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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이 언론과 전쟁을 하라는 뜻이 아니고 개인이나 정치인이 언론에 눈치보지 말고 싸울 때는 싸워야 한다는 말이었다. 언론의 횡포로부터 자유를 찾기 위한 투쟁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2001. 2. 9 <오마이뉴스> 인터뷰, 언론과의 전쟁불사 발언에 대해)

"밤낮없이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저격범까지도 끌어안아야 하나? 조선일보는 언론이 아니라 저격수다. 내가 <조선일보>에 가서 불을 지르거나 테러를 가하는 것도 아니고 적법하게 '응징'하겠다는 것인데, 무엇이 편협한가?" (2001. 12. 3 <시사저널> 인터뷰, 대통령이 되겠다면서 조선일보와 싸우는 게 편협하다는 지적도 있다는 질문에 대해)

▲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 주간사진공동취재단
우리는 참으로 '특이한 대통령' 한 사람의 등장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 '특이한' 점 하나는 바로 언론을 두려워하지 않는 대통령이라는 점이다. 역대 한국 대통령들의 전례에 비춰보면 가히 '몰상식'이라고 할만 하다.

그는 현역장관 시절 "이제는 정권이 언론과 전쟁선포도 불사해야 한다"(2001.2.7)는 발언을 한 적도 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봐도 귀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그런 얘기를 하고도 한국적 상황에서 배겨난 장관이 있었을까 싶다. 그리고 그런 망언(?)을 하고도 대통령 후보로 나설 생각을 어찌 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그는 어쨌던 대통령에 당선돼 내달 하순 취임식을 갖는다. 게임은 이미 끝났고 그의 언론과의 전쟁은 '완승'으로 막을 내렸다. 소위 '언론'진영의 주류를 자임했던 구주류 매체들은 그래서 지금 긴장하고 있다. 그를 두고 '불안한 사람, 사상이 의심스러운 사람' 등으로 몰아붙인 '죄'도 있거니와 앞으로 다가올 '그의 시대'가 두렵기도 한 것이다.

@ADTOP7@
그동안 우리 언론은 흔히 '제4부'로 불리는 권력집단이었지만 사실상 권력 서열상 첫째였는지도 모른다. 몇몇 특정언론의 '도움'을 받아 출범한 문민정부에서 하나회의 침몰을 계기로 군부의 위상이 약화되자 그 자리를 차고 들어간 언론권력은 세상 무서운줄 모르고 '밤의 대통령'을 자임해 왔다.

언론권력의 그같은 태도는 이번 대선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그러나 세상은 이들의 오만을 더 이상 용인하지 않았다. 언론권력을 향해 'NO!' 라고 삿대질을 하고 대든 노무현 같은 '별난 정치인'을 대통령에 당선시킨 것이 바로 그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별난 정치인'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언론관은 단순하다. 언론을 언론 그 이상도, 그 이하로도 보지 않고 언론 그 자체로 본다는 점이다. 그는 선거 과정에서 언론의 '제자리매김' 선언을 몸으로 보여줬다. 선거가 끝난 지금 상황에서 언론은 이제 권력자의 자리에서 언론의 자리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게 됐다. 노 당선자의 이같은 언론관은 향후 새정부의 언론정책에도 그대로 이어질 전망이다.

권력자와 언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자는 언론을 부담스러워 하면서도 곁에 두길 바랬다. 어떤 권력자는 언론을 마치 '입속의 혀'처럼 부렸는가 하면 또 어떤 권력자는 '나팔수'로 활용하기도 했다. 이런 행태를 보인 권력자들은 대개 쿠데타로 집권한, 즉 정당성이 결여된 정권의 지도자들로 언론에 단꿀을 주고 그 댓가로 펜을 휘어잡았던 것이다. 물론 이와는 정반대로 언론에 휘둘린 권력자도 없지 않았다.

그렇다면 시민의 힘으로 집권한 노 정권의 언론관은 분명히 달라야 한다. 무엇보다 언론을 통해 덕볼 생각을 과감히 떨쳐야 하고, 또 언론에 대한 피해의식도 훌훌 털어야 한다. 지난 대선 때 겪은 일은 싸움판에서 몇 대 억울하게 맞은 것이려니 하고 넘겨야 한다. 굳이 복수(?)할 생각을 할 필요는 없다. 새로운 언론관을 정립시켜 언론을 제자리로 돌려놓으면 그게 바로 복수가 되는 셈이니까.

