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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의 현대 대북 송금 관련 1, 2차 단독 보도 기사
국회 정무위 소속의 엄호성 의원(한나라당·부산 사하갑)이 국정감사장에서 4000억원 대북 지원 의혹을 제기한 시점은 지난해 9월25일이었다. 그러나 의혹의 관련 당사자인 이근영 금감위원장과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 등이 강력히 부인함으로써 이 의혹은 물밑으로 잠복했다. 지난 1월29일 <오마이뉴스>가 현대상선의 2억 달러 대북송금 사실을 단독 보도할 때까지는.

이럴 때 이른바 특종 취재기를 쓰는 기자들은 대개 지난 9월25일부터 꼬박 네 달 동안 끈질기게 추적해 송금사실을 밝혀냈다고 '초'를 치기 십상이다. 실제 그렇게 '초 치는' 기자들을 주위에서 자주 보았다. 그래야 더 기사의 '광이 난다'고 여기기 때문이렸다.

2년간의 집요한 추적, 이런 식으로 잔뜩 기사의 '광'을 내고 특종상을 타는 것까지는 좋다. 그런데 타살 의혹을 제기한 의문사 사건이 나중에 자살로 최종결론이 나도 아무런 해명이 없는 경우도 보았다. 엉뚱하게 타살 의혹을 제기한 기자는 상을 받고, 그 언론과 기자에 의해 살인자로 지목된 사람은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어둠 속에서 살아가야 하니 이 얼마나 부조리한 현실인가.

부조리한 현실은 또 있다. 일부 언론과 정치권은 필자의 1차(국정원 편의 제공 하에 2억 달러 대북송금), 2차(현대, 7대사업 독점계약 대가 5억 달러 송금)에 걸친 단독 보도가 마치 현 정부측 인사나 새정부측 인사가 의도적으로 흘려준 것처럼 '폄하'했다. 거기에 대해서는 대꾸할 가치를 느끼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착각'은 자유이기 때문이다.

단서 포착에서 사실 확인까지 단 이틀

'유감'스럽게도 필자가 현대의 5억 달러 송금 의혹의 단서를 포착해 사실 확인하기까지는 단 이틀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 나머지는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임동원 대통령 특사가 돌아올 때까지, 그리고 설날이 다가올 때까지…. 그것은 어쩌면 한 대기업의 사활은 물론 남북관계마저도 좌우할 수 있는 중차대한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여진(餘震)이 진동하고 있는 5억 달러 송금 파문의 실마리를 제공한 한 지인의 전화를 받은 것은 지난 1월23일 저녁이었다. 이 지인의 신원을 밝힐 수 없어 유감이지만, 분명히 말하건대 정보기관은 물론 정부나 정치권과도 아무런 관련이 없는 '순수한 민간인'이다. 물론 현대의 대북 송금 건에 대해서도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이다.

청와대 소식에 밝은 이 지인은 처음에는 <포츈>지에 실린 김우중 전 대우 회장 인터뷰 이야기를 꺼냈다. 나라 걱정도 하고 농담도 주고받았다. 그러다가 전화통화 말미에 슬쩍 "2000년 6월 현대상선이 산업은행에서 긴급 대출받은 4000억원을 국정원이 달러로 교환해주었다는 얘기가 있다"면서 "한번 알아봐라"는 말을 툭 던졌다.

감사원은 당초 1월24일 감사위원회를 열어 자료 제출을 거부해온 현대상선을 고발할 예정이었으나 현대상선이 1월28일 5시까지 자료를 제출하겠다는 의사를 전해와 고발을 미루기로 한 상황이었다. 현대상선은 4000억원 가운데 1760억원에 대해서만 자료를 제출했고 나머지 2240억원에 대해서는 수표 이서(裏書) 등 관련 자료를 제출하지 못했다. '외자 유치' 목적으로 작년 9월 미국으로 출국했던 정몽준 회장은 1월11일 전격 귀국한 뒤 이틀만에 '대북사업 논의'차 방북했다가 1월22일 돌아온 상황이었다. 또 1월27일부터는 임동원 특사의 방북이 예정돼 있었다.

