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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우리 사회의 각종 현안에 대해 좀더 깊이있는 분석과 대안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대안칼럼>을 신설합니다. 매주 2차례에 걸쳐 <대안연대회의>소속 국내외 학계와 연구소 전문가 17명이 칼럼진으로 참여할 예정입니다.

칼럼진은 한신대 이해영 교수(국제정치),한밭대 조복현 교수(금융), 캠브리지대 장하준 교수(개발경제),성공회대 유철규 교수(한국경제), 국민대 조원희 교수(경제체제),고려대 김균 교수(정책이념), 시사평론가 정승일 박사(재벌 및 기술경제),인천대 이찬근 교수(국제금융), 교토소세대 이정희 교수(동북아경제) 등 입니다.

첫 번째 칼럼은 인천대 이찬근 교수(대안연대 정책위원)가 최근 사회,경제적 이슈로 떠오른 ‘조흥은행 매각’과 관련한 글을 보내왔습니다. 독자여러분의 관심 부탁드립니다.<편집자 주>


▲ 조흥은행 매각을 놓고 정부와 노조가 대결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한 고객이 조흥은행 본점을 나오고 있다.(사진)
ⓒ 연합뉴스

지난 6월 2일 오후 3시부터 6시 15분까지 청와대 서별관에서는 조흥은행 매각 관련 노정 토론회가 비공개로 열렸다. 이 자리에는 대통령을 직접 보좌하는 청와대 정책실장, 경제수석, 경제보좌관이 참석했고, 협상 당사자인 정부측에서는 재경부차관, 금감위 부위원장, 예금보험공사 사장이, 노동계에서 한국노총 위원장, 금융노조 위원장, 조흥노조 위원장이 나왔다. 필자는 노조측이 추천한 학계 전문가 자격으로 참석했다.

당초 이 토론회는 참여와 화합을 위해 새로운 관행을 만들어 나가겠다는 노무현 정부의 적극적 의지가 담겨 있는 것으로 큰 기대를 모았다. 나라에 중대한 사안이 발생하면 대통령과 청와대가 직접 나서 중재하겠다고 대통령께서 누차 강조한 바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토론회는 하나의 경과조치 내지는 요식행위에 불과했다는 지극히 나쁜 선례를 남겼다. 신뢰의 회복은커녕, 불신의 골만 키우는 이런 행사를 도대체 뭣 때문에 치를 생각을 했는지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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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짚어졌어야 할 쟁점은 크게 세가지였다.

첫째 공적자금 조기 회수 논란이다. 정부 측은 조흥은행에 대한 정부 보유지분 80.04%를 신한지주회사에 파는 것은 조흥에 투입했던 2조 7천억원의 공적자금을 회수한다는 원칙에 따른 것이라는 당초의 주장을 견지했다.

필자를 포함한 몇몇 사람들은 조흥의 민영화를 공적자금 조기회수라는 극히 기술적(technical)인 차원의 문제로 봐서는 안된다고 강력히 반박했다. 당초 공적자금은 외환위기 상황에서 금융권의 안정을 위해 투입된 것이고, 그 결과 소기의 안정효과를 달성했는가가 회수 그 자체 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실 조흥을 신한에 파는 것은 결과적으로 은행권을 대형화 체제로 개편하고, 독과점화를 더욱 심각하게 만드는 것인데, 이것이 과연 국민경제에 바람직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가를 짚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노조와의 약속은 어겨도 되고 외국인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경부 측은 이에 대한 답변을 회피했고, 청와대조차도 마치 물건너간 쟁점으로 보는 듯 이렇다할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로써 은행의 대형화가 금융시스템의 안정에 도움이 되는지, 특히 조흥처럼 몇 안되는 기업금융 특화은행을 합병할 경우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기업투자의 위축문제가 더욱 심각해지는 것은 아닌지 종합적으로 짚어보는 것은 전혀 불가능했다.

나라의 최고 엘리트라는 관료들이 기업체로 치면 대리급이나 할 일을 가지고 시시콜콜 따지고 우기는 것을 보면서 도대체 이 나라 국민은 누구를 믿고 살아야 할지 암담한 생각마저 들었다.

두번째 쟁점은 약속의 문제이다. 정부는 노동조합과 맺은 약속은 마구 어겨도 되고, 외국인 투자자와 맺은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태도를 보였다.

2000년 7월 11일 노정합의를 통해 정부는 조흥의 조건부 독자생존을 약속했고, 이후에도 2000년 11월 은행경영평가위원회 판정, 2002년 4월 적기시정조치 해제 등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조흥의 독자생존을 확인했고, 심지어 공적자금 투입은행 중 가장 모범적인 구조조정 사례로 치켜세우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조흥은행을 단계적으로 분할매각한다는 방침을 지난해 2월 공자위를 통해 발표했는데, 불과 6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인 지난해 8월 돌연 일괄매각으로 방침을 바꾸었고, 이것이 그간 노정 갈등의 주요한 원인이 되어왔다.

