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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 50주년을 맞이하는 한반도에 또다시 이상기류가 흐르고 있다.
‘전쟁이 있는 곳에 미국이 있다’는 말처럼 이번 또한 ‘이라크 다음에 북한’이라는 미국의 대외정책이 조심스럽게 불거져 나오고 있는 현실이 그것이다.

전쟁은 필연적으로 장애를 확대·재생산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남북한을 합쳐 250만명이 죽거나 실종되었고, 부상자까지 합하면 당시 전 인구의 6분의 1에 달하는 500만 명이 피해를 입었다. 최근에 있었던 이라크 전쟁을 보더라도 전쟁과 장애와의 관계는 특별한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정전 50주년을 맞이하는 이 시점을 다시 ‘끝나지 않는 전쟁’으로 표현하는 이유에 대해 우리는 깊은 관심과 의문을 던져야 한다. 그것은 바로 전쟁으로 인한 우리들의 상처와 과제가 50년이 지난 이 시점에도 여전히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함께걸음'은 남한에서는 최초라고 할 수 있는 북한 장애우 실태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시하려 한다. 휴전협정에서 평화협정의 단계로 거듭나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한반도.

통일문제 전문가들은 이때야말로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남북한 상호 교류협력이라고 입을 모은다. 민간 교류협력을 통한 신뢰회복이 우선되어야 전쟁이라는 극단의 참상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장애계 또한 상호 신뢰회복을 위한 움직임을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북한 장애우 실태에 대한 정확한 정보나 자료가 없어 그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특히, 장애우 문제를 북한 인권문제로 보는 시각이 많아 섣불리 접근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러나 서로의 체제와 상황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지원을 매개로 조금씩 접근하는 것은 필요하지 않을까.

그 어느 분야보다도 그 동안 서로 소통하지 못한 채 반세기를 지내온 남북한 장애계의 활발한 교류협력을 기대하며, 북한 장애우의 현황과 실태를 '함께걸음'이 조명해 보았다.

나라의 수치? 나라의 얼굴?

“평양에는 장애우가 없다. 모든 장애우는 지역으로 쫒겨나 수용소에 갇혀 산다”

“전쟁이나 군사훈련을 통해 몸이 불편해진 장애우는 국가적 영웅이다. 그들은 영웅대접을 받으며 살고 있다.”

북한 장애우 실태에 대해 알려져 있는 이 두 가지 견해는 이미 남한 사회에서 상식이 되어 버렸다. 이는 북한이 뭐 하나 뚜렷하게 공식입장을 밝힌 바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북한의 체제를 볼 때 국가 건설에 공을 세우거나 사람들에게 모범이 될만한 경우 인정해 주는 경향이 있으니, 선천적 장애를 갖고 태어나는 사람들과는 다른 대접을 하고 있을 법도 하다.

그러나 북한에서 말하는 장애의 정의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편견을 가져오는 이런 단정적인 표현이나 생각들이 남북한 통일에 결코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없다. 때문에 교류·협력을 위해서는 정확한 정보와 꾸준한 신뢰를 바탕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렇다면, 위와 같은 소문의 진상은 어디인가. 대체로는 탈북자들이거나 북한과 교류하고 있는 민간단체 사람들로 보여진다. 일각에서는 이들이 갖고 있는 정보의 수준과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자료나 공식보고서가 없는 상황에서 북한의 일상생활을 접할 수 있는 것은 그곳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이야기하는 단편적인 것으로 북한 전체 장애우 실태와 현황, 국가 정책을 이해할 수 있을까?

탈북자들의 말에 따르면, 북한 체제는 출신성분에 따라 사람의 지위를 구분하는데, 북한은 장애우를 ‘나라의 수치’로, 평양을 ‘나라의 얼굴’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모든 장애우를 평양에서 추방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지체장애우(뇌성마비장애우), 시각장애우의 경우는 평양 근처인 ‘승호구역’이라는 주변구역에서 집단거주생활을 한다고 한다. 탈북자 장인숙씨는 이곳의 농촌구역을 갔다가 ‘이곳이 말로만 듣던 장애우 집단거주지역이구나’하는 생각에 잠시 발걸음 속도가 늦춰졌단다.

자신들을 보고 있음을 눈치 챈 시각장애우들이 “뭘 봐? 여기가 동물원인 줄 알아? 가라 야~”했던 경험이 있단다. 이들은 주로 새끼를 꼬거나 수공예품을 만들어 생활하고 있으며 식량은 국가에서 배급한다고 했다.

눈여겨볼 만한 것은, 남한에서는 경제적 이유 등으로 가족이 장애우 가족을 길거리에 버리거나 시설에 맡기는 경향이 있는데, 북한은 체제 구조적으로 이런 것들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장애우의 거주형태가 한 시설에서 집단생활을 하는 수용시설의 형태가 아니라 온전히 자신들의 집에서 일터로 오가는 일반적인 생활이란 것이다.

