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1.

현대문명을 지배하는 것은 속도다. 현대사회에서는 빠른 것이 미덕이다. 그래서 승용차와 컴퓨터 그리고 휴대폰은 현대인의 필수품이 된다. 우리는 더 빨리 가기 위하여 승용차를 타고 보다 효율적인 업무처리와 정보수집을 위하여 컴퓨터를 사용하며 언제라도 항상 통화할 수 있도록 휴대폰을 지니고 다닌다. 심지어는 식사조차도 속도의 철학에 설득당하여, 씨리얼과 우유 한 잔으로 후다닥 때우는 아침 식사와 패스트 푸드 식당에서 즉석 메뉴로 때우는 점심 식사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이렇듯 더 빠르고 더 간편한 것을 추구하는 속도의 철학은 현대문명의 눈부신 진보를 가능케 한 원동력이 되기도 하였지만, 그러한 현대문명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의 몸(예컨대 자동차는 인간의 발, 컴퓨터는 인간의 두뇌, 휴대폰은 인간의 귀를 각각 그 기원으로 삼고 있다)은 오히려 퇴보의 길을 걷고 있다. 늘어만 가는 비만 인구와 새로운 질병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쓰러지는 수 많은 병든 육체들은 이러한 사실을 증거한다.

2.

오래 전부터 인간의 몸에 대해 깊은 관심을 기울여온 프랑스의 사회학자 다비드 르 브르통이 <걷기예찬>이라는 책의 출발점으로 삼은 곳도 바로 이 지점에서 멀지 않아 보인다. 그는 인간의 육체가 현대의 발뿌리에 걸리는 장애물이 됨으로써 그 중요성이 점차 감소되면서 인간의 세계관은 축소되고 자아는 상처를 받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처럼 인간의 육체에 대한 폄하와 부정으로 인해 야기된 주체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브르통이 우리에게 제안하는 것이 바로 ‘걷기’이다.

인간의 두 발은 수백만년 전 직립보행을 통하여 급속한 종의 진화를 이루어내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이제는 그 진화의 결과로 말미암아 자동차나 에스컬레이터나 인도 위에 멈춰서 있을 때 신체를 떠받쳐 주는 정도의 역할만을 담당하는 지극히 사소한 존재로 전락해 버렸다. 따라서 걷는다는 것은 잊혀진 우리의 육체를 현실세계로 다시 불러내어 정신(이성)이 아닌 몸(육체)으로 사는 것이다.

두 발로 걸을 때 세계는 우리의 정신을 통하여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온 몸을 통하여 지각된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알게 되는 세계는 훨씬 풍부하고 생생하다. 그래서 저자는 ‘걷기는 세계를 느끼는 관능에로의 초대다’라고 말한다.

한 걸음 한 걸음씩 느린 속도로 길을 걸어갈 때 세계는 그 만큼의 느린 속도로 우리에게 다가오지만 한번 우리 몸 속에 들어온 그 세계는 영원히 우리의 것으로 남는다. 이것은 자동차로 휑하고 지나치는 곳이 오직 그 순간에만 존재할 뿐 더 이상 기억되지 않는 것과 얼마나 대조적인가! 저자의 말처럼 ‘보행은 가없이 넓은 도서관’인 것이다. 그래서 길을 걷는다는 것은 여러 가지 풍경들과 말들 속을 통과하는 것이며, 비록 잊혀진다 하더라도 그 길의 기억은 우리 기억 속에 각인되어 영원히 간직되는 것이다.

텍스트 사이사이에 수록된 아름다운 사진들과 자연스럽게 저자의 사유와 글쓰기에 연결되는 숱한 지성들의 인용글들은 이 책이 씌어진 방식 또한 걷기의 방식임을 잘 보여준다.

감각의 충격물이 훨씬 더 다양하고 극적이며 빠른 속도로 흐르고 있는 도시에서 걷는 것은 보다 복합적이고 적극적인 감각의 개입을 요구한다. 도시의 산책자는 시각과 청각뿐만 아니라 촉각과 후각 및 미각을 동원해야만 한다. 그러나 대체로 도시가 우리에게 가하는 감각적 충격은 우리가 수용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기에 우리에게 고통스러움으로 다가온다.

대낮에도 자극적으로 번쩍거리는 네온사인과 신호등, 온갖 소음들로 넘쳐나서 침묵의 순간을 결코 찾을 수 없는 소란스러움, 생명의 온기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차갑고 비인간적인 인공구조물의 표피, 매연과 악취 또는 과도할 정도의 탈취제와 인공향으로 가득 채워진 공기, 국적없는 패스트 푸드점의 획일화된 미각. 이 모든 것들이 도시의 산책을 방해하는 요인들이다. 이문재 시인이 그의 산책시편에서 ‘도시는 산책의 거대한 묘지’라고 토로한 이유도 아마 여기에 있으리라.

3.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산책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 이문재 시인이 일찍이 간파한 ‘산책만이 두 눈과 귀를 열어준다는 비밀’을 이제 우리는 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예찬>을 통해서 알게 되었기에 두 발을 이제 자동차의 좁은 공간으로부터 해방시켜 길 위에 옮겨놓을 필요가 있다.

일단 길 위에 서게 되면 발은 저절로 움직일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그저 산울림의 김창완이 부른 노래의 가사처럼 ‘그래 걷자, 발길 닿는대로’ 발을 옮겨 놓기만 하면 될 터이다. 그리고 그 산책길에 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예찬>이 함께 한다면 더욱 제격일 것이다.

걷기예찬 - 다비드 르 브르통 산문집

다비드 르브르통 지음, 김화영 옮김, 현대문학(2002)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