낌새는 이상했지만 처음엔 반신반의

뭔가 낌새는 이상했다. 그러나 반신반의했다. 왜냐하면 국정원 사정에 비교적 밝은 필자가 아는 바로는 국정원이 아무리 많은 공작비(달러)를 비축해 놓고 있더라도 4000억원을 교환해줄 만큼 거액을 갖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4000억이면 국정원 1년 총예산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거액인데 그러면 국정원 직원들은 손가락만 빨고 있으란 말인가.

다음날 필자는 우선 잘 아는 국정원 출신의 대북 소식통에게 전화를 했다. 슬쩍 4000억 건을 물어보았는데 별다른 반응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국정원 관련 사안인 만큼 정공법으로 직접 부딪쳐보기로 하고 평소 인간적 신뢰관계를 형성해온 한 고위 관계자에게 전화를 했으나 부재중이어서 메시지를 남겼다. 그리고 토요일인 다음날(1월25일) 앞서의 지인과 점심을 같이 하면서 좀더 구체적인 얘기를 들었다. 그 요지는 이랬다.

▲ 임동원 외교안보통일특보. 필자는 이 기사가 남북관계에 줄 영향 때문에 방북한 임동원 특사가 귀환할 때까지 송고를 늦추고 기다려야 했다.
"2000년 6월 당시 박지원 문광부장관-정몽헌 현대 회장-임동원 국정원장의 구도 하에서 현대상선의 대북송금이 이뤄졌다. 당시 현대는 유동성 위기상황에서 금강산 관광 및 개발, 개성공단 개발사업 등을 벌여놓고 있었고 정부는 경의선 연결사업을 앞둔 상황이었다. 그래서 2억 달러를 북한에 송금한 것이다. 현대상선이 산업은행에서 4000억원을 대출받은 다음날 국정원 계좌로 2240억원이 입금된 사실이 검찰에 의해 확인되었다. 국정원이 당시 환율(1달러 당 1100원)로 2억 달러를 환전해 주었다.

이 건으로 1월22일 청와대 ○○수석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진상을 보고했고 공개방침이 정해진 것으로 안다. 노무현 당선자도 이 건에 대해 보고받은 것으로 안다. 원래는 이번 주말(1월25일)에 정몽헌 회장이 먼저 발표하고 임동원 특보가 다음주에 사과하는 구도였는데 임동원 특사의 방북일정 때문에 설을 쇠고 새정부가 출범하기 전에 공개한다는 얘기가 있다."


특종임을 직감케 한 첫 반응 '아, 2240건?'

환전 액수는 처음 얘기한 4000억원에서 2억 달러로 줄었다. 그러나 여전히 믿어지지 않은 거액이었다. 국정원이 전국의 암달러 상인을 거느리고 있다면 몰라도…. 아무튼 확인이 필요했다(확인한 결과 일부는 사실이었으나 일부는 사실과 달랐다). 그런데 저녁 때 전날 메시지를 남긴 국정원 고위 관계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나는 "현대상선 4000억원 중에서 용처가 확인되지 않은 2240억원이 산업은행에서 대출받은 다음날 국정원 계좌에 입금되었고 국정원이 2억 달러를 환전해 주었다는 말이 있다"는 얘기를 건넸다. 뜻밖에도 그 첫 반응은 "아, 2240건?"이었다. 이 고위 관계자는 분명히 '이천이백사십억원'이라고 말하지 않고 '이이사공'이라고 말했다. 그 순간 특종임을 직감했다. '2240건'이란 숫자화된 표현은 그것에 대해 상당히 대책을 논의했음을 의미했다.

이 고위 관계자는 잠시 망설이다가 대수롭지 않은 듯이 이렇게 말했다(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 관계자는 어차피 내가 알고 있는 것 같아 사실대로 얘기해주고 이해를 구하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을 했다고 한다).

