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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대표 조정희(왼쪽) 이경순씨가 삭발을 하면서까지 증권과 선물통합 저지 의지를 보였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부산이 다시 들끓고 있다. 낙동강 위천공단 건립반대운동과 삼성자동차 설립 투쟁 때처럼, 부산경제 살리기를 위해 진보와 보수인사, 시민단체까지 나섰다. 최근 정부에서 증권시장 통합 정책을 발표하면서 부산에 본사를 두고 있는 한국선물거래소를 증권거래소 등과 함께 묶어 지주회사로 통합하려고 하자 이를 저지하고 나선 것.

부산지역 90여개 시민사회단체들이 참여한 '선물시장통합 결사저지 범시민투쟁위원회'에는 '참여자치시민연대'를 비롯해 자유총연맹 등 보수단체들까지 망라돼 있다. 19일 오후 부산역광장에서 열린 대규모 집회에는 한나라당 의원들뿐만 아니라 지난 대선 때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섰던 조성래 변호사까지 모습을 나타냈다.

이날 집회에서 부산사람들은 정부의 이번 증권시장 통합정책과 관련, "현 정권은 법도 지키지 않을 정권", "대선 공약도 지키지 않을 대통령"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들은 "알맹이는 서울로 빼가고 껍데기만 부산에 남겨둔다"거나 "지방분권에 역행하는 처사"라는 극단적인 표현까지 써가면서 힘을 결집시켰다.

▲ 투쟁위원회에는 부산지역 9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선물거래소 99년 설립, 법에 2004년 '주가지수선물' 완전이관 규정

한국선물거래소 관련 경과

- 95년12월 : 선물거래법 제정
- 96년 5월 : 주가지수선물 상장
- 96년 7월 : 주가지주옵션 상장
- 99년 4월 : 한국선물거래소 설립
- 00년12월 : 선물거래법 시행령 개정
- 02년12월 : 선물시장 이관 합의서명
- 03년 1월 : 재경부 시장 이관발표
- 03년 3월 : 정부, 지주회사방식 발표
- 03년 4월 : 부산범시민투쟁위 결성
[증권시장 통합정책] 한국선물거래소는 1995년 관련법이 제정되었고, 96년과 97년 주가지수(코스피200)선물과 옵션이 각각 상장되었다. 미국달러선물과 CD금리선물, 금선물, 미국달러옵션 등으로 해서 1999년 부산에 본사를 두고 개장했다. 그러다가 2000년 12월 선물거래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주가지수선물을 2004년 선물거래소로 완전이관하기로 정해 놓았다.

그동안 정부는 "2004년 선물시장 일원화를 법대로 시행하고, 이와 별개로 시장체제 개편 논의를 진행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말 재경부는 이와 별도로 증권거래소와 선물거래소를 포함한 전반적인 시장 체제 개편방안을 계획했다. 그러면서 내놓은 것이 '증권시장 통합'이다. 현재 증권과 관련한 기관으로는 증권거래소와 선물거래소, 코스닥증권, 증권업협회, 선물협회, 증권전산, 증권예탁원 등이 있다.

정부 방침은 이들 기관을 하나의 지주회사인 '한국거래소'를 두고, 그 아래에 '증권거래'와 '코스닥거래' '선물거래'를 하는 자회사를 둔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청산과 결제, 예탁이나 전산회사는 별도로 둔다는 것. 이런 증권시장 통합정책은 장점도 있는 반면, 단점도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외국의 경우, 증권시장을 통합한 나라가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나라도 있다. 홍콩이나 싱가포르는 통합한 쪽이며, 미국이나 영국 일본은 통합하지 않았다.

한국선물거래소는 99년 설립되었지만, 그동안 세계적 속에서도 지속적은 성장을 거듭해 현재 세계 18위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선물거래소는 국제적으로 선물시장이 중요하고, 독자 발전의 필요성이 거듭 나오고 있다. '금융시스템의 경쟁력 제고'와 '발전 가능성이 큰 선물산업과 선물시장의 전문 육성' 등이 필요하다는 것.

새 정부의 재경부가 풀어야 할 과제 가운데 증권시장 통합 여부 문제가 가장 시급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법에서는 주가지수선물을 2004년 1월 1일자로 선물거래소로 이관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준비해야할 사항이 많다. 증권시장을 통합하는 게 과연 바람직한지, 통합하는 게 국제경쟁력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찬반 입장이 맞서고 있다.

