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후두둑- 후두둑. 선운사 동백꽃 꽃잎이 지는 소린 줄 알았더니, 한라산의 단풍잎 떨어지는 소리였다. 툭- 툭. 깊어 가는 가을날 알밤 떨어지는 소린 줄 알았는데, 그리운 님 기다리며 어둠 속에서 눈물 한방을 떨어지는 소리였다.

▲ 존자암 가는 길
ⓒ 김강임
이렇듯 가을은 사람마다 낯가림을 하는 것 같다. 자신이 현재 어느 위치에 처해 있느냐에 따라 계절이 감상적일 수도 있고 힘겨울 수도 있겠다. 저마다 맞이하는 시간의 색깔이 다르듯이 말이다.

한라산 영실 서쪽의 볼레오름 능선 해발 1200m. 그곳에는 고승의 수도장으로 알려진 존자암이 있다. 서귀포 70리 길. 다시 발길을 돌린 곳은, 고승의 체취가 묻어있는 가을 암자였다. 존자암은 서귀포 70경의 하나로 한국 불교의 최초인 적멸보궁이 봉안돼 있는 곳이다. 가을산이 사람들의 마음을 정화시킨다면 가을 산사는 사람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

해발 1200m에 오르기 위해서 영실 약수터에서 물 한 모금을 먼저 마셨다. 시원한 약수물을 가슴에 담으며 구도자의 걸음걸이를 흉내라도 내듯 느릿느릿 걸어본다.

▲ 후두둑 떨어지는 가을 열매
ⓒ 김강임
"이번에는 뒤를 돌아보지 않으리라." 산사로 들어가는 길은 울퉁불퉁 꼭 세파에 시달린 사람의 무등을 타는 기분이다. 그러나 얼마나 걸었을까? 단풍잎 떨어지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고, 열매 영그는 소리에 가슴 조이며, 자꾸만 걸어온 길을 뒤돌아본다.

한라산 기슭 볼레오름 중턱에 있는 존자암지는 <동국여지승람>과 <탐라지> 등 옛 문헌에 그 역사가 오랜 사찰로 기록되어 있는 고승의 수도장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는 건물지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고, 다량의 기와편들이 출토되었으며, 도자기·질그릇과 세존사리탑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산사로 떠나는 길은 항상 마음을 텅 비워야 한다. 그래야만 그 발걸음이 가볍다. 비스듬히 누워 있는 언덕길을 올라가니 눈앞에 펼쳐지는 곳은 단풍나무들의 홍조 띈 풍경뿐이다. 산 속에도 저마다의 역사가 있다. 빨갛게 익어 가는 열매들과 울긋불긋 물들은 단풍. 졸졸졸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에 맞춰 벌써 산새들은 풍년의 파티를 열고 있었다.

조금은 가파른 산기슭이지만 가을풍경 감상하며 걷다 보면 어느새 등에는 땀이 흥건히 배인다. 산사로 가는 길은 혼자 걸으면 더욱 그 진한 맛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절은 멀리 있으면 더욱 좋다고 하였던가. 한 걸음 걸으면서 깨달음을 얻고, 또 한 걸음 걸으면서 자기 성찰의 반성을 하고, 다시 한 걸음 걸으면서 수도의 길을 떠날 수 있는.

▲ 고요히 생각하라
ⓒ 김강임
계곡의 물 흐르는 소리에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동서남북 방향감각도 잃은 채 우두커니 서 있으니, 보이는 곳이라고는 빼곡이 들어선 나무와 단풍뿐이다.

'108 걸음까지 고요히 생각하라.' 맑은 마음의 정성과 예로써 들어가라. 이렇듯 산사 가는 길은 적막하기 그지없는데 고요히 생각하라니. 이곳에서부터는 한 걸음 한 걸음이 구도자의 길이다.

▲ 병풍을 두른 듯
ⓒ 김강임
길 끝에는 절이 있다. 숲 속 끝에서 하늘 문이 열리고, 파란 가을 하늘이 보이기 시작한다. 병풍을 두른 듯, 볼레오름의 산기슭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 산중턱에 고즈넉하게 자리잡은 존자암. 저마다의 색깔로 갈아입은 볼레오름이 없었더라면 존자암은 얼마나 적적했을까? 그래서 16 아라한 1200 아라한이 이곳에서 거주했을까?

