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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군정이 공개한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채 체포된 사담 후세인의 모습.
ⓒ CNN화면


[5신 : 15일 오전 11시20분]
알 자지라 "후세인은 저항세력 지휘하지 않았다"


아랍의 위성방송인 알 자지라 인터넷판은 15일 체포된 사담 후세인이 이라크 저항세력을 지휘했다는 아무런 증거가 없다고 미 관리들이 얘기했다고 보도했다.

한 미국 관리는 후세인에 체포될 당시의 태도나 상황으로 볼 때 그가 이라크 저항세력을 지휘한 것 같지는 않다고 인정했다.

지난 13일 밤 8시께 티크리트 남쪽 15km 지점의 아드와르에서 체포될 때 후세인은 그 어떤 통신장비나 지도도 없었다. 그가 은신했던 농가 주택도 이라크 저항세력의 지휘부로 볼 만한 어떤 증거도 없었다.

미 상원 정보위원회의 제이 록펠러는 "후세인이 체포된 장소나 환경으로 볼 때 그가 이라크 저항세력을 지휘하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 그는 거의 영향력이 없었다"고 말했다. 록펠러는 "이는 이라크 저항세력이 후세인을 위해 싸운 것이 아니라 미국에 저항해서 싸웠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말했다.

미 정보기관 역시 후세인은 자신의 생존에 급급한 형편이기 때문에 이라크 저항세력에 '상징적인 의미' 이상이 아니었다고 인정했다.

AP통신은 미군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후세인이 은신하고 있던 집은 침실을 합쳐 방 2개에 부엌만 있는 평범한 주택이었다고 보도했다. 후세인 외에 다른 사람들은 없었으며 아직 포장도 뜯지않은 옷도 발견됐다. 현장을 수색한 미군들은 후세인이 체포된 주택에 은신한 지 얼마되지 않은 것 같다고 전했다.

조지 부시 미 대통령도 15일 대국민 연설에서 "후세인의 체포가 곧 이라크인들의 저항이 끝났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후세인의 체포 소식이 전해진 지 얼마되지 않아 바그다드 중심부에서 이라크 저항세력의 소행으로 보이는 대규모 폭발이 있었다.

도널드 럼스펠드 미국 국방장관은 14일 "체포된 사담 후세인 전 대통령에겐 제네바 협정에 따른 전쟁포로의 권리가 부여될 것"이라고 말했다. 럼스펠드 장관은 "후세인이 조사에 협력적이지 않다"고 말해 후세인 전 대통령이 아직 입을 열고 있지 않음을 시사했다.

▲ 체포 당시 수염이 덮수룩한 사담 후세인의 얼굴(왼쪽)과 수염을 깎은 뒤 모습(오른쪽).
ⓒ CNN화면


[4신 : 14일 밤 12시]
후세인 이후 이라크 저항세력은?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이 체포되자 전쟁을 주도했던 미국과 영국 정부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이미 지난 13일 오후 후세인의 체포 가능성에 대해 보고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외신들은 후세인의 체포로 그동안 전후 이라크 처리로 시달렸던 부시 행정부에게는 큰 전환점이 마련될 것으로 내다봤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후세인 생포는 이라크에서 더 나은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라며 "동맹군은 이라크 전후 재건을 위해 한발짝 더 나아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라크 전에 반대했던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과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도 후세인의 체포가 이라크의 민주주의와 안정에 강력하게 기여하기를 바란다고 논평했다.

후세인이 앞으로 어떻게 처리될지는 미정이다. 현재 후세인 정권 시절 고위 인사들의 반 인도적 범죄를 심판하기 위해 지난 10일 만들어진 '이라크 전범재판소'에 회부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친미성향의 이라크 국민회의(INC)의 지도자인 아흐마드 찰라비 이라크과도통치위 위원은 후세인을 공개재판해 그의 죄상을 이라크 국민이 알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후세인의 체포가 앞으로 미국의 이라크 점령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저항세력의 공격이 둔화될 것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거꾸로 될 가능성도 있다.

이라크인들 엇갈린 반응

사담 후세인의 체포에 이라크인들은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후세인정권 시절 탄압받았던 시아파와 쿠르드족들은 그의 체포를 기뻐했으나 많은 이라크인들은 침묵을 지키거나 체포된 인물이 진짜 사담 후세인지 의문을 표했다.

AP통신은 바그다드에서 일부 시민들이 총을 공중에 발사하며 후세인의 체포를 경축했으며 라디오에서는 축하 음악을 방송했다고 전했다. 특히 시아파와 쿠르드족들이 기뻐하는 모습이 많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많은 이라크인들은 체포된 사람들이 진짜 후세인지에 대해 의문을 표했다. 바그다드에서 화장품 가게를 운영중인 모하네드 알 하사지는 "뉴스를 들었지만 직접 봐야 믿겠다"며 "미군은 진짜 후세인을 체포한 것인지 분명한 증거를 대야 한다"고 말했다. / 김태경 기자
일단 후세인이 그동안 이라크 저항세력의 공격을 조직하고 지휘한 것은 아니다. 그는 숨어있기 바빴을 뿐이며 이라크 저항세력은 자생적으로 만들어져 미군을 공격했다.

