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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사회적 합의를 중시하는 대통령답게 노 대통령은 국무위원들과 격의 없는 토론을 통해 참여정부의 정책방향과 지향성을 명확히 숙지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워크샵을 개최한 이어, 검찰항명 파동을 정면돌파하기 위해 평검사들과의 실시간 생방송 공개토론까지 가졌다.

역사는 가지 않는 듯 하지만 어떤 순간에는 빠른 속도로 진전한다는 것을 느끼게 했던 것이 금번 검사들과의 토론회가 아니었나 싶다.

바야흐로 지난 역사동안 권위적인 지시와 명령만이 전부였던 성역들에 계급간에 수평적 민주주의 실현의 기본 토대가 될 수 있는 토론문화가 점차 확산되어 나갈 조짐이 일고 있는 것 같아 매우 반갑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주변을 둘러보면 아직 우리사회는 아직 골치 아프고 복잡한 토론문화를 받아들이기에 적당한 분위기가 형성되지 못했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일방적 지시나 명령문화가 수 십년을 아니 수 백년(?)을 지배해 온 우리사회는 하다못해 자치단체의 기초단위인 팀에서조차 토론보다는 지시와 명령에 의한 일처리가 거의 100%가깝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를 생각해 보면 우리가 토론문화와 얼마나 거리가 있는가는 말하는 것이 새삼스러울 정도다.

이러한 사회풍토 속에서 토론을 통해 어떠한 문제를 결정하고 집행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어색하기도 하고 껄끄럽기도 하고, 뭔가 불안정한 느낌을 줄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공무원조직에서는 더욱.

조직의 보스에 의한 지시와 명령에 반하는 의견제시는 묵살되기 일쑤이고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구성원은 조직의 껄끄러운 존재 내지는 암적(?)존재로까지 여겨지며 퇴출(?)까지 당해야 했던, 그리고 그것을 당연시 여겨왔던 우리사회의 공직사회에서 그 구성원들이 토론을 통해 정책을 결정하고 업무를 처리한다는 것은 너무 낯설고 불안한 일임에는 틀림없다. 지시와 명령에 안주해 왔던 우리의 공직사회에 이것이 주는 충격은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토론을 통해 무엇을 결정한다는 것은 다양한 의견을 정책결정에 반영할 수 있고 토론과정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공동의 책임하에 일을 집행해 나간다는 점에서 일방적인 지시나 명령에 의한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동의를 얻으면서,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일을 해 나갈 수 있다는 중요한 장점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같이 조직의 수장에게 모든 결정권한이 있는 권위주의 사회에서는 토론을 통한 정책과 업무의 결정은 조직수장의 권위를 필연적으로 손상(?)케 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받아들이기가 그리 쉬울 것 같지는 않다.

우리사회의 많은 기득권, 혹은 특권층, 그리고 조직의 수장들은 토론을 통한 결정과정 자체가 자신의 권위를 손상시키고 자신만이 가져야 할 권한을 부하직원들과 나눠 같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줄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토론은 일종의 사회적 합의라는 점에서, 그리고 오로지 임명권자에 의해서 권위와 지위를 인정받고, 사회구성원이 아닌 임명권자의 의중만이 중요시되는 것이 지시, 명령문화임에 비춰볼 때, 토론문화는 전 사회구성원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으면서 권위와 지위를 얻고 유지시키면서 정책결정에 있어 사회구성원들의 혹은 조직구성원들의 의중을 이 중요시된다는 점에서 옳은 생각이 아니다.

민주적 토론을 통해서 형성된, 즉 사회적 합의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권위는 단지 자리가 처음부터 부여했던 권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값지다.

지난 9일 있었던 대통령 평검사 간의 토론은 아이러니칼하게도 구성원들이 요구하지 않고 기득권자인 대통령이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면서 구성원들에게 권한과 책임을 나눠 갖자고 했던 우리사회에서는 볼 수 없었던 특이한 경험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아이러니가 당연히 초래할 당연한 결과이듯이 구성원들인 평검사들은 토론에 대한 개념인식과 자세가 전혀 갖춰지지 못했다는 점이 필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의견인것 같다. 이것이 바로 하향식의 문제점이 아닌가 생각하면서도 저변에서 민주적 절차와 기본에 대해 얼마나 풍토가 척박한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찹찹함을 금할 길이 없었다.

문제의식을 가장 많이 갖고 있었던 평검사들은 그것을 어떻게 어떠한 방식으로 해결할 지에 대해서는 준비된 것이 전혀 없었다는 것을 그들이 토론하는 자세를 통해 확연하게 보여줬다. 그들은 정치검찰의 오명을 씻어내는 길을 자신들의 권한 강화에서 찾고 그들이 현재 가진 권한보다 더 큰 것을 요구하기에 바빴다.

