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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체험에 대해 얘기하면 필자는 90년경부터 음악을 '신경 써가며' 듣게 되었는데 그때 중고등학생 메탈 키드들의 생각은 어떤 것이었냐면 "스래시 메탈(Thrash Metal) 아닌 것도 음악이냐?"였다.

흔히 '팝/록'이라고 얘기하듯 종종 팝과 록은 구분이 잘 안되곤 하는데 그런 것들은 마치 순정만화처럼 우리들 사이에서 폄하되곤 했다. 심지어 '록 → 하드록 → 하드코어 → 스래시 메탈' 이런 식으로 '음악'이 진화되었다고 믿었다.

이런 파시스트나 할 법한 생각까지 들 정도로 스래시 메탈은 당시 피끓는 청춘들을 펄펄 뛰게 만들만큼 정열적인 음악이었다. 솔직히 지금도 그만큼 정열적이고 (음악적으로) 진보적이며 실력이 통하는 장르는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92년에 조선일보에서 후원한 환경보호 슈퍼콘서트인 '내일은 늦으리'가 있었다. 서태지, 신승훈, 넥스트 등이 참여한 당대의 최고 스타들이 모여있던 공연이었고 이것은 다음해에도 진행되었다.

'93 내일은 늦으리' 역시 015B, 듀스, 이승환 등이 참여해 진행되었는데 이 앨범 마지막 곡을 크래쉬라는 조금 생소한 이름의 밴드가 연주해주고 있었다. 그 곡 '최후의 날에'는 크래쉬의 강렬한 스래시 곡이었고 이후 '93 내일은 늦으리'라는 음반의 가치는 '최후의 날에'의 첫번째 버전이 실려있다는 것으로 매겨지게 될 정도로 사람들에게 크래쉬라는 이름을 각인시켰다. 한국에서 이런 정통 스래시 사운드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메탈 키드들을 두근거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리고 그해 말 크래쉬의 데뷔앨범 '엔들리스 서플라이 오브 패인(Endless Supply of Pain)이 나왔다. 이 앨범의 발매로 한국의 헤비 사운드는 일대 전기를 맞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당시 국내 밴드들 중에서 이들만큼 육중한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그룹은 별로 없었을 뿐만 아니라 레코딩에서 세계적인 수준의 결과물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이들이 레코딩에서 이 정도의 결과물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아무래도 프로듀서 콜린 리처드슨(Colin Richardson)의 존재 때문일 것이다. 카니발 콥스(Carnibal Corps), 카르카스(Carcass)의 앨범 프로듀서로 유명한 그를 불러들인 것은 당시 SKC가 의욕적으로 만든 메탈 전문 레이블 메탈포스(Metal Force)의 멤버들이었고 그들의 의욕과 크래쉬의 실력, 그리고 콜린 리처드슨이 만나서 이런 앨범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이후 메탈리카(Metallica)의 프로듀서로 유명한 플레밍 라스무센(Flemming Rasmussen)이 멍키 헤드의 2집을 녹음했지만 콜린이 크래쉬와 만든 이 사운드에 비하면 그 완성도는 매우 약했다. 크래쉬는 3, 4집에서도 계속 콜린과 작업하여 환상 궁합을 맞춰왔다.

▲ 크래쉬 : 끝없는 고통의 공급자(1993)
ⓒ kpopdb.com
자 앨범 'Endless Supply of Pain'을 들어보자.

첫 곡 스크림(Scream)부터 터져 나오는 강렬한 기타리프는 사실 지금 들으면 '호오 잘하네' 싶은 정도지만 93년도에 들었을 때는 '헉!' 소리가 나올 정도의 것이었다. 그리고 뿜어져 나오는 안흥찬의 보컬을 들으면 국내 밴드의 앨범이라는 생각을 잠시 잊게 된다.

'마이 워스트 에너미(My Worst Enemy)'에서 한국어 가사에 실어내는 스래시 메탈을 들었을 때야 '아 이들은 크래쉬였구나'하는 느낌이 새삼스럽게 드는 것이다. 특히 이 곡은 완급 조절이 뚜렷하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 곡이다. 이런 곡을 듣다가 이들이 당시 3인조였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크래쉬의 박력이 다시 한 번 당신을 압도하는 느낌이 들 것이라 생각한다.

'스모크 온 더 워터(Smoke on the Water)'는 그 리프 하나로 너무나 유명한 딥 퍼플(DeepPurple)의 곡인데 원곡의 냄새를 살리면서도 자신들의 스타일로 잘 커버해주고 있다. 원곡에 없는 기타솔로와 함께 질주하는 드러밍은 해외 밴드들에 대한 부러움을 잊게 해 줄만큼의 파워다.

'최후의 날에'는 이들이 '93 내일은 늦으리'에 실었던 곡으로 비장미 넘치는 어쿠스틱 연주로 시작하다가 내레이션으로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본격적인 스래시 연주가 나오는, 이들이 초기에 간판으로 내세울 만큼 힘과 구성이 있는 곡이다. 환경 파괴로 암울한 미래를 맞이한다는 가사 내용과 음악이 매우 잘 어울리고 그 우리말 가사가 귀에 쏙 들어오는 시원시원한 곡이다.

안흥찬의 보컬은 오비츄어리(Obituary)를 생각하게 하는 구석이 있긴 하지만, 사실 그로울링이라는 것이 좀 뻔한 창법이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봐도 그렇게 개성적인 데스 메탈 보컬은 많지 않다.

