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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일 오후 고 방일영 조선일보 전 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에 방재선씨가 문상차 가족과 함께 방문했으나 조선일보측에 의해 거부당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2신: 8일 오후 8시>

'계초 방응모' 친일 행적 언급한 방재선씨
장례식장 현관서 조문 거부당해


조선일보를 설립한 계초 방응모의 '호주 상속'을 주장하며 지난 2001년 9월 소송을 제기한 방재선(59) '계초 방응모 선생 기념사업회' 회장이 방일영 전 조선일보 회장의 장례식에 조문하려 했으나 상주인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으로부터 거부당했다.

방씨는 계초 방응모가 넷째 부인 노호용씨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로 별세한 방 전 회장에게는 '나이 어린 삼촌'이 된다.

이날 오후 6시20분경 서울대병원에 도착한 방씨는 아내 김아무개(39)씨, 딸 3명과 함께 빈소로 들어가려 했으나 조선일보 직원들과 병원 경비직원들에게 가로막혔다. 방씨와 직원들이 실랑이를 벌이는 과정에서 별다른 마찰은 없었지만, 방씨의 아내 김씨가 장례식장으로 올라가려다 병원 직원에게 떠밀려 넘어지면서 한때 소란이 일기도 했다.

▲ 방재선씨의 부인 김명희씨가 장례식장안에서 끌려 나온 뒤 밀려 넘어져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방씨는 장례식장 입구에서 "왜 못들어가게 하느냐"고 항의했지만, 직원들은 "다 알면서 왜 이러느냐"고 답하며 방씨 가족들의 입장을 막았다.

조선일보 한 관계자는 "방씨를 왜 못들어가게 하느냐"는 질문에 "상주들이 만나고 싶어하지 않는다"며 방씨의 조문이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방상훈 사장과 방씨 사이의) 피차 어르신들 얘긴데, 우리가 뭐라고 말할 수 있느냐"며 답변을 피했다.

방상훈 사장 등 유족들은 방씨의 조문을 허락하지 않은 것은 방씨가 계초 방응모의 '친일 행각'을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1층 입구에서 약 40분간 직원들과 실랑이를 벌이던 방씨는 빈소에 머물고 있던 자신의 아들 방아무개(33, 디지털조선 기자)씨를 통해 방상훈 사장과 연락을 했고, 방 사장으로부터 "(친일 발언을) 사과하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밝혔다.

방씨는 "방 사장이 '어떻게 아들이 아버지를 친일했다고 얘기할 수 있느냐, 들어와서 아버지가 친일 했다는 얘기를 사과한다면 출입을 허락하겠다'고 말했다"며 "친일 한 것은 한 것이지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방씨는 오후 7시30분경 "오늘 들어가지 못하면 내일 같은 시간 다시 오겠다"며 가족들과 떠났다.

"조선일보와 한국언론은 한 시대를 접었다"
<조선일보> 9일자 2개 지면 할애 '방일영 추모'

<조선일보>는 9일자 신문에서 2개 지면을 할애해 8일 별세한 방일영(80) 전 조선일보 회장을 추모했다.

9일자 종합 5면에서 <조선일보>는 강천석 논설주간의 '평전'을 통해 방 전 회장의 삶을 "한국 언론의 산 기록"이라고 극찬했다. 강 논설주간을 글의 서두는 "우초 방일영이 조선일보에 바친 56년 세월은 고난과 성취의 현대사를 몸으로 살아낸 한국 언론의 산 기록이었다. 이제 그가 떠남으로써 조선일보와 한국 언론은 한 시대를 접었다"로 시작한다.

'신문사 경영했으나 신문은 만들지 않았다'는 제목의 글에서 강 주간은 방 전 회장이 "신문은 재정적으로 독립해야만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신문은 기자들이 만드는 것이고 경영자의 역할은 그들을 뒷바라지하는 것"이라는 두 가지 원칙을 가지고 일관된 삶을 살아왔다고 주장했다.