그러나 과거 남한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집단거주 시키며 격리했던 것처럼 북한의 장애우는 집단 거주촌을 형성하고 있으며 시내에는 나오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고 한다. 결국 내용적으로는 분리정책을 펴고 있다 할 수 있다.

평양에는 장애우가 없다?

그러나 군복무 중에 다친 영예군인이나 교통사고로 팔, 다리가 불편해진 사람들은 평양에서 생활할 수 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모습은 북한의 국가적 행사에서 군복을 입고 휠체어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종종 TV프로그램인 통일전망대 등에 방영되기 때문에 설득력을 갖는다.

대개 북한을 방문한 바 있는 사람들도 “어떻게 장애우가 한 명도 없을 수 있겠느냐, 북한도 사람 사는 곳이다. 다만 군인의 신분과 민간의 신분에 따라 다른 처우를 받는 것 뿐”이라며 평양에 장애우가 한 명도 없다는 소문에 의문을 던졌다. 따라서 출신성분에 따라 대우가 다르고 차별정책이 있는지 몰라도 ‘모든 장애우가 다 평양에서 추방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북자인 장인숙씨(자유이주민연합회장)는 북한에서는 이처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장애우를 평양에서 떠나게 하는 이주정책을 펴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 회장은 “평양에 사는 당간부의 아이가 장애가 있을 경우, 지방으로 가도 간부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아이를 데리고 가족 전체가 떠나기도 한다. 정무원에서 근무했던 어떤 사람은 아이가 척추장애를 갖게되었는데, 평양을 떠나 군 단위의 높은 지위로 재부임한 경우를 본 적이 있다”며 자신의 말이 근거 있는 주장임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참고자료. 함께걸음 2002. 9월호 함께걸음이 만난사람 자유이주민연합회 장인숙회장 인터뷰 중)

통일부, "북한엔 장애우 없다"

그렇다면, 북한 정부는 왜 장애우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는 것일까? 아니 존재를 인정하지만 일부러 밝히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존재를 부정하는 것일까? 여기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우선, 우리측 통일부의 입장은 간단 명료했다. '북한 장애우 실태에 대한 자료가 있는가, 교류는 이루어지고 있는가'란 질문에 “북한에는 장애우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남한에서 정의하고 있는 장애우의 정의에 해당하는 개념이 서 있지 않을 수도 있지만 주무부처의 공식 입장치고는 너무 당혹스러웠다.

“북한에서는 장애우란 용어 대신 불구자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가?”란 질문에는 “그렇다”고 답하며 “하지만 평양에는 장애우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통일부에도 북한의 장애우에 대한 자료는 거의 없다”는 것이 남북한 교류협력 책임자의 말이었다.

관심의 부족과 장애계의 교류 의지 부재에서 기인한 것이겠지만, 한 마디로 남한 정부는 ‘북한에 장애우가 없다’고 알고 있다. 한편, 월간 <민족 21>의 김지형 차장은 명확한 이유를 거론하긴 어렵지만 북한이 의도적으로 장애우에 대한 언급을 피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는 "외부에서 북한의 인권문제를 거론하는 것에 대해 북한 정부는 매우 민감합니다. 자칫하면 북한의 장애우 문제를 서구 자본주의의 잣대로 섣부르게 재단할 수 있다는 거죠. 북한이 처해진 상황이나 체제에 대한 이해 없이 자본주의의 시각으로 볼 때 물리적, 사회적 환경의 미비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인권침해로 쉽게 규정할 수도 있다는 부담감 때문이 아닐까요? 물론 장애 가진 사람의 문제는 인권의 시각으로 접근해야 하지만 사회적 상황에 대한 고려가 빠질 수 있다는 염려가 장애 문제를 정확히 드러내지 않는 이유가 될 수 있겠죠. 어쩌면 이미 공개되어 있음에도 남한에서 관심을 갖지 않아 우리가 모르는 것일 수 있겠네요”라고 말했다. 덧붙여 의료기술 및 보장구 기술 등 장애우에게 필요한 재활시설이나 장애 특성에 맞는 제반 시설의 부재가 심히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전했다. 또 그는 북한 정부가 처한 열악한 경제적, 정치적 상황을 본다면 장애우가 처해진 상황은 그보다 더 녹록치 않음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도 함께 했다.

