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대포는 쾅 우레로 튀고/ 총알은 땅 빗발로 난다/ 흰옷 입은 이 몸은 붉은 십자의/ 자애에 피가 뛰는 간호부로다/ 전화에 흐트러진 엉성한 들꽃/ 바람에 햇듯햇듯 넘노는 벌판/ 야전병원 천막에 해가 넘으면/ 삭북천리 낯선 곳 벌레가 우네

대포는 쾅 우레로 튀고/ 총알은 땅 빗발로 난다/ 흰옷 입은 이 몸은 붉은 십자의/ 자애에 피가 뛰는 간호부로다/ 쓸쓸한 갈바람은 천막을 돌고/ 신음하던 용사들도 소리 없을 제/ 하늘에는 반갑다 예전 보던 달/ 둥그러이 이 한밤 밝혀를 주네

(가사지 내용을 현재 맞춤법에 따라 바꾸어 표기한 것이다)


콜럼비아레코드에서 1938년 1월 신보로 발표된 <종군간호부의 노래>(음반번호 40794)는 형식이나 내용면에서 지금까지 살펴보았던 몇몇 군국가요들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인다.

승리니 충성이니 하는 허구적인 구호성 가사로 오히려 현실감을 주지 못하는 작품들과는 달리, <종군간호부의 노래>에서는 상대적으로 잔잔한 묘사와 어딘지 모르게 애잔함 느낌마저 주는 표현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는 어쩌면 여성의 시각에서 전쟁을 바라보고 있는 작품의 서술구조와 관련이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각 절에서 같은 부분을 반복해 부르는 대목은 통상 후렴으로 뒤에 붙는 것이 통례이지만, 이 곡에서는 특이하게도 앞부분에 반복되는 구절이 있다.

가사지에 표기된 바에 의하면 가수 김안라(金安羅)와 콜럼비아여성합창단이 함께 노래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현재 공개된 음원이 없어 확인할 수는 없지만, 아마 반복되는 앞부분을 합창단이 함께 불렀던 것으로 추측된다.

음반으로는 1938년 1월 신보로 나왔지만, <종군간호부의 노래>는 이미 1937년 9월에 조선문예회에서 주최한 애국가요대회에서 발표가 되었던 작품이다.

조선문예회는 문예활동을 통한 사회교화를 목적으로 1937년 5월에 발족한 단체였는데, 그 활동 내용은 사실상 친일적인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었다. 특히 중일전쟁이 발발한 7월 이후로는 시국가요발표회, 애국가요대회 등을 열어 적극적으로 전시체제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작사자 김억(金億)(1893-?)은 그러한 조선문예회에 관여하면서 콜럼비아레코드를 통해 <종군간호부의 노래>와 앞서 본 <정의의 행진>을 발표했고, 빅터레코드의 자매상표인 빅터 스타레코드에서도 <정의의 사(師)여>(김억 작사, 이면상(李冕相) 작곡, 임동호(林東浩) 노래)라는 시국가를 냈다.

김억은 일찍이 1933년부터 빅터, 콜럼비아, 폴리돌, 오케 등 여러 음반사를 통해 백 곡이 훨씬 넘는 유행가 가사를 발표한 것으로 전하는데, 현재 확인되는 것만도 70여 곡에 이를 정도로 1930년대에는 비중 있는 작사가였다.

<종군간호부의 노래>와 <정의의 사여>를 김억의 가사에 맞춰 작곡한 이면상(1908-1989)은 1933년에 도쿄에 있는 니혼(日本)음악학교 작곡과를 졸업한 뒤 본명과 이운정(李雲亭) 등의 예명을 쓰며 상당히 많은 유행가 작품을 남겼는데, 현재 전래민요인 것처럼 알려져 있는 <울산 큰애기>도 바로 그가 작곡한 것이다.

광복 이후에는 북한에서 평양음대 총장, 조선음악가동맹 중앙위 위원장 등을 지내며 북한 음악계의 주요 인물로 활동했다.

이면상이 작곡한 군국가요로는 앞서 든 두 곡 외에 <정의의 사여>와 함께 발표된 시국가 <총후의남(銃後義男)>(최남선(崔南善) 작사, 이면상 작곡, 임동호 노래)이 또 있으며, <정의의 사여>와 <총후의남> 역시 조선문예회에서 제작한 것이었다.

가사지에 실려 있는 새하얀 간호부 복장을 입고 찍은 사진이 인상적인 가수 김안라는 작곡가 겸 가수로 유명한 김용환(金龍煥), 근래까지 대표적인 원로가수로 활동했던 김정구(金貞九)와 남매 사이이며, 1935년에 도쿄에 있는 주오(中央)음악학교 성악과를 졸업했다.

국내에서도 음반을 더러 내기는 했지만, 김안라는 주로 일본에서 무대나 음반을 통해 보다 활발한 가수 활동을 펼쳤다.

조선(朝鮮)적인 특색을 갖춘 소프라노로 좋은 평판을 얻었던 덕에, 1940년에는 각계 명사들로 구성된 김안라후원회가 도쿄에서 조직되기도 했다. 김안라가 부른 군국가요는 이 <종군간호부의 노래>가 유일한 것이다.

<종군간호부의 노래>를 편곡한 사람 역시 일본인으로, 일본 콜럼비아레코드 소속으로 있으면서 뛰어난 편곡을 많이 남긴 니키 다키오(仁木他喜雄)(1901-1958)였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노래를 찾는 사람, 노래로 역사를 쓰는 사람, 노래로 세상을 보는 사람.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