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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의 금산은 거의 설명이 필요 없는 산이다. 적어도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너나없이 몇 번쯤은 다녀갔을 것이고, 남해를 방문한 경험이 있다면 한 번은 산을 올랐을 산이며 비록 남해를 방문하지 않았더라도 최소한 산 이름과 풍광에 대해서 귀동냥으로 듣고 언젠가는 한 번 가보리라고 다들 벼르는 산이기 때문이다.

남해 명산 금산의 본래 이름은 보광산이다. 원효스님이 신라 문무왕 3년(663년)에 이 산에 보광사를 창건하면서 보광산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이후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기 전 보광산에서 백일기도를 드렸는데, 자신이 나라를 세울 수만 있다면 산을 비단으로 두르겠다고 약속을 했고 이후 소원이 이루어지자 비단을 두르는 대신 비단 금(錦)자를 써 금산이라 부르게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름이 아니더라도 금산은 그 자체로 비단처럼 아름다운 산이다. 산 전체가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져, 마치 수천의 조각가들이 모여 산 전부를 조각해 놓은 듯하다.

금산 38경중의 제1경인 쌍홍문은 금산의 첫 관문에 속한다. 커다란 바위에 두 개의 큰 구멍이 마치 문처럼 보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문이 있으면 당연히 수문장이 있는 법. 칼을 짚고 선 듯한 모습으로 위풍도 당당하게 서 있는 것이 바로 장군암인데 머리가 하늘을 찌르고 기개가 서려 대장봉으로 부르기도 한다.

쌍홍문 안에 들어서면 동굴 천장에 세 개의 구멍이 뚫려 있는데, 이 구멍에 돌을 던져 연속해서 집어넣으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금산엔 워낙 기기묘묘한 바위가 많아 그 하나 하나의 생김과 전해오는 얘기를 하자면 몇 날밤을 지새워도 모자랄 것이다.

용이 살다가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서린 용굴, 깎아지른 절벽에 누워있는 모습 하나와 서 있는 모습 두 개가 합쳐진 것이 부처님의 형상과 흡사하다 하여 붙여진 삼불암.

이 삼불암은 원래 세 개가 모두 누워 있었는데, 이성계가 기도를 마치자 두 개가 벌떡 일어났다 하며 만약 세 개가 모두 일어났었다면 이성계가 중국까지 다스렸을 것이라는 전설이 담겨있다.

그리고 두꺼비 모양의 천마암, 닭의 형상을 한 천계암, 비둘기 모양의 천구암, 높이가 만장이나 된다고 하는 만장암, 삼신산의 네 선녀가 놀다가 갔다고 전해지는 사선대, 새끼를 업고 있는 어미돼지를 닮았다는 저두암, 여덟 신선이 춤추는 모습의 팔선대, 그리고 상사암….

이쯤서 상사암 이야기는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웅장한 바위의 모습만으로도 볼거리지만 그 위에 올라서 바라보는 다도해의 모습은 절경이다. 그러나 여기엔 슬픈 전설이 서려 있다.

조선 숙종 때 여수 돌산에서 남해로 머슴을 살러 온 남자가 자태가 고운 과부 여주인에게 그만 반해버렸다. 그러나 신분은 주인과 머슴. 결국 머슴은 상사병에 걸려 시름시름 죽어가는 몸이 되고 말았는데, 자신에게 엄격했던 수절과수댁이지만 사람의 목숨이 걸린 일인지라 하는 수 없이 어느 날 머슴을 이곳 벼랑으로 불러내어 그의 사랑을 받아들였다.

이후 후세 사람들은 이곳을 상사바위로 불렀다 한다. 물론 또다른 전설도 있다.

주인 딸을 사랑하다가 상사병이 걸린 돌쇠가 죽어 뱀이 되어 딸을 감고 있다가 결국은 이곳에서 절벽 아래로 떨어져 돌아올 수 없는 구천으로 간 이야기는 앞의 것과 사뭇 다르다.

상사바위와 이어진 것이 구정암, 아홉 개의 구멍에 빗물이 고이면 아홉 개의 샘 같다고 하여 그렇게 부르는데 상사풀이를 할 때 이 물을 썼다고 한다.

금산에 왔으면 놓치고 갈 수 없는 것이 보리암이다. 우리나라 3대 해양기도처로 불릴 만큼 효험 있기로 소문난 곳이 보리암인데, 이 보리암은 지금은 없어져 버린 옛 보광사의 부속 암자로 알려져 있다.

기묘한 형상의 거대한 바위군과 낙락장송, 대나무가 둘러싸인 가운데 상주해수욕장의 모래톱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 자리한 보리암은 사철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보리암의 삼층석탑은 김수로왕비인 허태후가 인도에서 가져온 파사석이라는 돌로 만들어 세워졌다고 한다. 삼층석탑 옆의 해수관세음보살상의 미소가 더 할 수 없이 은은하고 인자하다.

돌아가는 길이 아쉽다면 남해 청정지역의 특산물을 몇 개쯤 배낭에 넣어 가는 것도 좋을 듯. 그 유명한 남해유자로 만든 유자청이나 유자주는 물론이려니와, 순수한 해풍과 태양빛으로만 익힌 솔잎차, 호박차, 결명자차가 일품이고 멸치액젓은 물론, 포장만 열면 바로 식탁에 올릴 수 있는 맛깔스런 젓갈은 이 고장의 명물이다.

낙조와 갈대들의 합창제
구미마을 해안풍경

남해도의 관문인 남해대교를 지나 설천, 고현을 쉽게 지나치다 서면의 끝자락에 있는 구미마을에 들러보자. 비록 남해 12경에는 들어있지 않은 곳이지만, 이제부터라도 그곳을 유심히 살펴 볼만한 곳이다.
구미마을의 5백년이나 된 방풍림에서 눈 떠 오는 느티나무와 팽나무의 새싹을 보면서도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된다. 5백년동안이나 보식되어 오면서 지금에도 당당한 모습으로 서 있는 방풍림을 가만 들여다 보라.
겨울이면 맨 몸인 채로 강풍도 다 막아내는가 하면, 여름이면 그 뜨거운 햇살을 신록으로 순화시켜 주는 365그루의 도도한 몸짓들을 한동안 숙연한 마음으로 보아주었으면 한다.
구미마을 앞바다에 있는 마도에는 기마병이 쉬어갔다는 장군대가 있다. 그 작고 조용한 어촌에도 옛날 한때는 격전지가 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잠시 옆으로 눈을 돌리니 구미마을 해안과 연결된 야트막한 산등성이를 넘다보면 갈대가 무리지어 그 특유의 몸짓을 풀어내고 있었다.
굳이 지방색을 드러내지 않더라도 갈대제가 열리는 순천만의 그 갈대보다 더 유연한 모습으로 낯선 여행객의 발길을 자꾸만 붙잡아 맨다.
하루에 꼭 한번 구미마을의 방풍림에 걸려 떨어지는 일몰 또한 서해의 어느 곳 못지 않게 아름답다.
/ 윤광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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