박정희 정권 이후 언론계 인사들의 정치권, 특히 청와대 진입이 보편화 돼 왔다. 정치권이 이들을 중용한데는 언론과의 원만한 관계를 위해서였다고 생각된다. 취재기자가 어느날 권부나 정치권의 대변인이 되고, 또 언론담당 부처의 장이 되는 예가 적지 않았다. 수 십년간에 걸쳐 그런 예가 반복되다보니 이제는 정치권도, 기자사회도 무감각한 상태가 됐다. 심지어 당연한 수순, 코스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경우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건 분명 잘못된 경우다. 권력집단이 언론계 출신 인사를 대언론 업무에 전진배치한 것은 이들을 앞세워 언론을 무마시키려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또 이들의 유혹에 넘어간 언론계 인사들 가운데 그들이 정치권으로 가서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서 간 경우라면 도덕적 문제를 이제는 거론하고 따져야 한다.

먼저 새 정부는 언론담당 분야에 언론계 출신 인사를 배치하지 말 것을 권한다. '이이제이'식으로 언론을 대할 시기는 이제 갔다고 본다. 또 이른바 '박지원식'이라 불리는 유화적 저자세의 대언론 업무처리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노 당선자가 몸으로 보여줬듯이 언론 역시 우리사회의 여러 분야 가운데 하나로 여기면 그만이다.

@ADTOP8@
지난 역대 정권에서 나타난 권-언유착은 그 연결고리가 바로 언론계 출신 정치인들이었다. 이들은 언론사(혹은 언론사 사주)와 권력자를 잇는 매개체 구실을 하며 이쪽 저쪽 모두에서 실속을 챙겨왔다. 낮에는 권력자의 입노릇을, 밤에는 자신이 몸 담았던 언론사의 정보원 비슷한 역할을 해온 셈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언론의 제대로 된 권력자 비판, 감시를 기대하기 어렵고, 또 권력이 언론의 칼날을 두려워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어렵다. 혹자는 언론을 아는 사람이라야 언론을 제대로 다스리고 활용할 수 있다고 강변할지 모르지만 그건 지난 역사에 비춰볼 때 '철없는 얘기'라고밖에 할 수 없다.

▲ 정정보도, 반론보도 청구 등 인수위의 항의가 이어지자 <조선>은 비판기사로 정면 대응했다. 사진은 16일자 초판<조선> 기사.
최근 인수위와 몇몇 언론간의 갈등이 극에 달한 것으로 보도된 바 있다. 특히 조중동은 노정권에 대해 '더이상 허니문은 없다'고 선언이라도 하듯 연일 인수위를 공격하는 기사를 싣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기사들이 정확하지 않은, 왜곡·허위보도라는데 있다.

이에 대해 인수위는 문제의 기사에 대해 해당 언론사에 정정보도를 요청하거나 또는 언론중재위원회에 중재를 신청한 바 있다. 채 출범도 안한 정권이 거대언론을 향해 '당신 틀렸소!'라고 반발하고 나선 것은 그동안 보지 못했던 풍경이다.

그러나 예전 같았으면 이같은 '갈등'을 푸는 방법도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다. 즉 사태가 이 정도에 이르렀다면 인수위 언론담당이 해당 언론사 정치부장이나 편집국장 만나 서로 '형님!, 아우님!' 하면서 술자리에서 어깨동무 한번 하면 대충 넘어갈 사안이었다. 정작 문제는 '우의다지기'가 아니라 '오보'였음에도 그동안의 문제해결 방식은 이같은 술자리를 이용한 타협과 '주고받기'식 형태였다. 그 이유는 중간에 언론계 출신이 양측을 잇는 '다리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같은 '고리'를 끊어야 한다. 새정부는 언론에 덕볼 것도, 아부할 것도 없지만 애시당초 그런 여건을 만들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새정부의 언론담당 책임자는 비언론계 출신 인사, 언론계가 낯설어하는 인물 가운데서 발탁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

그렇게 된다면 일단 양측이 긴장하게 될 것이고, 종전과는 새로운 형태의 관계가 자연스럽게 설정될 것이다. 일단 사람이 바뀌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혹자는 비언론계 출신이 언론의 생리를 잘 몰라 발생할 부작용을 지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같은 우려는 기존 언론계에 '줄'이 없어 당당한 업무처리가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와 명분을 잠재우지는 못할 것이다.

"언론사 세무조사는 권력과 언론이 유착해서 힘없는 국민들에게 군림하면서 부당한 이익을 누려왔던, 이른바 권언유착의 청산을 의미하는 역사적 사건이다" (2001. 6. 28 '국세청의 언론사 세무조사 결과 발표를 보고' 중에서)

현정권이 지난 2001년 실시한 언론사 세무조사는 후유증이 결코 적지 않았다. 그러나 노 당선자의 지적처럼 권언유착을 청산하는 첫 계기가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새정부는 그를 토대로 언론정책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어야 한다. 그리고 그 첫걸음은 언론에 당당한 인물을 찾는 일이다.

노 당선자의 혁명적 언론관을 실천할 '새인물'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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