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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부추, 빠구리, 딸딸이´. 이 세 단어는 제 말의 의미가 타지방사람의 의미와 달라 얼굴이 발개졌던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생각하는 의미가 달라 웃음거리가 된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만, 특히 여기의 세 가지가 기억에 남는데 후배와의 식사를 계기로 다시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오늘 식사에 부추 반찬이 나왔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먹어보는 찬입니다. 혼자 생활인지라 그럭저럭 한끼 때운다는 생각이 커다랗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같은 유학생 처지의 후배를 만나 식사를 하는데 배추, 무, 오이소박이 등과 함께 부추가 나온 것입니다. 부추를 보자마자 피식 웃었습니다. 갑자기 과거의 어떤 사건 아닌 사건이 떠오르더군요.

에피소드 1. 부추

고1 때의 일입니다. 그때까지 저는 '부추'라는 단어는 듣지 못하고 자랐습니다. 적어도 고1 겨울방학까지는. 솔, 그래요. 고향에서는 부추를 솔이라 칭했습니다. 그건 지금도 여전하고요. 그런데 솔이 아니고 부추라는 사실을 고1 겨울방학이 되어서야 알았다는 사실입니다.

고1 겨울방학, 결혼해서 시댁 가족들과 함께 사는 누님 댁에 간 적이 있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일요일이었지요.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하는 도중, 문에서 가까웠던 저를 보며 던진 누님의 한마디, ″가서 부츠(부추) 좀 가져와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말에 저는 ″식사 중에 뜬금없이 무슨 부츠(부추)야?″라며 마음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밖으로 나갔지요.

신발장을 보니 부츠가 가지런히 놓여져 있어 들고 방으로 들어서는데, 모두들 뜨악한 표정으로 저를 보더군요. 숟가락 젓가락을 입에 물거나 손에 든 채로 말입니다. 특히 누님의 얼굴이 많이 일그러지고 있었습니다. 가족의 그러한 반응을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왜요? ″ 그러자 누님이 화난 표정으로 ″야, 신발은 왜 들고 오는데? 부츠(부추) 가져 오랬지 누가 신발 들고 오래?″″그래요 부추(부츠). 이거 아닌가? 부추(부츠) 이것말고 또 있어요?″하면서 다시 나가려고 돌아서려는 순간, 갑자기 자형이 박장대소를 하며 바닥을 구르더군요. 뭔가를 알았다는 표정이었습니다.

시선은 모두 자형에게 향했고, 말은 않아도 뭐냐며 묻고 있는 표정이었습니다. 자형은 한참 뒤에야 웃음을 멈추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처남이 부추는 모를 거야. 고향에서는 솔이라 하던데. (누나를 향해서) 자기는 오래 전에 시골을 떠났으니 부추가 익숙하겠지만 처남은 어디 그런가? 발음도 비슷하잖아. (다시 저를 향하면서) 그래도 어떻게 신발을 생각했을까? 하하하.˝

모두 입을 가리며 배꼽을 잡으며 웃었습니다. 탄로가 난 무식함. 좁은 방에서 하하하 깔깔깔 웃음소리에 귀가 어지러운데 자형은 말을 계속 이어갔습니다.

부추가 표준어이며, 어느 지방에서는 정구지라 한다고 일러주더군요. 그렇게 해서 솔이 부추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 날의 창피함이란…… 그 날 이후 한동안, 조카들에게는 부추(부츠) 삼촌으로 불렸습니다.

후배의 한바탕 웃음과 멋쩍은 저의 모습. 얘기에 열중해 식어버린 국물. 데우기를 부탁하는데 후배가 재미있다며 또 다른 에피소드를 종용했습니다.

에피소드 2. 빠구리

사회 초년생. 햇병아리 시절 어느 날, 점심 무렵이었던가? 남자들만이 사무실에 삼삼오오 둘러앉아 싸온 도시락을 먹으며 도란도란 얘기를 했었지요. 얘기 도중 어떻게 해서 ´빠구리´가 화제에 올랐는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런 류의 얘기로 흐르고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부서의 막내였고 특별히 할 얘기가 없어 묵묵히 듣고만 있었는데 너무 조용해서였을까요? 선배 사원의 얘기가 끝나자 누군가 제게 물어왔습니다.

