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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5월 10일, 89년 5월 3일 행적을 마지막으로 5월 10일 광주시 청옥동 제4수원지 시신 발견. 178일간의 전국민적 '사인진상 투쟁', 2001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진상조사 시작, 2002년 9월 30일 의문사규명위 '조사불능' 결정. 이렇게 14년이 흘렀다.

▲ 추모식이 진행되는 동안 아들의 영정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열사의 어머니
ⓒ 오마이뉴스 강성관
6일 '아직'까지 대표적인 의문사 중 하나로 기록되고 있는 이철규 열사의 14주기 추도식이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구묘역)에서 이철규 열사의 선후배, 유가족, 유가협 소속 부모 등 1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2001년 추모식에서 이철규 열사의 어머니 황정자(69)씨는 "내년에는 어떻게 죽었는지나 알고 '제사' 지낼 수 있것제"라는 바람으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에 많은 기대를 가졌지만 그 바람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이날 '이철규열사 추모사업회(이하 추모사업회)' 문병란 회장은 추도사에서 "해마다 진상규명을 바랐지만 이렇게 14년이 되었다"면서 "이 자리에 서면 해마다 아픔과 슬픔이 더해가고 어찌할 수 없는 무기력을 느낀다"고 소회했다. 이어 "여전히 의문사로, 익사로 결론돼 있다"며 "미리 정해진 결과라고 생각하지만 진상규명위에서 진상을 밝히지 못했다"고 말했다.

"지금의 특별법으로는 진상규명 힘들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조찬배 호남지회장은 "항상 의문사 유가족들을 보면 가슴이 미어진다"며 "의문사특별법이 개정됐지만 의문사진상위 권한강화 없이 기간만 연장해서 진상을 밝히기 어렵다"며 특별법의 한계를 지적했다. 또 "의문사야말로 양심선언이 없다면 밝혀지지 않을 것 같다"면서 "양심선언이 있다면 의문사라는 단어가 없어질 것"이라고 타살 의혹 관련자들의 양심선언을 호소했다.

이철규 열사의 어머니 황정자씨는 "할말이 없다"고 말문을 떼고는 "법 개정이 잘되기를 바란다, 수사권이 있어야 하는데 이대로 가면 (진상규명)안되는데…"라고 말문을 이어가지 못한 채 눈시울을 붉혔다. 황씨는 "이렇게 비가 오는 날씨에도 많은 분들이 와줘서 감사합니다"라는 말로 인사말을 끝맺고 연신 이철규 열사의 묘비와 사진 등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 "내년에는 진상이 규명돼서 제사를 지내야 할 것인디"라며 헌화하는 열사의 어머니
ⓒ 오마이뉴스 강성관
이날 의문사진상규명 활동보고에 나선 '추모사업회 진상규명대책위원회' 박열(조선대 교수) 위원장은 의문사특별법의 한계를 지적하고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박 위원장은 "총 20개월 동안 조사를 진행해 이철규 열사 사망 이전의 민주화운동 관련성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했으나 죽음이 위법한 공권력의 직간접적인 행사에 의한 것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조사불능이라는 결정이 내려졌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의문사진상위의 조사 기간 종료 후 국회의사당 앞에서의 노숙농성으로 특별법이 개정되었다"며 "그러나 미약한 조사권한, 한정적 조사기간, 약한 처벌규정 등 특별법 자체가 갖는 한계를 너무나 많이 안고있다"고 지적했다.

박 위원장은 "의문의 죽임이 갖는 특성상 실질적으로 사인의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사건 관련자의 양심선언이나 목격자의 제보가 사건 해결의 결정적 요소가 될 것"이라며 "정보기관내 내부 협조자 또는 양심 선언자를 찾아내거나 발굴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 할 것이다"고 밝혔다. 또 "지금의 특별법을 가지고는 위원회가 사인을 명명백백하게 밝혀내기는 힘들 것이다"면서 "위원회의 조사권한을 강화하고 벌칙조항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정시켜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추모사업회는 지난 2001년 진상규명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89년 당시 이철규 열사가 보안수사대에 연행되었다는 결정적 제보를 한 바 있는 '대전 아저씨'를 찾기 위해 5개월여 동안 대전에 사람을 보냈으나 성과가 없었다.

추모사업회 안현철 사무국장은 "의문사진상위를 통해 정보기관의 자료제출 요구 및 관련자 소환조사를 시도했으나 관계기관은 '해당 자료없음'이라고 회신하면서 비협조, 자료제출 거부로 일관하고 있다"면서 "특별법 개정과 함께 결정적 제보자를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 열사의 선후배들이 헌화와 함께 묵념을 하고있다
ⓒ 오마이뉴스 강성관
이철규 열사는 지난 1989년 조선대학교 민주조선 교지편집위원회 편집장 시절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배를 받고 있던 중 1989년 5월 3일 행적을 마지막으로 5월 10일 광주시 청옥동 제4수원지에서 참혹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사인을 '익사'로 단정 발표하고 검찰은 사체부검 결과를 토대로 '실족 익사한 것'으로 수사를 종결했다. 이에 대해 학생들과 사회단체 인사들을 중심으로 '애국학생 고 이철규고문살인진상규명범국민위원회'가 발족해, 사인 진상규명과 노태우 정권 퇴진 운동을 전개했으나 타살 의혹을 밝히지 못하고 89년 11월 4일 망월동 묘역에 안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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