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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불과 며칠 남지 않은 2002년은 실로 역동적인 한해였다. 그래서인지 연말이 다가오면서 사회의 각계 각층에서는 앞다퉈 해당 분야의 '올해의 10대 뉴스'를 선정해 발표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굳이 사회 각계 각층에서 발표한 10대 뉴스를 일일이 살펴보지 않더라도 올 한해는 다사다난함을 넘어서, 시대의 흐름에 따른 변화를 온몸 체험한 한해로 표현해도 이론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역동적인 사건들이 사회 곳곳에서 벌어졌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인터넷에서 일어난 10대 뉴스감을 꼽아 본다면 올 한해 인터넷을 강타한 '아햏햏'문화는 단연 빼놓을 수 없는 뉴스거리일 것이다. 아햏햏 문화는 그 특이함과 새로움으로 인해 네티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면서 언론의 단골 기사감으로 대접받았다.

▲ 디시인사이드의 폐인들을 널리 알린 일등 공신- 이른바 '개죽이'의 모습
아햏햏이란 말이 디지털 카메라 관련 정보 사이트인 디시인사이드의 자칭 '폐인' 집단에서 비롯된 말이란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이 말은 읽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아행행과 아햇햇으로 각각 읽힌다.

이처럼 아햏햏은 하나의 음으로 읽히지도 않을 뿐더러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어 딱히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아햏햏이란 말은 무언가를 강박적으로 규정하지 않고도 타인과 '이심전심'과 '눈치코치'를 통해 의사전달을 가능케 하는 단어라는 점일 것이다.

물론 아햏햏에 대해서는 국어 파괴라는 비판과 단순히 특정집단에서 사용하는 은어이기 때문에 별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공존하고 있는 형편이다. 하지만 아햏햏을 탄생시킨 문화 속에 기성세대가 미쳐 제대로 간파해내지 못했거나, 무심코 간과한 인터넷 세대의 다양한 특성들이 담겨 있다는 사실만큼은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아햏햏을 탄생시킨 '폐인'들은 대체 누구인가?

아햏햏문화의 중심을 살펴 볼 때 빼놓을 수 없는 집단은 단연 디시인사이드에 모여들고 있는 자칭 '폐인'들이다. 이들은 대체로 20∼30대 초반의 젊은 세대인데, 주로 대학생이나 이제 갓 직장을 얻어 사회 생활을 시작한 초보 직장인들이 주류를 이룬다.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인터넷뿐 아니라 각종 컴퓨터 소프트웨어에 익숙한, 그러나 활자문화에는 '경기'를 일으키는 이른바 디지털 영상세대라는 점이다. 이들은 인터넷의 특성과 절묘하게 궁합을 이루는 디지털 카메라를 이용해 주변에서 발견한 재미있는 장면이나, 친구, 본인 사진, 심지어 애인의 사진을 즉석에서 올려놓고 촌평(이른바 '리플놀이')을 주고받으며 논다.

그런가하면 이들은 서로를 인터넷을 통해 열심히 수행을 쌓는 행자(햏자, 이하 햏자)라 일컬으면서 추켜세우기도 하고, 조선시대를 연상시키는 하오체를 사용해 일종의 언어유희를 즐기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이 항상 얌전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악성 답글(악성리플-이른바 '악플')로 사진을 올린 상대를 응근 슬쩍 놀려주기도 하고, 특정사이트를 집단적으로 공격해 마비시켜 버리는 등 사이버 테러를 감행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 디시인사이드 히트 갤러리에 올라 있는 ID 온리유님의 합성 작품- 최근 대선을 앞두고 불거진 '정몽준 후보사태'를 패러디를 통해 비판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을 항상 가벼움만을 추구하고, 놀기만 일삼는 '놀새족'으로만 평가한다면 '햏자'들에 대한 모독이 될 수 있다. 이들은 때로 서로 가지고 있는 디지털 카메라 등의 하드웨어에 대한 정보나 포토샵과 같은 소프트웨어 정보를 교환하면서 인터넷의 정보 공유 정신을 일부 실천하기도 하고, 자신이 손수 그린 만화나 디자인하고, 만든 작품들을 사진으로 찍어 올려놓고 제삼자인 햏자들의 평가를 받는 등 긍정적인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아햏햏 문화는 어떤 의미를 갖나?

아햏햏을 탄생시킨 이들은 이른바 인터넷 '폐인'을 자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서로를 햏자로 추켜세우는 모순된 어법을 사용한다. 이런 상황은 그들이 사용하는 말처럼 아햏햏함 그 자체인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실시간으로 올라온 사진에 대해 서로 답변을 주고받는 모습을 조금만 관심을 갖고 살펴보면 이들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대강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은 누군가 올린 사진의 특징을 재치 있는 선문답으로 풀어가기도 하지만 특별히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사진을 보거나, 상황을 접했을 때 아햏햏이란 말로 일축해 버린다. 신기한 것은 폐인을 자처하는 햏자들은 '아햏햏'하며 툭 던져 놓은 상대의 말을 이심전심으로 알아차리고 있는 듯 보인다는 점이다. (하지만 설령 알아차리지 못한다해도 크게 문제가 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음과 뜻 심지어 출처조차 불분명한 아햏햏이란 말은 활자보다는 영상 이미지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받는데 익숙한 디지털 영상 세대가 우연히 발명한 '이미지 언어 1호'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이건 단순한 추측일 뿐이지, 정확은 진단은 아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정확한 조사와 분석은 아햏햏 문화에 관심 있는 언어학자·사회심리학자·문화비평가 등 전문가들의 몫으로 떠넘겨야 할 것 같다.

아햏햏 문화와 관련해 최근 <시사저널>은 문화 평론가 조제희 씨의 입을 빌려 "아햏햏을 반복하며 대화를 닫아 버린 이들야말로 역으로 소통을 열망하는 자들일지도 모른다. 무가치한 소음투성이처럼 여겨지는 세상, 이 속에서도 이들은 진정한 소통을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라는 의미 심장한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어쨌거나 2002년 인터넷을 강타한 '아햏햏'은 네티즌들 사이에서 반향을 불러일으키면서 언론의 관심을 끌어 모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폐인햏자'들은 이런 언론보도에 대해 여전히 '아햏햏'하며 무관심한 표정을 짓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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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자. 개인주의자. 이성애자. 윤회론자. 사색가. 타고난 반골. 충남 예산, 홍성, 당진, 아산, 보령 등을 주로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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