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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영환이 살았던 집터는 조계사와 체신박물관(옛 우정총국 자리) 사이에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종각역에서 율곡로로 가는 우정국로 보도에 표지석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다.
ⓒ 권기봉
PartⅠ. 민영환은 과연 기릴 만한가?

지금으로부터 약 한 달 전인 지난 11월 30일(土)은 형조판서와 지금의 서울시장 격인 한성판윤 등 요직을 두루 거친 민영환이 을사조약 체결에 대한 항의의 뜻으로 자결한 날로, 그저 여느 때처럼 한적하기만 한 겨울날이었다. 지난 '[문화유산답사43] 나라 잃은 설움에 자결을 택하다'에서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 창덕궁을 답사한 데 이어, 이번에는 올해가 다 가기 전에 그가 살았던 생가터와 자결한 이완식의 집터를 답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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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잃은 설움에 자결을 택하다

그가 살았던 생가터는 지금의 조계사 경내에 있는데, 우정총국(현 체신박물관) 근처다. 그러나 민영환 생가터의 경우에도 서울시의 여느 유적들과 마찬가지로 그저 보도 위에 덩그러니 놓인 표지석만이 그 사실을 말해주고 있을 뿐이다.

또한 1905년 11월 30일 새벽 6시, 민영환이 자결한 이완식의 집터는 그의 생가와 그리 멀지 않은 지금의 한미빌딩 자리로, 백문기가 조각한 기념물이 있긴 하지만 오고가는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그저 빌딩에 부속된 단순한 조형물로 생각하고 지나칠 만하다.

▲ 인사동 한미빌딩 앞에는 민영환을 기리는 기념물이 놓여 있다. 바로 지난 1905년 11월 30일 새벽 6시에 민영환이 자결한 이완식의 집터이다.
ⓒ 권기봉
그런데 처음의 질문을 돌아가, 과연 우리가 민영환을 기릴 필요가 있기는 한 걸까? 이러한 의문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이미 지난 민영환 동상 답사기(문화유산답사43)를 보고 독자들이 지적했듯, 민영환을 두고 대한제국을 파멸로 이끈 집단 중 하나인 민씨 집안 사람이기에 책임을 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 역시 부정부패에 연루되어 있다는 의혹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대한제국 당시 책임 있는 자리를 두루 거친 인물로서, 자결이라는 방법으로 현실을 회피하기보다는 더욱 적극적이고 생산성 있는 방식으로 뜻을 펼쳤어야 하지 않나 하는 지적이 없지 않다. 즉 독립협회를 지원하거나 을사조약이 체결된 이후 이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리는 등의 활동 이외에 그가 조선 독립을 위해 다른 어떤 일을 했다는 기록은 찾아보기 힘들다.

알고 보면 그의 자결이라는 것도 만주나 간도 땅에서 무력 투쟁을 하거나 국내에서 목숨을 바쳐가며 항거한 독립지사들에 비한다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여기서 그를 이 정도라도 주목하는 이유는 더도 덜도 아니고, 일종의 책임의식의 발로에서 자결을 선택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즉 친일파나 서양세력에 기댄 이들이 득세하던 시대에 사회 지도자로서 무거운 책임의식을 느끼고 자결했다는 것, 거기서 회개의 의미를 발견한 까닭이 아닐까 싶다. 다시 말해 그가 갖는 많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민영환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이처럼 사회 지도자로서의 최소한의 양심은 보여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 그리 크지 않은 민영환 기념물은 그가 남긴 친필 유서와 유품 등을 주물을 떠 만든 것으로, 그가 자결할 때 썼음 직한 단도도 기념물의 한쪽을 차지하고 있다.
ⓒ 권기봉
PartⅡ.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우리 역사의 그늘

한편 이번 답사가 이른바 민영환을 기릴 필요가 있느냐 없느냐의 논의에 그치지 말고 친일 역사가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현실에 대해, 그리고 그것이 왜 힘든지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일제시대' 혹은 '친일파', 나아가 '역사'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면 세상 돌아가는 사정도 모르는 그저 고리타분한 사람쯤으로 여겨지는 2002년 12월의 한국. 특히 연령대가 낮아질수록 '이런 류'의 이야기를 한다는 게 더욱 힘든 현실인 것 같다. 그러나 '역사'라는 화두를 그저 역사책 속에 가둬둘 만큼 우리의 처지가 한가한 것은 아니기에 이른바 '따'당하기를 무릅쓰고 말문을 연다.

역사는 한낱 연구자들의 '전공'으로만 여겨지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그러나 아직도 청산하지 못한 역사가 많이 남아 있다. 주지하다시피 광복 이후 어긋난 역사를 제대로 바로잡지 못한 채 해방정국을 흘려보내며 친일파들은 그대로 친미 사대주의자로의 화려한 변신에 성공했고, 이어 억압과 폭력이 횡행하는 오랜 군사통치가 한반도 남단을 휩쓸었다.

