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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새 글을 자주 쓰지 못하여 제 글을 즐겨 읽으시는 독자님들께 죄송스러운 마음 금할 수 없습니다.

요즘 고장에서 바쁜 일을 하나 준비하고 있습니다. 11월 23/24일 이틀에 걸쳐 시행하는 우리 고장 초유의 대규모 문학행사지요. 몸을 움직여야 할 일도 많고, 신경 써야 할 소소한 일들이 참 많군요.

고향에 몸을 놓고 사는 죄(?)일 것도 같은데, 때로는 내가 왜 이러고 사나 싶을 때도 있습니다. 시간 쓰고 돈 쓰고 고생하는 일이 조금은 억울하게 느껴지기도 하지요.

하지만 하나의 의무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 현실적인 보람과는 거리가 멀겠지만, 그 일의 의미와 가치를 알기 때문이지요.

제가 요즘 하고 있는 일과 관련하는, 지역신문에 쓴 최근의 글 두 개를 소개합니다. 저의 이런 소치를 너그러운 마음으로 관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근흥면 이장님들께 감사하며

지난달 25일 오전 근흥면사무소 회의실에서는 '이장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 나도 태안문학회장 자격으로 참석했고, 손명환 부회장과 전 근흥면장이었던 배광모 회원이 자리를 함께 했다.

지역 면(面)의 이장회의에 참석해 보기는 난생 처음이었다. 그런 만큼 나를 이장회의에 참석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근흥면 당국에 감사하는 마음 크다.

근흥면의 주민도 아닌 우리 세 사람이 근흥면 이장회의에 참석한 것은 특별한 까닭이 있는 일이었다. 근흥면 용신리에 소재 하는 '이래수문학비'를 태안군문예회관 마당으로 옮기려는 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근흥면 주민들에게 미리 취지를 설명하고 양해와 협조를 구하는 것이 꼭 필요하고도 중요한 일이기 까닭이었다.

회의 시작 직후 나는 근흥면 양수준 총무계장의 소개로 앞에 나가서 20여 명 이장님들께 먼저 죄송하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이래수문학비를 태안군문예회관으로 옮겨야 할 필요성과 당위성을 상세히 설명했다. 서산시문화회관과 논산공설운동장의 예를 들며 사람들이 수시로 많이 모이는 문화 공공 장소에 문학비를 옮기면 그 문화 공공 장소도 풍미되고, 홍보 효과와 가치성도 제고되면서 관리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그에 따라 영구 보존 관리 방안이 효율적으로 확보될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그러면서도 이전 추진의 중요한 이유의 한가지인 관리 문제와 한계에 대해서는 근흥면 주민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가급적 거론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근흥면 이장님들의 반응은 의외로 이래수문학비의 이전을 반대하는 입장이 완강했다. 그들은 고(故) 이래수 박사가 태안 지역 출신으로서는 최초의 등단 문인이라는 사실, 비록 일찍이 고향을 떠나 살았으되 고향에 대한 지극한 애정으로 고향 땅에 최초로 문학 운동의 씨를 뿌린 분이라는 사실, 이래수문학비가 태안 지역 최초의 문학비라는 사실 등을 소상히 알고 있었고, 그것에 대한 대단한 애착과 긍지를 가지고 있었다. 무릇 기념물은 기념물 자체뿐만 아니라 그것이 존재하고 있는 자리도 중요한 법이라는 말도 했고, 근흥면 지역의 몇 안 되는 문화 보존물 중의 하나인 이래수문학비를 근흥면 밖으로 옮길 경우 근흥면 주민들이 가지게 될 박탈감과 상실감을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느냐는 말까지 나왔다.

그리고 더욱 특이한 말은, 이래수문학비 이전 논의가 나오게 된 배경에는 관리 부실 문제가 있을 것인 즉, 그 점에 대해서는 우리가 깊이 반성해야 한다는 한 분 이장님의 발언이었다. 관리를 잘하지 못한 점과 문학비에 대한 주민들의 가치 인식을 높이지 못했던 점에 대해서 반성하는 마음으로 문학비 유지 보존을 추구해야 한다는 논법이었다.