영국 워익대학의 토비 닷지 교수는 "후세인의 체포가 미국에게 낭보인 것은 틀림없다"며 "그러나 이라크 저항세력들은 전략적으로나 재정적으로 후세인과는 직접적 연관성 없이 움직여왔다"고 지적했다.

<로이터통신>에 의하면, 리카도 산체스 이라크 점령 미군 사령관은 "후세인의 체포로 (이라크 저항세력)의 공격이 완전히 사라질 것으로는 예상하지 않는다"며 "나는 후세인 체포에 항의하는 이라크인들의 보복공격이 더 증가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라크 입헌군주운동의 지도자인 알 샤리프 알리 빈 알 후세인은 14일 알 자지라TV와의 회견에서 "미군이 그를 은신처에서 끌어낼 때 후세인은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았다"며 "그는 쥐 처럼 야채속에 숨어 있었다. 이는 후세인이 이라크에서 전개되고 있는 저항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지난 7월22일 후세인의 아들인 우다이와 쿠사이가 이라크 북부 모술에서 미군과 교전을 벌이다 사망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외신들은 후세인 정권에서 대단한 권력을 휘둘렀던 우다이와 쿠사이의 사망으로 이라크 저항세력의 공격이 약화될 것이라고 예측했었다.

폴 브레머 미 군정 최고행정관은 "후세인이 재기할 것이라는 희망과 두려움이 그동안 이라크인들의 무력 저항을 부추겨왔다"며 "우다이와 쿠사이의 사망으로 미군에 대한 게릴라 공격이 감소할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러나 그들이 사살된 지 불과 이틀만에 모술에서 미군 병력 3명이 매복공격을 받아 사망하는 등 이라크 저항세력의 공격은 더욱 격화됐다.

현재 이라크 저항 세력 가운데 상당수가 사담 후세인에 대한 충성파들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들이 전부가 아니다.
아랍전문가인 무수타파 알라니는 알자지라 TV와의 인터뷰에서 "후세인 정권 충성파들의 저항활동은 감소할 지 모른다. 그러나 이라크인 또는 아랍 무자헤딘들의 저항활동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라크 저항세력들의 영향력이 확장되고 이라크 일반 시민들사이에 동조자가 늘어난 것은 단지 사담 후세인이 다시 집권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 아니다. 미국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린 직후에는 이라크인들의 반감이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미군 점령 8개월을 넘어가도록 무질서가 계속되고 60%가 넘는 실업률 등 경제문제가 악화됐다. 또 이라크 저항세력 소탕을 빌미로 미군이 일반 시민들을 험하게 다루면서 민심이 악화됐던 것이다.

사담 후세인은 누구인가?

(서울=연합뉴스) 나라를 빼앗기고도 은둔생활 속에서 재기를 노렸던 후세인 전 대통령이 결국 그가 태어났던 티크리트에서 자신이 그렇게도 탄압했던 쿠르드족과 그렇게도 증오했던 미군에 의해 생포되는 초라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후세인은 1937년 4월 28일 바그다드에서 북쪽으로 1백50㎞ 떨어진 소도읍 티크리트 외곽에 있는 알-오자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생후 9개월만에 부친을 여읜 후세인은 이후 삼촌과 함께 성장기를 보낸다.

18세에 바그다드로 상경,학생활동에 깊숙이 간여했으며 56년 반정부 봉기를 계기로 이듬해인 57년 바트당에 입당, 핵심분자로 성장했다.
59년 왕정붕괴 후 집권한 압델-카림 카셈 대통령 암살모의에 개입, 국외로 도피해 이집트와 시리아를 전전하다 63년 바트당이 쿠데타로 집권한 뒤 바그다드로 돌아왔다. 그러나 불과 9개월 뒤 다시 정권이 뒤집히자 체포돼 66년까지 수감생활을 하는 고난을 겪기도 했다.

그는 68년 다시 바트당이 집권하게된 쿠데타에 핵심역할을 한 뒤 혁명평의회 부의장으로 권력의 최정점을 향해 급속히 부상하다 마침내 79년 아메드 하산 알-바크르 대통령의 뒤를 이어 이라크 지도자의 자리에 섰다.

80년 9월 마침내 이라크군이 이란 영내로 전격 진공해 들어가면서 이란-이라크전이 불붙었다. 그러나 후세인은 이란군의 전력과 민족적 저력을 과소평가했다. 결국 88년 승자도 패자도 없이 양쪽 다 만신창이가 된 채 휴전협정 체결로 끝났다.