그러나 이후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사람들은 많은 변화를 기대했다. 특히 역대 비리 대통령 두 명을 구속시키기는 것을 본 국민들은 일말의 희망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 그 둘은 정치적인 이유에서 사면을 받았고 추징금도 제대로 다내지 않는 등 흐지부지되어, 이번에도 결국 국민들은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현실은 일제 이후 처음으로 정권이 교체돼도 별로 나아진 것이 없었다. 워낙에 친일·친미 사대주의자들이 기득권을 공고히 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친일(親日)에 앞장서고 군사정권의 나팔수 노릇을 자임해온 일부 언론의 '물타기'와 IMF 이후 더욱 심화된 세상살이의 각박함과 경제 지상주의 등으로 인해 '역사 청산'이라는 화두는 이미 한물 간 것으로 취급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 민영환이 자결한 이후 피묻은 칼을 상청 마루방에 걸어두었는데, 이듬해인 1906년 5월 문을 열고 들어가니 대나무 네 줄기가 마루의 피 묻은 곳을 뚫고 올라와 자라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민영환의 충정이 혈죽(血竹), 이른바 '절죽(節竹)'이 되어 난 것이라고들 하는데, 기념물에는 이를 말하려는 듯 대나무가 표현되어 있다.
ⓒ 권기봉
특히 올 연말에는 싫든 좋든 이 같은 현실을 뼈저리게 느껴야만 했다. 지난 16대 대통령 선거 당시 5공화국 최고 권력자 밑에서 인권탄압 등 온갖 악행을 저질렀던 사람이 (투표일 하루 전에 사퇴하기는 했지만) 대통령 후보로 출마할 수 있는 왜곡된 우리 사회. 이는 우리 사회의 정치적 자유도(自由度)가 높음을 나타낸다기보다는 역사 청산에 대한 국민 대중의 의지가 없음을 반증해주는 증거일 수도 있기에 더욱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디 그뿐인가. 친일·친미 사대주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고 국민들의 인권을 유린한 장본인들을 열렬히 보호하는 모 정당의 후보가 당선 유력 후보로 여겨지던 것이 바로 2002년 세밑의 한국 풍경이다. 그저 초등학생 수준의 상식만을 가지고 생각해도 이상하다고 느낄 만한 일들이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일어나는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면, 아직도 우리의 역사 인식 수준은 유치원생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듯 하다. 현실이 이러할진대 '친일파 청산', '역사 청산' 등을 그저 시대에 뒤떨어진 구호 정도로 무시할 수 있을까.
▲ "영환은 한갓 죽음으로써 임금의 은혜를 갚고 이천만 동포 형제에게 사죄하노라. 영환은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라 기필코 여러분을 지하에서 도울지니 바라건대 동포 형제여 아무쪼록 더욱 분투…" 기념물에는 그의 친필 유서와 함께 한글로 번역한 것이 함께 있는데, 민영환 자신의 자리에서 좀더 적극적이고 현실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데 아쉬움이 남는다.
ⓒ 권기봉
민영환의 생가터와 그가 자결한 이완식의 집터를 찾아가는 방법

먼저 민영환이 살았던 집터 답사는 지하철 1호선 종각역에서부터 시작하자. 조계사 방향으로 나가 걷다보면 왼쪽으로 조계사로 들어가는 진입로가 나오고 조금만 더 가면 우정총국, 즉 체신박물관이 나온다. 민영환이 살았던 생가는 조계사 경내에 있었으나 지금은 남아 있지 않고, 그저 보도 옆 안내 표지석만이 '이곳이 민영환의 생가터였노라'고 말해주고 있다.

한편 민영환이 자결한 이완식의 집터도 그의 생가 근처에 있어 함께 답사하기에 무리가 없다. 먼저 그의 생가터를 답사했으면, 우정국로를 기준으로 조계사 맞은편으로 건너자. 그런 다음 온 길을 되돌아가는 식으로 종각역 방향으로 걸으면 왼쪽으로 공평빌딩이 나오는데, 거기서 왼쪽 골목으로 들어가자.

그러면 이내 골목이 넓어지면서 양쪽으로 높은 빌딩들이 눈에 들어오는데, 바로 오른쪽 빌딩인 한미빌딩 자리가 이완식의 집이 있었던 곳이다. 1층에 한미은행이 들어서 있고 빌딩 앞에 민영환을 기리는 기념물이 있기에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 권기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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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기억 저편에 존재하는 근현대 문화유산을 찾아 발걸음을 떼고 있습니다. 저서로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알마, 2008), <다시, 서울을 걷다>(알마, 2012), <권기봉의 도시산책>(알마, 2015)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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