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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밤

“하나님 아버지, 특별히 내일부터는 사격훈련이 예정되어 있사옵니다. 어렵고 위험한 훈련이오나, 그 훈련 과정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털끝하나 상하지 않도록 지켜주실 줄 믿사옵니다…”

신학대학 출신이라는 어느 동기가 대표기도를 하는 동안, 둘러싼 열 댓 명의 동기들은 마디마다 ‘아멘, 아멘’하며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입대 후 한 이 주일 동안 정신없이 기고 구르고 하긴 했지만, 정작 직접 총을 쏘아본 것은 삼주 째 되는 월요일이 처음이었다. 사격 훈련이 시작되기 바로 전 날 저녁예배를 마친 교회 뒤꼍에서 우리 동기들은 잠시 따로 모여 서서 기도를 드렸었다. 정말 오랜만에 따뜻한 분위기를 느낀 감격 때문인지, 아니면 남겨진 일정에 대한 긴장 때문인지 이따금 눈물 섞인 목소리까지 섞여 나오며 숙연했던 기도회의 짧은 시간은 흘러가버렸다. 사격은 정작 군인들에게도 긴장되는 일정이다.

사실 나는 크게 긴장하는 쪽은 아니었다. 우선 다른 동기들에 비해 운동신경은 좀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던 데다가, 양쪽 눈 1.5인 시력도 스스로 든든했다. 밖에서 총을 잡아본 적은 없었지만, 기회가 된다면 사격을 취미로 삼아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내심 사격훈련날을 마음속으로 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첫날

다음 날, 우리는 서둘러 아침식사를 마치고 사격장까지 행군을 시작했다. 사격장은 훈련소 막사에서 8km 떨어진 곳에 있었다. 걸어서 두 시간이 걸리는 거리였기 때문에 해 안으로 훈련을 마무리하려면 서둘러야 했다.

고작 두 주일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갇혀있던 담장 밖 세상 풍경을 구경하는 것은 꽤 즐거운 일이었다. 지나는 농부들도, 늦은 등굣길을 재촉하는 꼬마녀석들도 반가웠고, 인적이 드문 길에서는 길바닥에 구르는 음료수 깡통 하나도 흥겨웠다. 그리고 교관이 미처 감시할 수 없을 만큼 길게 늘어선 대열 속에서 앞뒤 동기들과 오랜만에 잡담을 나누는 것도 즐거웠다.

그러나 비포장길 8km는 결코 짧은 거리가 아니다. 부대 문을 나서 만나는 도로와 논밭 길과 징검다리, 그리고 과수원 샛길과 자갈길이 재미는 있었지만 발바닥에는 고역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 이주일간 맞지 않는 군화를 신고 행진과 구보를 해댄 덕에 짓무른 발바닥은 여기저기 물집이 잡혀 터지기 시작했고, 사격장에 도착할 무렵엔 이미 절룩거리는 사람도 제법 생겨나고 있었다.

이론 교육은 길지 않았다. 교관은 이삼십 분 남짓 설명을 하더니 목표를 빨리 달성한 사람에게는 그만큼의 휴식시간을 부여하겠노라는 약속으로 강의를 마무리했다. 물론 목표한 수준을 달성하지 못하면 그만큼 힘겨운 과정이 부여될 것이라는 협박도 살짝 얹혔다. 그리고 곧장 조별로 사격실습이 시작되었다. 사격이라는 것이 그렇다. 이론적으로 습득해야 하는 부분보다는, 자기 긴장을 다스리고 호흡을 다듬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 영점표적지
ⓒ 김은식
영점사격이란 기본적인 조준과 격발의 안정성을 시험하고, 그것을 통해 사수의 신체적 특성과 총기의 제원을 일체화하기 위한 사격과정이다. 그 과정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25미터 거리에서 세 발을 쏘아서 그 세 발 모두를 지름 2.5센티미터의 원 안에 집중시켜야 한다. 주어진 총알은 열 다섯 개. 그러니까 모두 다섯 번의 시도를 통해 원 안으로 집중을 시키게 되면 영점사격에 성공을 한 것으로 인정하게 된다.

