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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맛없는 요즘 무슨 반찬을 해먹을까 고민하다가 오랜만에 가락동 야채 소매시장을 기웃거렸다. 호박, 오이, 가지 등 싸고 만만한 야채들은 요즘 질리도록 볶아먹고, 생으로 먹고, 지져먹고, 냉국 등으로 자주 해 먹었기 때문에 사실 사고 싶지가 않아 두리번거리다가 "그래, 바로 이거야" 싶게 내 눈에 확 뜨이는 게 있었는데 그건 바로 고구마줄기였다.

여기에서 잠깐 고구마줄기에 관한 효능에 대해서 알아본다. 고구마줄기의 주성분은 수분이 95.9g, 칼슘82mg, 칼륨345mg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구마 줄기는 '버서등(藩薯藤)'이라 하고 달면서도 약간 떫은맛이 있다. 서늘한 성질로 구토, 설사, 혈변, 자궁출혈 종기를 치료하며, 젖이 부족하여 잘 나오지 않을 때도 효과가 있다.

필리핀에서는 고구마를 이용하여 당뇨병을 치료하기도 한다는데 실험에 의하면 잎은 인슐린 성분을 함유하고 있어 당뇨병 환자에겐 소량의 인슐린을 복용하면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효능으로 보아서 여름철 계절음식으로 고구마나 고구마순이 제격이라는데 인공으로 썩힌 고구마에서 분리한 약한 독성의 물질은 산토닌보다 강한 구충작용이 있다는 보고도 있다. 산업용으로 전분의 재료 또는 알코올의 원료로도 쓰인다. 또 섬유질의 대명사로 불릴 만큼 변비에 좋다.

어려서부터 고구마와 고구마줄기를 많이 먹고 자라서인지 내게 친근하고도 맛있는 음식 중 하나가 고구마이다. 고구마는 생으로 먹기도 하고, 찌고, 굽거나 튀김 등, 기타 여러 가지로 다양하게 먹을 수 있다. 고구마줄기 또한 맛있는 여름반찬이다.

고구마는 변비 뿐 아니라 비만예방, 지방간, 대장암 예방에 효과가 좋고 비타민 성분이 많아 노화방지에도 효과가 있다. 또한, 칼슘과 칼륨성분이 풍부하여 골다공증, 고혈압 예방에 뛰어난 효능이 있으며, 겨울철 영양간식으로도 그만이다. 기미방지에도 효과가 크다고 한다.

기미에는 고구마 잎과 줄기를 모두 쓸 수 있는데 고구마 줄기를 적당히 잘라 그릇에 넣어 물을 붓고 달여서 기미낀 얼굴에 자주 발라주는데 이렇게 일주일 정도 발라주면 효과가 나타난다고 한다. 여름 한철을 보내고 나면 기미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효과가 좋다니 한번 해봄직도 괜찮을 것 같다.

고구마 줄기를 보자 나는 그만 구미가 당겨서 두 다발을 훌쩍 사들고 돌아왔다. 그야말로 할 일이 생긴 것이다. 고구마줄기 껍질을 벗기는 일이 만만찮다. 손톱 밑이 시커멓게 물들어 며칠을 갈 것이기 때문이다.

거실에 신문지 쫙 펴놓고 고구마줄기를 벗기고 있으니 아들녀석이 자기도 하겠다고 덤벼드는데 그만 잎사귀만 떼고 껍질을 제대로 벗기지도 못한 채 장난만 치고 있었다. 껍질 벗긴 고구마줄기를 소금물에 삶아서 나는 주로 된장에 무쳐먹는다.

고구마 생줄기로는 김치나 볶음, 무침 그리고 말린 것으로는 나물 등 여러 가지 음식으로 해먹을 수 있지만 내가 즐겨 해먹는 것은 고구마줄기 된장무침이다. 만들기도 쉽고 간편하면서 씹히는 맛이 상큼해 우리 가족이 다 좋아하기 때문에 여름이면 자주 해먹는 음식 중 하나이다.

