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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6학년 때 우리반에는 여자보다 남자가 대여섯 명 많았다. 그래서 홀아비 짝꿍이 생길 수밖에 없었는데, 그 당사자들의 불만은 만만치가 않은 것이었고, 짝짓기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 담임선생님에게는 상당한 걱정거리였다.

그래서 지금 생각하면 유치한 발상도 꽤 많이 하신 듯 한데, 아마도 학력고사팅이니, 찍기팅이니 하는 미팅방식들을 고안한 녀석들도 초등학교적 담임선생님의 짝짓기 아이디어를 도용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이 공포한 짝짓기 방법은, 정확히 일주일 후, 여자들이 먼저 한 줄씩 앉아있고 남자들이 뛰어들어가 맘에 드는 여자 옆에 앉으라는 것이었다.

당장 시행하는 대신 일주일이라는 유예기간을 둔 것은 그 동안 남자들 속에서 대략적 타협을 이루길 바라신 것이겠지만, 어른들이란 이렇게 무책임하다. 우선 타협 과정에서 예쁜 여자아이들에 대한 접근의 우선권은 힘센 아이들에게 선점 될 것이 뻔하며, 또 그것이 완벽하게 타결되지 않을 경우 벌어지는 아수라장과 불가피할 남자아이들의 체면손상을 어쩔 것이냐는 것이다.

이것은 쓸데없는 걱정이 절대로 아니었다. 실제로 짝짓기 당일 날 멋을 꽤나 부리고 다니던 반장은 원하는 자리를 못 얻었다고 (6학년씩이나 돼서) 울음을 터뜨렸으며, 머리를 넘기고 다니며 고상한 척하던 어떤 친구는 몸을 날려 의자를 차지한 채 경쟁자는 울어도 소용없다고 책상을 부둥켜안고 버티기도 했다. 또 어떤 친구는 어렵게 잡은 짝꿍에게서 거부당하는 불상사를 겪기도 했다.

결과야 어쨌건 포고령이 떨어진 그날부터 우리들의 화제는 각자의 지망대상이 누구냐 하는 것이었다.

"나는 미라, 나는 진경이, 나는 선영이… 너는 누구?"

나도 물론 꼭 옆에 앉고싶은 여자아이가 하나 있었다. 승제라는 아이(상처가 된 이름은 이다지도 오래 남는다)였는데 그로부터 얼마 후에 인기를 끌었던 영화배우 김도연과 아주 닮은 아이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 아이에게도 공개적인 도전자만 세 명이나 되었다는 것이다.

공개적인 도전자가 셋이라는 것은, 자신의 욕망을 숨기지 않을 정도로 자신감 있는 인간만 셋이라는 의미이고, 고로 잠재적인 지원자까지 합하면 예닐곱은 될 것이라는 뜻이었다.

"나는 지우"

물론 여배우 최지우가 아닐뿐더러 그와는 용모 면에서 아무런 친화성이 없는 아이였다.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는 아이였는데 내성적이라기보다는, 자폐적이기까지 한 아이였다. 물론 공부는 꼴찌를 간신히 면할 정도였다.

"왜?"

아이들은 그런 아이에게도 지망자가 있다는 사실에 호기심마저 느끼며 물었고, 나는 순간적으로 '나는 조용한 여자가 좋아'라고 둘러댔다. 그 순간 내가 찾아낸 거의 유일한 칭찬거리였다.

물론 나는 조용한 여자를 좋아한 적이 없다. 내가 그 아이를 선택한 진짜 이유는 당연히 다른 지원자와의 경쟁이 필요 없다는 점 때문이었다. 다시 한번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그건 선생님의 유치한 행위에 대한 나름의 야유라기보다는 패배주의의 결과물인 자기방어막이었다.

물론 나에게도 예쁜 여자 짝을 얻는 것이 하찮은 일은 아니었지만, 굳이 그것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흔히 구겨지고 쓸려댄 여린 자존심을 다시 한 번 다치고싶지 않았던 것이다. 최소한 그 또래 남자아이가 세상 살아가는 모든 힘의 원천들, 학교 성적과 힘과 선생님의 인정과 아이들의 인기 등등이 모두 동원되어 격돌될 그 잔인한 싸움터에서 말이다. 어쨌든 우리 반에 일주일 내내 지우에게도 지망자가 있다는 이야기가 우스갯소리처럼 흘러 다녔다.

예고되었던 일주일 후, 복도에 집결해 있는 동안에도 내내 몸싸움이 대단했던 다른 아이들이 교실 안으로 우당탕 뛰어들어간 후 뽀얀 연기 사이로 내가 혼자 고고하게 들어섰다. 이곳저곳에 눈길도 주지 않고. 이미 대부분의 자리가 채워졌고 두어 곳에서 소소한 분쟁이 일어나고 있었다. 차라리 자진해서 남자들끼리 앉아버린 곳도 있었다.