여러 가지 설왕설래 끝에 현 시점에서는 이래수문학비의 이전을 보류하는 것이 옳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앞으로 이래수문학비의 관리 보존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면서 주민들의 가치 인식을 끌어올리는 일에도 신경을 쓰되, 보존 관리에 어떤 한계가 노출되거나 이전에 대한 공감대가 주민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형성되면 자신들이 스스로 군(郡)에 이전 건의를 하겠다는 이장님들의 말을 듣고 나는 한 발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근흥면 이장님들이 공유하고 있는 이래수문학비에 대한 애착과 자긍심에 감사를 표했다. 태안군문예회관 건립 이듬해인 올해 이래수문학비 이전 사업을 마무리짓고 그것을 기념하는 문학 행사를 실행하려던 계획을 일부 수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지만, 오히려 잘된 일인지도 몰랐다. 다행히 올해는 이래수문학비를 건립한 지 만 10년이 되는 해였다. '이전 기념' 대신 '건립 10주년 기념'으로 가면 행사와 명칭의 뜻도 이미지도 더 좋으리라는 생각이었다.

이래수문학비 이전을 추진했던 일로 해서 근흥면 주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린 것을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아울러 이래수문학비에 긍지와 애착심을 보여 주신 것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표한다. 근흥면 이장님들의 그런 마음이 주민 모두의 마음으로 발전하고 문학비에 대한 가치 인식이 지역사회에 자연스럽게 확산되기를 소망한다.

건립 당시에 여러 곳으로부터 기증 받아 심었던 많은 값비싼 나무들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현실, 때로는 화물차 주차장이나 오물 하치장을 방불케 하는 모습이 다시는 노정 되지 않으리라는 기대와 믿음도 가능할 것 같다.

이래수 박사의 고향인 근흥면 땅에 문학비를 세우는 일에 앞장섰던 사람으로서 10년 전의 그 노고를 즐겁게 회억하며 새롭게 보람과 긍지를 느낀다.

*<태안신문> 11월 8일(금)  


'태안문학 대축전' 행사를 알리며
우리 고장 최초의 '문학행사'를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34년 전인 1968년 12월 태안읍 남문리 사거리 근처에 있었던 <백양다방>에서 며칠 동안 열린 '동인지 「여울」창간호 발간 기념 시화전'이 최초의 본격적이고 공적인 문학행사였다. 그때 이후 무려 16년 동안의 공백이 있은 다음 1984년 11월 필자의 첫 작품집인 장편소설 「신화 잠들다」의 출판기념회가 남문리 반도신협 3층 공간에서 열린 것이 두 번째였다. 그리고 1989년 「흙빛문학」10집 출판기념회가 역시 반도신협 공간에서 열렸던 것이 세 번째.

그 후 이래수문학비 제막식(1992년 9월), 흙빛문학의 두어 번의 출판기념회들, 「태안문학」창간호 출판기념회 (1998년 11월), 채광석시비 제막식 및 채광석문학의 밤(2000년 7월), 태안문학 제5집 및 김봉철 처녀시집 「하늘에 구름 떠가고」·지요하의 20인 명인 탐방기 「명맥」출판기념회(2000년 11월) 등이 줄을 이었다.

이와 같은 문학행사들이 간헐적으로나마 우리 고장에서 있었으니, 우리 고장도 어느 정도는 문화적으로 어떤 구색이나 풍모를 갖추고 있는 셈이다. 비록 그 행사들의 전반적인 풍경이 별로 풍성치를 못해서 문인들에게 쓸쓸함과 비애 같은 것을 안겨 주는 것이었긴 하지만, 그래도 그런 문학행사들이 우리 고장에서 열렸다는 사실에서 고장의 문인들은 스스로 위안을 갖는다.

