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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장독대가 있는 뒷밭에는 얼갈이 배추와 열무를 심었습니다.
ⓒ 송성영
이틀 내내 손바닥만한 텃밭을 갈았습니다. 텃밭은 싱싱하게 살아 있었습니다. 곳곳에서 지렁이들이 꿈틀거렸습니다.

밭에 지렁이가 꿈틀거리고 있는 것은 지난 6년 동안 단 한번도 농약을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화학 비료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비료 대신 아궁이에서 나오는 재나 계분(닭똥)과 아이들 대소변을 받아 거름으로 써왔습니다.

▲ 농약은 물론이고 화학 비료조차 주지 않아 곳곳에 지렁이가 꿈틀거립니다.
ⓒ 송성영
하루는 열무와 얼갈이 배추씨를 뿌리고 다음날은 아욱과 쑥갓 씨를 놓고 또 다른 날은 대파씨를 뿌리고 호박 구덩이를 팠습니다. 호박구덩이에는 겨우내 모아 두었던 아이들의 똥오줌을 넣었습니다.

▲ 아궁이에서 나온 재와 아이들의 똥오줌으로 거름을 줍니다.
ⓒ 송성영
헌데 대나무 숲 근처 밭은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습니다. 마치 미국이 무자비하게 이라크를 침공하고 있듯이 겨우내 대나무 뿌리들이 허락도 없이 손바닥만한 밭을 점령해 들어왔습니다. 겉보기에 멀쩡했는데 땅속에는 대나무 뿌리들이 얽기 섥기 뻗어 있었습니다.

작년과 재작년, 2년에 걸쳐 대나무 뿌리를 다 캤다고 생각했었는데 착각이었습니다. 작년에는 거짓말 조금 보태서 산더미처럼 많은 양의 대나무 뿌리를 캐냈기에 올해는 괜찮겠지 안심하고 있었습니다.

대나무만큼 뿌리를 지독하게 잘 뻗어 나가는 것도 드물 것입니다. 뽑아도 뽑아도 끝이 없습니다. 구둘장까지 뚫고 들어온다는 대나무 뿌리, 징그러울 정도입니다. 괭이와 삽을 동원해 씩씩거리다 못해 헥헥거려가며 대나무 뿌리를 잡아 뽑았습니다. 힘들어도 뽑아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밭 전체가 점령당하게 될 것이고 더 이상 채소를 갈아먹지 못하게 될 것이었습니다.

이웃 어르신들은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게 딱해 보였는지 제초제를 쓰라고 합니다.

“대나무 뿌리, 개갈 안나유.. 한번 뻗어나기 시작하면 끝이 읎슈, 제초제로 싹 없애버리지”

대나무 뿌리를 없애는 제초제는 제초제들 중에서 가장 강력한 ‘초강력 제초제’를 써야 한다고 합니다. 차라리 대나무 뿌리들에게 밭을 내주는 한이 있어도 제초제는 절대로 못쓰겠다고 예의 그 고집통머리를 내세워 왔습니다.

▲ 세평 쯤 되는 공간에서 나온 대나무 뿌리가 이 정도로 많습니다.
ⓒ 송성영
대나무 뿌리를 일일이 뽑아내야 하는 것이 내 팔자였습니다. 자업자득이었습니다. ‘대나무 뿌리 사태’는 6년 전 이곳으로 이사 오던 그 해, 옆집 할머니의 충고를 귀담아 듣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거기 슬금슬금 대나무 뿌리 뻗어 오는 것 죄다 캐내야 할 거유...”
“괜찮아요, 그냥 둘래요. 대나무가 울창하면 없는 담장도 생기게 될 거구, 보기도 좋잖아유. 또 지가 뿌리를 뻗으면 얼마나 뻗겠어요...”
“지금 별로 없을 때 몽땅 뽑아 버려야 하는데... 낸 중에 후회 할 꺼유... .”

