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3월 3일 월요일 나는 다시 피켓을 하나 들고 미국 대사관으로 향했다. 3월 1일부터 3일까지 쉐라톤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평화와 통일을 위한 3.1 민족대회’에 대전충남 통일연대의 대전대표로 참석하고, 마지막 날엔 미대사관으로 간 것이다.

▲ "사진 찍으면 안 되요-안 되는 이유가 뭔데요?", 미 대사관 정문 앞에서의 실랑이
ⓒ 여인철
미선이 효순이 압사사건의 두 미군병사에게 무죄평결을 내린 미국측의 처사에 대한 항의표시로 작년 7월 15일 그곳에 선지 8개월만의 일이다. 지난번의 미 대사관 방문(?)이 10년만의 방문이었던데 반해 이번 방문은 8개월만으로서, 미 대사관 방문하는 주기가 급격히 짧아졌다.

한반도가 이제 살벌한 긴장상태로 돌입하고 있다. 미국이 북한의 핵시설에 대한 폭격을 계획하고 있단다. 이제 제법 구체화되어 가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물론 핵선제공격을 담고 있는 ‘작전계획 5027'은 오래전부터 있어왔으나 그의 실행이 구체적으로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건 안 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은 막아야 한다.

북폭이 한반도의 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너무 높고, 그렇게 될 경우 결과가 어떻게 되리라는 것은 굳이 말을 하고 싶지 않다. 그러니 남북의 운명이 벼랑 끝에 몰린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는 것 같았다.

미국은 북측이 영변의 원자로를 재가동한 것을 가지고 문제를 삼는다. 그러나 원자로를 재가동하는 것과 핵무기를 생산하는 것과는 직접적 연관은 없다. 그리고 북한은 “핵무기를 생산할 계획도 의사도 없으며 원자로 가동은 제네바 합의에 따른 미국의 중유공급이 끊어진 상황에서 에너지난을 극복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라고 명확하게 얘기하고 있다.

그러니 미국이 만일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이 그토록 두렵고, 그래서 막기를 원한다면 북한으로 하여금 그렇게 하지 않아도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해줘야 할 것이다. 그래서 북한이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는 것이 “불가침조약” 아닌가.

▲ "피켓 가려", 전경과 실랑이
ⓒ 여인철
그것은 북한의 미국에 대한 두려움의 다른 표시이다. 미국의 침공과 체제전복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이 “불가침”하겠다는 의사를 국제법적 효력을 발하는 형태로 밝히지 않으니 북한으로서는 체제유지에 불안을 느끼는 상황에서 생존하기 위해 핵보유의 유혹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냉정하게 얘기하자면 미국은 지금 북으로 하여금 핵에 손댈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가면서, 그럼으로써 긴장을 조성하면서 그 상황을 은근히 즐기고 있다고 얘기해도 할 말이 없다. 무언가 다른 의도가 있다는 의혹을 받기에 충분하다.

북이 "미국이 우리에 대한 적대정책을 버리면 핵과 미사일 등 안보 사안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겠다"는 입장을 계속 밝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못 들은 체 하고 있다. 만일 북의 ‘핵과 미사일’이 정말로 미국의 겁나는 관심사라면 북이 요구하는 대로 적대정책을 버리면 된다. 그런데 적대정책은 버리지 않고 계속 위협을 가하면서도 “핵과 미사일은 안 돼”라며 윽박지르고 있다. 도대체 미국이 원하는 것이 진정 무엇인가.

그리고 북이 핵을 가지고 있다거나 개발에 들어갔다거나 하는 명확한 증거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CIA라는 데서 언론 플레이를 오락가락 할 뿐이다. 그러면서 이 추운 겨울을 나기위해 전력생산을 해야 하며 그를 위해 원자로를 재가동해야만 한다는 북측의 얘기는 아예 묵살하고 강경대응을 외치고 있다.


미국이 계속 이렇게 터무니없는 어거지를 부린다면 우리는 우리의 정책을 달리 고려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남과 북, 민족 모두의 생존을 위해서다. 그러니 그 어느 때보다 남북간의 긴밀한 협조, 즉 민족공조가 중요한 때이다. (그렇다고 한미공조를 완전 파기하라는 것은 아니며, 미국을 설득하여 남북미가 모두 평화공존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라는 것이다.)

한반도에서 북미간에 전쟁이 일어나게 되면 우리 한국군은 다시금 총부리를 북녘 형제에게 겨누게 되는 상황을 맞게 된다. 미군의 지휘체계 하에 자동편입되어 그들의 명령에 따라 북측 군대와 전투를 벌여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북측과 싸울 의사도, 이유도 전혀 없다. 6.15 남북공동 선언으로 남북 화해협력 분위기가 (비록 꺾이긴 했지만) 살아있는 마당에 전쟁이라니. 도저히 다시는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이 와서는 절대 안 된다.

미국은 그들의 땅이 아니라고, 우리 남측의 군대를 그들 앞에 세울 수 있다 하여 이 땅에서 전쟁하는 것을 쉽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절대 안 된다. 나는 그런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고 그래서 미 대사관으로 다시 간 것이다. 피켓에는 “대북 선제공격 반대”와 “Against Attack on North"라고 써서.

미국은 부시가 늘 입에 올리는대로 “평화적으로”, 그리고 “외교적으로” 북핵문제를 풀기를 원한다면, 이제 대북 적대정책을 철회하고 제네바 합의로 돌아가야 한다. 우선 중유공급부터 재개해야 한다.

지금 북측의 에너지난이 심각하다고 한다. 이 추운 겨울날 우리는 아파트에서 내의만 입고도 살고 있지만, 전력이 모자라 난방이 안 되는 북쪽의 상황을 생각해 보라. 날씨도 남쪽과는 상대도 안 되게 추운 상황에서 말이다.