재경부 차관의 어처구니 없는 ‘말바꾸기’

그러면 어제 토론회에서는 적어도 정부가 왜 갑자기 입장을 바꾸게 되었는지에 대한 납득할만한 설명이 있어야 했는데, 재경부 측 실무책임자로 배석한 변양호 금융정책 국장은 앞뒤가 안맞는 논리로 우겨댈 뿐 설득력있는 해명을 못했고, 청와대 측도 이를 추궁하려는 자세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청와대는 사전에 이미 재경부와 입을 맞춘 듯, 지난해 8월 이후 일괄매각을 전제로 해외입찰을 추진해 왔으므로 국제신인도를 해치지 않으려면 계속 매각 절차를 밟을 수 밖에 없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특히 사회를 맡은 청와대 이정우 정책실장은 일괄매각에 따른 여러 가지 문제점은 진작에 검토됐어야 했는데, 이미 국제적 약속 하에 매각추진의 진도가 많이 나갔으므로 현 시점에서 이를 지적해봐야 별 의미가 없다는 발언으로 일축함으로써 노동계 측 참석자들을 당혹스럽게 했다.

마지막 쟁점은 조흥은행의 독자생존 가능성이다. 재경부는 조흥의 민영화는 공적자금 회수를 위한 것이므로 조흥의 독자생존 문제는 이 자리에서 검토할 논의 대상이 아니라며 계속 발뺌을 했다.

그러나 노동계 측 참석자들은 독자생존이 가능하다면 당초의 노정합의란 관점에서 당분간 독자생존이 보장되어야 하므로 이를 반드시 짚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금감위 이동걸 부위원장은 이렇다할 사실 근거의 뒷받침이 전혀 없이 그저 자신이 보고받은 바에 따르면 조흥이 ‘비실비실한(?)’ 수준에서 독자생존이 가능할 뿐이라며 비아냥대는 식을 발언으로 재경부의 입장을 두둔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재경부 김광림 차관의 말바꾸기이다. 그는 토론회 마무리 발언을 통해 다음 번에 열릴 공자위에서 독자생존 문제를 거론할 의사가 있다고 언급해놓고, 토론회 직후에 가진 기자회견에서는 매각을 기정사실화 한 후, 노조가 일체 거론한 적도 없는 고용보장, 근로조건 개선에 정부가 협력하겠다고 발언했다.

청와대가 나서서 진화해야 할 정도로 사태가 심각해 진 것이 재경부의 약속 불이행에 따른 불신의 벽 때문인데, 이것도 모자라 토론장 안과 밖에서 전혀 다른 얘기를 꺼리김없이 할 수 있는 관료의 태도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왜 정부는 국민이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하지 않나

이렇게 토론회는 썰렁하게 끝났다. 이정우 실장은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많은 토론회라고 자평했다. 그리고 그는 마무리 발언에서 노골적으로 재경부 측의 손을 들지는 않았지만, 국제신인도를 고려할 때 노조가 양보해야 한다는 강한 뉘앙스를 풍겼다.

매번 아쉬우면 국제신인도를 들먹인다는 점에서 지난 정권과 하등의 차이가 없었다. 도대체 긴 호흡으로 국제신인도를 관리하는 책임있는 자세는 일체 보이지 않았다.

한 예로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이 합병한다고 발표했을 때 월스트리트는 이를 크게 환영했다. 그러나 이후 국민은행의 꼴이 어떻게 되었는가. 자산규모를 200조원으로 막대하게 키웠을 뿐, 이를 제대로 운영할 능력이 없어 가계대출 부실, 카드채난의 주범으로 등장하지 않았는가.

이번 토론회 참가를 계기로 필자는 절박한 심정으로 정부 측의 대오각성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정책을 바꿀 수 있다. 그러나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이 뒤따라야 한다. 국익을 위해, 국민경제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 왜 불가피한 조치임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노동자들에게 희생을 요구할 수 있다.

▲ 이찬근 교수
ⓒ 오마이뉴스 권우성
도대체 조흥의 일괄 매각이 국민경제에 어떤 도움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일체의 근거 제시없이 공적자금 회수를 논리랍시고 펼치는 것은 직무유기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정부는 기업의 투자를 재활성화하고 국민들에게 일자리 창출의 희망을 줄 수 있는 금융시스템이 무엇이며, 이를 위해 은행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며, 은행권의 경쟁 구도는 어떻게 설정되어야 한다는 대강의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민주화의 코스트를 최소화할 수 있는 민주화된 정부의 올바른 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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