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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는 비교적 '옷걸이'가 좋은 편이다. 신장 175cm에 체중이 76kg이니 누가 보아도 과히 밉지는 않은 체격일 것이다. 몸무게를 더 줄일 수도 있고, 또 그러는 것이 좀더 보기도 좋고 건강에도 유리할 테지만, 지금 정도의 몸피만 잘 유지한다면 건강 문제는 장담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옷걸이 상태는 그런 대로 계속 양호한 편일 것이다. 날씬한 몸은 아니어도, 중년 남성에게는 어느 정도 '풍채'라는 것도 필요하니….

삼십대 초중반 시절 한때는 체중이 무려 84kg이나 나가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뚱보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었다. 과식과 과음으로 통풍이라는 병을 부른,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무모하고도 미련했던 시절이었다.

학생 시절에는 팔방미인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모든 운동에 만능이었고, 축구 선수로 제법 활약을 하기도 했었다. 농구나 배구 선수로는 키가 좀 모자라는 편이었다. 축구 선수로는 괜찮은 신장이지만 내 포지션인 골키퍼로는 역시 좀 작은 편이었다. 그래도 열심히 골키퍼를 했는데, 그 시절의 내 민첩하고 날렵했던 동작이 꿈결처럼 그립다. 공중에 붕 떠올랐다가 땅바닥에 가슴을 대며 사뿐 떨어지고 했던 고양이 같았던 동작, 아름다웠던 내 모습이….

그런데 고등학생 시절, 축구 코치 선생님으로부터 들었던 말 한마디가 지금도 내 기억에 명료하다. "넌 몸이 가벼워서 골키퍼로서는 제격이지만, 다른 포지션이라면 체중을 좀 불려야 돼. 몸이 너무 가벼우면 몸싸움에서 불리하거든." 키에 비해 몸무게가 좀 부족하다는 얘기였다.

군에 입대할 때의 내 몸무게는 61kg이었다. 그리고 3년 후 제대를 할 때의 체중은 64kg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청년 시절에는 그 정도로 날씬한 몸피였던 것이다. 어쩌다 그 시절의 사진들을 보게 되면 스스로 감탄을 하게 된다. 내게도 이처럼 날씬하고 호리호리했던 시절이 있었다니….

나는 나이 사십에 결혼하여 두 아이를 얻었는데, 올해 중3인 딸아이의 현재 키는 166cm라고 한다. 나는 딸아이의 키만 알고 있지 체중은 모르고 있다. 도통 알 수가 없다. 그건 절대 비밀이라고 딸아이가 한사코 공개를 거부하니, 아내도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딸아이의 몸피는 어느 정도 오동통한 편이다. 심각한 상태는 절대로 아닌데도 딸아이는 무척 신경을 쓰는 눈치다. 재미있는 것은 몸이 비만한 편인 내 아내보다도 어머니가 손녀의 몸매에 더 신경을 쓰면서 아이의 섭생에 간섭을 많이 하신다는 사실이다.

딸아이에 비해 올해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녀석은 체중에 관한 한 무사태평이다. 한참 크는 아이이니 노상 들여라, 들여라 하듯 잘도 먹는데도, 그 먹는 것이 위로만 올라가고 옆으로는 전혀 퍼지지를 않는다. 녀석의 현재 키는 자그마치 174cm. 아빠와 맞먹는 키다. 어느새 녀석이 그렇게 커버렸다. 함께 나란히 서서 걸으면 녀석의 키가 아빠보다 더 큰 것 같다는 게 사람들의 말이다. 녀석의 몸이 호리호리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것이다.

열세 살 나이에 키가 174cm나 훌쩍 커버린 아들녀석의 현재 체중은 52kg. 녀석의 체중은 나도 쉽게 알 수 있다. 으레 목욕 동무가 되곤 하니, 녀석이 알려주지 않아도 내가 훤히 알게 되는 것이다.

