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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이란 흔히 한 시대를 번져나가는 외향적인 면이나 풍조를 일컫는 말이다. 여성들의 똑같은 옷차림과 화장, 머리스타일을 두고 왜 그런 화장을 하느냐고 묻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왜냐면 열이면 아홉이‘요즘은 다들 그렇게 하니까요, 이게 유행이에요.’라고 대답할 것이기 때문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과 가치관, 행동양식에도 유행은 쉽게 자리잡는다. 자기 반성이나 논리적 사고 과정없이‘요즘은 다 그렇게 생각하니까요’라는 대답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는 것에서 패션과 같은 가시적인‘유행’의 특성과 꼭 닮아있다.

한국의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요즘‘유행’하는 생각은 아마도‘자아실현’과 왜곡된 의미의 ‘남녀평등’내지는‘여성해방’이 아닐까 싶다. 병사들의 사기를 높이는 구호처럼 이 세 마디는 요즘 한국 여성들을 주문 걸리게 만들고 있다.

여성들, 육아와 재능 사이에 ‘나의 선택’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후 각오했던 대로‘욕’을 먹었다.

글의 요지는‘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모성이라는 불변의 가치 앞에서 자신의 욕구와 재능을 잠시 접고 외부의 조건과는 무관하게‘스스로 가정을 선택’할 수 도 있을 것 같다’는 것이었는데, 내 글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육아는 여성의 몫만이 아니며, 남성, 나아가 사회, 국가가 함께 나누어야 할 책임이다.

여성들이 자유롭게 사회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탁아문제가 해결될 방법을 모색할 일이지 아이 때문에 집안에 들어앉아 있으라는 게 말이 되느냐, 나는 추호도 그럴 생각이 없으니 너나 그래라. 라는 등 원색적인 비난의 목소리 일색이었다.

이들의 논리는 소위 ‘자아실현’을 위해 바깥일을 하겠다는 것인데, 같은 일을 하는 남자들에게 자아실현을 하고 있다는 말을 쓰지는 않으며, 남자들 스스로가 자아실현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아직은 보지 못했다.

소위 진보적 여성들이 사용하는‘자아실현’이라는 말에는 몇 가지 필수 요소가 있다. 즉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니며, 또 여자혼자 벌어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일하는 것이 아니어야 하며, 제 아무리 전문직 종사자라도 남편과 이혼이나 사별을 해서 남은 식구들의 생계를 짊어져야 하는 폼 나지 않은 처지에 있다면 역시 그 범주에 들이지 않는다.

수많은 여자들이 가정과 아이들을 돌보고 싶어도 돌볼 수 없는 처지에서 열악한 근무조건과 작업환경 속에 남자처럼 아니 남자들보다 더 고되게 생활전선에서 뛰고 있지만 이들을 두고 ‘일하는 여성’이라는 찬사의 꼬리표를 붙이지는 않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요즘 여성들이 거품을 무는 여성해방이니 남녀 평등 논리에도 절반의 위선을 감추고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소위 여성단체들의 주장 가운데는 반론 제기를 위한 반론, 남녀 평등대우가 아닌 여성 특대우에 가까운 억지를 부리는 느낌을 종종 받을 때가 있다. 이슈가 먹혀들게 하자면 강한 제스쳐가 요구될 때도 있겠지만, 때로는 여성을 집단 응석받이로 취급하는 것 같아 그런 권리는 아예 안 가지는 게 나을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남녀 동등의 취업 기회와 가사 노동의 절대 분담을 주장하는 여성들 가운데 자신은 직업이 있는데 남편은 실직 상태이거나 남편이 정말로 가사가 취미에 맞아서 ‘자아실현’의 장으로 가정을 택한다면 그것을 다른 사람 앞에서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아내가 몇이나 될까.

또 다르게는 남편보다 아내의 직업이 세칭 더 낫다면 아내 자신이 그 사실을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기란 생각보다 어려운 법이다. 막말로 변호사나 의사인 여자가 평범한 직장 남성과 결혼한다면 손해라는 생각은 누구보다 여성 자신이 먼저하는 계산이다.

내 남편의 직업이나 학벌은 적어도 나와 같거나, 나보다 나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남부끄럽다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는 한 진정한 남녀 평등의 길은 남자가 아닌 여자 스스로가 막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내 남자는 겉으로 드러나는 조건에서 나보다 나아야하고 나는 다른 남자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겠다고 주장한다면 결국 여성들을 특별 대우하라는 얘기 밖에 안되지 않을까.

문제를‘성차별’이니 하는‘의식화’로 풀어가려고 할수록 남녀가 적대감만 키울 뿐이다.

아이를 맡는다는 것은 완벽한 국가 정책이나 제도, 훌륭한 시설로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사람을 돌본다는 것은 훼손이나 도난의 위험없이 안전하게 맡겨놓고 필요할 때 찾아가는 물건을 다루는 일이 아니다.

내가 글에서 인용한 내용은 복지수준이라면 나무랄 데 없는 영국에서, 그것도 물질적으로 넉넉한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 발생한 일이다. 그들은 이미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수준의 탁아시설을 국가적, 정책적으로 갖추고 있는 나라가 아닌가. 그런데도 물리적으로는 어찌해 볼 수 없는 일을 겪어야 했던 것이다.

내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기면서 그 사람 또한 ‘자아실현’이 됐건, 돈이 됐건 자신의 노동과 시간을 돈으로 맞바꾸고 있을 뿐인데 나를 대신하여 모성의 시간으로 채워달라고 요구할 수는 없지 않은가.

문제는 제도가 아니다. 내가 사는 호주에도 여성들의 가임율을 높이기 위해 임신한 직장여성들에게 보다 많은 특혜를 주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꾸어나가고 있지만 수혜당사자들이 오히려 이를 거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유는 아이를 키우든 직장을 다니든 내가 ‘선택하고 결정’할 일이지 나라 돈을 축내가면서까지 특별한 대우를 받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호주도 이미 탁아와 관련된 제도에는 더 손댈 부분이 없는 것은 물론이다.

내가 말한 ‘선택’ 도 같은 맥락의 이야기이다. 한 대선 후보의 아내 중 하나는 명문 대학을 나와 집에만 있기에는 재능이 아깝지 않느냐는 어느 여성지 기자의 질문에 ‘아이들을 제대로 키울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너무나 큰 일을 해낸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해 유독 눈길을 끌었다. ‘자아실현’좋아하는 여자들이 들으면 펄쩍 뛸 일일 테지만.

시대는 당연히 변했다. 직장에 다니고 싶지 않아도 다녀야 하는 여성들이 있듯이 겉멋으로 바깥을 나돌아다녀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어쨌든 여성들의 사회진출은 막을 수 없는 봇물인 것이 사실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성취와 성공은 다르다는 것이다. 성취란 어느 환경에서나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끊임없이 노력하며, 스스로 공부하고 열심히 일하는 것이지만 성공은 다른 사람들의 박수와 칭찬을 받는 것이다. 화려함과 명예, 남의 시선을 쫓는 것이다. 무엇을 원하는가는 각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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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철학과를 졸업한 후 1992년 호주 이민, 호주동아일보기자, 호주한국일보 편집국 부국장을 지냈다. 시드니에서 프랑스 레스토랑 비스트로 메메를 꾸리며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부산일보 등에 글을 쓰고 있다. 이민 칼럼집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과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공저 <자식으로 산다는 것>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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