안흥찬의 보컬은 저 밑에서 용암을 뚫고 오르는 듯한 묵직함에 매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후의 앨범들에서 록 발라드 같은 곡들도 소화하는 등 여러가지 모습을 보여주지만 이 앨범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분노만을 분출시킨다.

윤두병의 기타는 이 앨범에서 가장 높은 완성도를 성취한 포지션이 아닌가 싶은데 데뷔앨범을 녹음한 기타리스트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리드믹하고 훅이 있으며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한 연주를 들려준다. 애석하게도 그는 2집을 끝으로 탈퇴하였는데 이후 그의 자리는 두 명의 기타리스트가 메워야 했다.

정용욱은 이 앨범 녹음 당시 만 18세였다. 10대가 만드는 드러밍이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는 속도, 파워 그리고 비트에 대한 감각은 다른 형님들에 비해 전혀 뒤지지 않았으며 그는 안흥찬과 함께 지금까지 크래쉬를 지켜나가고 있다.

사실 크래쉬가 탄력을 받은 것은 이 앨범 공개 이후 서태지와 아이들 3집(1994)에 수록된 '교실 이데아'에 안흥찬이 보컬로 참여했기 때문이었다. 서글픈 일이긴 하지만 사람들은 교실 이데아에 삽입된 극단적인 목소리에 놀라고 나서야 국내에도 이런 보컬이 있나 하고 두리번거렸던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엄청난 압박을 받게 되었다. 데뷔앨범에서 이 정도를 만들어낸 그들에게 팬들이 기대를 하는 것은 당연했다. 메탈이라는 생소한 장르로 단번에 마이너의 냄새를 털어버린 그들이 다음 앨범에서 어떤 사운드를 만들어줄 것인가를 팬들은 초조하게 기다렸다.

2년만에 나온 2집 'To Be or Not to Be'(1995)는 변화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사운드상의 충격을 더 이상 주지 못했다는 점에서 팬들의 외면을 받았다. 예정된 2년차 증후군이었다.

이후 2년 3년의 시간차를 두면서 이들은 꾸준히 앨범을 내놓아 올해 나온 'The Massive Crush'(2003)가 벌써 다섯번째 앨범이다. 이들은 일단 이것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을만한데 끊임없는 라이브와 앨범으로 십년간 다섯 앨범을 내놓으며 살아남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은 지금 철지난 음악으로 여겨지는 메탈 사운드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 이쯤되면 크래쉬는 형님 소리를 들어도 될 연륜이다.

게다가 이들은 결코 나태하지 않았다. 4집 'Terminal Dream Flow'(2000)이후 테크노 인더스트리얼적인 요소라는 실험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콜린 리처드슨은 '피어 팩토리(Fear Factory)'라는 인더스트리얼 테크노의 명그룹과 작업했었으니만큼 역시 찰떡궁합이었다. 이현도의 '完全힙합'(2000)에 참여해서 랩메탈적인 시도까지 하는 등 크래쉬는 왕성하진 않아도 꾸준히 사운드의 실험을 추구했던 것이다.

크래쉬의 우리말 사랑 역시 지적해 둘만한 부분이다. 이들의 이전 작들에서는 영어 가사가 압도적으로 많지만 주요 곡들 두세곡은 꼭 우리말로 부르거나 우리말 버전을 함께 담았다. 그리고 근작 The Massive Crush에서는 우리말 가사가 매우 늘었다. 어떻게 보면 이들이 세계시장으로 뻗어가기보다는 국내에 치중하기로 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어 조금 안타까운 면이 없지 않지만 우리의 것으로 잘 소화한 다음에서야 세계적으로도 먹힐 수 있으니 2보 전진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사실 크래쉬는 검증된 실력뿐 아니라 깔끔하고 깊이 있는 레코딩이 가능한 밴드이기 때문에 해외, 특히 일본의 메탈 팬들에게서 은근한 주목을 받고있다. 나는 이들의 4집이 나왔을 때 나왔는지도 몰랐는데 일본인 친구가 필자에게 메일로 구해달라고 얘기를 해서 나온 사실을 알았을 정도니까 말이다.

메탈 키드, 아니 스래시 키드의 관점으로 옛 아이들(idol)들을 생각해본다. 메탈리카는 Load 이후로 아무래도 긍정적으로 보기 어려운 상태이고, 메가데스(Megadeth)는 부적절한 행보를 걷다가 해체상태에 이르렀으며, 슬레이어(Slayer)는 꿋꿋하게 똑같은 음악을 20년째 하고 있고, 할로윈(Helloween)은 좀비처럼 되살아나 한국과 일본에서 다시금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이들을 들으면서 고등학생 시절을 보낸 필자에게 이들은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코드들인데 아마 크래쉬는 비교하자면 슬레이어와 비슷한 타입일 것이다. 슬레이어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긁어대고 있는데 그 고지식함이란 웃음이 나올 정도이다. 아직도 쌍팔년도에나 보일법한 해골, 악마 이미지를 바꾸지도 않고 버티니 말이다.

크래쉬 역시 고집스럽게 자신들의 헤비 사운드를 유지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변화가 없어서 또 이런 음악이냐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조금만 애정을 가지고 들으면 이들이 꾸준히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생각해보니 보컬 겸 베이스, 드럼 그리고 트윈기타라는 4인 구성의 포지션 역시 슬레이어와 동일하다.

발라드 가수 십년, 트롯 가수 이십년 하기도 쉬운 건 아니다. 하지만 메탈로 십년하기는 그보다 훨씬 어렵다. 우리 사회가 계속 다양성을 받아 안아서 계속 이들이 장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래간만에 그들의 공연을 보고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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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서재 출판사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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