나는 녀석이 아빠를 많이 닮았다고 생각한다. 키도, 체중도…. 앞으로 중·고등학생이 되면서 키는 아빠보다 더 크더라도, 체중은 아빠의 청년 시절 체중을 많이 넘지 않을 거라고 스스로 생각해 본다. 그런 녀석은 운동 신경도 아빠를 많이 닮았다. 달리기를 잘해서 6년 내내 운동회 때마다 일등만 하고, 유연하고 민첩한 몸으로 여러 가지 운동을 쉽게 흉내내곤 한다.

그런 녀석을 볼 때마다 어머니는 손을 젓곤 한다. 절대 운동할 생각 말라고…. 운동한답시고 공부와 담을 쌓는 날이면 신세 망친다고….

딸아이는 좀 이상하다. 키는 아빠를 닮은 것이 분명한데, 운동 신경은 영 딴판이다. 초등학생 시절 운동회 때마다 3등 이상을 한 적이 없고, 중학생이 되고부터는 체육 실기 시험에서 매번 죽은 쓰곤 한다. 체육 실기 시험이 추가되는 판이면 전 과목 평균 점수가 뚝 떨어지곤 하니, '나 원….'

우리 집은 딸아이가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학교에서 돌아오는 밤 9시 이후부터는 거실 풍경이 한결 오붓해진다. 23평 연립주택의 작은 거실에서 우리 다섯 가족은 정말 오붓한 시간을 갖는다.

얼마 전에는 우리 집의 저녁 거실에서 또 한차례 사람의 체중에 관한 이야기가 화제로 올랐다.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 후보 아들들의 병역 비리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종결된 시점이었다.

검찰 수사가 이 총재 쪽에 면죄부를 주는 식으로 싱겁게 끝나게 되리라는 것은 진작부터 충분히 예견했던 일이다. 일반 서민 관련 사건에 대해서는 엄청난 강압 수사로 고문도 해서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는 검찰이다. 그러면서도 정치 관련 사건에 대해서는 정치권의 눈치를 보며 저울질을 하다가 저울추가 가는 쪽으로 종결을 하고 마는 검찰의 습성은 어쩌면 우리가 영원히 극복할 수 없는 한계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이미 우리의 오랜 '상식'이며 검찰의 숙명적인 속성일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저 정치 권력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독립적으로 검찰력을 행사하는 이웃나라 일본이나 저 이탈리아 등의 검찰을 마냥 부러워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 국민 스스로 고집스럽게 선택하는 것일지도 모르고….

아무튼 저녁 거실에서 텔레비전이 전해 주는 검찰의 수사 종결 발표를 들은 우리 가족은 어쩔 수 없이 또 한번 사람의 체중에 관한 이야기를 화제로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내가 먼저 "검찰 수사는 저렇게 끝난다고 해도, 신장 179인 이십대 초반 청년의 체중이 45킬로였다는 믿을 수 없는 사실은, 계속 믿을 수 없는 사실로 남을 거야. 그 의혹은 계속 우리 사회에 여러 가지 불순하고 불온한 기류를 만들어내기도 할 테고…"라고 한 말이 화제의 시작이었다.

"난 오히려 더 비상식적이고 비정상적인 당신의 체중이 더 걱정인 걸."

나는 이렇게 아내에게 뼈 있는 농담 한마디를 던지는 것으로 관심을 접으려고 했는데, 아내가 발끈하는 것과 상관없이 딸아이가 아들녀석에게 던진 말이 가족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한결아, 너 앞으로 179까지 자랄 자신 있니?"
"179? 쳇, 날 뭘루 보는 거야? 내 키가 지금 174야. 그리구 내가 지금 초등학교 6학년, 열세 살이야. 179를 돌파허는 건 시간 문제라구."
"더두 말구 179까지만 자라라."
"왜?"

"지금 네 체중은 얼마니?"
"52킬로그램."
"앞으로 체중도 더 많이 늘겠지만, 키 179까지만 자라고, 그때부터는 체중을 45킬로까지 줄여봐."
"왜?"

