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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과의 공개토론을 하루 앞둔 8일 저녁, 한 검사가 <오마이뉴스> 기자 메일로 글을 보내왔다. '대통령께 드리는 글'이란 제목의 이 글은 A4용지 5쪽 분량으로 파문을 불러일으켰던 '인사지침'을 받아들이는 평검사들의 일반적인 정서와 검찰개혁에 대한 입장 등이 담겨있다. 다음은 그 글의 전문이다...<편집자 주>

▲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
ⓒ 오마이뉴스 권우성
(1) 그 동안 선배 검찰 구성원들은 1)정치적으로 중립적이지 못하고, 2)국민들에게는 권위적인 모습으로 권한을 행사해 왔다는 비판을 받아왔으며, 최근에는 3)검사의 도덕성 유지와 검찰의 본질인 인권옹호에도 소홀한 점이 있었다는 질책을 받아왔습니다.

o 선배들을 계승하여 오늘의 검찰업무를 일선에서 수행하고 있는 일선 평검사들도 이러한 비판과 질책에 겸허한 태도로 반성하면서, 앞으로는 이러한 전철을 밟지 않고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정의의 실현과 국민 권익의 옹호를 위해 최선을 다할 각오입니다.

(2) 우리 검찰의 가장 큰 과제로 지적받아온 것은 무엇보다도 ‘검찰의 정치적중립성 확보, 준사법기관인 검사의 독립’의 실질적 구현입니다. 이는 대통령·장관님께서도 재야에서 줄곧 주장해온 내용과도 그 맥락이 완전히 같습니다.

o ‘검찰의 정치적중립성 확보, 준사법기관인 검사의 독립’을 이루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구성원들의 ‘의지’라고 볼 때 그 부족을 탓하는 일부 여론의 비판을 긍정적인 채찍으로 받아들이면서 향후 개혁의 원동력으로 삼고자 하는 충정은 검사들 모두가 갖고 있는 마음입니다. 뿐만 아니라 정치권과 국민 모두도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고 믿습니다.

o 그런 의미에서 소위 ‘정치검사’로서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는 고위검찰간부가 있다면 국민이 원하는 ‘인적청산’의 대상으로서 반성을 촉구해야 마땅하며, 대통령과 장관님의 뜻이 여기에 있다면 그 생각에 동의합니다.

(3) 그런데, 지금까지 검찰이 정치적 중립성을 확고하게 지켜내지 못하였던 배경에 우리 선배 검찰의 맹종에만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검찰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거나 검찰 수사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청와대’로 상징되는 정치권의 움직임이 가장 큰 장애 요인으로 작용하였던 것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o 그것이 가능하였던 것은 비단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었고, 1) 대통령이 임명한 정치적 공무원인 법무부장관에 의한 검찰의 인사권한 및 예산권한의 행사, 2)법무부장관의 검찰총장에 대한 구체적 사건에 대한 수사지휘권한 행사(검찰청법 제8조), 3)검사가 상사의 명령에 복종하도록 규정하는 법규(검찰청법 제7조 제1항)의 존재 등등과 같이 제도 자체가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 및 검사의 독립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가 가득하였습니다.

(4) 이미 법제도상으로도 검찰은 정부기관의 지휘·감독을 받게 되어 있으므로 검찰은 정권의 판단에 예속될 수밖에 없는 제도적 한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검찰청법 제4조 제2항의 정치적 중립을 지킨다는 규정은 형식에 불과한 셈입니다. 이러한 제도아래서는 검찰을 자신의 이해관계에 맞게 이용하지 않겠다는 정부·정치권력의 의지가 없으면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기 어렵게 됩니다.

(5) 현실적으로는 그러한 정치적 영향력의 행사가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메커니즘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검찰에 대한 ‘인사’의 시행이었고, 특히 ‘밀실인사’의 관행이 그 중요한 수단이었습니다.

o 우리는 역대정권이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이구동성으로 외치면서 고참서열기수의 간부들을 대거 물갈이하는 방식으로 인적교체를 이루었으나, 결국 그 자리를 대신한 간부들 중 상당수가 그 정권의 정치적 의도를 벗어난 권한행사에 부담감과 제약을 느꼈던 경험을 알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정권의 의도에 부합되는 방향으로 검찰 권한의 행사를 도모하여 정권존립에 기여하였다고 여겨지는 간부들까지 나타났다는 것도 반성하고 있습니다.

o 그 결과 각 정권들은 그들 스스로가 강조한 검찰의 정치적중립성을 확보하는데 도움을 주기는커녕 더욱 훼손하는데 큰 기여가 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6) 무엇보다도 우리 평검사들은 역대 정권이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이룰 수 있는 제도적 보장에 소홀하고, 인적청산만 되풀이해 온 것은 결과적으로 검찰 조직 자체를 사분오열시켜 더욱 정치성향을 고려하는 조직문화를 낳게 하였다는 위기의식까지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o 이런 결과를 야기한 것에 대해서 다른 주체들에 대한 반성과 비난 없이 오로지 검찰만이 스스로 책임을 지고 자폭하라는 식의 일방적인 매도는, 서울대학교 조국 교수님 같은 분도 KBS방송토론회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얼마 되지 않는 월급을 모두 털고 빚까지 얻어 수사비를 만들어 써가면서까지 부패·조직폭력·마약과 같은 거악과 싸우고, 국민들의 아픔을 살펴 사회적 메스를 가하려는 평검사들의 의욕을 떨어뜨리고 지나친 자괴감에 빠뜨리는 것입니다.