그런데 이십 오미터라는 거리는 생각보다 멀었다. 직접 표적지를 붙이고 돌아와 사로에 엎드리는 그 순간부터 사격장에는 낮은 웅성거림이 깔리고 있었다. 이십 오 미터 앞에 붙어있는 종이 속 2.5센티미터의 표적은 내 눈에도 거의 알아보기 어려운 상태였기 때문이다. 바로 옆 사로에 엎드린 안경잡이도 눈을 비비고 안경을 닦고 하며 난감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래도 나는 자신이 있었다. 물론 내 눈에도 표적은 정확히 보이지 않았지만 내가 이렇게 어려울 정도면 남들은 어떻겠나 하는 생각에 나름대로 느긋했던 것이다. 등수를 매겨서 상대평가를 하는 과정이 전혀 아닌데도, 나는 나름대로 다른 사람들의 실패를 믿으며 마음을 다스렸다. 그것은 중간 이상만 하면 큰 낭패 볼 일이 없었다는 경험의 결론이기도 했고, 동시에 어디를 가든지 중간 이하로는 떨어지지 않는다는 막연한 자만심이기도 했다.

“사수 총 들어. 조정간 단발. 준비된 사수로부터… 사격!”
‘따다다당, 땅, 땅’
마치 쇠망치로 두개골 속 어딘가 아주 예민한 곳을 때리는 것 같은 진동이 느껴졌다. 마치 편두통의 느낌처럼 아주 불쾌한 총성의 감각. 내가 당긴 것은 세 번이었지만, 열 여덟 개의 사로에서 각자의 호흡에 따라 당겨진 방아쇠는 각기 다른 진동의 파열음으로 돌아와 내 귓속에서 메아리쳤다.

“사수 총 내리고, 일어 서. 표적지 확인…”
다시 스피커로 울리는 교관의 명령에 따라 걸어 나가 표적지를 확인했다. 고작 세발 씩, 기껏해야 수십 발이 격발되었을 뿐인데도 사선과 표적지 사이 이십오미터의 공간에는 매캐한 화약연기가 가득했다. 얼굴을 찡그리며 들여다본 표적지에는 세 개의 구멍이 가지런히 모여 있긴 했지만, 아쉽게도 조준했던 원 안은 아니었다.

“사격 비교적 잘하는구만, 탄착군 형성은 잘 됐어. 총기가 사수의 몸과 정확히 안 맞아서 그런 거니까, 크리크를 말이야 … 좌로 다섯, 위로 셋 정도만 조정해 봐.”“예, 알겠습니다.”

반갑지 않게 옆으로 따라붙어 잔소리하는 교관 말대로 그리 나쁘지 않는 첫 세발이었다. 운 좋게도 첫 세 발로 영점사격이라는 하루의 과제를 마친 녀석들도 두어 녀석이 있긴 했지만, 대개는 호흡조절실패라느니, 집중력 부족이라느니 하는 질책을 받으며 머리를 한대 씩 쥐어 박히고 있었으니 나로서는 보다 자신감을 가질만한 출발이었다. 교관의 약속대로 첫 세발에 목표달성을 하고는 나무 아래 그늘에 누운 녀석들을 넘겨다보며, 곧 그 옆자리는 나의 것이 될 거라고 나는 확신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결국 그 날 하루 종일 그 조그만 원 안에 세 발을 집중시키지 못했다.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정도 지나면서 이미 백 이십여명의 동기들 중 절반 이상은 성공을 하고 그늘 밑으로 기어들고 있었지만, 내 표적지는 이상하게 난잡해지기만 했다. 심지어 네 번째 사격 때는 표적지에서 구멍을 두 개 밖에 찾을 수 없었을 정도였다. 도대체 한 발은 이 넓은 표적지 밖 어디로 날아간 것일까. 마음속에서는 자신감이 조금씩 허물어졌다.

