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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바라본 전라북도의 지형은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은‘동고서저’형으로, 한국 지형의 전형을 이룬다. 김제 익산의 넓고 풍요로운 평야 지대는 완주군 동상면과 소양면에 이르러 금남정맥과 호남정맥의 험준한 산세와 만나게 되고, 곧장 무주, 진안, 장수의 백두대간을 향해 치닫게 된다.

전라북도의 북동부, 험준한 산악 지역으로 이어지는 바로 그 초입 격인 완주군 동상면 위봉산 자락에 소슬하게 둥지를 튼 위봉사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지금은 그 구절양장의 뱁재 고개를 넘어 위봉산성의 그 깊은 산골 마을까지 포장도로가 개설되고 위봉폭포와 수만리까지 관광도로가 연계되어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로도 각광을 받고 있지만, 80년대까지만 해도 산과 깎아지른 절벽과 깊은 계곡으로 둘러 싸인 위봉사와 동상면 일대는 나라 안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오지 중의 오지였다.

▲ 전형적 산지사찰인 위봉사를 멀리서 바라 보았다
ⓒ 장권호
절제의 미학으로 연출한 여백의 아름다움

604년 백제 무왕 5년 서암대사가 산문을 연 이래 수 차례의 중창을 거친 위봉사는 1912년까지만 해도 전국 31본산의 하나로 전북 일원의 40여 개 말사를 관할할 정도로 그 위세가 대단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와 해방 정국을 거치는 동안 급속히 쇠락, 폐사 직전에 놓이게 된다.

1988년 법중 스님이 위봉사 주지로 부임하면서 10년에 걸친 중창 불사를 통해 서서히 옛 모습을 되찾아 이제는 한국의 대표적인 비구니 선원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10여 년에 걸친 대형 불사를 통해 100여 칸의 건물을 증축하고 대규모 석축 사업을 벌였음에도 위봉사에서는 20세기 인간들의 천박한 물량주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 차라리 손대지 않은 것이 나을 뻔한, 수많은 절집들의 불사를 보며 늘 언짢고 안쓰러운 마음이었는데 위봉사 중창 불사만은 적이 안심이 된다.

위봉사 중창 불사의 미덕은 기존의 보광명전과 관음전을 전격 보수하고 극락전과 봉서루 그리고 종각과 선원까지 10여 동의 적잖은 신축 건물을 증축했음에도, 별로 돈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공간구성과 건축배치 등의 그 어느 구석에서도 필요 이상의 과장이나 허세가 없다. 절제의 미학으로 품격을 유지, 여백의 아름다움을 멋들어지게 연출해 놓았다.

▲ 절제의 미학으로 여백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위봉사 마당
ⓒ 장권호
또한 위봉사 중창불사에서 평가해주어야 할 점은 자연과 인공이 서로 충돌하지 않고 완벽한 조화와 상생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이다. 살풋이 솟아오르는 보광명전 지붕의 용마루라든지, 배산(背山) 위봉산의 부드러운 능선 자락과 날아갈 듯 사뿐히 나래를 편 귀마루의 저 멋진 어울림이 어디 웬만한 내공으로 가능할 일이겠는가?

고원 지대의 분지형 산자락에 자리잡은 위봉사는 주변 산세가 정말 좋다. 올라오면서 바라본 험준한 산세와 달리 일단 위봉사에 올라서 바라본 산세는 부드럽고 완만하다. 보광명전 앞에서 바라본 전망은 소백산 부석사처럼 시선이 너무 열려 허허롭지도 않고 백암산 백양사처럼 너무 닫혀있어 답답하지도 않다.

▲ 조선조 후기 건물로 보이는 단아한 위봉사 관음전 전경
ⓒ 장권호
고향집 툇마루에 앉아 바라본 앞산 자락처럼 오래오래 바라보아도 물리지 않고 편안할 뿐이다. 특별히 이거다 싶게 내놓을 만한 유물 하나 없는 이 깊고 외진 산골 절집 위봉사를 한번이라도 찾은 사람들은 오래오래 잊지 못한다. 위봉사만이 줄 수 있는 편안함과 안온함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자급자족의 소박한 삶을 실천하는 절집 사람들

또한 위봉사를 찾은 사람들은 그 정갈하고 깔끔한 절집 분위기에 마음을 뺏기고 만다. 그러나 위봉사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절집 분위기에 있지 않고 절집 사람들의 땀 흘리는 삶에 있다. 88년 부임, 오늘의 위봉사를 일으켜 놓은 법중 주지스님의‘일과 수행’이라는 생활 철학이 바로 삶 속에 실천되고 있는 현장을 확인할 수 있다.

