 예를 들면 미국과 자주권 문제 등으로 갈등이 있고 부닥치며 세계 여론에 호소하며 싸워나가는 것이 북핵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까, 소위 한미 공조를 돈독히 하며 한국 사정과 한국 발전이 미국에 도움된다고 설득하며 한발씩 다가서게 하는 노력을 계속하는 것이 북핵 문제에 도움이 될까 하는게 가장 큰 문제다."


그러나 북핵 문제를 위해 추가 파병해야 한다는 논리에 대해 정부의 한 관계자는 '넌센스'라고 혹평했다.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북핵문제는 동북아 전체 정세와 관련된 '전략적 문제'다. 그러나 한국군 수천명이 이라크에 파병되는 것은 단순한 '전술적' 문제일 뿐이다. 한국군 수천명이 파병된다고 현재 이라크 전체 상황이 완전히 바뀌지 않는다. 어떤 나라도 전략적 문제와 전술적 문제를 맞바꾸지 않는다. 한국군 수천명 파병으로 미국이 '전략적'문제인 북핵문제에 대한 태도를 바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넌센스다."

사업에 비유하면, 북핵문제는 1000억달러짜리 공사고, 한국이 이라크에 수천명을 파병하는 것은 1억달러짜리 공사에 불과하다. 어떤 기업도 1000억달러짜리 공사와 1억달러짜리 공사를 맞바꾸지 않을 것이다.

이 관계자는 "부시 정권이 진짜 북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었다면 지난달 북한 경수로공사를 중단시켰을 리 없다"며 "부시 정권의 대북정책은 변하지 않았는데 '대북안전 문서보장' 등 '말장난'에 현혹되어 6자회담이 잘될 것이라고 자신했던 한국의 외교·안보 쪽 참모들은 한심한 사람들"이라고 비판했다.

열린우리당 의원들 이제는 '벙어리'
단식하더니 파병 동의안엔 침묵

지난 14일 노 대통령과 4당 대표들과의 회의에서 정치권은 추가 파병에 합의했다. 그러나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

일단 민주당 조순형 대표는 "당내에 추가 파병에 반대하는 의견도 많아 아직 정리가 되지 않았다"며 "추가 파병에 대해 합의했다고 속단하지 말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도 "정부안에 대해 이해하는 입장"이라며 "그러나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입장을 정해라"고 말했다. 이에대해 김원기 대표는 "정부 파병안을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에게 공이 넘어갔다. 그런데 지난 9월초 미국이 한국에게 추가 파병을 요구했을 때 가장 앞장서 파병 반대 목소리를 냈던 열린 우리당의 이른바 '개혁파' 의원들이 아무 말이 없다. 언론에 보도된 것만 해도 이른바 전투병의 비율이 절반에 육박한다.

당시 일부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행동에 대해 '노 정권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쇼'라는 일부 비판이 있었다. 정작 정부의 파병안이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는 지금 열린우리당의 개혁파 의원들이 아무 말 없는 것은 이같은 비판이 맞았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실제 파병반대국민행동에 적극적인 동조 의사를 보이는 의원도 민주당 김영환 의원과 무소속의 정범구 의원 뿐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없다. '단식 불사'를 외쳤던 열린우리당 의원들에게 개혁은 말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것을 충고하고 싶다. / 김태경 기자
파병연계 이미 미국이 거부

미국은 이미 한국이 이라크 추가파병과 북핵문제를 연계시키는 것을 공식거부했다.

지난 10월14일 <뉴욕타임스>는 "9월25일 윤영관 한국 외교통상부 장관이 콜린 파월 미 국무부 장관을 만났을 때 '미국이 북핵문제에 있어 양보하지 않으면 한국의 이라크 파병을 고려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며 "그러나 파월 장관은 화가 나서 '이는 동맹국을 대하는 방식이 아니다'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이 한국의 이라크 파병과 북핵문제 연계를 공식 거부했던 것이다.

더구나 지난 10월12일 미국을 방문했던 나종일 안보보좌관은 '6자회담과 이라크 파병을 연계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노 대통령 친서를 부시 미 대통령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9월 말부터 미국이 북핵문제에 대해 다소 유화적인 태도를 취했던 것은 이라크에서 수렁에 빠졌기 때문이다. 이라크에서 고전하던 미국은 북핵문제에 신경을 쓸 틈이 없었고 '말'로 일시적인 유화 제스처를 보였을 뿐이다. 결국 북핵문제와 이라크 추가파병은 별 상관관계가 없다.

북핵문제와 파병 연계는 미국도 거부했고, 한국도 대통령 친서까지 보내 연계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도 북핵문제 때문에 파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는 이라크 추가 파병이 실제 북핵문제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핑계를 댈 수 있는 유력한 수단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철학없이 임기응변식 대응

최근 북핵문제를 설명하는 정부 관료들의 얼굴에는 피곤함과 곤혹스러움이 묻어난다. 지난 10일 윤영관 외교통상부 장관이나 11일 정세현 통일부 장관은 브리핑에서 "아직 6자회담의 연내 개최 가능성이 있다. 속단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한 기자는 윤 장관에게 "대체 정부가 연내 개최가 가능하다고 희망하는 근거가 무엇인가"라는 질문까지 던졌으나 별로 뚜렷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외교·안보 라인의 핵심참모들이 대북·대미 문제를 '요행'에 의존해 해결하려고 했으니 성과가 나올 리가 있겠느냐"고 촌평했다.

대북송금특검, 5월 한미정상회담때의 '수용소 발언', '대북 경수로 공사 중단', '이루쿠츠크 가스관의 북한통과 배제', '이라크 추가파병', '용산기지 이전 비용 전액 부담', '덕수궁터에 미 대사관 신축 허용' 등은 모두 철학없이 임기응변식으로 풀어갔던 대북·대미 정책의 결과물이다.

추가 파병을 서두르는 것도 6자회담이 완전히 무산되거나 '대화의 모멘텀'이 끊기는 것은 막기위해 한국 정부가 '미국의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식'으로 벌이는 행위로 보인다. 그러나 애초 대북·대미 정책을 단순한 '한미사이의 불편한 관계는 정권에게 부담이 된다'는 식의 정권 안보차원이 아닌 민족 전체차원에서 고민했다면 최악의 극우정권인 부시 정권과 원만한 관계를 맺어 문제를 풀겠다는 생각 자체를 않았을 것이다.

철학없는 임기응변식 대북·대미 정책을 상징하는 말이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파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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