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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노무현 대통령과 평검사들과의 토론은 여러 가지 면에서 기록을 세운 행사였다. 무엇보다도 대통령이 평검사들과 공개적으로 토론했다는 것 자체가 역사성을 부여할 만큼 파격적인 사건이다. 그러나 이는 평소 토론공화국을 꿈꾸어오던 노 대통령의 철학에 비춰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닐 수 있다. 앞으로도 그 같은 수많은 파격이 눈에 선하게 예고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작 이날 행사의 파격적인 충격은 토론회자체보다 토론회에 임하는 평검사들의 자세라 할 수 있다. 초반부터 대통령을 토론의 달인으로 몰아세우면서 자신들의 얘기에만 귀기울여달라는 어린애 투정같은 태도는 이 나라 최고엘리트들의 토론태도라고 보기에는 의심스러울 정도로 조악한 토론자세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상대가 숱한 대중토론을 거쳐 대통령에 당선된 이여서 그에 대한 콤플렉스를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검사 자신들의 토론문화수준도 함께 곁들여졌다면 검사들의 주장과 요구를 국민들이 더욱 폭넓게 공감할 수 있었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는다.

토론이란 쟁점을 드러내고 그에 따르는 공방과 모색을 통해 대안을 만들어내기 위한 민주적 장치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시종일관 대안마련에 초점을 맞춘 반면, 평검사들은 대통령의 신변잡기 등을 들춰내며 공격하기에 여념이 없었다는 느낌을 주었다.

대통령은 검찰개혁에 대한 단상을 밝혔고, 이는 국민들이 나름대로 납득할만한 수준이었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사들은 스스로 짜놓은 각본순서에 따라 이미 다룬 쟁점을 지루하게 반복하였다.

한마디로 말해 이날 국민들이 확인한 것은 토론할 줄 모르는 대한민국 최고엘리트들의 반 토론적인 문화였고, 이것은 국민들에겐 커다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누구보다 논리성을 갖춰야 할 법률전문가들이 '죽은 형식논리'에 갇혀 역동적인 현실에서 원칙을 어떻게 관철시켜야 할 지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 것은, 둘째로 칠 수 있다 하더라도, 대통령답변의 어느 곳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에 대한 지적은 없고, 준비된 원고만 읽어 내려가는 듯한 태도에서 우리사회의 '죽어 있는 토론문화'를 목도하는 고욕을 국민들은 감내해야 했다.

토론에 아마추어임을 스스로 자백한 검사들이 이를 빙자해 토론이 아니라 일방적인 공격과, 할말만 하고 마는 반 토론적인 문화에서 국민들은 검사들의 '정쟁적' 토론문화수준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검사들이 대통령을 신문했다는 자족감을 '기개'로 착각하고 있다는 사실만 확인할 뿐이다.

그러나 토론 후 국민들은 국민의 대표인 대통령에 대한 무례를 대등한 토론자세라고 오해하고 있는 검사들의 표정 속에서 검찰의 상층부만이 아니라 검찰전체의 권력문화를 짙게 절감할지도 모른다. 아무라도 붙잡아 신문할 수 있다는 검찰권력의 서슬 푸름을 느끼면서 검찰상층부만이 아니라 검찰문화 전체를 개혁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를 만들어준 토론회는 아니었는지 검사들은 냉정히 평가해야 한다.

시종일관 기존의 검찰상층부에 대한 신뢰가 없어 일단 수뇌부개편을 하고 제도개혁마련을 동시에 하겠다는 대통령의 답변에, 토론회가 대통령의 일방적인 정치선전장이 되게 하지는 않겠다고 작심이라도 한 듯, 또 다른 정치적 의도를 엿보이게 하는 '준비된 발언'의 지루한 나열은 토론이 생산적 결론에 이르게 하는 민주적 장치로서의 의미보다 진흙탕식 싸움박질 속에서 국민들이 지겹도록 확인한 정쟁의 한 과정이 아니었을까 한다.