"그것은 국정원 계좌에 입금된 것이 아니고 현대가 송금하는 데 우리가 편의를 봐준 것이다. 기업이 해외에 송금하려면 절차가 복잡하기 때문에 우리한테 '도와달라'고 해서 우리 직원이 은행에 가서 수표사인 등 송금편의를 봐준 것뿐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계좌 입금이니 환전설은 와전된 것이다."

'7대사업 투자금' '설쇠고 써도 늦지 않을 것'

이어 그 돈의 성격과 임동원 특사 방북과의 관계 그리고 박지원 비서실장의 관련 여부 등에 묻자 이런 대답이 나왔다.

"현대가 당시 7대사업을 하지 않았냐. 그중 지금도 개성공단과 금강산개발사업이 진행중이지 않느냐. 그(7대) 사업 투자금이다. 7대사업에 대해 30년 동안 독점사업권을 현대가 획득했는데 이익을 챙기려면 일단 돈(선급금)을 줘야 하지 않느냐. 그런데 국정원 입장에서는 현대가 당시 남북대화의 물꼬를 텄기 때문에 편의를 봐준 것이다.

이번 특사 방북건은 북핵문제 때문에 우리 원의 사전 물밑 접촉을 통해 성사된 것이다. 특사 파견은 '이이사공'건과는 전혀 무관하다. 박실장은 돈에 관한 한 전혀 관련이 없다. 내가 보증한다"


'7대사업'이니 '사업 투자금'이니 나올 것은 다 나왔다. "어차피 털고 갈 거라면 정확히 쓰는 것이 좋지 않겠냐"며 기사화 하겠다는 의사를 비치자 이 고위 관계자는 "지금은 쓰면 안된다"고 했다. 그는 "내주말(2월1일)쯤 되어야 정확한 진상(감사원의 감사결과)이 나오고 설을 쇠고서 발표할 것이니 그때까지 기다렸다가 써도 늦지 않을 것"이라며 "무엇보다도 내일모레 대북 특사가 가지 않느냐"며 국익을 강조했다. 물론 나는 동의했다. 그리고 월요일(1월27일) 아침에 만나 당시의 교섭 정황과 송금에 대한 더 자세한 얘기를 듣기로 했다.

확인 끝, 특사 돌아올 날만 남았다

임동원 특사가 방북하는 날 아침에 서울시내 한 호텔에서 이 고위 관계자를 만나 2240건에 대한 좀더 구체적인 송금내역과 당시 박지원 장관의 역할 등에 대한 취재를 보강했다. 2000년 3∼4월 당시 박지원 장관이 싱가포르와 상하이, 베이징 등지에서 북측의 송호경 아태평화위 부위원장과 비밀리에 교섭해 정상회담에 합의했다는 얘기도 나왔다(그러나 필자는 2000년 6월경에 '정상회담은 싱가포르에서 시작되었다'는 발굴특종 기사를 쓴 적이 있었기에 1월29일에 1차로 2억 달러 송금사실을 보도할 때는 이 대목을 중시하지 않았다). 박지원-송호경의 비밀교섭에 앞서 모든 것을 뚫고 자리를 마련해준 '연락책'은 현대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나올 것은 다 나왔다. 이제 남은 것은 임동원 특사가 돌아올 날짜를 헤아리는 일만 남았다. 물론 박지원 비서실장에게 확인하는 절차가 남아 있었지만 박실장이 설령 부인해도 치고 나가기엔 충분했다. 그런데 마침 퇴임을 앞둔 박 실장의 제안으로 1월29일 <오마이뉴스> 정치팀과 저녁약속이 돼 있었다(이 때문에 박지원 실장이 흘려준 것 아니냐는 '오해 아닌 오해'를 받았다). 임동원 특사도 1월29일 돌아왔다. 그래서 자연스레 'D-데이'를 1월30일로 잡았다.