최소한의 합격과 불합격을 가름하는 5차 시도. 비장한 각오로 사선에 엎드린 내 얼굴로는 땀방울이 쉴 새 없이 굴러들었고, 그 때문인지 따끔따끔한 눈은 자꾸 흐려져 제대로 표적을 가늠할 수 없었다. 그리고 호흡을 멈추고 땀방울을 훔쳐낼 때마다 이제는 더 이상 저 표적에 내 총알을 꽂을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도 거의 씻겨 내려갔다. 호흡은 자연히 거칠어져 눈에 들어오는 표적지는 오르락내리락 했다.

‘땅, 땅, 땅’세 발을 몰아서 당긴 다음 표적 앞으로 걸어가면서, 나는 태어나서 가장 간절한 기도를 올렸었다. 기적처럼, 기적처럼 성공한 표적지를 만날 수만 있다면….

그러나 여지없이 표적지는 위아래로 산만하게 뚫려있었고, 교관도 고개를 가로저으며 내 표적지에 붉은 글씨로 굵게 ‘不 ’자를 그려 넣었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실패한 것이 대략 이십여 명이었다. 그 이십 명은 곧장 사선 밖 자갈밭으로 따로 모아졌다. 고개만 들면 백 여 명이나 되는 동기들이 탄띠 풀어놓고 물을 나눠 마시는 풍경이 신기루처럼 펼쳐진 그늘이 보이는 곳이었다.

“너희들이 허공으로 날려버린 총알 한 개의 값은 대략 오백원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국가를 보위하라는 국민들의 기대가 담긴 피 같은 세금이야. 값을 따질 수가 없어. 지금부터는 너희들이 날려버린 국민의 세금과, 기대를 너희 땀으로 보상할 수 있도록 한다. 전원 탄약고 좌에서 우로 돌아서 선착순 한 명!”

교관은 뭔가 알아들을 듯 말듯 한 훈시 한마디를 날리더니 곧장 고함을 질렀고, 주먹을 쥐고 엎드린 채 부들부들 떨고 있던 우리는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달렸다. 탄약고까지 십여 미터를 왕복하는 달리기에서 이십 여 명 중에서 일등으로 들어온 한 사람은 다시 주먹을 쥐고 엎드리는 ‘편한’자세를 취할 수 있었고, 나머지는 다시 일등, 일등씩을 추려내며 이십 여 번의 선착순을 해야 했다.

그리고 마지막 두 사람의 달리기가 끝나는 순간부터 다시 전원은 ‘엎드려 쏴’와 ‘서서 쏴’ 자세를 반복해야 했고, 다시 ‘엎드려 쏴’자세로 기어서 전진하기도 했었다.

그 혼미한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흘린 땀으로 치자면, 내가 날려버린 열 다섯 발 총알의 값을 몇 곱절은 했을 어느 순간, 문득 해가 지고 있었고 그 날의 ‘교육’도 마무리 되었다. 우리는 저마다 흙먼지 속 어딘가에 떨어져 뒹굴고 있는 탄띠와 수통 따위를 수습해 챙겨 매고는 곧장 복귀행군길에 올라야 했다.

누가 그렇게 챙겨볼 수는 없었겠지만, 꽤 뿌듯한 휴식의 시간을 가진 백여 명과 오히려 정신 쑥 나가게 기고 구른 이십 여 명의 표정은 뚜렷이 구분되고 있었을 것이다. 그 하루는 그렇게 지나갔다.

둘째 날

다음 날의 과제는 실거리 사격이었다. 250미터에서 100미터까지 다양한 거리에 표적을 세워 놓고 사격을 하는 ‘실전’사격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영점사격을 통과한 사람들만의 과제일 뿐, 우리 불합격자들은 다시 영점사격장 사선에 서야 했다.