▲ 여성대표들이 삭발식을 하는 동안 궐기대회에 참석했던 노인들이 울고 있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노 대통령 대선 공약... 당선자 시설 지방분권 토론회에서도 약속"

[노무현 대통령 입장]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와 당선 이후에도 이에 관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대선 기간에 민주당과 한나라당 민주노동당 후보들은 "주가지수선물·옵션의 선물거래소 이관"을 모두 약속했다. 각 당의 부산선대본부는 서약까지 하기도 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은 당선 뒤, 1월 29일 부산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지방분권 관련 토론회에 참석해서도 이에 대한 입장을 밝히면서, 다시 한번 더 약속했다. 노 대통령은 당시 "주가지수선물·옵션(코스피200)의 선물거래소 이관은 약속대로 하겠다"고 했던 것.

당시 노 대통령은 "시스템 통합이 선물거래소를 도로 빼앗아 가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도 있을 수 있으나 그것은 불신 때문인 만큼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며 시스템 통합과 시장 통합은 별개의 문제임을 분명히 했다.

노 대통령은 또 "부산을 금융중심도시로 만들겠다"면서, "부산이 요구하는 것은 금융산업이 동남권 중추관리도시로서 제 몫을 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으로 이해한다. 작은 싸움에 매달리지 않고 크게 가면 재임 5년 동안은 밀어드리겠다"는 말까지 했다.

▲ 19일 오후 부산역 광장에서는 시민 5000여명이 모여 궐기대회를 가졌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90여개 시민사회단체, 5000여명 모여 부산역에서 궐기대회

[부산지역의 거센 반발] 부산지역 90여 개 시민사회단체는 4월 10일 부산상공회의소에서 '선물시장통합 결사저지 범시민투쟁위원회'를 결성했다. 이후부터 부산상공회의소에서는 매일 대표단의 농성이 열리고 있으며, 일반인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선물학교'를 여는 등 갖가지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 여성 대표 조정희(왼쪽) 이경순씨가 삭발식을 하고 있다(위 사진). 부산주부클럽 조정희 회장이 '대통령께 드리를 글'을 읽고 있다(아래 사진).
ⓒ 오마이뉴스 윤성효
4월 19일 오후 부산역광장에서는 대규모의 시민궐기대회가 열렸다. 5000여 명의 시민들이 어깨띠와 피켓, 펼침막(현수막)을 들고 나왔다. 정치인 뿐만 아니라 머리가 하얀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나와 목청을 돋구었다.

이날 궐기대회는 "부산갈매기" 등의 노래를 부르는 속에 열렸고, 여성대표로 조정희(대한주부클럽 부산지부장) 이경순(영광문고 대표)씨가 삭발을 하기도 했다. 선물거래소 노조원 30여 명이 함께 삭발식이 거행되었는데,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이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이날 궐기대회에서는 "노무현 대통령께 드리는 글"이 낭독되었다. 시민들은 "법적사항인 주가지수선물 이관은 5년간 끌어온 문제로 이제 부산시민의 인내는 막다른 곳까지 왔다"면서, "이관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물과 증권을 지주회사 형태로 통합시키는 방침을 결정했는데, 이것은 사리에 크게 벗어난 것으로서 부산시민들로서는 정말 감내할 수 없는 일"이라 밝혔다.

또 시민들은 "주가지수가 이관되어도 잘 운영될 만큼 이제 부산도 실력을 갖추었는데 일부 학자들과 경제관료가 야합해서 사실을 왜곡시키면서 대통령의 뜻과 약속을 거스르고 있다고 부산시민들은 보고 있다"면서, "선물 문제는 법대로 하는 것이 순리"라고,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이날 '선물시장통합결사저지 범시민 투쟁위원회'는 "정부의 시장통합정책이 철회될 때까지 시민은 분연히 일어나 대정부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과 "나라의 백년 대계인 선물제도를 농단한 정부 당국자와 어용학자들의 범죄적 작태에 대한 책임을 묻고 인적 청산할 것" "부산 선물시장을 오늘과 같이 혼돈 속에 이르게 한 인사들은 즉각 퇴진할 것" 등을 골자로 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집회에 참가한 부산시민 5000여 명은 이날 오후 3시30분경 부산역을 출발, 남포동 PIFF광장까지 거래행진을 벌였다.

