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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영섭의 <시네마 싸이콜로지>
저자가 땀으로 빚어낸 자신의 책이 "화장실 변기 위에서 읽혀지기를 바란다"고 한다면 그것을 겸양으로 해석해야 하는가 아니면 오만한 자신감의 다른 표현으로 이해해야 하는가.

저자는 <심영섭의 시네마 싸이콜로지>를 펴내면서 "화장실에 앉아서도 프로이트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가졌다고 한다. 난해한 전문용어나 분석 틀을 기대하는 독자들에게 지레 겁먹지 말라는 저자의 살뜰한 배려일 수 있겠으나, 비틀어보면 화장실에서 프로이트를 이해시키겠다는 저자의 대단한 욕심을 의미하기도 할 터.

김수지라는 본명을 놔두고 굳이 '심리학과 영화를 두루 섭렵한 사람'이라는 의미의 심영섭이라는 필명을 사용하는 저자가 다소 자신감 과잉 상태가 아닌가 싶지만, 이내 '그럴 만도 하군'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화장실 운운하는 저자의 바람이 프로이트와 라캉의 이론을 독자들에게 이해시킴으로써 앎 속에 삶을 대입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해진다.

책을 읽다보면 저자의 발언의 진의가 명확해진다. 앉아있었던 변기의 온기가 채 가시지 않고 남아있는 잠시라도, 풀리지 않고 모호하기만 한 우리들 행동의 연원을 찾아보라는 것.

세상을 스크린 위에 분사한 것이 영화라고 한다면, 영화 속에서 희로애락을 느끼는 인물들 역시 현실을 힘겹게 살아내는 우리들의 자화상일 수 있다. 하여 스크린 밖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과 혼란의 뿌리를 영화 속 그들을 통해 분석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보는 것도 터무니없는 짓은 아닐 것이다.

저자는 영화 텍스트를 갈기갈기 쪼개고 헤집고 해체해서 다시 짜 맞추는 영화평론가가 아니라, 가슴 속에 울분을 품고 사는 현대인들을 격려하고 위로해주는 임상심리학자의 입장에서 얘기를 풀어간다.

가능한 한 쉽고 재미있게 풀되, 일상 생활에서도 유용하고 적용가능 하도록 이해시킨다. 때문에 홀로 골방에서 책장을 넘기는 것이 아니라 마치 그녀와 일대일 면담을 하고 있는 착각에 빠지는 것도 과장은 아니다.

상담 테이블에 오르는 심리학의 주제들은 다채롭다.

가령, 새로운 상대를 찾아 나서는 남성들의 심리를 토니 골드윈 감독의 <썸원 라이크 유>를 통해 '쿨리지 효과'로 풀어내고, 20세기의 히스테리라고 불리는 '거식증'을 정서적 갈등과 어려움을 해결하려는 심리적 기제로 해석하기도 한다.

또한 <파이란>의 강재에게서 '수동 공격성 성격'을 끄집어내, 자신의 분노를 비뚤어진 방법으로 표현하는 성격장애를 고찰하기도 한다. 저자는 분노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라며 분노의 목표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이 관계의 주요한 키워드라고 주장한다. 관계가 종결되는 것은 의사소통의 부재 때문이지 분노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의 행동과 심리의 원형을 찾아 파헤치는, 저자의 펜 끝이 미치지 못하는 금기의 영역은 없는 듯 하다. 내 속에 또 다른 악마인 쌔도에서 자살 감행자들이 보이는 자살신호, 세상을 거꾸로 읽어내는 난독증, 토막 살인범의 심리까지, 저자의 필치는 종횡무진 자유자재이다.
특히 재미있는 점은 아홉 살짜리 아들을 영화감독으로 만들기 위해 갖은 노력을 마다하지 않는 영화평론가 엄마의 분투기.

눈꺼풀이 반쯤 감긴 아이를 <오아시스>를 보여주기 위해, 어두운 영화관으로 끌고 가 결국 2시간 내내 자게 했다거나, 합체 로봇을 사달라는 아이에게 생일선물로 카메라를 사주는 등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보상심리이론을 설명하는 부분은 웃음 없이 넘어갈 수 없는 대목이다. 아들은 '커서 뭐가 되고 싶냐'고 물으면 망설임 없이 '허준'이라고 답하는데, 영화감독 아들을 꿈꾸는 엄마의 소망은 눈물겹기만 하다.

한가지 더 놓칠 수 없는 이 책의 재미!

저자가 주는 생활 속 심리학 지식도 그러하지만, 이 책의 진수는 쉽고 술술 읽히는 글에 곁들인 삽화가 아닌가한다. <조선일보>와 <주간조선>에 연재를 하고 있는 삽화가 서용남의 그림은 심영섭의 유쾌한 글씨기에 조금도 밀리지 않는다. 글을 보완하거나 이해를 돕기 위한 보조수단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완전한 작품의 위치에 서 있다.

원고지 몇 장을 할애해야 하는 주제를 단 하나의 그림으로 압축해 놓은 저자의 발랄한 상상력은 이 책의 묘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머러스하면서도 괴이한 상상력이 직설적으로 표현되면서 심영섭의 글과 나란히 보조를 맞추고 있다. 글과 삽화가 서로 완충해 주는 부분이 적지 않아 머리가 차고, 눈이 즐거운 흔치 않은 경험을 맛볼 수 있다.

심영섭의 시네마 싸이콜로지

심영섭 지음, 다른우리(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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