기회가 거듭 주어진다고 해서 성공의 확률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매 번의 실패에서 교훈을 찾는 대신 오히려 자신감만 잃어가고 있던 나의 경우에는 성공의 확률이 점점 희박해지고 있었다. 나는 다시 열다섯 발의 총알을 받았지만 또다시 실패했고, 추가로 받은 아홉 발마저도 그 날 오전 내내 허공에 쏘아올리고 말았다. 그 때까지도 내 곁에 서있던 동기들은 대략 십여 명이었다.

뒤늦게나마 성공한 십여 명을 실거리사격장으로 이동시킨 다음, 귀찮고 한심해 죽겠다는 듯이 우리를 한참이나 쳐다보던 교관은 우리를 걷어차듯 이동총기정비차량으로 보내고는 느릿느릿 그늘 밑으로 가서 담배 한 대를 피워 물었다. 혹시 총기에 이상이 있는 것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성적이라는 표정이었다.

박스차량 안에 앉아있던 배가 남산만한 상사 한 사람이 우리를 맞았다. 내가 제일 먼저 총을 내밀었고 이리저리 들여다보고 총열 안을 무슨 봉으로 쑤셔대던 그 사람은 쓱쓱 총을 해체하더니 총열을 쑥 뽑아내 상자 안으로 던져버렸다. 그리고 다른 케이스 하나를 개봉하더니, 그 안에 있던 걸로 바꾸어 넣고는 다시 조립을 해서 내 손에 들려주었다.

“총에… 문제가 있습니까?”
“총열이 확장됐어. 이런 훈련용 총기는 워낙 격발을 많이 하니깐… 이렇게 되면 총알이 사방 지 맘대로 날지.”
다른 사람하고 얘기하듯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한 마디를 씹어뱉고는, 그 상사는 다음 사람의 총기를 만졌다. 그 열 사람 중에서 총기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 서너 명이었다. 그리고 그 중에 내 총이 가장 심각했다.

그랬다. 내가 쏘아 보낸 총알이 그 널찍한 표적지 안으로도 들어가지 못했던 것은 나만의 잘못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것은 진작 망가진 총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어제 오늘 내가 혼절하기 직전까지 뛰고 기고 구른 것은 누가 보상하며, 별 것 아니라고는 해도 내 교육성적은 어떻게 되는 것이며, 특히 난생 처음 ‘지진아’로 전락하면서 망가진 자존심은 무엇이 되는 것인가. 머릿속이 오히려 더 복잡해졌다.

총기 점검을 마친 다음 마지막으로 사선에 섰다. 교관은 최후통첩을 하듯 훈시를 던졌다.

“너희들은 아주 나쁜 놈들이다. 남들보다 총알을 서너 배씩이나 쏘고도 영점을 못 잡은 놈들이야. 정신상태가 해이하고, 노력도 부족한 놈들이야. 그래, 안 그래?”
“그렇습니다.”
“내가 지금부터 너희들에게 마지막 기회를 준다. 각자 아홉 발씩 들고 사선에 가서 사격을 하는데, 이 세 번의 기회에 영점을 잡는 사람은 최소점수를 줄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빵점이다. 그리고 사격이 빵점이면 퇴교야 퇴교. 알았냐?”

남들보다 노력이 부족하다는 말까지는 어쨌거나 그냥 듣고 ‘그렇습니다’라고 목청껏 대답까지 했지만, 퇴교라는 구체적인 조치까지 들먹이는 상황인지라 나도 듣고만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교관님, 질문 있습니다.”
“뭐야?”
나름대로 심각하게 훈시를 늘어놓고 있는데 끼어드는 훈련생 모습이 황당했을 것이다. 교관의 한쪽 눈썹이 연극적이라고 느껴질 지경으로 치켜 올라갔다.

“저는 총기점검 결과 총열이 많이 확장되어있다는 진단을 받고 총열을 교체했습니다. 따라서 조금 전까지의 사격 결과는 저의 책임은 아닌데, 지금 쏘는 것을 첫 발로 계산해야 하지 않습니까?”