"그러면 군대 안 갈 수 있어."
"피, 내 몸이 지금 이렇게 날씬허구 호리호리헤두 52킬로인데, 키가 더 자란 상태여서 어떻게 45킬로까지 줄이니? 그건 말두 안돼."
"그래두 줄여봐. 그래야 군대 안 갈 수 있어."
"쳇, 군대 안 갈라구 그렇게 체중을 줄이냐? 난 그런 짓 안해."
"왜?"

"그건 비겁허구 치사헌 짓이니께."
"피, 지금은 암만 그래두 군대 갈 나이가 되면 생각이 달러질 걸, 지한결."
"왜 그래? 날 뭘루 보구…."
이쯤에서 내가 한마디하고 나섰다.

"그건 그렇구, 한결이 너, 지금보다 키가 더 자라구 체중이 더 늘은 상태에서, 즉 청년이 되면 체중을 45킬로까지 줄이는 일을 시도헤 볼용의 있냐?"
"그건 왜요?"
"그게 과연 가능헌 일인지 한번 시험헤 볼 겸…."
"아빠두 참…. 날보구 아예 죽으라는 게 낫지, 그걸 말이라구 허세요?"

"마음을 독허게 먹구 시도를 헌다면 가능헌 일이 아닐까?"
"아빠, 나 그런 독종 아니에요. 군대 안 갈라구 그렇게 비겁헌 짓을 헐 생각두 없구요."
그때 아내가 또 화제의 중심을 바로잡는 말을 했다.

"병이 들어서 체중이 그 정도였다면, 병원 기록이 그것을 증명헌다면 누가 뭐라 하겠니. 또 진짜루 군대 안 갈라구 스스로 그렇게 179 신장이 45킬로까지 체중을 줄였다면, 도덕성이야 어찌되었든 그 의지와 고생에 감탄과 동정이라두 헐 수 있지. 그렇지만 그런 것이 아닐 거라는 데에 문제가 있는 거야. 도저히 의혹을 잠재울 수 읎다는 것에…."

"이제 신경 쓸 것 읎어. 이제 다 끝난 겨. 그런 것을 문제 삼는 국민두 많지 않구, 곧 모두 잊어버리게 될 테니께. 우리 민족의 숙명적인 속성은 어쩔 수 업는 겨."
이쯤에서 그 화제는 그만 종결이 되는 것 같았는데, 아들녀석이 또 한마디하고 나섰다.

"난 또 누구 얘긴가 했더니…. 암튼 내 걱정일랑 허들 마세요. 난 커서 군대 문제루 아빠를 곤란허게 허지 않을 테니께."
그러자 엄마 왈.
"얘가 정말 기특허게 아빠 생각까지 다 허네. 너두 필요 없는 걱정일랑 말어. 느이 아빠는 대통령은 고사허구 군수 꿈두 꾸지 않는 양반이니께."

나도 한마디.
"우리 아들, 엄마 말대루 증말 아빠 걱정일랑 허들 말어. 아빠는 아예 아들의 병역 의무를 면제시킬 수 있을 만큼의 실력두 돈두 업는 사람이니께…. 허긴 그런 실력이 있다면야 또 물르지…. 그눔의 실력 때문에 내가 어떤 맘을 먹게 될지…."

그러자 또 딸아이 왈.
"그러니께 한결이도 커서 군대 갈 나이가 되면 생각이 달라질지 모른다니깐요."

그러자 아들녀석은 조금 화난 표정이었다.
"왜 그래, 자꾸…. 난 절대 그런 사람 아니야. 그리구 내가 어떻게 이 키에 45킬로까지 체중을 줄일 수 있어…? 난 절대 그렇게 못해."

그때 내 뇌리에 괴이한 생각 하나가 선뜻 뛰어들었다.
훗날 청년이 된 아들녀석이 어떤 연유로든 병역 의무를 기피할 생각을 하게 되지는 않을까? 179cm 정도의 신장을 가지고 도저히 45kg까지 체중을 줄일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을 한 나머지 엉뚱하게 병역 거부 운동에 나서는 것은 아닐까?

아들이 훗날 뜻밖에도 병역 거부 운동이라도 벌이고 나선다면, 그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지레 걱정이 되는 우습고도 묘한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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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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