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기자만들기' 프로그램에 참석했을 때 담임 선생 오연호 기자가 한 말이 있다.

"좋은 기사란 가슴이 박동칠 때 나온다."

지금 자판을 두드리는 내 손은 떨리고 있고 가슴은 마구 뛰고 있다. 이런 첨예한 이슈에 대해 한발 물러서 있는 사람도 아니고, 그 격한 시위현장에서 시위대와 몸을 부딪치고 있는 기동중대장으로서 이 문제에 대한 생각을 밝힌다는 부담감일 수도 있다. 또 한편으로는 그런 위치이기에 살 냄새나는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다는 희망도 가져보기 때문이다.

무죄판결 이후 우리 사회의 시각은 양분된 듯하다.

시민사회단체들은 ▲미군재판의 무효 선언 ▲이 사건의 재판권 이양 ▲불평등한 소파협정 개정 등의 요건을 충족시키지 않는 '사과'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화염병 투척 등 극한 투쟁이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정부에서는 26일 심상명 법무부 장관이 여중생 사망사건 피의자 무죄 판결에 대해 "불평등한 결과가 아닌 '국제적 관례'에 따른 것"이라 하였다. 또한 "미국은 미국 법 상식에 맞는 재판을 하기 때문에 우리와는 좀 다르다"고 강조하고 "미국은 중대한 과실이나 음주운전 등 특별한 경우에만 형사적 제재를 가하고 대부분 민사로 처리한다"고 설명했다.

그 양쪽의 첨예한 충돌 속에 나와 우리 대원들이 있다. 보통은 굳게 입을 다문 채 서 있는 존재로만 보이지만, 이 문제에 대한 원만한 해결을 누구보다도 자신의 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기동대원들이다. 그만큼 절박하다. 그래서 한여름의 땡볕 속에서도, 그리고 한겨울의 한파 속에서 현장에 서 있으면서 생각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 생각의 편린들이다. 양측 모두의 주장(그 결론은 다르지만)처럼 두 미군병사의 무죄평결로 이 사건이 물건너간 것인가? 아니다. 세상에 엄연히 피해자가 있는데 가해자가 없는 경우는 없다.

문제는 양측 모두 문제의 본질보다는 달리 뜻하는 바에 너무 집착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 쪽에서는 반미시위의 확산과 한미 우호관계의 손상에 대해서 우려를 하는 것 같고, 시민단체에서는 미군범죄와 소파개정의 필요성을 국민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선정적인 구호로만 일관하는 것 같다.

사건 당사자인 미국 사병의 무죄판결에는 이런 문제점이 있었다. 개인적인 사건으로 몰아간 측면이 강했다. 나 역시 한 조직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 메카니즘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미군도 조직이다. 그 조직 속에서 움직이는 사람은 특별히 돌발적인 개인행동이 아니면 그 조직의 책임이다. 바로 미국 쪽에서 주장하는 공무 중 발생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두 미군사병에만 초점을 맞추면 법무부장관이나 시민단체의 말이 모두 틀리지 않을 수 있다. 두 미군 사병이 속한 부대는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부대다. 이동을 하더라도 계획이 있고, 지시명령이 있고, 각종 돌발 상황에 대한 대책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조직인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도 일부 그런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지만, 차량이동에는 지휘관이 있고, 선도차량이 있다. 차량이동 계획에서 굳이 큰길을 두고 좁은 길을 택한 실수가 있었다는 주장도 있고, 차량이동 중에 충분한 휴식이 보장되지 못했다는 주장도 있다.

더군다나 미군의 두 사병은 재판과정을 통해서 공통적으로 지휘관에게 그 책임을 미루는 진술을 했다. 이제 문제는 자명해진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다는 경우는 정말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법체계가 다르다 하더라도 이런 경우를 상정하여 법인이나 어떤 조직에 대해서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한 법리가 있다.

그런데 시위현장에서나 인터넷, 보도를 통해서 초기부터 이런 문제에 대해서 주의를 환기하는 목소리는 발견하지 못하였다. 결국 두 미군사병에게만 초점이 맞추어지고 또 기소가 이루어졌다. 그 결과는 뻔할 수밖에 없었다.