내 딴에는 그동안 부당하게 받은 ‘추가교육’의 고생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나마‘남들 서너 배나 쏘고서도 안되더라’는 오명만은 벗어보겠다는 소박한 희망이랍시고 떠든 것이었다. 그러나 듣는 사람의 입장을, 그것도 한심하고 귀찮은 훈련생을 굽어보고 있는 소령 계급장의 사격장 책임교관의 입장을 좀더 세밀하게 생각했다면 감히 꺼낼 수 없는 말이었다.

“너 이름이 뭐야?”
“김은식입니다.”
“김은식. 야 김은식. 그 총 누구 거야?”
“제 겁니다.”
“그럼 그 총 관리 책임자는 누구야?”
“접니다.”
“그럼 총기 고장 나서 사격 못한 건 누구 책임이야?”
“…”
“말해봐. 누구 책임이야!”

이 주일 동안 역기삼아 메고 걷고 뛰기는 했지만, 난생 처음 쏘아보는 총 상태까지 알고 있지 못한 죄로 결국 나는 모든 것을 감수해야만 했다.

결국 그 마지막 사격에서 나는 여섯 발 만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낙제점 위의 최소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그 날도 마지막까지 실패한 대여섯 사람이 있었지만 그들도 결국 퇴교를 당하지는 않았다. 대신 그 뒤 두 주를 지내고 남들 모두 외박을 받아 집으로 출발하던 날 그들은 사격장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나중에 다들 친해지고서야 들은 이야기지만, 첫 날 사격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막사에서 죽을 지경으로 피곤한 몸에도 잠이 찾아오지 않은 것은 나 하나가 아니었다. 두려움과 수치심과, 또 감당할 수 없는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 때문에 하얗게 새운 훈련소의 그 밤 내내 떠오르는 것은 표적지요, 환청으로 울리는 것은 총성이었다. 차라리 모두가 함께 기합을 받던 순간 같이 씹어뱉던 불평과 욕설의 연대감마저 수치심과 열등감에 자리를 내주었던 그 지옥 같은 이틀을 함께 나눈 끈끈한 연대감으로 우리는 꽤 친해졌고, 영점사격에서 ‘영(0)점’을 받은 사람들끼리 ‘영점회’라는 친목모임 하나 만들자는 농담도 주고받았었다.

군대에서 흔히 말하기를 ‘딱 중간만’ 하는 것이 좋다고들 한다. 너무 앞에 나서지도 말고, 너무 뒤쳐지지도 말고 딱 중간만. ‘최소한 중간은 가야 한다’는 바깥 세상의 주문보다는 오히려 덜 잔인한 기준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것이 얼마나 묵직한 이야기인지 나는 그 날 실감을 했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중간’만 하라는 것은, 돈이나 배경 따위를 사상(捨象)하고 보았을 때 가장 막강한 권력이란 ‘공감’에서 나옴을 말하는 것이다. 더구나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서열화하고 비교하여 기준 이상과 이하를 구분하는 사회에서, 그 위치에 따라 사람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얼마나 명확하게 갈리고 자기화와 대상화가 되는지를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많은 사람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그 ‘중간’에 미치지 못하는 지진아들에 대한 멸시와 비웃음이 얼마나 단단한 것인가를 귀띔하는 말일 것이다.

어쨌거나 태어나서 처음으로 중간은커녕 최소한의 기준에도 미치지 못해 너덜거렸던 이틀간, 그 눈을 감아도 표적지만 아른거리던 숨 막히는 열등감의 시간은 그 ‘중간’에 눌린 사람의 비참함을 이해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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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관한 여러가지 글을 쓰고 있다.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맛있는 추억'을 책으로 엮은 <맛있는 추억>(자인)을 비롯해서 청소년용 전기인 <장기려, 우리 곁에 살다 간 성자>, 80,90년대 프로야구 스타들의 이야기 <야구의 추억>등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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