강 주간은 또 자유당 시절이나 유신체제, 군사정부 아래서도 '권력에 대한 비판'을 밀고 나갔다고 회고했다. 자유당 시절의 국가보안법 개정 반대 사설, 1964년 언론윤리위원회법 파동 등 역사의 고비마다 방 전 회장이 '신문'을 선택해 왔다는 것이다.

종합 6면에는 첫날 빈소 표정과 함께 황병기 이화여대 명예교수의 추모사, 조문객 명단이 함께 실렸다. 8일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을 비롯, 문희상 청와대 비서실장, 손길승 전경련 회장 등 각계 거물급 인사들이 대거 빈소를 방문했다.

그러나 <조선일보>가 9일자 신문에서 방 전 회장의 부음을 전하며 지면 2개를 할애한 것은 지나친 '지면 사유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아울러 강 논설위원의 글에서 방 전 회장은 권언유착 등 '밤의 대통령'으로 불려온 행보에 대한 설명 없이 지나치게 미화돼 논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인터넷신문 <조선닷컴>은 8일 오후6시를 넘어서며 부고기사('방일영 조선일보 前회장 80세 일기 별세')에 대한 100자평 쓰기를 없앴다. 네티즌들의 활발한 의견개진이 이루어져온 100자평을 <조선>이 삭제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 김영균 기자


▲ 방일영 전 조선일보 회장이 8일 오전 숙환으로 별세했다. 방 전 회장의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5일후인 12일 발인할 예정이다. 조문객들이 8일 오후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1신 대체: 8일 오후 5시30분>

방일영 전 조선일보 회장이 8일 새벽 2시5분께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0세.

1923년 11월 26일 평안북도 박천군 가산변 동문동에서 태어난 방 전 회장은 경성제일고보와 일본 중앙대학 예과를 졸업한 뒤 1943년 조선일보에 입사해 1999년 사임할 때까지 55년간 조선일보에 몸담았다.

방 전 회장은 조선일보 재직 동안 한국신문발행인협회 이사장, 국제언론인협회(IPI) 한국위원장, 아시아신문재단(PFA) 이사장 등을 거쳤다. 또 정부로부터 국민훈장무궁화장(1962), 금관문화훈장(1999)을 받기도 했다.

방 전 회장의 빈소는 8일 오전 10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다.

유족들은 오전 10시께 빈소를 열고 조문객들을 맞고 있으며 8일 오후까지 교수나 시민단체, 한국ABC협회 등 정·재계, 학계, 언론계 인사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조문객들은 빈소 입구에서 흰 국화를 한송이씩 받아들고 빈소로 들어가 헌화한 뒤 상주들과 인사를 나눴다. 빈소 내에는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 등 상주 5명이 손님들을 맞고 있다.

빈소에는 흰 국화에 둘러싸인 방 전 회장의 영정이 정면에 자리잡았으며 오른쪽으로는 전,현직 대통령들이 보내온 조화가 놓였다. 조화를 보낸 이들은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해 김대중, 김영삼, 노태우 전 대통령, 김종필 자민련 총재 등이다. 특히 김영삼 전 대통령은 부음 소식을 듣자마자 서울대병원을 찾아 조문했다.

그러나 부음이 전해진 첫날 낮인데다 현대 정몽헌 회장의 영결식이 겹쳐 8일 낮 빈소는 약간 한산한 표정이었다. 조선일보 경영기획실 한 관계자는 "8일 저녁이 되면서 조문객들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조선일보와 유족들은 방 전 회장의 장례식을 조촐하게 치를 예정이다. 경영기획실 관계자는 "현재 장례식장 장소가 좁아 전, 현직 대통령을 비롯한 삼부 요인들이 보내오는 조화 외에 도착하는 조화는 모두 돌려보내고 있고 조의금도 사양하고 있다"고 밝혔다.

방 전 회장의 장례식은 5일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며 발인은 12일 오전 7시다. 유족들은 12일 오전 8시30분 서울 흑석동 자택에서 따로 영결예배를 가진 뒤 장지로 떠날 계획이다. 방 전 회장의 장지는 의정부시 가능동 선산.

연락처) 서울대병원 02-760-2091∼2/ 조선일보사 02-724-5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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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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