특히 상대를 토론의 달인이라 규정하고 넘어가는 대목에서는 이들이 검사들이 아니라 얼치기 정치인이라는 느낌을 갖게 만든다. 토론의 달인이란 말재주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 토론의 과정을 합리적으로 이해하고, 그 결과 생산적인 성과물을 만들어내는 철학에 기초한, 민주시민으로서의 경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검사들은 토론할 줄 모르는 자신들의 초라한 형국을 말장난(?) 잘하는 대통령과 대비시킴으로써 대화에 앞서 도덕적 우월성을 가지려 했다는 점에서 정치적 의도가 없다고 주장하기 어렵게 되었다.

문제는 토론문화다. 애초에 원탁형이 아니면 토론을 보이콧하겠다는 검사들 내부의 반발은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토론의 기본자세가 동등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면 마땅히 토론 준비측에서 원탁을 준비하는 것이 옳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상 처음으로 마련된 평검사와의 대화에서 검사들이 준비되지 않은 토론자세를 보인 것은 검찰문화개혁의 필요성을 역으로 강조해준 것은 아닌지 자문자답해볼 일이다.

검사들의 토론문화수준은 사실 어느 정도 예견된 바다. 상명하복을 조직규율로 삼아 움직이는 검찰에서 합리적인 토론문화의 필요성이 자리잡을 리 없다고 한다면 검찰에 대한 지나친 모독일 수 있다. 그러나 상사에 대한 거부권을 발동하기 어렵게 체질화된 검사들의 토론문화가 자유로운 공방과 모색을 통해 바람직한 대안마련이라는 차원까지 도달하기 어려웠던 것은 검사들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검찰 안팎의 여러 족쇄들 때문이라고 칠 수 있다. 때로는 상사의 부당한 간섭에, 때로는 검찰외부의 힘있는 손의 압력에 길들여왔을 지도 모른 상황에서 토론의 필요성은 별반 없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국민들이 검찰의 상층부가 아니라 평검사들에게 기대했던 '기개있는 토론자세'는 이런 것은 아닌 듯 싶다. 상대를 인정하며 문제를 드러내고 그의 원인에 대해 하나하나 접근해가며, 자신들의 대안을 주장하고 관철시키며, 필요에 따라서는 상대의 주장에도 자신을 수렴해나가는 방향의 토론자세가 아닐까 싶다.

일방적으로 폭로하는 듯한 정쟁적 차원의 토론자세로는 국민을 감동시키기는커녕 검찰에 대한 어두운 이미지만 짙게 하지 않았을까 한다.

박봉에 자신의 돈을 써가며 열심히 조직폭력과 마약사범과 전쟁을 치루는 검사들을 국민은 존경한다. 반대로 국민은 검찰을 권력의 시녀로 만든 일부 정치검사에 대해 격한 비난을 퍼부을 수 있다. 그러나 정작 국민들이 희망으로 간직하고픈 '젊은 검사'들의 토론문화부재는 비난에 앞서 절망적이라는 느낌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고 본다. 이렇게 토론문화에 익숙지 않은 젊은 검사들이 성장해 자신들이 그토록 비난해마지 않는 권위주의적 '선배'가 되지 말란 법이 없기 때문이다.

다행인 것은 사족이나마 대통령의 검찰개혁을 찬성한다는 평검사들의 인식인데, 그 인식이 현실에서 구체화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토론의 소인배가 달인으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할지를 제대로 배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한가닥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자 한다.

평검사들이 많은 고생을 하고 있지만 적어도 토론에 관한 한 지금보다 훨씬 더 분발할 필요가 있는 토론회였다고 본다.

덧붙이는 글 | 김석수 기자는 정치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과 불교방송 '아침저널'MC를 지냈고 현재는 시민정치포럼 공동대표, 김포시민사회연구소 대표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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