▲ 비구니 사찰의 깔끔함은 약수터에서도 엿보인다
ⓒ 장권호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고 있는 극락전 안 쪽의 밭은 물론 마을 주변에 꽤 넓은 면적의 밭들까지 스님들이 직접 씨 뿌리고 풀 매면서 땀 흘려 가꾸고 있다. 손끝 야문 안주인의 손길이 닿은 텃밭만큼이나 요모조모 알뜰하게 잘도 가꾸어 놓았다. 김장용 무나 배추에서 상추 쑥갓에 이르기까지 없는 게 없다.

또한 텃밭 한켠에 대형 비닐하우스를 지어 놓고 사계절 50여 명의 절집 사람들이 넉넉히 먹을 만큼의 갖가지 채소와 웬만한 먹거리까지를 스스로 가꿔서 해결한다고 한다. 철저한 자급자족의 소박한 삶을 실천하면서도 선풍을 진작시키는데도 소홀함이 없다고 총무 스님이 살짝 귀띔해 준다.

산과 호수가 어우러져 가을 여행으론 최적

산중의 가을 해는 워낙 짧아 이쯤해서 슬슬 엉덩이 털고 일어나야 한다. 짧은 가을 여정으론 좀 빠듯하긴 해도 위봉폭포 아래 대아저수지와 그 언저리 한대리 마을까지 가볼 생각이다. 서둘러 위봉사를 나와 포장 도로를 따라 북으로 300-400m 정도 가다보면 60m의 깎아지른 듯한 높이에서 거대한 물줄기로 떨어지는 위봉폭포의 장관과 마주하게 된다.

▲ 60m의 높이에서 떨어지는 위봉폭포의 장관
ⓒ 장권호
여기서부터는 낭떠러지 길로 수직 낙하하듯 계곡 아래로 아슬하게 이어진다. 이 길이 우리 나라의 8대 오지로 꼽힌다는 동상면 수만리와 한대리, 한국의 '나이아가라'라 불리우는 대아댐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자동차 길이 나기 전까지만 해도 동상면 수만리 일대는 사람 접근이 용이하지 않을 만큼 오지였다.

1920년대에 조성된 대아호와 그 남쪽에 조성되어 있던 동상저수지까지를 넓혀서 거대한 인공호수가 만들어진 것은 90년대에 들어서이다. 인공호수이면서도 주변 산세가 수려하고 풍광이 아름다운 동상면 쪽은 트레킹 코스로, 호수 건너편 대아면 쪽은 드라이브 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다.

앞산도 뒷산도 모두 아득하고 막막하기만 한데, 이 깊은 산중까지 고달픈 삶의 뿌리내려 살아가는 모습들에서 문득 밀려오는 존재의 슬픔. 여름과 가을이 교차하는 나무들에서도 벌써 쇠락이 기운이 느껴진다.

▲ 한국의 나이아가라로 불리우는 대아댐 상류 모습
ⓒ 장권호
거대한 산소 탱크 안에 들어온 것처럼 머리 속이 갑자기 맑아진다. 창문을 모두 열어놓은 채 시디 볼륨 조절하고 차를 호수 가에 멈춘다. 비발디의 ‘세상에 참 평화가 없어라’가 끝나고 새로운 트랙으로 바뀌어, 브람스의 교향곡 3번 3악장으로 흐른다. 가을의 이 저물녘을 위해 준비해 온 음반이다. 첼로와 호른이 반복되는 부드러운 선율에 가슴이 베인 것처럼 아려온다. 사위는 고요하고 호흡은 깊어진다. 이제 산을 내려가야 할 시간이다.

여행의 마무리

위봉사 초입에 있는 송광사는 지면상 소개하지 못했다. 걷기에도 아까운, 꿈길 같은 벚꽃 진입로로 널리 알려진 송광사는 평지사찰 건축 양식의 한 전형을 이루고 있어 꼭 한번 들러 보아야 할 절집이다. 돌아오는 길엔 소양면 화심리에 들러 그 유명한 화심 순두부를 먹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것이다. 여유 있다면 화심온천에 들러 몸이라도 담궈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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