여기가 덕이 높으신 큰스님이 스쳐간 곳이란 말이더냐. 잠시 산사 고목나무 앞에서 땀방울을 닦는다. 분위기가 숙연해진다. 아마 이곳에서는 불자가 아니라도 몸이 사려질 것이다.

존자는 덕이 높고 큰스님으로 '아라한'을 말한다. 부처의 제자 중에는 16아라한, 500아라한, 1200아라한이 있다. 존자암은 덕이 높고 큰스님이 암자를 짓고 거주하였다고 하여 '존자암'이라 부른다.

▲ 복원공사 한창인
ⓒ 김강임
존자암은 복원공사가 한창 진행중이었다. 1993년부터 1994년까지 실시한 발굴 조사를 통하여 건물지, 부도, 배수 시설과 기와편, 분청사기편, 백자편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2004년까지 존자암지 복원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 세존사리탑
ⓒ 김강임
존자암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곳이 북쪽에 자리잡고 있는 석가세존 사리탑이다. 한 계단 한 계단을 수도하는 마음으로 올라가면 " 이곳은 한국불교의 최초의 사리탑 적멸보궁입니다. 한국불교 역사와 탐라국 문화가 숨쉬는 도량이오니 경건하게 참배하시고 절대로 올라가지 마십시요"라는 글귀 앞에서 합장을 하게 된다.

존자암지 세존사리탑은 2000년 11월 1일 제주도유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되었다. 제주 3성(高·梁·夫)이 처음 일어났을 때 세워졌다고 하는 존자암 터의 북쪽에 남아 있는 사리탑으로, 석종형에 속하는 장구형이다. 재질은 현무암이며 사람들은 이 탑을 예로부터 '돌종'이라 불러왔다.

팔정도를 상징하는 팔각형 하대석 위에 원형의 괴임돌을 놓고 탑신석과 두툼한 옥개석을 얹었으며 꼭대기에는 옥개석과 같은 돌로 보주를 장식하였다. 하대석 위 둥근 괴임돌 가운데에는 큼직한 사리공이 탑신석 아래 오목하게 생긴 모양과 꼭 맞물리도록 되어 있다. 장구형 탑신석은 아래위를 평평하게 다듬었으며 가운데에서 상·하단에 이르는 부분이 유연한 곡선을 이루고 있다.

▲ 국성지위 모셔진 곳에는
ⓒ 김강임
복원사업으로 어느 정도 모습을 들어낸 국성재각에 들어가 3배를 올렸다. 쌀과 과일 양초 향. 국성지위 앞에는 우리 중생들이 스쳐간 흔적이 그대로 남겨져 있었다.

▲ 중생들이 밝힌 등불
ⓒ 김강임
복원공사로 어수선한 대웅전도 문이 활짝 열려 있다. 대웅전 천정에는 많은 사람들의 소원과 희망이 담긴 등불이 매달려 있다. 저마다 구도의 길을 걷고자 하는 마음의 염원을 담은 등불을 보니 인간의 나약함 앞에 숙연해 진다.

그 목마름을 한 모금의 약수물로 씻어 내리기에는 부족함 많다. 그러나 항상 텅 빈 것을 채우려는 욕망이 다시 꿈틀거리고 있기에 인간은 항상 다시 구도의 길을 떠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 내몸을 불사른 알갱이는
ⓒ 김강임
제 몸을 불사른다는 것은 우리 모두의 아픔이다. 그러나 그 아픔을 활활 불살랐던, 그래서 그 알갱이를 묻어버린 '부도' 앞에 서면 항상 자신을 낮추게 된다. 청년시절 '맑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것만을 생각하며 살자'는 친구의 말처럼, 산사에서 보는 세상은 그저 맑고 깨끗하고 아름답게만 보인다. 볼레오름의 불타는 단풍보다는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그래서 자신이 움츠려지는 순간이 아닌지?

▲ 약수에서 목을 축이고
ⓒ 김강임
대웅전 앞에는 졸졸졸 끊임없이 약수가 흐른다. 물 한 모금 입에 물고 하늘을 쳐다보니 드높은 가을하늘이 푸른 바다처럼 보였다. 코발트 색깔의 하늘을 바라보니 이곳에서 만큼은 모든 중생을 구제해 줄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든다. 다시 한번 산사의 넓은 아량에 흠뻑 마음을 적시고 구비구비 비탈길을 돌아 다시 세상 속으로 빠져들었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