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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락시장 수산물 경매장의 새벽모습
ⓒ 류종수
한 달하고도 보름 남짓의 생활은 어느덧 '처음'이라는 생경함과 흥분을 가라앉히고 남는 시간일까. 일요일에도 아침이면 어김없이 눈이 떠지고 회사 식당에서 아침으로 먹는 김밥과 라면이 조금은 힘겨워진다. 왕십리역와 잠실역에서 떠밀려가고 떠밀려오는 사람들의 쏟아짐도 이젠 내가 무덤덤하다.

출근하는 지하철의 빼곡함 속에서 이런 생각도 든다.

'아침은 우리에게 1cm 공간도 용납하지 않는구나. 그 동안 우리가 서로 얼마나 그리워했기에, 얼마나 살을 맞대고 싶었기에 너와 내가 이렇게까지 온 몸으로 밀착하는 건지.'

아니나 다를까 저 문이 열리면 찰나의 뜨겁던(?) 인연도 수많은 발걸음 속에 매장돼 버린다. 이 비정한 도시의 아침을 해치고 나와 난 익숙한 길을 걷는다. 점점 농도를 더해 가는 가락시장의 시큼한 냄새도 어김없이 직장이 가까워짐을 확인시켜주는 또 다른 출근부다.

잦아드는 설레임, 쌓여 가는 삶의 먼지들

처음이라는 이름의 설레임. '첫' 직장에 대한 익숙함이 이렇게 자리 잡아가는 것일까. 백수를 탈출했다는 야릇함, 어색한 양복이 주는 멋쩍음, 새로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 한 달을 기점으로 점점 탈색되는 느낌들이다. 탈색된 느낌 뒷면에는 또한 제 색을 더해 가는 것들도 있다. 아직은 어림없지만 대충 그림이 그려지는 업무들. 혼자서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야간근무. 어김없이 공허함(?)을 보내오는 식사시간들. 낯익어 가는 사람들.

그래서인지 학교 친구들보다 직장 동료들이 더 가까이 있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다. 어렵기만 하던 선배하고도 친구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은 나의 이런 마음이 당돌함으로 다가가지는 않을까 반성하기도 한다. 사람이 너무 격이 없어도 안 되는 법이니까.

얼마 전에는 아버지 생신이라 축산물 직판시장에서 우족을 사서 고향집에 내려갔다. 능력 좋은 형은 3층짜리 집을 지어서 부모님과 함께 이사를 갔다. 그 새집 찾아 처음 들어서자 소위 자수성가한 이의 삶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화장실이 세 군데였고 물보라치는 욕조도 있었다.

그렇지만 솔직히 그렇게 부럽지 않았다. 비록 나는 서울에서 곰팡내나는 반지하방에서 살지만 이런 내 삶도 화려한 것이 될 수 있는가를 알기 때문이다. 조금 욕심을 내면 직장근처로 작은 방을 구해서 구형 승용차라도 한 대 굴리면서 살면 족하다는 생각이다. 아직까지는 말이다.

다시 올라오는 버스 안에서 예전보다 훨씬 넉넉하고 여유 있는 지금의 내 삶에 낀 먼지를 털어 보았다. 뿌연 먼지가 날렸고 그 속에서 이런 말들이 형체를 드러냈다. '자기절제의 끈으로 다시 나를 곧추 세워야하리. 미혹에서 벗어나자!'

내 안의 슬픈 짐승을 다독거려줄 사랑

이제는 '자기계발'의 시간이다. 허무하게 나를 흔드는 미혹에서 나를 건져 올려야겠다. 미치도록 좋아했던 수영장에도 다시 다니고 미치도록 열망했던 소통의 세상을 열기 위해 어학공부도 다시 하고 싶다.

그칠 줄 모르는 나의 역마살을 달래주기 위해 시간을 내서 멀리 떠나보고도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모든 것을 공유할 수 있는 아름다운 구속이 생겼으면 좋겠다. 내 안의 슬픈 짐승(?)을 다독거려줄 사랑이 찾아왔음 좋겠다. 삶이란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주어진 자유시간이라는데, 사랑이야말로 인생 최대의 목표 아니겠나.

이렇게 나이 들어감이 내 청춘의 저물녘일까, 아니면 진정 새로운 삶의 시작일까. 아마도 그것은 지금부터 만들어 가는 내 인생의 솔직함과 당당함에 달렸으리라. 팍팍한 현실에서 한 발짝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던 나의 이상적 미래, 그러나 어쩌면 너무나 현실적이었던 교사의 꿈은 잠시 묻어두어야겠다. 세상과 맞서지 않고 도피하려는 삶도, 꿈만 쫓아 사는 인생도 소중한 삶에 대한 직무유기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새벽시장에 나가면 억척스런 삶의 풍경들이 밤의 정적을 깨운다. 그물에 엉킨 주꾸미도 꿈틀거리고 수조에 든 활어들도 퍼덕인다. 갓 벗겨낸 배추들이 아우성치며 노란 속살을 내보이고 경매사의 목청소리가 요란하다. 오가는 사람의 표정이 살아있고 삶이 번뜩이고 있다. 야간근무를 마치고 들어오는 걸음걸음마다 이들이 내게 외친다. '삶이 이리 억척스러운 것인데 네 어찌 사사로운 미혹에서 헤어나지 못하는가.'

내 외로운 방랑벽도 어디쯤엔가 반드시 그칠 줄을 안다. 단지 그 시간 속에 아름다움은 차곡히 쌓이고 슬픔은 깊게 정화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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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꿈을 해몽한다" 작가 김훈은 "언어의 순결은 사실에 바탕한 진술과 의견에 바탕한 진술을 구별하고 사실을 묻는 질문과 의견을 질문을 구별하는 데 있다. 언어의 순결은 민주적 의사소통의 전제조건이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젊은 날을 "말은 질펀하게 넘쳐났고 삶의 하중을 통과하지 않은 웃자란 말들이 바람처럼 이리저리 불어갔다"고 부끄럽게 회고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