두 사병에 대한 무죄판결에 대한 번복 방법은 없다고 한다. 단순히 국민감정이나 정서로 우리나라도 아닌 어느 한 나라의 법률체계를 바꿀 수는 없는 것이다. 이점이 내가 시위현장에서 직접 듣는 시민단체의 주장과 구호에 의문을 가지게 하는 이유이다.

국민의 분노를 화염병을 던지고, 엄연히 군사시설이자 치외법권지역인 미군기지 안으로 뛰어들고, 경찰에게 몸싸움과 욕설을 퍼붓는 것으로 보여주어야 이 문제가 해결된다는 시위 주최자의 말은 왠지 현실감이 부족해 보인다.

이슈화에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시위 주최자의 전략이나 논리적 주장이 국민들에게 먹혀들어 갔다기보다는 아이러니하게도 경찰이 일조를 했다. 지난 여름부터 여중생 범대위 등 관련 집회에 임하면서 시위자들의 행동을 보면서 예측하던 바가 현실로 된 것이다. 1인 시위에서 수십명 정도의 시위대가 수백명에서 천명 가까이 불어난 것이다.

경기 경찰은 사건 관련 시위대의 표현처럼 서울경찰처럼 진압방식이 교활하지도 못했고, 매끄럽지도 않았다. 시위가 일상사인 서울지역과 타 지역의 기동대간의 의식이나 훈련 정도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좀더 국내 언론이나 정치인 등이 사건 초기부터 이 문제점에 대해서 주목하고 목소리를 내어주었다면 하는 아쉬움을 우리 경찰은 가지게 된다. 여하튼 이슈화가 되어서 이제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시위대와 경찰만의 격렬한 몸싸움과 상처로만 남지 않을 것으로 보여 한편으로 다행으로 여겨진다.

이제는 차분하게 문제의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부분에 이 사회의 지혜를 모을 때라고 생각한다. 일사부재리. 미군 두 사병에 대한 처벌은 불가능에 가깝게 되었다고 인정해야 한다. 이번 효선이, 미순이의 억울한 죽음에서 두 불쌍한 영혼을 그나마 달래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여야 한다. 그것이 바로 미군범죄에 대한 정부의 자주적이고 엄격한 대처,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소파개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미 기소된 두 사병이 아니라 미군측에서 실질적인 가해자를 찾아 기소를 하는 것이다. 그것이 과실범을 처벌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27일 오후 여중생 사건 관련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주최한 노동자 결의대회에 이어 같은 장소에서 '제1차 범국민시국대회'가 열렸다. 현장에 있었던 기동중대장으로서 시민단체에게 고언으로 전달할 목소리가 있다.

인터넷 신문으로도 보도되었지만, 상당히 양호한 집회였다고 생각한다. 5게이트쪽으로 진입하기 위해 인도상에서만 몸싸움이 있었다. 시위대에겐 항의를 위한 평화행진이었고, 같은 심정이지만 법에 의해서 움직이는 경찰에겐 결코 허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역시 오마이뉴스에 단편적으로 묘사되었지만, 그 극한 몸싸움 속에 최선두에 선 시위대와 기동대원들의 탈진도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지만, 이제는 시위대의 전략이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18개월 전 경찰의 신집회관리대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 파문 끝에 정말 기동중대장으로 전임되었기에 현장 중대장으로서 그 대안 모색에 주력해왔다. 그것은 바로 '경찰비례원칙'에 의한 집회시위관리였다. 법은 모든 것을 규정하지 못하므로 돌발적이고 긴급하고 현장성이 강한 경찰권의 발동을 제어하기 위해 정해진 것이 바로 경찰비례의 원칙이다. 한마디로 '참새를 잡기 위해 대포를 쏘지 않는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웃 중대에서도 원용하고 있지만, 우리 중대는 상황에 따라 경찰봉은 물론 방패마저 전면에 내세우지 않을 때가 많다. 27일에도 그랬다. 우리 중대가 맡은 임무는 시위대의 돌발적인 차도점거에 대한 대비였다. 일시적 흥분으로 인해 시위대들이 시위대열을 이탈하더라도 맨손의 대원들이 중대장이나 소대장과 함께 말로써 설득해서 위법을 예방한다.