이라크는 외채부담에서 벗어나고 동시에 석유가격도 올림으로써 수입을 늘릴 기회를 또 외부에서 찾았다. 그 결과가 90년 8월 전격적인 쿠웨이트 침공으로 나타났다. 필사적으로 버틴 이 전쟁도 서방연합군 군사력의 압도적 우위 속에 불과 1백시간도 채 못 버틴 지상전을 끝으로 이라크의 참패로 끝났으며 98년에는 유엔과 무기사찰 문제로 갈등을 빚다 미-영 연합군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

후세인은 유엔의 경제제재 등 국제적인 고립과 미국과 영국의 끊임없는 군사적 압박 속에서도 탄탄한 국제정치기반을 바탕으로 권력을 유지했으나 결국 9.11 테러 이후 강경파가 득세한 조시 부시 미국 행정부의 사상 유례없는 예방전쟁의 희생자로 올해 초 권좌에서 쫓겨났으며 부시 대통령의 가장 큰 전리품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 연합뉴스


[3신 : 밤 9시30분 ]

후세인 농가 지하에 굴 파고 은신


폴 브레머 미 군정 이라크 최고행정관이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의 체포를 공식발표했다.

이날 현지시각 오후 3시 기자회견장에 나온 브레머는 "우리는 그(사담 후세인)를 잡았다"고 말했다.

미 군정 발표에 따르면 미군은 지난 13일 사담 후세인이 티크리트 남쪽 15km 지점의 아드와에 후세인이 은신중이라는 정보를 입수했다. 600여명의 미군들은 이날 밤 8시께 한 농가를 급습했고 후세인을 체포했다.

체포 당시 후세인은 한 농가의 지하실에 2미터 깊이의 구멍을 파고 숨어있던 상태였다. 후세인 외에 2명의 이라크인이 함께 체포되었으며 75만달러의 현금도 압수됐다.

후세인은 별 저항없이 순수하게 체포에 응했다. 리카도 산체스 이라크 점령 미군 사령관은 "후세인을 체포할 때 단 한사람의 부상자도 발생하지 않았으며 단 한발의 총성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미 군정은 기자회견에서 체포된 뒤 사담 후세인을 찍은 사진까지 공개했다. 수염이 덥수룩한 사담 후세인은 상당히 피곤하고 긴장한 모습이었으나 건강에는 이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CNN은 후세인 전 대통령이 체포된 뒤 바그다드로 압송됐다고 보도했다. 또 미군 관계자들은 앞서 체포된 이라크 정권 전직 요인들을 바그다드 공항으로 데려와 문제의 인물이 과연 후세인 전대통령 본인인지를 최종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대질신문을 벌였다고 밝혔다.


[2신 : 저녁 8시50분 ]

DNA 검사결과 후세인 판정... 겉모습은 달라


14일 티크리트에서 미군에 의해 체포된 인물은 미군의 DNA검사 결과 사담 후세인으로 밝혀졌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이 통신은 익명을 요구한 미군 관리의 말을 인용해 "티크리트에서 체포된 인물의 겉모습은 사담 후세인처럼 보이지 않는다"며 "그러나 그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한 여러가지 노력끝에 그가 후세인임을 밝혔다"고 전했다.

미군은 티크리트의 한 건물에 후세인이 은신중이라는 정보를 입수하고 급습했다. 후세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은 미군이 급습한 여러 건물 가운데 한 건물의 지하실에서 체포됐다.


[기사대체:14일 저녁 8시]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이 그의 고향인 이라크 북부 티크리트에서 체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그동안 후세인에게 2500만달러의 현상금을 걸어놓고 있었다.

AP통신에 따르면 이라크 과도통치위의 다라 누르 알 딘은 14일 "이라크 최고 행정관인 폴 브레머가 사담 후세인이 그의 고향인 티크리트에 생포됐다고 전화로 통지했다"고 전했다.

미 행정부의 몇몇 고위관리들은 "후세인이 티크리트의 한 주택에 은신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급습했다"며 "여러명이 체포되었다"고 말했다.

이에앞서 이란 관영 IRNA 통신도 사담 후세인의 체포를 보도했다.

IRNA 통신은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의 쿠르드족 대표인 잘랄 탈라비의 말을 인용해 이렇게 보도했으나 더 이상 정확한 사항은 언급하지 않았다. AP통신은 14일 티크리트에서는 후세인이 체포되거나 아니면 사살되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고 전했다.

CNN은 티크리트에서 미군에 의해 체포된 인물 가운데 사담 후세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있어 조사가 진행중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미 행정부는 아직 공식적인 확인을 하지않고 있다.

단 이라크의 미군 당국은 현지 시각으로 오후 3시(한국시각 저녁 9시) 매우 중대한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한편 지난 7월22일 이라크 북부 모술에서 사담 후세인의 아들인 우다이와 쿠사이가 한 빌라에 숨어있다가 발각되어 미군과 교전 중 숨졌다.

당시 미국은 우디이와 쿠사이의 사살로 이라크 저항세력의 공격이 둔화될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오히려 공격은 더욱 격렬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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