그런데 1월29일 '검찰이 4천억원 지원설의 정치적 해결을 촉구하고 나섰다'는 검찰발(發) 기사가 나왔다. 이것은 검찰도 기미를 챘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는 곧 법조기자들이 파고들 경우 구정(2월1일) 전에 검찰 쪽에서 터져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보도 시점을 앞당길 필요가 있었다. 일단 1월29일 저녁 6시30분경까지 스트레이트와 해설을 합쳐 30매 분량을 써놓고 편집국장과 게재시점을 상의했다. 편집국장은 "사안이 사안인 만큼 박 실장을 만나 확인한 뒤에 게재하자"고 했다. 그래서 편집국장과는 8시에 약속장소로 가 박 실장과 저녁을 먹으면서 9시 이전까지 확인하되 회사로 전화를 하면 곧바로 기사를 올리기로 약조가 돼 있었다.

▲ 박지원 비서실장. 그는 '폭탄주' 8잔을 마셔도 끝내 사실 확인을 거부하고 굳게 입을 다물었다.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철인(鐵人) 박지원의 'No face, no voice'

그런데 예상대로 박 실장은 '철인'(鐵人)이었다. 적당한 시점에 "그런데 4000억원 건은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고 운을 떼자, 표정이 확 바뀌더니 그때부터는 '안면몰수'였다. 그 건과 관련된 것이라면 어떤 말을 해도 그 순간 입을 꽉 닫았다. 폭탄주가 7∼8잔씩 돌아도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비서실장 공관까지 따라가 거기서 '입가심 폭탄'을 1잔씩 돌려도 마찬가지였다. 박 실장에게 "실은 여러 채널로 확인해 기사를 써놓고 왔다"며 확인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자신의 지론대로 끝내 'No face, no voice'였다. 이럴 때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은 것은 사실상 시인을 의미했지만 갑갑했다. 다행히 자리를 함께 한 청와대 ○○수석이 오죽 답답했든지 '가정법'을 써서 간접 확인해 주었다.

"설령 그것(송금)이 사실이더라도 절대 현대가 망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나는 슬그머니 화장실에 들어가 곧장 회사로 전화를 했다.
"확인했음"

그때가 밤 10시30분쯤이었다. 기사를 올리자마자 비서실장 공관으로 전화가 왔다. 박선숙 공보수석이 "기자들이 '오마이뉴스에 2억 달러 송금 기사가 났다'며 여기저기서 확인전화가 온다"고 박 실장에게 알리는 전화였다. 박 실장은 마치 남의 말하듯이 이렇게 얘기했다.
"응, (김당 기자랑) 여기 와 있어. 근데, 기사를 다 써놓고 왔대."

1차특종 베낀 '조선'도 2차특종은 인용보도

"현대상선, 북한에 2240억원 송금 정상회담 전 국정원이 편의 제공" "현대 '사업 대가' - 정치권 '정상회담 대가'…논란 일 듯". 이날 밤 방송 뉴스부터 다음날 석간신문까지 방송3사를 비롯한 거의 모든 매체가 오마이뉴스 보도를 인용보도했다.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인지 '조중동'은 예외였다. 조선·동아는 오마이뉴스 기사를 베껴 거기에 자사 기자 이름을 달아 내보냈다. 중앙은 엉뚱하게 노 당선자측 관계자의 입을 빌어 보도하는 형식으로 딴청을 부렸다.

다음날인 1월30일 박선숙 공보수석이 대독(代讀)한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송금 시인 성명과 감사원의 감사결과 발표가 나왔다. 원래 감사원은 현대상선이 1월28일 제출한 자료를 정밀검토해 설을 쇠고 감사위원회를 열어 검찰 고발 여부를 최종 결정할 방침이었으나 오마이뉴스 보도 때문에 발표를 4∼5일 앞당겼다. 돈을 받은 쪽으로부터도 확인이 불가능한, '국가정보기관이 개입한 대북 송금' 형태의 은밀한 거래가 보도한 지 12시간도 안되어 특종으로 확정된 것도 매우 이례적인 일이지만, 사실상의 공식확인이 대통령의 입을 통해 처음 확인된 것은 더 이례적인 일이었다.