▲ 부산 출신의 한나라당 의원들이 궐기대회에 참석해 소개를 받기도 했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한나라당 의원들 "법대로, 대선 공약대로 하면 된다" 요구

[정치권으로 확산] 증권시장 통합문제는 이제 정치권으로 비화하고 있다. 부산 출신 한나라당 의원들이 증권시장 통합저지 투쟁에 적극 나서면서, 정부에 대해 비난의 화살을 퍼붓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다가는 내년 총선에서 부산에서 민주당은 발도 못 붙인다는 기세다. 19일 부산역 광장에서 열린 집회에 권철현 박종웅 엄호성 서병수 허태열 의원이 나와 힘을 보태기도 했다.

하루 앞서 한나라당 의원들은 18일 연찬회를 열고 증권시장 통합저지 투쟁에 적극 참여하기로 결의했다. 연찬회에서 의원들은 "정부의 시장체제 개편안이 허구적이고 문제점이 많다"면서, "주가지수선물을 완전이관하고 증권·선물시장 통합을 저지하는데 시민단체와 공동투쟁해 나간다"고 밝혔다.

19일 부산역 광장 집회에 참석한 의원들은 연설은 하지 않고, 단상에서 소개만 받았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증권시장 통합에 대해 한결같이 "안된다"는 반응을 내놨다.

권철현 의원은 "정부가 법대로 하면 된다. 그리고 대통령 공약대로 하면 된다. 다른 말은 할 필요가 없다"면서, "이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정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다. 현 정권은 지방분권을 말하는데 이를 지키지 않는다면 지방분권도 내년 총선용으로 엉터리가 된다"라고 말했다.

이어 박종웅 의원은 "선물주가지수 이관을 논의하다 올해 1월 27일부터 중단한 뒤 통합을 들고 나왔다. 정부는 법대로 하고, 대선 공약대로 해야 한다"면서, "지역이기주의라 하는데, 법 시행령에 해놓은 대로 하면 된다"고 말했다.

엄호성 의원은 "1월 27일부터 중단된 이관준비작업을 속개해야 한다"면서, "시장통합은 자율에 맡겨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정부가 통합을 한다는 것은 자본시장을 마음대로 갖고 놀겠다는 발상이며 '관치'를 하겠다는 것으로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지적.

이날 집회행사에 참가한 한나라당 의원들은 한결같이 이 문제를 정치쟁점화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췄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이 문제에 개입되면서 이를 둘러싼 논쟁은 더욱 가열될 전망이다.

"한 마디로 말해 재경부 통합 논리는 부당"
비상대책위 서세옥 집행위원장

▲ 서세옥 집행위원장
ⓒ오마이뉴스 윤성효
'시장통합결사저지 비상대책위원회' 서세옥 집행위원장은 "한 마디로 말해 재정경제부의 통합논의 자체가 부당하다"고 말했다. 그는 "형식적으로는 시장통합을 핑계로 내세우지만 선물거래소의 알맹이를 서울로 가져가고 부산에는 껍데기만 남겨 놓겠다는 발상"이라며 분개했다.

서세옥 집행위원장은 세계적으로도 선물거래소와 증권거래소를 통합한 나라는 성공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홍콩과 싱가포르가 통합해 성공했다고 하지만 이는 작은 도시국가로, 미국이나 영국 등 선진 여러 나라의 큰 시장은 통합을 하지 않고 있다"고.

그리고 정부의 방침은 '옥상옥'이라며, 민주당은 대선 공약을 이행하라고 주장했다. "지난 11월 민주당은 대선 공약으로 선물거래소 완전 이관을 약속했는데, 이를 지켜라. 부산을 금융중심도시로 만들고자 하는데 선물거래소를 빼내가면서 어떻게 이룩하겠다는 것인가"라고 지적.

서 집행위원장은 "통합문제를 정치쟁점화시킬 것"이라면서, "법을 만들어 놓고 지키지도 않으면서 또 다른 법을 만들겠다면, 정부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는가"라며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사단법인 목요학술회 상근부회장으로 있고, '부산을 가꾸는 모임' 공동대표도 맡는 등 낙동강 위천공단 저지 투쟁과 삼성자동차 설립 등 각종 지역 경제 현안에 앞장서서 목소리를 외쳤던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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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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