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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여기 담바고 팔러온 평치들 어디 있어?"

왠지 험악한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들이 우르르 주막으로 모여들어 평안도 장사치들을 찾고 있었다. 이들은 담배를 취급하는 연초전 상인들로서 평안도에서 담배를 팔러온 장사치들이 싼 가격으로 난전에 물건을 팔아 넘기는 것을 수시로 감시하고는 했다. 연초전 상인들로서는 담배 집산지에서 싼 가격으로 한양에 담배를 공급하는 평안도 담배봇짐장사들이야말로 자신들이 구축해놓은 시장질서를 어지럽히는 원흉이었다. 홍경래 주위에 있던 평안도 장사치들은 행여 자신들을 알아볼까 두려워하며 머리를 자꾸만 숙였다. 이를 알아본 한 연초전 상인이 소매에서 몽둥이를 꺼내들고선 달려들었다.

"아 무슨 지랄들이야! 싸우려면 나가서 싸워! 관가에 고발해 버리기 전에!"

주모가 행여 자신의 가게가 싸움판에 박살이라도 날까봐 악다구니를 쓰자 연초전 상인들은 평안도 장사치들의 멱살을 잡은 채 질질 끌어갔다. 홍경래도 멱살을 잡혔지만 어디에 손을 대냐는 식으로 손을 훽 뿌리쳐 버렸다.

"어라? 이 놈 봐라?"

연초전 상인은 두 손을 모아 더욱 우악스럽게 경래의 멱살을 움켜잡으려 했으나 경래는 손을 잡고 비틀어 버렸다.

"아이쿠! 이 평치가 사람 치네!"

동료 상인이 소리를 지르자 흥분한 연초전 상인들은 홍경래를 빙 둘러쌌다.

"아직 젊은 놈이라 뭘 모르는 모양인데, 네놈들이 담바고를 함부로 내다 팔아서 부당하게 번 돈을 내놓지 않고 버튕기면 관아에 고발당하는 수가 있어!"

홍경래는 밥숟가락을 탁 내던지며 연초전 상인들을 노려보았다.

"내래 그딴 건 몰라도 이것 한 가지만 확실히 하자우요. 왜 좋은 말 놔두고 힘으로 위협합네까?"

연초전 상인들 중 하나가 나서 대뜸 뭔 소리냐는 듯 반문했다.

"너희들 평치들은 무식해서 말귀를 못 알아들으니 힘으로 해결을 봐야지 않갔어?"

그 상인의 장난스러운 평안도 말투 흉내내기에 연초전 상인들이 킬킬거렸다. 홍경래는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나 짚신을 챙겨 신었다.

"내래 담부터는 그러지 않고 물건을 당신들에게 팔 것이니 오늘은 그만 하오."

연초전 상인들이 어림도 없다는 듯 홍경래의 앞을 가로막고 나섰다. 다른 평안도 장사치들이 제압당한 상태에서 홍경래는 혼자였고 작달막한 체구가 그들에게는 별로 위협적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이 새파란 것이 쓴맛을 봐야 세상물정을 알지!"

홍경래는 옆에서 몽둥이로 자신의 머리를 노리는 자를 보고 펄쩍 뛰어올라 턱을 걷어차 버렸다. 순식간에 턱을 얻어맞은 연초전 상인은 정신이 혼미해져 바닥에 누워버렸고 다른 이들은 흥분하여 한꺼번에 홍경래에게로 덤벼들기 시작했다. 홍경래는 탁자를 엎고 그릇을 집어던져 그들을 주춤거리게 만든 후 재빠르게 담을 풀쩍 뛰어넘어 도주해 버렸다. 연초전 상인들은 홍경래의 재빠른 몸놀림에 넋을 잃고 뒤쫓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홍경래는 한참을 뛰어가다가 멈춰 서서 잠시 숨을 몰아쉬었다. 마음먹고 처음으로 돈을 벌어보겠다고 나선 길이 꼬여도 너무 꼬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때 홍경래의 어깨에 손을 올리는 이가 있었다. 홍경래는 놀라서 퍼뜩 뒤를 돌아보았다.

"거 담바고 있으면 내게 좀 파시게나. 평안도 일월초가 팍팍하니 내 입맛에 맞아서......"

홍경래가 잘 살펴보니 갓 쓰고 도포 입은 젊은 서생이어서 방금 전의 연초전 상인들과 한패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담바고는 다 팔고 없소만 어떻게 내가 담바고 장사치임을 알았습네까?"

"사실은 아까 주막에서 있었던 일을 다 지켜보고 있었소. 난 박종일이라고 하오."

홍경래는 경계심을 풀 수 없었지만 일단 상대가 통성명을 하자고 하니 자신도 공손히 답했다.

"난 홍경래라고 합네다."

"이렇게 몸이 날랜 장사(壯士)를 만나게 되어 기쁘기 짝이 없소. 우리 어디 근사한 곳에서 술이나 한잔 나누지 않겠소이까?"

홍경래로서는 박종일의 뜬금없는 접근이 수상쩍었지만 아무렴 해가 될 턱이 있느냐는 심정으로 그를 따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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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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