혹시 그것이 부당하다는 지적이 나올까봐 미리 대통령에 대한 인신공격과 말꼬리 잡기식 막가파 대응도 서슴지 않았다. 기득권자가 자신 고유의 권리를 버리고 같이 대화해서 해결해보자고 자청해서 마련된 토론회에서 상대방을 짓밟아 놓고 자신의 이득을 꾀해보겠다는 태도를 보면서 저들이 과연 토론회를 가질 자격이나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토론은 상대방의 존중하는 가운데 자신의 의견을 충분히 객관화하고 검증과정을 거쳐 참여자들간에 합일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안타깝게도 우리사회는 토론에 대한 개념정립조차 되어있지 않다. 토론을 하는 것이 마치 현란한 수사를 동원한 말발자랑으로 여긴다던지, 아니면 상대방의 약점을 공격하여 기선을 제압해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는 것으로 여긴다던지, 또는 상대방의 말은 아예 듣지 않고 자신의 주장만을 반복하는 것쯤으로 여기는 부끄러운 수준에 머물러 있다.

우리의 정치인들이 텔레비전 토론회에 나와 대면하면 늘 되풀이하는 작태가 바로 이런 짓이었다. 상대방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무조건 반대하고 보자는 것, 본질은 뒤로한 채 상대방에 대한 사소한 말꼬리잡기로 일관하는 것, 아니면 상대방을 인신공격해 자기우월성을 강조하려는 듯한 천박한 태도 등등.

우리의 검사님들도 아마 이러한 정치인들의 텔레비전 토론회를 너무 많이 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그 수준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 모습에서 였다. 하기사 그들이라고 언제 제대로 된 토론을 해 보았겠는가 마는 그렇다면 먼저 토론에 대해 무지하니 이해해 달라는 부탁을 국민들에게 했어야 옳지 않았겠는가?

대통령이 평검사들과 토론하겠다는 것이 어떠한 역사적 의미를 가졌는지에 대해 단 한번이라도 생각해본 평검사들이 있었는지 필자는 검사들에게 묻고 싶다. 사회 적합의 도출을 위해 대통령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겠다는 것을 의미했던 이번 토론회는 하기에 따라서 엄청난 소득을 얻어낼 수 있는 자리였다.

즉 검찰 자신의 기득권확대보다 국민의 검찰로 다시 서기 위한 대안제시를 하는 것이었다면 충분히 받아들여질 자세가 대통령에게 갖춰져 있었다는 것을 그들은 고의적으로 무시했거나 아니면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대통령을 그들의 기득권을 뺏으려하는 세력쯤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느낌을 국민들에게 갖게 해 주었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아직 스스로 기회를 만들고 싸워서 권리를 확대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이 갖춰져 있지 못한 것 같았다. 다른 말로하면 아직 일방적인 지시나 명령을 받아야 하는 쪽에 훨씬 더 가깝게 있다는 것이다.

워낙 토론문화가 없이 권위주의만 난무하고 그 권위주의가 우리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는 문제의식 속에 대통령이 나서 토론문화를 도입해보려는 노력에 대해, 우리사회 구성원들은 깊이 생각해 봐야할 필요가 있다.

또한 우리사회 구석구석에 배어있는 잘못되고 왜곡된 많은 것들을 제자리로 돌려놓는데 토론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얼마나 필요하고 절실한 것인가를 우리사회 구성원들은 절실히 깨달아야 한다.

토론은 인신공격을 하거나 상대방의 약점을 파고들어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장이 아니다. 그런 태도는 거간꾼이나 브로커, 혹은 사기꾼들이 남을 옭아맬 때 쓰는 수작쯤의 수준에 불과하다.

온 국민은 물론, 검찰 자신들도 문제로 여기고 있는 검찰에 대한 정치권의 간섭이나 압력을 배제하고 검찰권의 진정한 독립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 위해 만난 자리라면, 국민들의 입장에서 검찰이 어떠한 모습을 갖는 것이 바람직하며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권에서는 국민이해를 기초로 한 검찰의 독립성을 어떻게 지켜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대안을 제시했어야 마땅한 것 아닌가?

그런데 자신들이 누려왔던 특권이나 기득권을 연장하거나 아니면 더 많은 것을 차지하기 위해서 토론의 상대방을 제압하려고 했던 검사들의 모습은 텔레비전을 보는 국민들을 경악하고 분노하게 만들었다. 그 어디에서도 국민들의 입장에서 올바른 검찰상을 세워보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았다. 마치 100가진 놈이 10개를 더 갖겠다고 온 국민을 향해 선전포고하는 것 같았다는 것이 토론회를 지켜보는 솔직한 심정이었다면 너무 과언일까?.

특히 저질 인신공격과 말꼬리 잡기의 안하무인적인 태도에서 우리 국민들은 검찰에 대한 불신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 토론회는 검사들이 검찰개혁과 정치적 입김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검사들은 기회를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다. 뿐만 아니라 우리 검찰이 얼마나 오만과 독선에 가득차 있는지. 얼마나 자신들의 기득권 확대에만 연연하고 있는 지도 잘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아무튼 금번 토론회는 우리사회에 올바른 토론문화 정착을 위해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준비되어야 하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기화로 사회구석구석에서 올바른 토론문화 정착을 위한 많은 움직임들이 일어났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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