나는 어릴 적부터 대나무 숲으로 둘러쳐진 집을 부러워했습니다. 이곳에 이사 오고 3년째 접어들면서 말 그대로 대나무는 우후죽순처럼 뻗어 나왔습니다. 대 여섯 그루에 불과하던 대나무가 1,2년 사이에 수십 그루로 늘어났고 점점 더 많이 자라나 울창한 숲을 이뤄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기분이 아주 삼삼했었습니다. 울창한 대나무 숲으로 둘러 쳐진 집에서 살고 싶다는 내 어릴 적 꿈이 이뤄졌으니까요. 그 꿈은 이뤄졌지만 그 꿈 뒤에 숨어 있는 ‘대나무 뿌리 사태’는 전혀 예상치 못 했던 것입니다. 대나무 숲으로 둘러쳐진 아름다운 보금자리를 갖기 위해서는 그 뿌리를 캐내는 엄청난 수고로움을 감수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몰랐던 것입니다.

아마 대나무 뿌리와 두 시간쯤 싸웠을 것입니다. 대나무 뿌리는 수북하게 쌓였고 나는 오뉴월 개처럼 혀 바닥을 길게 내 놓고 말았습니다. 작업량은 십분의 일 정도에 불과했지만 맥손을 놓고 다음날로 미뤄놓았습니다. 하루 이틀로 끝낼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루 이틀로 안되면 일주일, 아니, 한달쯤 넉넉하게 여유를 두고 매일마다 서너 뿌리씩 뽑아 나가기로 작정했습니다.

대나무 뿌리를 뽑으며 반나절을 속절없이 보내고 오후에는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과 함께 지렁이가 꿈틀거리는 흙에 재를 썩어 토마토와 오이씨를 넣었습니다.

▲ 우리집 아이들은 자신들이 먹게될 오이, 토마토 등의 씨를 넣고 자라는 과정을 관찰하기도 합니다.
ⓒ 송성영
“나도 크면 우리 애들에게 이렇게 하라고 시켜야지...”
“에헤, 그럼 형아가 아빠처럼 결혼하고 아기 낳아야 겠네?”
“아니, 아니, 나 결혼 안해... 나 결혼 안 할거야..”
큰놈 인효는 막상 결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던지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아빠, 아빠도 어려서 우리 만했을 때, 할아버지하고 컵에 씨 넣으면서 형아처럼 그렇게 생각했어?”
‘뭘?“
“커서 이거 씨 넣는 것 우리 한데 알려 주겠다고...“

작년까지만 해도 그저 흙장난이 좋아서 달려들었는데 1년 사이에 아이들이 많이도 자랐습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상상력보다도 더 빨리 자라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씨 하나를 통해 벌써 저만치 미래로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그 날 저녁 공주 시청에서 반전 집회가 있었습니다. 큰아이 인효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곳에 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요즘 미국이 전쟁을 일으켜 이라크를 괴롭히고 있는 것 알고 있지? 우리 이따가 저녁 먹고 전쟁 반대하러 가자 잉...”
“정말? 어디로 가는데...”

인효의 눈이 휘둥그래졌습니다. 이제 초등학교 2학년에 불과하지만 얼마 전에는 미국이 힘없는 이라크를 괴롭혀서 싫다는 일기를 쓰기도 했습니다. 미국 얘기만 나오면 흥분을 잘 하는 아빠, 아빠 때문에 그런 일기를 쓰게 됐는지도 모릅니다.