아무래도 방패를 앞에 세우면 사람이 아니라, 방패란 물체로 보여 발길질이나 격한 몸싸움을 걸어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방패에 의한 시위대의 부상을 막아보고자 하는 의도이다. 그래서 인도와 접한 부분에서 차도 쪽으로 일정 공간을 확보하고 대기하고 있었다. 다른 시위현장과 마찬가지로 27일 오후에도 우리 중대와 시위대의 불필요한 마찰은 없었다.

그리고 반드시 채증요원을 배치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시위대와 상당한 인식의 차이를 느낀다. 일부 시위대에서는 경찰의 채증을 무슨 범죄 취급하여 대원을 납치하고 장비를 강탈해 간다. 그리고 시위를 주최하는 사회자는 이런 대응이 당연하단 듯이 선동한다. 그러나 그것은 적어도 미군의 자의적인 법적용과 불법을 적시하는 시위대의 언동이 되어서는 안된다.

민노총 등에서 유포하는 경찰 채증에 대한 논리는 대법원 판결까지 내세우고 있지만, 그 판결은 엄연히 사적인 장소에서의 채증을 두고 내린 판결이다. 초상권과 관련해서도 독일의 명문규정은 집회시위현장에서 인정하지 않음을 명확하게 해두고 있다. 경찰이 불법현장에서 채증을 하는 것은 국민이 만들어 준 법률에 의거한 정당하고 의무적이기까지 한 행동이다.

실제로 시동을 건 차량으로 대원들을 향해 돌진하고, 심각한 폭행을 가한 시위대들이 '경찰이 뒤에서 차를 밀어서 차가 밀린 것뿐이다', '지나가는데 경찰이 다짜고짜 잡았다'고 검찰에서 주장했으나, 우리 대원이 촬영한 채증 자료에 의해서 구속을 시킨 사례가 있다. 폭력을 염두에 둔 일부 시위대는 싫겠지만, 엄연히 정당한 공무집행임을 이제는 인정해주어야 한다.

경찰의 채증과 관련되어 불필요한 마찰이나 불법체포나 감금 등의 위법상황이 자주 발생하여 지난 7월에는 국가인권위에 이 사항에 대한 명확한 태도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세워주기를 진정하였으나, 진정 접수 후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인권위는 자신들의 소관이 아니라고 각하해 버렸다.

그런데 시민단체가 주장하듯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가 없는 사안이 우리 중대에서도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어난 시위대의 언동에서 미군범죄 척결과 소파개정에 대한 시민단체의 문제점이 노정되어 있어서 이 이야기를 덧붙이는 것이다.

문제는 내가 중대장으로서 나중에 혹시 원하지 않는 충돌이 생길 경우, 시위대들이 일방적인 주장에 대응하기 위해 중대원에게 내린 대비책이었다. 최루탄이 없어진 이후, 시위대와 경찰간의 완충지대는 없어졌다. 그래서 시위현장에서 경찰의 보다 원거리 배치 또는 시위대 자율적인 질서유지를 강조하는 공개서한을 보내기도 하였다. 그날도 우리 중대 바로 앞에서 우리 중대의 대형과 자세, 장비를 촬영하여 시위대에게 적의가 없음을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었다.

방패를 들지 않는 대원들이 전면에 나서고 시위대와 최소한의 공간을 확보하여 불필요한 충돌이 생기지 않도록 한 대형모습을 촬영해둔 것이다. 일단 촬영하고 채증대원들을 우리 중대 뒤쪽에서 폭력상황이 발생할 경우 채증을 하기 위해 뒤로 가서 서도록 명령했었고, 그 상태를 확인하고 시위대쪽으로 보고 있을 때였다.

시위대는 미군기지 5게이트 쪽으로 몸싸움을 하기 위해 우리 중대 앞을 지나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 대원이 '우리 채증대원이 시위대에 의해서 납치되었다'는 보고를 받았다. 우리 중대와 시위대열 사이에서 우리 중대를 촬영하다가 납치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경우에 상황도 파악하지 않고, 무리하게 대원들을 이끌고 시위대안으로 갔다간 서로의 오해에 의해서 폭력상황으로 비화될 우려가 있어, 나와 해당 소대의 경찰관만 데리고 대원을 끌고가는 학생들에게 다가갔다.

한 학생의 무리가 저지하면서 다짜고자 욕설과 함께 적의를 드러냈다. 그리고 한 학생은 어디선가 빼낸 필름을 펼쳐 보이며 '불법 사찰을 촬영한 증거'라고 들이대었다. 우리 중대는 예산을 절감하기 위해 사진기 모두가 디지털 사진기이다. 디지털 사진기에도 아날로그 필름을 넣는가. 시위현장에서 자주 보는 '마타도어(흑색선전)'다.