검사들의 반성이 아무리 당연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검찰만이 ‘반개혁적 조직’으로 ‘개혁대상’이라는 것은 그대로 승복하기 어려운 일방적인 비난입니다.

(7) 더군다나 ‘준사법기관’으로 광의의 사법작용의 일부를 행하고 있는 우리 검사들의 권한 행사야말로 세계사적인 관점에서는 국민들 전체의 이익, 공익의 대표자로서 ‘시민권력행사’의 상징이므로 세계 각국이 오히려 ‘검사’ 및 ‘검찰’의 조직과 권한을 점차 강화해 나가는 추세에 있습니다.

o 그런데도 우리 검사들이 마치 시민권력의 장애물인양 ‘문민화’라는 역사적으로 틀린 것일 수 밖에 없는 표현의 대상이 되었다면 어떤 욕설과 비난보다도 강한 모욕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8)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과반수가 넘는 국민들의 지지 속에 대통령에 취임하시면서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를 전제로 한 검찰개혁을 강조하셨고, 우리 젊은 평검사들도 큰 기대를 걸어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o 그런데,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요. ‘서열의 파괴’를 통한 조직의 활성화라는 겉으로 그럴 듯한 명분에도 불구하고, 결국 최근에 장관님의 일방적 통보 형태로 제시된 ‘인사지침’은 우리에게 너무나 큰 실망감과 이를 넘어선 ‘위기의식’을 불러다 주었습니다.

o 그것은 1)이미 각 평검사들이 충정으로 올린 ‘평검사회의’ 건의는 전혀 무시된 것으로서, 2)공정하고 투명한 인선 기준과 합리적 검증 절차가 전혀 제시되지 않았고, 3)그 내용과 방식은 검찰의 인사자료가 전혀 반영되지 않고 검찰 의견도 참고되지 아니한 것으로서 결국 역대정권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는 ‘밀실인사’ 스타일이었습니다.

(9) 역대정권은 밀실인사를 통해 자신들에게 맹종하거나 순응할만한 인사 위주로 검찰 간부 인사를 해 왔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지금과 같은 민주화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이러한 이를 내부에서 비판하고 자체적으로 개혁내기는 어려웠으며, 그런 면에서 국민들의 불신이 누적되었다는 것은 선배들을 승계한 후배 평검사들 입장에서도 겸허히 수용하고 반성합니다.

o 그러나, 국민들과 젊은 평검사들의 염원을 담아 출발한 새로운 ‘참여정부’에서마저 이런 밀실인사가 이루어졌다는 점은 대단히 충격적이었습니다. 결국 ‘참여정부’마저도 겉으로는 검찰의 ‘정치적중립성’확보를 부르짖으면서도 내면적으로는 정권의 방향과 움직임을 같이 할, 아니 정권에 맹종할 수 있는 검찰 간부진 구성을 의도하였다고 볼 수밖에 없었고, ‘참여정부’가 국민들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그 정치적 예속이 더욱 심화된 나머지 정치적 중립성 확보는 요원해지겠다는 평검사들의 위기의식이 폭발할 지경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10) 물론 대통령께서는 취임 후 검찰에 전화한 번 한 일이 없을 정도로 검찰을 절대로 이용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갖고 있다고 피력하였고, 그것을 믿고 싶지만, 과거와 조금도 다르지 아니한 비합리적 인사지침을 보면서 오히려 더욱 정치적 영향력의 검찰 주입이 더욱 교묘한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가 걱정되었고, 지금처럼 투명하고 합리적 인선기준 없이 인적 구성만 물갈이한다면, 그 뒤를 이을 후배 간부들은 더욱 더 정치권력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어 어떤 의미에서는 ‘새로운 정치검사’를 양산할 수도 있겠다는 우려를 금할 길이 없습니다.

(11) 물론 평검사회의에서 올린 건의 내용과 같은 제도적 개혁을 이루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시간과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평검사회의 건의내용은 이미 오래전부터 논의와 연구가 전개되어 온 것으로서 의지만 있다면 시행방법과 시기의 문제로 귀착될 수 있습니다.