어릴 때부터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을 갖는 하는 것은 어떤 경우이든 좋지 않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 미움을 유발시키는 전쟁에 대해서는 똑바로 알아야 할 것이라고 봅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자칫하면 단순한 전쟁 게임으로만 여길 수 있습니다. 전쟁을 옹호하고 있는 대다수의 미국인들처럼 전쟁에 대해 무감각해 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유야 어쨌든 간에 미국은 1, 2차 세계대전 등을 비롯한, 온갖 전쟁으로 부를 축적해 온 나라입니다. 그러다 보니 전쟁에 대해 무뎌져 있는지도 모릅니다. 전쟁터에서 다른 나라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에 대해 아주 무감각해져 있는지도 모릅니다. 한 두 명을 죽이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아무 생각 없이 살인을 저지른다는 연쇄살인범들처럼 말입니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전쟁을 일으키고 있는 미국이 좋지 않은 나라임을 충분히 인식시켜 주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어린아이들에게까지 그럴 필요가 있냐고 말합니다. 너무 증오심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것이 아니냐고 걱정을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어떤 부모가 자식에게 증오심을 갖도록 강요하겠습니까? 어린아이들은 미국의 잔혹성을 통해 단순히 증오심을 품는 것은 아닙니다.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우리 집 아이들은 그렇습니다.

얼마 전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폭격을 맞아 병원에 누워 있는 이라크 사람들을 보며 우리 집 큰 아이 인효가 그러더군요.

“아빠, 저번에 아프간 사람들처럼 이라크 사람들도 너무 불쌍하다...”

아이들은 미국을 싫어하는 마음을 갖는 동시에 미국에게 당하는 사람들에게 동정심을 갖게 됩니다. 안됐다, 불쌍하다, 도와주고 싶다 라는 마음을 통해 사랑을 배우게 됩니다. 전쟁보다는 사랑을 베푸는 게 더 좋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증오심보다는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게 더 좋다는 것을 저절로 알게 됩니다.

사실 아이들이 품게 되는 증오심은 그때뿐인 것 같습니다. 자신이 직접적으로 당한 경우라면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게 되겠지만 이런 간접적으로 접하게 되는 증오심은 상처가 될 만큼 각인 되지 않습니다.

3월 25일 저녁, 6시부터 공주 시청 앞에서 반전운동 집회가 있었습니다. 불과 두 세시간 전까지만 해도 당장 반전 집회장으로 달려 갈 것처럼 말했던 우리 집 아이들은 만화영화 ‘드래곤볼’을 봐야 한다며 언제 간다고 했냐는 듯이 고개를 가로 저었습니다.

저 또한 미국에 대해 늘 증오심을 품고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대나무로 둘러쳐진 삼삼한 집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일일이 대나무 뿌리를 캐내야 하듯이 나는 다만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기 위해 전쟁반대를 외치고 있을 따름입니다.

공주 시내를 행진하면서 반전구호를 외치다가 오전 내내 씨름을 했던 대나무 뿌리를 떠올렸습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마치 새싹을 틔우고 생명을 자라게 하는 텃밭을 작살내 버리는, 아주 징글맞은 대나무 뿌리와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지난 3월 25일 공주에서 반전 집회가 있었습니다.
ⓒ 송성영
우리식구의 먹을거리를 망쳐놓는 대나무 뿌리, 그대로 방치해 두면 텃밭뿐만 아니라 구둘장을 뚫고 안방까지 점령해 들어올지도 모르는 대나무 뿌리 말입니다. 성질 같아서는 초강력 제초제를 쓰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문제입니다. 또 그렇게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초강력 제초제를 쓰면 더 이상 텃밭에서 싱싱한 먹을거리들을 얻을 수 없게 됩니다. 먹을거리는 물론이고 텃밭에 있는 모든 생명들이 다 죽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두말할 것도 없이 일일이 뽑아 줘야 합니다. 그 일이 사흘, 열흘, 아니 한 달 이상이 걸린다 해도 대나무 뿌리가 다 뽑혀 나올 때까지 뽑아낼 것입니다.

내일은 전쟁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싱싱한 생명들을 기분 좋게 상상하면서 대나무 뿌리를 뽑아 낼 것입니다. 또 어떤 날은 반전 구호를 외칠 것입니다. 텃밭의 싱싱한 새싹들과 같은 우리들의 아이들을 위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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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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