고장의 문학지 발간과 문학행사들로 대변되는 이른바 '문학운동'이라는 것은 고장의 문인들에겐 '꼭 해야 할 일'에 속한다. 이 세상에는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이 있다. 사람들은 대개 '하고 싶은 일'을 선호한다. 그것에는 성공했을 경우 '보람'이라는 이름의 많고 좋은 반대급부가 따른다. 그에 반해 '해야 할 일'의 경우에는 현실적인 반대급부라는 것이 거의 따르지 않는다. 자기 희생이나 손실 따위를 각오하거나 동반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학운동은 이미 '하고 싶은 일'에 속하지 않는다. 그것은 숙명적으로 처음부터 아예 '해야 할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별로 즐겁지 않은 일, 현실적인 보람 같은 것은 기대할 수도 없고 오히려 손실을 감내해야 하는 일, 그럼에도 완전히 포기하지 말고 누군가는 꼭 해야만 할 일이라는 것은 참으로 분명하다.

하지만 누군가는 꼭 해야만 할 일이라는 이 사실에는 의무를 포괄하는 숙명성의 의미가 더욱 강하고, 그에 따라 장엄함이 실팍하게 자리한다. 그렇다. 다소 추상적이긴 하지만, 그 숙명성과 장엄함을 배제하고서는 그것의 성립 이유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아무튼 그 숙명적인 의무에 붙들려서 고장의 문인들은 또 하나의 문학행사를 기획하고 시행하게 되었다. 이 달 23일과 24일, 연 이틀에 걸쳐 갖게 되는 《이래수문학비 건립 10주년 기념 2002 태안문학 대축전》이라는 이름의 행사다. 여기에서 '태안문학'이라는 말은 '태안문학회'를 뜻하지 않는다. '태안 전체의 문학'이라는 뜻을 표징한다.

오늘의 문학행사를 기획하게 만든 고(故) 이래수(李來秀) 박사는 근흥면 안기리 출신으로 문학평론가와 동국대 국문과 교수로 활동했던 분이다. 생전의 문명은 그리 화려하지 않았으나, 「현대문학」지 추천으로 등단한, 우리 고장 출신으로서는 최초의 등단 문인이라는 사실, 그리고 고교 시절부터 고향을 떠나 살았으되 고향에 대한 지극한 애정으로 고향 땅에 최초로 문학운동의 씨를 뿌린 분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의 고향 길처인 근흥면 용신리 어귀에 문학비를 세웠으니, 그로부터 어느새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문학비를 세운 것으로 우리의 '의무'가 마감된 것은 아니다. 10년 세월의 둔덕 위에서 그 일의 의미를 되새기며 문학운동의 불씨를 또 한번 되살려보는 것은 참으로 마땅한 일이 아닌가.

올해 이래수문학비를 태안군문예회관 마당으로 옮기려는 일을 병행 추진했던 관계로(결국 그것은 보류했지만) 행사가 11월로 늦어졌고, 이른 추위와 잦은 일기 불순으로 걱정이 되지만, 우리는 이번 행사 준비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대축전'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만큼 이번 행사는 우리 고장 초유의 대규모 문학행사다. 초·중·고 백일장, 시인 조재훈 교수님의 문학강연, 백일장 시상식과 나태주 시인의 얘기 한 토막과 시낭송 그리고 노래 등으로 꾸며지는 '문학의 밤' 행사는 23일 태안군문예회관 소공연장에서 열린다. 그리고 태안문학 회원과 가족들의 '문학기행'은 24일 하룻동안 당진의 심훈 선생 고택, 서산의 민태원 선생 생가지, 홍성의 한용운 선생 생가, 근흥면 용신리 이래수문학비 등을 돌아보게 된다.

한국문화예술진흥원으로부터 350만원의 지원금 외에 여러 독지가들의 성금으로 시행되는 이번 행사가 우리 고장 정신문화의 새로운 활력소가 되기를 기대하며,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과 후원기관인 태안군 태안군교육청 태안문화원 태안신문사에 깊이 감사한다.

*<태안신문> 11월 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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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