그러나 이 고구마줄기는 그저 음식으로 먹고 그치는 정도가 아니라 유년의 아련한 추억 속으로 빠져들게 하기 때문에 애착이 더 가는 음식이다. 고구마 밭이 흔하던 시절, 여름이면 반찬으로 만만한 게 고구마 줄기일 만큼 거의 날마다 고구마 줄기를 반찬으로 해먹다시피 하던 때가 있었다. 그만큼 그때는 고구마 밭이 천지였고 꼭 우리 고구마 밭이 아니라도 어느 곳에서나 고구마 줄기를 뜯을 수 있을 만큼 인심도 좋았던 시절이었다.

우리 집은 고구마를 산에 있는 밭에 많이 심었다. 드나들기 좋은 곳에 밭뙈기가 없어서 산밭에 심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래서 고구마 줄기 뜯으러 가는 일이 결코 쉬운 게 아니었다. 산밭으로 가는 길은 험하기도 했고 벌레나, 뱀도 제법 있어서 혼자 가기는 무서운 길이었다.

엄마는 언니와 나에게 고구마 줄기를 뜯어오라고 시키곤 했는데 순둥이였던 나에 비해 잔꾀가 쏠쏠했던 언니는 "너, 엄마한테 이르면 죽어!"하고는 샛길로 빠져버리기 일쑤였다. 언니에게 이겨먹지 못한
나는 하는 수없이 혼자 터덜터덜 고구마줄기를 뜯으러 가곤 했는데 줄기를 뜯다보면 커다란 벌레 때문에 혼비백산하기도 하고, 선산이라 산소가 즐비했었는데 해가 지면 무섬증이 와락 달려들기도 했다.

그래도 고구마 밭이 풍성해서 잠깐 동안이면 줄기를 한 소쿠리 가득 뜯어올 수 있었는데 뜯은 고구마줄기를 집에 가지고 와서는 감나무 밑 평상에 앉아서 껍질을 벗겼다. 그때 고구마 줄기는 싱싱해서 아주 잘 벗겨졌다. 요즘처럼 뻣뻣하거나 가늘지 않고 통통한 게 물기가 흠씬했다.

껍질을 벗겨놓은 줄기를 엄마는 삶아서 큰 양푼에 담고 장독대에서 갓 퍼온 된장을 떠 넣고 풋고추, 양파도 송송 썰어 넣고, 마늘도 찧어 넣은 후에 참기름 듬뿍 넣어서 손으로 조물조물 무쳐주었다. 엄마의 손맛이 배인 고구마 줄기 된장무침은 얼마나 맛있었던지 상위에 올려놓으면 뚝딱하니 밥을 비워냈다. 가끔은 된장과 고추장도 같이 넣어서 무쳐먹곤 했는데 어떻게 무쳐도 맛있는 고구마 줄기였다.

또한 고구마 줄기 말고 고구마 꼭지부분은 더욱 맛있었는데 고구마 줄기 끝 부분에 있는 연한 부분을 똑 딴다. 그 부분은 아주 연해서 줄기뿐 아니라 이파리까지 같이 무쳐먹었는데 줄기보다 훨씬 감칠맛이 났었다.

친정엄마는 또한 고구마 줄기로 다른 요리를 했었는데 제사 지낼 때 탕을 고구마 줄기로 끊이셨다. 삶은 고구마 줄기에 맛(조개종류)을 넣고 밀가루를 풀어서 만들곤 했는데 삼삼하면서도 얼마나 맛있던지 밥도 없이 그 탕만 먹곤 했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절대로 흉내도 낼 수 없었던 그 음식은 엄마가 해주어야 맛이 있었고 요즘도 가끔 먹고 싶어질 때가 있다.

이렇게 여름 한철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고구마줄기는 벗겨놓은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직접 벗겨서 해 먹으면 훨씬 맛있다. 가끔은 식물성 기름에 볶아먹어도 괜찮다. 예나 지금이나 여름 한철 내가 만만하게 생각하는 소박하면서도 맛깔스런 반찬거리로 제격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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