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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희생을 각오하고서라도 라이언 일병을 구하라는 명령, 이 때문에 수많은 이들이 죽어갔다. 그들이 흔들림 없이 구하고자 한 건 추상적인 국가라는 단어였지 사람들이 아니었다.(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

한국민의 죽음에도 참여정부는 파병론을 흔들림 없이 지킬 것이라고 매일 선언하고 있는 가운데 흔들림 없이 '파병론 구하기'에 <조선일보>에 이어 <동아일보>도 나섰다.

2일자 사설에서 동아일보가 사람들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파병론을 흔들림 없이 지켜야 한다고 보는 이유가 볼 만하다. 단지 이는 동아일보만의 변명은 아니다.

<동아> 2일자 사설 '테러에 흔들릴 수는 없다' 바로가기

<동아일보>는 이날 사설 '테러에 흔들릴 수는 없다'에서 "엊그제 이라크에서 한국인 근로자 4명이 공격을 받아 2명이 피살되는 참극이 벌어졌다. 이탈리아 스페인 일본 등에 이어 한국도 이제 테러의 직접적인 피해국이 된 것이다. 이번 사건은 특히 무장하지 않은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공격이라는 점에서 더욱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해 생명을 우선시하는 논지를 펼칠 것이란 기대를 갖게 했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았다.

"우선은 부상자를 비롯해 이라크 내 우리 국민의 안위가 걱정이지만, 이번 사건이 국내에 몰고 올 파장 또한 만만치 않을 것 같아 우려된다. 이라크 파병 철회를 주장하는 시민단체 등의 목소리가 한층 높아질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움직임은 그렇지 않아도 논란 많은 파병 문제에 더 큰 혼란과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
-[사설] 테러에 흔들릴 수는 없다


결국 <동아일보>가 우려하는 것은 국민의 안전보다는 시민단체가 파병론을 반대하는 것이다. 그래서 갈등과 혼란이 커질 것을 염려하고 있다. 국민의 안전, 사람들의 생명보다는 시민단체가 파병반대를 더 강하게 주장하는 것을 더 걱정하고 있는 것인데 파병을 반대하는 것이 어떻게 혼란과 갈등을 증폭하는 일인지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국민들의 의견 개진, 표현의 자유는 갈등과 혼란을 부추기는 것인가? 시민단체와 국민들을 이중적으로 분리하는 <동아일보>의 태도는 반민주적라고밖에는 볼 수 없다. 그럼 <동아일보>는 왜 갈등과 혼란을 염려하면서 파병론을 흔들림 없이 지켜내야 한다고 하는가. 다음에서 드러난다.

"한마디로 테러 때문에 한번 결정된 국가정책이 주춤거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반(反)문명적인 테러에 당당하게 대처하는 것은 국가의 위신에 관련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어제 정부가 이번 사건을 이라크 파병 결정과 연계시키지 않겠다고 밝힌 것은 옳은 자세다."
-[사설] 테러에 흔들릴 수는 없다


한번 결정된 국가 정책이 주춤거리는 일이 있을 수 없다는 말은 도무지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여기에서 한번 결정된 국가정책이란 국민의 동의가 없는 정부만의 의사결정이다. 국민의 대의 기관인 국회에서 승인하지도 않은 정책을 어떻게 한번 결정된 국가 정책이라고 할 수 있나. 그건 참여정부의 결정일 뿐이다.

무엇보다 한번 결정된 정책을 물릴 수 없다는 것은 더욱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정책이 잘못되어있고 이를 고칠 수 있거나 철회할 수 있다면 해야 되는 일 아닌가.

<동아일보>는 할 수 있는 일을 왜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인가. 이는 다음 문장에서 짐작할 수 있다.

"반(反)문명적인 테러에 당당하게 대처하는 것은 국가의 위신에 관련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테러에 당당하게 대처하는 것은 맞는지 모른다. 자위권 차원의 테러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무엇보다 국가의 위신을 세우기 위해서 테러에 대응한다는 논리는 정책을 한번 결정하면 물릴 수 없다는 의식구조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한번 결정한 것을 물리면 얼마나 위신이 안서겠는가. <동아일보>가 염려하는 건 결국 국가의 위신이나 정부의 결정일 뿐이지 국민의 안전이나 사람들의 생명은 아니다.

오로지 위신이나 국가, 정책이라는 추상적이고 허구적인 개념들을 위해 파병론을 흔들림 없이 독려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의 따뜻한 온기와 체온이 중요한 게 아닌 것이다. 그런 건 국가, 위신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수단에 불과하다. 주객이 전도되어도 한참 전도되었다. 사람들의 삶과 생명을 위해 국가와, 정책 그리고 위신이 필요한데 말이다.

따라서 피격사건을 이라크 파병과 연계시키지 않는다는 강경한 자세는 옳은 자세가 아니다.

<동아일보>는 사설의 끝에서 국민의 안전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말은 겉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본질에서는 틀렸다. 국가의 위신이나 한 번 결정된 것을 물릴 수 없다는 식의 오기에 사람들의 삶과 생명을 하위수단화 하는 한 언제나 피를 흘리는 국민들은 계속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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