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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란 하늘이> 표지
ⓒ 스타
"제가 장애인이 된 후 육체적인 고통보다는 정신적인 고통이 더 컸어요... 냉정한 세상에 대한 원망과 나 자신에 대한 희망이 무너지는 처절한 몸부림... 슬그머니 떠나버린 주위의 친우, 친척들... 외로움으로 밀려드는 그리움... 저 같은 장애인들이 이 시를 읽고 희망과 용기를 가지라는 의미에서 시집을 펴내게 된 겁니다."

'둥근다리' 시인으로 불리우는 장애인 시인 김갑진(56)의 네 번째 시집 <파란 하늘이>(도서출판 스타)가 나왔다. 둥근다리? 김갑진 시인에게 둥근다리란 또 하나의 별난 이름이 붙게 된 것은 2000년 두 번째 시집 <둥근다리>를 펴내면서부터다. 왜냐하면 김갑진 시인은 늘 온몸을 휠체어에 둥그렇게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갑진 시인은 지금까지 모두 세 권의 시집을 펴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책을 펴낼 때마다 새악시처럼 가슴이 설레이겠지만 이번에 네 번째 시집 <파란 하늘이>를 펴낸 김 시인의 마음은 설렘을 넘어 가슴이 두근거리기까지 하다. 왜냐하면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의 시집을 서점가에 내놓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세 번이나 펴낸 그의 시집은 지금까지 한번도 서점가에 얼굴을 비치지 않았다. 정식으로 절차를 밟아 등단을 한 시인들처럼 그렇게 좋은 시가 아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동안 그 세 권의 시집들은 어찌보면 자신의 좌절과 원망, 그리고 정신적 방황을 극복하는 데 더 큰 기여를 했던 시집들이었기 때문이다.

또 스스로 그 절망을 딛고 비장애인처럼 이렇게 시집을 낸다는 의미만으로도 김 시인에게는 분에 넘치는 기쁨을 맛 볼 수 있었다. 다시 말하자면 그 세 권의 시집에 실린 시편들은 남들에게 내보이기 위한, 또 그렇게 하기 위해 쓴 시가 아닌, 자신을 위한 시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시집의 경우는 그렇게 남을 의식하면서 쓴 시편들이라는 것인가. 아니다. 이번 시집은 김 시인이 장애를 극복하고 다시 비장애인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일종의 염원이 담겨있다. 또한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같이 이 세상의 한 일원이라는 것에 대한 일종의 선언이다. 그래서 예전 시집과는 달리 이번 시집을 서점가에 당당하게 내놓은 것이다.

절름거리는 몸짓으로 걸어도 좋으니
일어서서 걸을 수 있게만 해주오
하루종일 십 미터를 가도 만족하겠으니
내 힘으로 일어서 걸을 수 있게만 해주오

('걸어라 말 좀 해주오' 몇 토막)


어느날 갑자기 쓰러져 반신불수의 식물인간이 된 채 7여 년 동안 휠체어에 의지하면서 다시 세상을 엿보는 시인 김갑진. '절름거리는 몸짓"이라도 "일어서서 걸을 수 있게만" 해 주도록 바라는 시인. 짧은 거리라도 자신의 힘으로 일어서서 이 땅을 한번 걸어보고 싶은 시인. 이 시인에게 신발은 무슨 의미로 다가올까.

신지도 않는 구두들이 외출 준비한다.
......
지금쯤이면 보기 흉한 몰골이 되어 쓰레기더미에 있을 법한데
먼지를 뒤집어쓰고 침통한 얼굴로 기다리길 7년!
어느 때인가부터 세수도 하고 분도 바르고 치장을 하고
나를 보고 웃는 얼굴로 바깥에 나가자고 유혹을 한다.
아직 버리기 아까운 생각에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언제부터인가 아내가 먼지 묻은 신발을 손질하며 그날을 기다린다.

('구두 한켤레' 몇 토막)


그렇다. 7년 전에 신었던 그 구두, 그동안 누군가에 의해 버려질 법도 했던 그 구두가 아직도 신발장에서 얌전하게 앉아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그 먼지 낀 얼굴에 구두약도 칠하고, 반짝반짝 빛을 내며 주인을 유혹한다. 또 시인의 아내가 매일 같이 그 구두를 손질하며 시인이 어서 일어나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하지만 시인은 오늘도 부인의 도움 없이는 단 10미터도 움직이지 못한다. 모든 것이 답답하기만 하다. 그래서 시인은 그동안 어렵게 배운 컴퓨터 앞으로 다가간다. 그리고 한 손으로 열심히 좌판을 두드린다. 하지만 하루종일 쳐도 겨우 몇 자 정도뿐.

지금까지 나온 그의 시집들은 모두 그런 과정을 거쳐 어렵게 태어난 것들이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1999년부터 매년 한 권씩 펴내는 그의 혼이 담긴 시집을 바라보며, 그가 굉장히 왕성한 시작 활동을 하는 시인으로 착각하기 일쑤다.

"시를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마음을 가다듬기 시작했지요. 세상에 대한 원망이 점차 살아있다는 것에 대하여 감사하게 되더군요... 그래서 첫 번째 시집을 내면서부터는 부인과 함께 나란히 사후 시신을 장기기증본부에 기증했어요"

둥근다리 시인 김갑진
1996년 반신불수 식물인간으로

▲ 김갑진 시인
장애자 시인 김갑진은 1946년 충북 제천에서 태어났다. 1968년 어느 건설업체에 입사한 뒤, 35년 동안 국내의 주요 발전소와 비행장 등 주로 철구조물 분야를 담당하는 전문건설인으로서 인정을 받았다.

1986년 주식회사 삼공사 신축공장 현장소장으로 근무하던 중 1991년 지병인 고혈압 고지혈증이 악화돼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그 후 1996년 한번 쓰러진 뒤, 반신불수의 식물인간이 되어 7여 년을 휠체어에 의지한 채 살고 있다.

김 시인은 처음에는 자신과 세상에 대한 원망으로 몸부림치다가 1990년대 후반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면서 차츰 마음의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장애인의 아픔은 장애인이 더 잘 알고 있다는 듯이 부인과 함께 사후 자신의 몸 일체를 장기기증본부에 기증했다.

시집으로는 <울면서 왔으니 웃으면서 가야지>(1999) <둥근 다리>(2000) <안개꽃 여보>(2001)를 펴냈다. 지금은 장애인들이 모여 장애를 극복하고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는 비영리순수 사회봉사단체인 <웃는나라동산>을 만들기 위해 홈페이지(http://www.yes0071.pe.kr)를 개설했다.
/ 이종찬 기자

덧붙이는 글 | (스타, 6000원)


파란 하늘이

김갑진 지음, 스타(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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