2월9일 일요일 저녁에 나는 "2억불은 중도금, 모두 5억불 줬다, 현대-北아태 7대사업 독점계약금" 제목으로 국정원 전현직 고위 관계자로 확인한 내용을 구체적인 5억 달러 송금경로와 함께 기사화했다. 이 오마이뉴스의 2차 단독보도에 대해서는 조선일보도 2월10일자 1면에 오마이뉴스를 인용해 보도했다.

특사 방북기간 비보도 약속과 특종 지켜내

더 기분이 좋았던 것은 지난 1월23일 대북송금에 관한 단서를 처음 포착해 확인작업에 들어갔을 때 고위 관계자가 사실 확인을 해주면서 대북 특사의 방북일정을 감안해 내건 '적어도 방북 기간에는 보도하지 않는다'는 전제조건을 충실히 지키면서도 특종을 지킬 수 있었던 데 있다. 그런 한편으로는 남북관계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대북 특사단의 귀환 이후로 현대상선 대북송금 보도를 미룬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오마이뉴스 보도와 관계없이 특사의 김정일 면담은 성사되지 않았지만, 만일 특사가 북한에 있는 동안 기사를 내보냈더라면, 그 때문에 면담이 무산되었다는 식으로 오마이뉴스가 '독박'을 쓸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아쉬움은 남는다. 대표적인 것은 내 기사의 댓글에 "그 기사로 인해 '노벨 평화상 매수', '대북 뒷거래'라는 수구세력의 통탄스러운 주장이 다시 득세할지 모를 상황에 대한 우려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라고 쓴 네티즌(ID 황당)의 '황당한' 비판이다. "애석하게도 당신에게 기자정신은 있을지 모르나 진보언론매체에 종사하는 자로서 요구되는 현실인식은 많이 부족해 보인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이런 류의 '인상비평'에 대한 할말은 많지만 이 글은 '취재 전말기'이므로 여기서는 나의 의견을 제시하지는 않겠다. 다만 이런 류의 '가벼운 인상비평'에는 "구더기 무서워 장 못담그냐" "내가 안썼더라면 '조중동'이 먼저 썼을 것이고 그 결과는 '안봐도 비디오'"라는 '가벼운 대꾸'로 충분하리라고 본다. 마지막으로, 그와는 다르지만 유사한 논리구조를 가진 다른 글에 대한 내 견해를 밝히는 것으로 이 글을 마치련다.

팩트(fact)의 힘은 위대하다

문화일보에 적(籍)을 두고 있는 도올 김용옥 기자는 대북송금 건과 관련해 '언론은 민족자결 눈떠라'는 심층해부 명문(名文) 기사에서 이렇게 일갈(一喝)했다.

"선종의 바이블, <벽암록>에 쓰여있는 다음과 같은 원오 스님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ː '一機一境, 一言一句, 且圖有箇入處, 好肉上瘡, 成成窟.'(마음가짐 한 꼬타리, 대상세계의 한 상황, 말 한마디 한 구절에서 진상의 한 입구를 발견하려고 도모하는 것은, 마치 멀쩡한 고운 피부에 생채기를 내서, 그곳에 둥지를 틀고 썩은 굴을 짓는 것과도 같다)."

나도 도올처럼 시공간을 넘나들며 일갈도 하고 천착(穿鑿)도 하면 좋으련만…. 어떡하랴, 선(禪)의 세계에서는 그럴 수 있겠지만 꼼짝없이 이전(泥田)에 발을 딛고서 개 뛰듯이 뛰면서 남들보다 한치 앞이라도 먼저 내다봐야만 하는 것이 나의 천직(賤職)이자 천직(天職)인 것을.

물론 이런 자조(自嘲)가 나의 본심은 아니다. 기자(記者)의 업(業)은 단지 '받아쓰기'에 머물거나 '말 한마디 한 구절에서 진상의 한 입구를 발견하려고 도모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거기서 더 나아가 '사실이라는 구슬을 꿰어 진실의 목거리'를 만드는 것으로 비로소 완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는 웅변한다. 팩트(fact)의 힘은 위대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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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톺아보기'는 '샅샅이 더듬어 뒤지면서 찾는다'는 뜻을 가진 순우리말인 '톺다' 또는 '톺아보다'에서 나온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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