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인류 역사상 '최초' 39가지"란 부제가 붙은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
ⓒ 가람기획
올해 초 이라크 전쟁이 발발하여 수많은 유물들이 파괴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슴이 아팠다. 그곳은 바로 인류문명이 최초로 시작된 수메르 문명의 발상지이기 때문이었다. 미국의 석유 패권을 위한 전쟁은 무고한 생명을 빼앗아간 것뿐만 아니라 인류전체의 재산을 송두리째 빼앗아간 야만이었다.

수메르란 기원전 3000년경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건설된 여러 도시국가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쐐기 문자가 새겨진 점토판을 통해 당시의 삶을 전하고 있는데, 이것들은 모두가 '최초'이다.

이 최초들을 하나하나 살핀 책이 있는데 바로 수메르 연구의 대가 새뮤얼 노아 크레이머가 쓴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이다.

이 책은 평이하고 당연한 제목이 색다르게 느껴질 정도의 내용들을 담고 있다. 최초의 문명이라면, 고대 문명이라면 그 세계가 야만적인 상태일 것 같다는 오해를 벗겨 버린다.

그 때도 촌지가 있었고, 정부는 양원제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라가쉬에서는 잡다한 세금이 많아지자 우르 난셰 왕조를 전복시키고, 새로운 지도자를 추대하면서 자유를 획득하는 사회개혁도 있었다.

법전, 재판, 의학 등 모든 분야의 기록들은 당연히 최초의 것들이고, 시대가 흐름에 따라 변용되는 여러 이야기들의 원천을 알 수 있는 문학작품들은 독자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하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들의 원조가 바로 이것이었군!'하는 감탄과 더불어 하늘 아래 새로울 것 없다는 말이 생각나는 내용들이 많이 있다.

수메르인들의 속담과 격언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의 해학과 통찰에 뒤통수를 맞는 느낌을 받게 된다. 고대사회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 문제들이 있다는 것에 놀라고, 그 문제의 해답 역시 비슷하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많은 은을 가진 자는 행복할 것이다.
많은 보리를 가진 자는 행복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 것도 없는 자는 발뻗고 잘 수 있다.
(p.173)

쾌락을 위하여: 결혼
사색을 위하여: 이혼
(p.175)

너는 지배자를 가질 수 있고, 왕도 모실 수 있다.
그러나 정말로 무서워해야 할 것은 세리다!
(p.180)


미국이 자신들의 유물을 파괴할 것을 미리 알았을까? 이 말은 미국에게 하고 싶은 말일 것 같다.

네가 가서 적의 땅을 빼앗으면,
적도 와서 너의 땅을 빼앗는다.
(p.180)


최초의 신화는 수메르 문명의 계승자인 바빌론 신화로 이어지고 그것은 유대인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영웅을 노래한 길가메시 서사시를 읽다보면 우트나피시팀의 홍수 이야기와 노아의 방주 이야기 사이의 동일함에 놀라게 된다. 성경의 욥, 메시아, 부활, 성모 등의 이미지의 원형들이 고스란히 다 있다.

대부분이 창조신화가 취하고 있는 부부로의 결합 이후 아들의 개입, 그리고 어머니와 아들의 근친상간으로 인한 탄생의 구조 역시 바로 수메르 신화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다보면 왜 하와가 아담의 갈비뼈에서 나왔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수메르 시에서 엔티의 병든 신체부위 중 하나는 갈비뼈다. '갈비뼈'에 해당하는 수메르 단어는 '티(Ti)'이고, 엔키의 갈비뼈를 치유하기 위해 창조된 여신의 이름은 '닌-티(Nin-Ti)' 즉 '갈비뼈의 고귀한 여성'이다. 수메르 단어 '티' 또한 '생명을 만드는'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닌- 티'라는 이름은 '갈비뼈의 고귀한 여성'과 '생명을 만드는 고귀한 여성을 '동시에 의미한다.
(p.p 208~209)


현대 교회에서는 여러가지 해석이 있고,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이해하는 바는 다르겠지만, 바이블의 여러 이야기들의 근거가 수메르 문명이라는 강력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렇게 수메르인들의 문명을 보게 되면 약 5000년경 전의 사람들이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아들에게 철 좀 들라는 간곡한 부탁을 하는 아버지의 모습이나, 세리에 대한 사람들의 미움, 사랑에 대한 찬양, 아이를 재우기 위한 자장가를 부르는 어머니, 세상의 건설자로서의 노동계급의 자각 등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