일부 입법사항에 대해서도 조속한 법률개정을 도모하면서 그 개정 이전에는 그 취지에 부합한 방향으로 세부조치를 얼마든지 해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12) 또한 검사, 검찰간부의 의지가 더 중요한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그 부족을 탓한다면 업보를 승계한 후배 평검사의 입장에서 이를 면할 길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만, 그럴수록 지금과 같이 민주화의 상징인 ‘참여정부’의 출범정신에 부합될 수 있도록 제도적 개혁과 그 이전에라도 그 개혁취지가 반영되는 방향으로, 정치적 중립성이 완전히 보장된 검찰을 새로이 만들어가야 한다는 용기를 내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되어 이렇게 평검사들의 고민을 공유하고, 그 뜻을 모아 건의하게 된 것입니다.

‘서열의 파괴’를 통한 개혁 정신에는 공감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비제도적·독재적방식으로 이루어진다면 정당성을 공감받기가 어렵습니다.

(13) 또한 ‘검사’의 직에 상당기간 근무해 보지 아니한 사람들은 설사 법조의 다른 직역의 경험이 있었던 분이라고 하더라도 검사의 세무업무와 구체적인 역할에 대해 잘 모릅니다. 저 스스로가 그러했습니다.

비록 4개월의 검찰시보생활을 한 후 연수원을 수료하고 나서도, 검사가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과 업무를 하는지 잘 몰랐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최소한 검사생활을 4-5년 정도 해 보지 않고서는 검사가 세부적으로 어떤 역할과 업무를 하는지 완벽히 파악해 낼 수가 없습니다. 그 만큼 검찰은 ‘전문가’조직입니다.

그런데, ‘전문가’조직의 특성을 무시하고, 일방적인 인사를 시행하는 것은 내부로부터의 승복을 도저히 얻어내기가 어렵습니다. 따라서 평검사회의 건의내용의 입법화 이전에라도 전문가조직의 특성을 고려하여 검찰 내부에 축적된 여러 자료의 반영과 검찰주요인력의 의견을 참고하여야 함에도, 이런 작업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인사가 이루어졌다는 것은 지나친 일방적 독주로서 ‘독재적’사고방식의 발현이라는 우려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14) 사실상 검찰을 사랑하거나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기는 어떤 의미에서 지극히 어렵습니다. 우리 검찰에 의해 수사대상이 된 사람들은 그 책임을 추궁당하는 경험 때문에라도 검찰에 대해 긍정적 이미지를 갖기 어려울 것입니다.

특히 기소되어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들은 더욱 검찰에 대해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검찰은 ‘권력’의 횡포나 늘어놓는 기관으로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이들이 자신의 잘못에 대한 깊이 반성없이 법집행기관인 검찰을 비난하는 것은 스스로의 자질 부족만 드러낼 뿐 검사들로부터 아무런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른바 재벌들조차도 수사대상이 되었을 때 검찰을 달가와하지 않는다는 것을 최근 모 재벌 수사를 통해서 많은 분들이 느끼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민사소송제도가 우리 국민들에게 만족감을 주지 못하고 있어서 그런지 검찰에 폭주하는 고소장이 무척 많습니다만, 검찰의 고소사건 기소율은 실제로 아무리 많아보아야 30%를 넘지 않습니다.

억울하다고 하면서 고소장을 낸 고소인 상당수가 결국 불기소결정 통지를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근거없이 우리 검찰에 대해 ‘편파적’이라고 비난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 평검사들이 당면하고 있는 어려움 중에 하나입니다. 지금 우리 검찰이 받고 있는 여러 비난들을 보면 과연 그 비난 전부가 구체적이고도 타당한 근거가 있는 것인지 검증될 수 있을 것인가 의문이 드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15) 검찰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건전한 비판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수용하고 감사히 받아들이면서 마음의 채찍으로 삼을 것입니다. 또한 대통령의 지적처럼 국민의 불신을 초래하고, 특히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한 인사들에 대한 인적 청산은 저희 평검사들도 반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바라고 있습니다.

o 그러나, 법률 전문가조직인만큼 그 특성을 고려하여 공정하고 투명한 검증 기준과 절차에 따라 그 대상자들에 대한 교체가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지금과 같은 방식의 일방적 인사지침 통보는 오히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라는 목표에 더욱 멀어지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아무리 검찰을 비난하면서 개혁의 필요성을 외치는 국민들이라고 하더라도 ‘밀실인사’관행의 무비판적 지속은 찬성하지 않을 것입니다.

(16) 저는 제 위치에서 다시 한 번 깊은 반성과 사죄의 말씀을 드리고, 나라의 공복으로 자세를 가다듬겠다는 각오를 다짐하도록 하겠습니다. 대통령께서도 부디 평검사들의 충정이 혼란을 야기할 목적이 아니라 각자의 희생을 감수한 애국심에서 비롯된 것임을 이해하고, 그 타당한 주장을 수용하여 국가의 근본적 개혁에 더 큰 박차를 가하는데 기여하기를 희망합니다. 두서없이 정리되지 못한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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