그 때까지도 나는 혹시나 나보다 앞서 지우의 옆자리를 차지하려는 삼돌이가 있을 지 모른다는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도 별 수 없다는 듯 그 아이보다는 조금이라도 나을 다른 자리에 앉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전혀 아니었다. 지우의 옆자리는 빛이 날 정도로 휑뎅그렁하니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눈가로는 내가 설마 진짜로 거기 앉는 지 확인하는 두어 개의 시선도 느껴지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 앉았고 지우는 미동도 없이 티라노사우루스 어쩌고 하는 학급문고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지우와는 그로부터 한 학기 동안 짝꿍이었지만 더 이상 기억나는 것이 없다. 분명한 것은 한마디라도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다는 점이다. 그게 굉장히 이상한 일이었다는 생각도 그다지 없었다. 아마도 지우는 그 일년동안 나 뿐 아니라 여자아이들을 포함한 다른 누구와도 한 마디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을 것이다.

대학생활 1년의 막바지에 하는 것 없이 스스로 바쁘다고 생각하고 있던 어느 날, 걸려온 전화에서 나를 찾는 웬 모르는 여자목소리를 듣게 되었고 나는 말로만 듣던 '폰팅'일 지도 모른다고 흥분했다.

"저…김은식 맞지?"
"네, 으…응"
난데없는 반말에 흠칫 놀라면서 전화를 받았다.

"나는 정지운데. 누군지 알겠니?"

바로 알 수 있었다. 7년쯤 지난 그 날 맨 마지막으로 교실 문을 들어서던 내 눈에 띄던 썰렁한 그 의자와 여자아이의 옆모습이 머리에 콱 박혔다.

"아.. 알아. 우리 6학년 때 같은 반이었지?"

지우는 어느 지방대학에 다니고 있다고 했고 나는 아마도 너의 목소리를 처음 듣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우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많이 활달해졌다고 말했다. 또 하나 놀라웠던 것은 그 아이가 나와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다는 것이었다. 나는 모르고 있었다. 그 친구는 고등학교 앨범을 보다가 우연히 생각이 나서 그냥 한번 전화를 했다는 것이었다.

이런 저런 썰렁한 얘기를 몇 마디 나눴고, 나는 어쨌든 얼떨떨하면서도 많이 즐거웠다. 나도 전화를 한번 하겠다고, 전화번호를 가르쳐달라고 했다. 그러나 그 아이는 자기가 다시 걸겠다고 하고는 곧 통화를 마쳤다. 그 뒤로는 한번도 전화가 오지 않았다.

그 아이를 알았음직한 고등학교 여자동창들을 만났을 때 그 얘기를 했더니 다들 의외라고 했다.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도 그 친구의 목소리를 들어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는 것이며, 지금도 전화를 받을 만한 친구는 아마 없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떤 친구는 지우가 아마 피라미드식 다단계 판매를 하다가 먹이를 물색하느라 앨범을 뒤졌을 거라고 추측하기도 했다.

고등학교를 같이 다녔는데도 내가 의식하지 못했던 존재. 내가 그리 발이 넓어서 웬만한 동문은 다 아는 것이 당연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 역시 그리 시끄러운 존재는 못되었다는 뜻이리라. 어쨌든 그 침묵의 시간동안 나름대로 무언가 쌓아두고, 알아냈을 그 친구도 역시 그 옛날 자기 옆에 와서 앉은 나의 진의를 아직 궁금해하고 있었던 것일까?

또 아니면, 어쩌면 지우는 대학에 가서야 무슨 구비를 넘어 입을 열었고, 또 어쩌면 피라미드 판매원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왜 정작 6, 7년을 넘어 억지스럽게까지 찾아 전화를 한 옛 동창에게 전화 용건 한 마디 밝히지 못하고 끊은 것일까? 막막한 전패의 쓰라린 생존전선 속에서 그 옛날 짝짓기의 기억이 조그만 물건 하나 팔아줄 친절을 떠올리게 해주었고, 정작 목소리를 듣는 순간 다시 아니야, 하고 주저앉은 것일까?

궁금한 것은 많았지만 알 수 있는 것도, 꼭 알아야 할 것도 없었다.

덧붙이는 글 | 김은식 기자는

"솔직해지기 위해서, 모른 체 눈감고 살기를 좋아하는 제 머리와 싸운 흔적을 글로 남기고 있으며, 그렇게 쓴 글은 개인홈페이지 '솔직해지기 위한 투쟁'(www.kes.pe.kr)에 모으고 있습니다. 2002년 5월부터 11월까지 '맛있는 추억'을 연재해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에 선정되었으며, 그 글은 동명의 산문집으로 엮여지기도 했습니다. ("맛있는 추억", 자인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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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관한 여러가지 글을 쓰고 있다.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맛있는 추억'을 책으로 엮은 <맛있는 추억>(자인)을 비롯해서 청소년용 전기인 <장기려, 우리 곁에 살다 간 성자>, 80,90년대 프로야구 스타들의 이야기 <야구의 추억>등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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