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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7일 단식농성 이틀째를 맞은 최병렬 대표가 심각한 표정으로 기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최근 정치권에서는 두 사람의 단식농성이 화제다.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와 김영대 열린우리당 노동위원장이 바로 그들이다.

두 사람은 모두 지난달 26일부터 단식에 들어갔다. 한 사람은 애초 강한 의지를 갖고 단식에 돌입했고, 다른 한 사람은 그 사람의 단식이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단식에 들어갔다. 한 사람은 '나라를 구하겠습니다'라는, 다른 사람은 '국회정상화가 나라 살리는 길입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단식장에 걸어 놓았다. 서로 다른 방식의 '구국(救國) 단식'인 셈이다.

언론에서는 이를 '쌀뜨물 단식'과 '맞불 단식'이라고 부른다. 위염 증세가 있어 곡기가 전혀 안 들어가면 위험하다는 주치의의 권유에 따라 단식 초기 3일 동안 쌀뜨물로 적응기를 가졌던 최병렬 대표. '눈에는 눈, 단식에는 단식'이라며 최 대표와 맞짱을 뜨고 있는 김영대 위원장. 그들은 동상이몽의 공동 단식을 하고 있다.

단식에 돌입한 이유의 차이만큼이나 두 사람의 인생역정도 극과 극이다. 또한 그들의 단식을 바라보는 언론의 관심도 천지차이다.

최병렬 대표와 김영대 위원장. 두 사람의 거의 유일한 공통점은 현재 정치인이라는 것이다. 한 사람은 국회 의석 과반을 차지한 '입법부의 대통령'이고, 다른 한 사람은 개혁국민정당을 거쳐 얼마 전 제3당인 우리당에 입당해 노동위원장을 맡은 정치 신인이다.

'쌀뜨물 단식' 최병렬

△서울 법대·미국 남가주대 대학원 졸업 △63년 <조선일보> 기자 △74∼80년 <조선일보> 정치부장·사회부장·편집국 부국장 △80∼85년 <조선일보> 편집국장 △83년 <조선일보> 이사 △85년 12대 국회의원 △88년 대통령 정무수석비서관 △88년 문공부 장관 △90년 공보처 장관 △90∼92년 노동부 장관 △92년 14대 국회의원 △93년 민자당 당무위원 △94∼95년 서울특별시장 △96∼98년 15대 국회의원 △98∼2002년 한나라당 부총재 △2000년 16대 국회의원 △2003년 한나라당 대표.
'맞불 단식' 김영대

△논산중 중퇴 △80년 청계피복노동조합 강제해산 항의투쟁으로 구속 △85년 구로 동맹파업으로 구속 △87년 청계피복노동조합 위원장 △90년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수석부위원장 △95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서울지역본부 의장 △95년 민주노총 부위원장 △97년 민주노총 사무총장 △97년 노사정위원회 상무위원 △98년 민주노총 부위원장 △2002년 개혁국민정당 집행위원 겸 사무총장 △2002년 제16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회·문화·여성분과 위원 △2003년 열린우리당 노동위원장.














중학교 중퇴 학력의 노동자 출신인 김영대 위원장과 서울 법대와 미국 유학을 거친 엘리트인 최병렬 대표. 두 사람의 인생 길도 이와 다르지 않다. 김 위원장이 80년과 85년 노동운동으로 구속됐을 당시, 최 대표는 <조선일보> 편집국장과 이사를 지낸 뒤 민정당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최 대표가 노동부 장관이었던 90년대 초반, 김 위원장은 전노협 수석부위원장으로 대척점에 서 있었다.

여담이지만, 올해 최 대표와 김 위원장의 공통점이 하나 더 생길 뻔했다가 무위로 돌아갔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하고, 참여정부 초기 내각을 꾸리면서 김 위원장을 유력한 노동부 장관감으로 점찍었다. 그러나 고건 총리와의 의견 조율과정에서 아깝게 밀렸다는 후문이다. 만약 노 대통령의 의중대로 김 위원장이 장관이 됐더라면, 최 대표와는 노동부 장관이라는 공통 분모가 하나 더 생겼을 것이다.

▲ 김영대 열린우리당 노동위원장은 지난달 26일부터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의 단식에 맞서 '맞불 단식'을 벌이고 있다.
ⓒ 김영대 위원장 제공

아이러니컬하게도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왔던 두 사람이 2003년 12월, 비록 다른 공간에서지만 함께 단식을 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조건부 단식이다. 최 대표는 노 대통령을 겨냥하며 특검법 거부가 철회될 때까지 무기한 단식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단식 해제의 열쇠를 노 대통령이 쥐고 있다는 것이다. 최 대표의 측근들도 "최 대표는 병원에 실려갈 각오를 하고 단식을 하고 있다"며 "노 대통령이 풀기 전에 해결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결코 쇼가 아님을 강조한다.