그 부족한 전력생산을 위해 원자로를 가동하는 것이다. 마치 우리나라 전력의 40% 가량을 원자로를 돌려 생산해 내는 것처럼. 그것을 번연히 알면서 중유공급을 중단한 것은 사태가 악화되리라는 것을 내다보면서도 취한 악수 중의 악수(아니, 고의적으로 그랬다면 묘수랄 수도 있겠지만)이며, 제네바 합의에 금이 가게 만든 가장 큰 요인이다.

그것도 멀쩡히 항해하는 배를 남포항에서부터 추적하다가 아라비아 해 부근에서 나포한 것이 그 발단이었다. 그러니 미국은 이제라도 중유공급을 재개하고 제네바 합의로 돌아가야 한다.

▲ 한반도기를 들고 뒷문으로 자리를 옮겨 계속-미대사가 안 올라나...
ⓒ 여인철
광화문 큰길가에 있던 미 대사관 출입문은 공사를 이유로 폐쇄되어 있었다. 게다가 대사관 앞쪽으로 전경차가 두 대나 서 있어 차를 타고 가는 사람들이 대사관 앞에서 일어나는 일을 볼 수 없도록 만들어 놨다. 그리고 직원들 출입문은 대사관 뒤편으로 옮겨 놓았다.

시위할 마음이 싹 달아나게끔, 그리고 해 봐야 별 효과도 없게 완벽한 조치를 취해 놓았다. 일인시위를 언론에서 보도를 하지 않는 한 아무리 해 봐야 지나가는 몇사람 보고 말 그런 상황으로 만들어 놓았다. 지난번에는 그래도 세종로 길 차를 타고 가는 사람들이 많이 봐 주었고, 대사관 앞 지나치는 사람들도 꽤 많아서 신이 났었는데...

여기서 아무리 피켓을 들고 서 있은들 보는 사람이 없는데 비단옷 입고 밤길 걷는 격이지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일단 기록용으로 사진은 찍어놨다. 그것도 잽싸게 달려와 안 된다는 전경의 제지를 말을 붙여가며 시간을 벌어 간신히 두어장 남겼다.

기온은 그리 낮지 않았지만, 바람은 매서웠다. 나는 날씨하고는 인연이 없는 모양이다. 작년 7월 시위할 때는 비가 왔고, 그전 해 겨울 용산기지 앞에서 미군아파트 신축반대 시위를 할 때도 날씨가 엄청 추웠다.

이제 1시도 넘겨 대사관 직원들도 볼 사람은 다 보았고 지나가는 행인들도 적은 대사관 뒷길. 조금 있다 그만 해야겠다 하고 있는데 다 늦게 웬 키가 훤칠한 전경이 갑자기 무슨 얘기를 들었는지 거만한 걸음걸이로 오더니 여기서 시위하면 안 된단다. 그리고 진압을 하라는 명령을 받았단다. 무슨 엄청난 권력을 부여받은 줄 아는 모양인지, 말하는 자세와 표정이 정말 가관이었다.

그래서 지금 하고 있는 시위는 진압대상이 아닌 1인시위라고 했더니, 가르치려 하지말고 그만 하란다. 기가 막혀서 그냥 있는데 주위에 있던 지인이 나선다. 소속과 지위를 물으니 당당하게 뭐라 빨리 대답을 하는데 무슨 수경이라는 얘기만 들렸다. 전경의 우두머리라는 것인가 싶었다.

옥신각신 하다가 더 이상 말싸움하는 것이 무의미하다싶어 1시 15분까지 5분만 더 있다 가겠다고 했더니 그렇게 하자면서 느닷없이 옆에 경계를 서던 전경들에게 화풀이를 해 댄다. 신참인 듯한 그 전경 1개 분대는 완전히 겁을 먹은 얼굴이었다.

그 전경들이 무슨 죄가 있어 거기 가서 화풀이를 해대는가, 참으로 가여운 친구였다. 그러더니 “너희들 15분 되나 안 되나 잘 봐, xx들아, 똑바로 해” 하더니 그 다음엔 뭐라 뭐라 해대는데 그때까지 안 가면 어떻게 하라는 지시인 것 같았다.

나는 혹시나 미 대사가 점심먹고 들어오는 길에 내가 들고 있는 피켓을 보지 않을까 싶어서 조금 더 있자고 한 것이었는데 불똥이 엉뚱하게 애꿎은 친구들에게 돌아가는 걸 보고 그만 철수하기로 했다.

나의 1인시위는 불법이 아니다. 진압대상은 더더욱 아니다. 내가 쇠파이프를 들었는가, 화염병을 들었는가. 경찰도 상황을 봐 가면서 임무에 충실해야 하지 않을까. 미국의 북폭을 반대하는 평화적 1인시위를 진압한다는 사고를 가진 경찰이라면 아직 갈 길이 멀었다.

여러가지로 씁쓸함을 안겨준 1인시위였다. 모두 한 목소리로 외쳐도 시원찮을 마당에 한편에선 이렇게 ‘진압’이나 하겠다며 나서니...미국이 북한을 공격하겠다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으란 말인가?

그래서 나는 지금도 외친다.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 반대한다.”
“No attack on North Korea."

덧붙이는 글 | <대자보>와 하니리포터에도 올렸습니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여인철 기자는 카이스트의 감사와 연구교수를 지냈습니다. 친일청산에 관심이 많아 오래 민족문제연구소 지부장을 지내고, 운영위원장을 역임하였으며, 지금은 장준하정신을 되살리기 위한 '장준하부활시민연대'의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학에 출강하면서 '코칭으로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와 '에듀코칭'을 통한 학교교육 혁신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