장애우 존재, 북한 역시 과거엔 부정

그러나 지난 3월 휠체어 100여대를 북한 그리스도연맹 측에 전달한 바 있는 (사)세계밀알연합회의 이재서 회장(총신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은 1990년대 미국 유학 당시 UN(유엔) 북한대표부에 북한 장애우 실태 자료를 요청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의외로 “북한에는 의술이 발달돼 장애우가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십 수년 전만 해도 북한 정부는 공식적으로 장애우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제 올 8월에 다시 2차 방북을 추진하며 휠체어 100여대와 시각 장애인용 흰지팡이 수백 개, 항생제 등 의약품을 전달할 계획인 (사)세계밀알연합회(이사장 손봉호) 문성의 부장은 “아직까지 정확한 북한의 장애우 통계나 정책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지난 방북 당시 4박 5일 동안 한 명의 장애우도 만나보지 못했구요. 분위기를 살피느라 그쪽에서 정해준 일정대로 움직이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는데, 이번에는 휠체어가 전달된 곳이 어디에 사는 누구며,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물어볼 예정입니다”라며 앞으로 지속적인 교류·협력을 위해서라도 지원물품이 전달되어지는 정확한 경로와 수급자 현황 등에 대한 자료 요구를 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도 학술 관계차 북한을 7차례 방문한 바 있는 이일영 교수(아주대 재활의학과장) 또한 북한의 장애우 실태가 관심사였지만 한번도 언급을 하거나 먼저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는 “북한의 병원을 방문하고 재활의학과 의사들과 장애우 재활문제를 학술 주제로 세미나를 해 왔지만 한번도 장애우의 실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대체로 의약품과 의료기술에 대한 교류만 있었고, 병원 시스템과 기계 등이 그 쪽의 주된 관심사였습니다. 나름대로 궁금하기도 했지만 실례가 될 것도 같아 나도 미처 질문하지 못했습니다”고 말했다.

북한, 장애 발생률 낮을 것

이렇게 남한의 민간단체 사람들이 북한의 장애우 문제를 먼저 언급하기 꺼려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바로 남한에서 살아가는 장애우의 현실적 삶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한국 사회에서 장애우들은 정치·경제·사회적 약자로 구분된다.

또한 소외계층으로 분류되어 일상에서 내내 차별과 권리침해를 받는 계층으로 이해되어지기도 한다. 따라서 남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인식 속에 자리잡힌 장애우의 상황을 떠올릴 것이고, 북한의 열악한 생활환경과 맞물려 장애우의 실상 또한 형편없는 상황일 것이라는 판단이 작용했던 것은 아닐까.

실제 이일영 교수는 “북한의 의료진들은 매우 훌륭하며 예방의학이 발달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병원의 의료 장비 등이 낙후되어 장애우들에 대해서는 물어볼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이 정도라면 안봐도 상황이 어떨 것이라는 것이 눈에 뻔하거든요”라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북한은 예방의학이 발달하고 환경오염도 덜 되어 선천성 장애, 즉 소아마비나 임신 중에 있을 법한 뇌성마비, 정신지체장애 등의 확률이 남한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낮을 것으로 추정되며, 교통사고나 산업재해 등도 남한에 비해 적기 때문에 후천적 장애우가 양산될 가능성도 남한보다는 적을 것으로 예상됩니다”라며, 장애우들이 처해진 현실적 조건이 열악하다 할지라도 장애를 양산해 내는 구조는 남한보다 안전한 상황일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인권과 북한의 장애우

이와 관련, 민중의 생존과 인권이 보장되면서 평화적 통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으로 북한 난민돕기 운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는 (사)좋은벗들(이사장 법륜스님)의 이승용씨는 “북한 민중들의 인권침해 실태가 매우 심각하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장애우가 없다고 선언하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그는 북한 고위층이 인권에 대한 마인드가 부족하고 기아와 질병에 허덕이는 민중들의 삶이 외면되고 있으며, 출신성분에 따라 차별적 정책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에 장애우도 마찬가지 아니겠냐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 또한 장애우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수많은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심각한 식량난과 물품의 부족으로 인해 장애우가 처해진 현실이 매우 열악할 것이고, 또 북한 정부는 이걸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아 부정하는 것이라는 짐작이 가능하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의도하지 않았건, 외부세력들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된 상황이건, 결과적으로 그 사회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힘없는 사람들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고 생존권 마저 위협 당하는 속에서 자유권, 사회권이라는 기본권은 없다는 것이다.

남북한 장애계의 교류·협력 절실

설득력 있는 의견이다. 그렇다면 남한의 장애계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정전 50주년을 맞이하면서도 전쟁의 위협을 받고 있는 한반도. 상식을 넘어 힘의 논리를 앞세우는 미국 앞에서 무기력함만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남북한 민간이 서로 교류·협력의 길을 찾아 신뢰를 회복하면서 평화적 통일을 준비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쟁이 발생하면 일상생활이 불편한 장애우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것이 아니더라도 전쟁은 필연적으로 장애를 양산할 수밖에 없다.

‘장애차별’은 익숙하지 않음에서 오기도 하고, 오해와 불신, 외면으로부터 오기도 한다. 그건 바로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회가 구체적 관계를 맺어야만 살아가는 존재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남북한 통일에 대한 접근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분단 50년이라는 세월이 서로를 부정하고 때로는 이해하고 인정받지 못하게 변했다 할지라도, 그 모습이 현실이라면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더더욱 북한의 장애우 실태에 대해 소문이 아닌 정확한 인식이 전제되어야 한다.

서로의 상황과 처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대화하면서, 나눔과 믿음에 대한 실천적 자세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임에 틀림없다. 평화적 통일운동에 장애계의 결합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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