이에 맞서 김 위원장은 '입법부의 대통령'인 최병렬 대표가 그만 둘 때까지 단식을 하겠다고 벼른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최 대표가 단식을 끝낸 뒤 세 끼를 더 굶고 그만두겠다'는 것이다. 약속대로라면 '병원에 실려갈 지도 모르는' 최 대표보다 하루 더 단식을 하면서도 김 위원장은 "얼마간의 분노, 얼마간의 치기로 시작한 단식"이라며 "한나라당의 정치공세에 맞불로 훼방이나 놓자는 심정도 없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두 사람 모두 기자들과의 만남이 제한돼 있다. 최 대표는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오전과 오후 정해진 시간에만 기자들에게 단식장 취재를 허용한다. 이런 탓에 '면회 시간'을 못 맞추면 면대면 취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김 위원장은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언제든 기자들에게 취재를 허용한다. 그러나 '대표급 단식'이 아니어서 '기삿발'이 안 받는 탓인지 기자들의 방문이 뜸하다.

단식 이틀째인 지난달 27일 최 대표는 사이버당원과 이메일 클럽 가입자 4만명에게 전자우편을 보냈다. 애초 예상과는 달리 언론과 네티즌들의 따가운 비판 여론을 의식한 탓이다.

"배고픔보다 가슴이 막막히 저려옵니다. 국민의 뜻을 받들려고 했는데…. 국회에서 국정에 최선을 다하려고 했는데…. … 나라 경제가 주저앉고 국론이 분열되는데 대통령은 어느 것 하나 걷어붙이고 나서서 해결할 노력은 하지 않습니다. 왜 민의를 수용하지 않고 비리를 덮으려 하는지 나라만 시끄럽게 하는 모습을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이 현실을 국민들 앞에 알리고자 단식을 결심했습니다.

단식. 이렇게 여러분이 보기엔 다소 과격한 방법을 쓸 수밖에 없을 만큼 그렇게 상황은 많이 나쁩니다. 제 진의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해서 정말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씁니다. 한번만 우리 대한민국을 생각해주시고 저의 충심을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또 이렇게 하루가 갑니다." (최병렬 대표)


지난달 29일, 단식 4일째인 김 위원장은 최 대표에게 공개편지를 띄웠다. 언론들과 최 대표가 하루빨리 단식을 끝내고 국회를 정상화시키라는 그의 주장을 외면한 탓이다.

"남들이 저에 대해 말하기를 '밥 굶는데 이골이 난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최 대표님의 단식에 대해서는 귀추를 주목하지만, 제 단식에 대해서는 거들떠보는 이도 많지 않습니다. 사실입니다. 저는 어린 시절을 많이 굶으면서 보냈고, 지난 독재정권 시절에 세 번에 걸쳐 꼬박 5년 동안 징역 생활을 하면서 무던히도 자주 단식투쟁이라는 것을 해보았습니다.

대표님은 어떠신지 몰라도 저는 몹시 배가 고프고, 고통스럽습니다. 많이 굶어본 놈이어서 굶는 것에 대해서는 일종의 공포감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제가 '최 대표님보다 하루 더 하겠다'고 했던 연유로 제 다짐을 지키려면 최 대표님의 복식이 시작되어도, 저는 세 끼니를 더 굶고 복식을 시작해야 합니다. 제 혼자 생각에 지금의 제1당 대표의 단식투쟁 정국에서 저야말로 최 대표님과 엮여진 운명 공동체입니다.

… 최 대표님이 앉아 있을 곳은 당사의 농성장이나 소위 '장외투쟁'의 현장이 아니라, 의사당 내 최 대표님의 자리입니다. 그 자리를 지키며 국민들로부터 맡겨진 책임을 다하는 것, 그 길이 나라를 구하는 구국의 길입니다. 이렇게 인연이 맺어졌습니다. 부디 멀지 않은 날에 밥 나누어 먹는 자리가 있게 되기를 고대하겠습니다. 맛있게 먹게 될 밥을 그리며, 배고픔의 고통을 견디어가겠습니다. 최 대표님, 이제 밥을 드십시오."(김영대 위원장)


최병렬 대표와 김영대 위원장, 두 사람은 모두 '대통령'에게 결단을 요구하며 '언제 끝날지 모를' 단식을 하고 있다. 최 대표는 행정부의 수장인 노무현 대통령을 향해, 김 위원장은 사실상 입법부의 대통령이 최병렬 대표라며 그를 향해 '결자해지'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올해 마지막달인 12월의 첫 날은 이렇듯 한국 정치사에 아주 드문 풍경으로 남을 '쌀뜨물 단식'과 '맞불 단식' 6일째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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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한 기사에 관심이 많습니다. 사람보다 더 흥미진진한 탐구 대상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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