˝빠구리 해본 적 있어?˝
˝어렸을 적 초등학교 저학년 때, 2번 정도? 빠구리 친 적이 있습니다. 나중에 부모님께 들통나서 된통 혼났지만, 그래도 기분은 소풍가는 날처럼 즐겁던데요.˝
˝초등학교 저학년? 조숙했었나 보네. 초등학교 때 벌써 빠구리를?˝
˝아니 어쩌다가 들통났대? 소문내고 했나? 조심해서 몰래 잘 좀 하지˝

뭐, 이런 얘기가 오간 것 같습니다. 모두들 저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는데 마치 동물원 구경하듯이 재미있어 하는 표정이었지요. 그리고 이어지는 말들.

˝아니, 그 나이에도 기분을 느끼나?˝
˝못느낄 것은 또 어딨어?˝
˝너무 어려서부터 재미붙인 것 아냐? 지금도 가끔씩 하냐? 해도 적당히 해라 뼈 삭는다˝
˝못하죠. 아니 할 수가 없죠. 빠구리치고 마땅히 갈 곳도 없고, 그러다 잘리면 다른 데 입사하기도 힘들 거고...˝

의미가 좀 다른가? 하는 생각이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대화는 자연스러웠습니다. 아마, 이때까지 가만히 듣고만 있던 한 선배의 한마디가 없었다면 저는 어려서부터 방탕한 아이로 낙인찍혔을지도 모릅니다.

˝빠구리와 회사와 무슨 삼각관계냐? 남녀관계를 회사가 어찌 못하지. 남자가 말이야, 걱정 붙들어매고 하고 싶으면 맘껏 해 괜찮아.˝
˝삼각관계요? 빠구리를 틀어요?˝
˝얌마, 그럼 빠구리를 남자랑 트냐? 뭐야 너 혹시?˝
˝아니 서로 맘 맞아서 빠구리 치는데 남녀가 상관없지요.˝

점점 시선이 이상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계속 얘기를 하다가 서로의 의미가 달랐다는 것을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 이상한 시선의 의미를 알고서 ˝하! 그런 의미예요?˝하고 소리질렀습니다. 제가 알고 있었던 빠구리는 학교를 가지 않고 수업을 빼먹는 것이었는데, 선배들에게는 빠구리=섹스의 의미였지요.

점심시간은 끝났지만, 전 한동안 연신 터지는 실없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에피소드 3. ´딸딸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어느 날, 새로운 얼굴이 한 사람 들어왔습니다. 복장 관련 얘기 중, 신발 때문에 ´딸딸이´가 화제에 올랐던 일입니다.

슬리퍼가 편한데 새로 들어온 그 친구, 운동화를 신고 왔었지요. 불편해 보였는지 멤버 중 한 사람이 한마디를 합니다.

˝딸딸이가 편해.˝
˝급히 오는 바람에 준비 못했는데, 파는 곳이 어디야?˝

듣고 있던 저는 의아해서 하던 일을 잠깐 중지하고 얘기에 끼었습니다.

˝딸딸이를 어디서 파는데?˝
˝왜? 근처 가게에서 팔고 있어요.˝
˝그래? 근데 무거운 딸딸이를 어떻게 옮기려고. 엘리베이터도 이용하지 못할텐데.˝
˝아니 딸딸이 신었다고 일하는 사람들 엘리베이터 이용을 못해요?˝

머릿속에서 물음표가 떠돌아다닙니다.

˝천하장사도 아니고, 그 무겁고 큰 걸 어떻게 신는데?˝
˝무겁긴 뭐가 무거워요. 고무라서 몇 그램 나가지도 않은데.˝
˝고무? 요샌 딸딸이를 고무로 만들어? 대단하네.˝
˝그렇다 치고, 바퀴 달린 걸 신고서 어떻게 걸어다닐 건데.˝
˝바퀴요? 지금 무슨 잠꼬대 해요?˝

한심한 듯 저를 바라보더군요.

˝참, 형이 신은 딸딸이에 바퀴 있어요?˝
˝뭐, 내가 신은 딸딸이?˝ ˝(내려다보고) 그럼 이 슬리퍼가 딸딸이…?˝

그때, 그가 말한 딸딸이의 의미를 알았습니다. 싱거운 웃음이 터졌습니다. 선로 보수공사를 위해 여러 장비나 재료를 싣고 다니는 차를 딸딸이라 했었는데…. 기찻길이 있는 동네에 산다면 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휴식시간을 이용해서 계속 얘기를 하다보니, 여러 가지 의미로 쓰고 있었습니다. 위에서 말한 차 외에, 경운기를 칭하기도 하고, 딸을 연이어 생산(?)한 아빠를 칭하기도 하고 그리고 뭐 다른 뜻으로도 쓰이고요. 그 다른 뜻은 그냥 상상으로 맡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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