우리 대원을 둘러싼 일군의 젊은이를 1-2미터 앞에 두고 시위 주최측으로 보이는 인사에게 설명을 하였다. 신분을 밝히라고 하여 내 신분과 피납된 대원의 신원을 알려주었다. 같이 간 경찰관의 자필 확인 서명을 요구하여 응했다. 곧 주최측 사회자에게 그 쪽지가 건네지고 그 사회자는 '불법 채증' 현장이 적발되었다고 시위대를 향해 방송하였다.

대원은 주최측의 중재로 풀려났다. 몇몇 학생들이 폭행을 가하고 다시 억류하려고 하여 긴급히 빠져나왔다. 풀려난 대원은 우리 중대에 와서야 사진기와 보이스 펜(소형 녹음기)을 강탈당하였다고 보고해왔다. 그때까지의 과정은 기자나 인터넷 기자들에 의해서 모두 촬영이 되었다.

난감했다. 충분치 않는 예산으로 겨우 마련한 채증 장비다. 마침 5게이트쪽 진출 몸싸움에서 손가락 부상을 입고 지나가는 한 시민단체 지도자를 만났다. 사안을 설명하고 장비를 돌려줄 것을 중재해주도록 하였다.

잠시 후 다시 조금 전에 불법 채증을 적발했다던 그 사회자가 '경찰이 카메라를 분실하였으니 습득한 사람은 범대위 측에 제출해 달라'는 방송을 두 차례 걸쳐 하였다. 지난 7월에 시위대 옆을 지나치다가 갑자기 강탈당한 카메라는 국가인권위원들이 주최측에 말해서 돌려받았다.

그러나 27일 오후, 우리 중대의 장비는 돌아오지 않았다. 분명히 뺏긴 장비는 있는데 아무도 돌려주지 않는 것이다. 그런 경우 혹시 오해로 장비를 피탈하더라도 그 주최측에게 제출하여 사후에 돌려주는데, 빼앗간 학생들은 주최측에도 제출하지 않는 것이다.

디지털 사진기이므로 그 대원이 촬영한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동중대에서 사찰할 리도 없고, 그 촬영내용은 우리 중대의 대형모습과 시위대와의 간격을 촬영한 내용뿐이다. 그것은 분명히 사적인 강탈에 지나지 않는다.

미군범죄에 대해서 말하던 자신들의 논리에 자신들은 예외라는 억지는 평균적인 상식을 가진 국민들에겐 식상해진다. 모처럼 이슈화에 성공했다면 시위대는 또 다른 전략과 전술을 가져야 할 것이다. 지나가다가 들어도 이해되고, 공감이 가는 시위형태가 이제는 필요한 것이다.

27일 오후에 시위대에서 시연한 퍼포먼스는 무조건 성조기를 불태우는 것보다 신선했다. 생각을 많이 하고 공을 많이 들인 시위라고 생각되었다. 그만큼 국민들에게 전달되는 메세지는 차분하였지만 명확하였다. 몸싸움을 아직은 폭력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은 여전하였지만, 방패와 대원들의 보호장구를 빼앗거나 타격하는 일은 현저히 줄은 것 같았다. 시위는 시위로 그쳐야 한다. 어떤 대상에 대한 공격적 행동은 이미 시위범위를 넘는 것이다.

국민의 공분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그 전략일 수 있지만, 그 투쟁방향을 올바로 설정하여 민중들에게 알리는 것도 시위의 효율화와 목적 달성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어쩌면 시스템의 희생자일지도 모르는 불쌍한 두 사병에게만 초점을 맞추다가 실질적인 책임자와 범법자를 놓치는 우를 미 당국이나 정부에서만 범했을까? 시민단체 역시 개인이 아니고 공적인 존재이고 여론을 환기하기 위해 노력하는 지도층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그 학생들이 나중에라도 카메라와 보이스펜을 범대위를 통해서 돌려주기를 바란다. 시위주최측에도 전달하지 않았다면 사적으로 강탈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시위현장에 서있어 몸은 고단해도 눈길만큼은 따스하게 주고 싶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