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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을 일컬어 '사회의 공기'라 한다. 사사로움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공익을 위해 소용되는 그릇이란 뜻이다. 이는 초등학생도 다 아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런데 이 나라에선 이와 반대되는 일들이 종종 일어난다.

어떤 신문지는 '공'에 앞서 '사'를 내세우고 '주관적 호오'에 따라 글 내용을 달리하는 몰상식한 짓을 거리낌없이 자행하고도 태연자약 낯빛 하나 바꾸지 않는다. 바로 '대한민국 대표신문'을 자처하는 <조선일보> 얘기다.

지난 12일 시공사가 발행하는 계간 '문학인'과 한국문예창작학회(회장 김수복 단국대 교수)는 최근 공동으로 실시한 '20세기 한국문학사 10대 사건 및 100대 소설' 선정을 위한 설문조사 결과, 20세기 한국의 최고 소설가에 <객지> <장길산> 등을 쓴 황석영(黃晳暎 58)씨가, 최고 문제작으로는 조세희(趙世熙 60)씨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선정됐다고 발표했다.

중앙 일간지들은 13일 이 사실을 문화면 기사로 일제히 보도했다. 제목들을 비교해 보시라.

- "20세기 최고 소설가는 황석영"(중앙일보)
- "20세기 한국 최고소설가는 황석영" 문학관계자 109명 설문(국민일보)
- 20세기 최고의 소설가는 황석영(한국일보)
- 20C 한국최고 소설가 황석영씨(세계일보)
- 20세기 최고소설가 황석영씨…계간지 '문학인' 선정(동아일보, 초판)
- '20세기 한국최고의 소설가' 황석영씨(대한매일)
- '20세기최고 소설가' 황석영씨(문화일보)
- "20세기 최고 소설가는 황석영"(한겨레)
- 20세기 한국문학 최고의 소설 조세희 '난·쏘·공' 문인 109명 설문조사(조선일보)


눈 밝으신 분들이라면, <조선일보>와 타 신문들의 상이점을 단번에 알아차리셨을 게다. <중앙일보>를 비롯한 모든 신문들이 '20세기 최고소설가로 뽑힌 황석영씨'에 초점을 맞춘 반면, 오직 <조선일보>만은 조세희씨의 <난.쏘.공>에 초점을 맞춰 제목을 뽑았다는 사실을. 이러한 차이를 어떻게 설명할까?

획일성에 대한 '자유언론' <조선일보>의 본능적인 거부? 모두가 '예'라고 대답할 때 홀로 '아니오'라고 말하는 <조선일보>만의 고고한 기개와 품격?

▲ 11월 13일자 <조선일보> 문화면에 실린 관련기사
ⓒ 조선일보 PDF
<조선일보>를 지지하는 분들은 어쩌면 그렇게 답할지도 모르겠다. 나아가 <조선일보>가 '일등신문'으로 군림하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며 득의한 웃음을 지으실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조선일보>가 '100대 소설'(20위까지)과 '논쟁·사조분야 10대 사건' 그리고 '제도·매체분야 10대사건'까지 도표로 상세하게 소개하면서, 모든 신문들이 가장 중요하게 보도한 '20세기 최고 소설가 순위'를 슬쩍 빼돌린 것은 어떻게 된 것일까? 또 황석영씨의 이름을 기사 맨 끝줄에 구차하게 끼워 넣은 것은 어찌된 걸까?

일언이폐지 왈, 내 눈에는 이것이 '다양성의 승리'가 아니라, <조선일보>의 '옹졸한 보복'으로 비친다. 황석영씨가 누군가? 지난 2000년 5월 30일 공개강좌에서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는 절대로 응하지 않겠다"고 천명해서 지식인들의 안티조선붐에 불을 지핀 인물이다.

7월에는 <조선일보>가 심혈을 기울여 재편한 동인문학상 후보에 자신의 작품 <오래된 정원>이 오르내리는 것 자체를 거부해 <조선일보>의 속을 발칵 뒤집어놓은 인물이다. 당시 황석영씨가 웅변한 '거부의 변'을 들어보시라.

▲ '20세기 최고 소설가'로 평가받은 소설가 황석영씨.
ⓒ 대산문화재단
"군사 파시즘과의 결탁으로 성장한 <조선일보>는 침묵과 수혜의 원죄의식으로 동참하게 된 기득권층의 이데올로그로서 막강한 언론권력을 누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난 시대에 사회의 기초 공리는 억압에 의하여 말살되거나 부인되었으며, 그 반대의 가설이 산더미처럼 재생산되었다.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수구 언론이 우리의 역사발전을 위해서도 개혁되어야 한다는 것은 시대적 당위일 것이다..."

"요즈음 <조선일보>는 정치·경제·사회면에서는 종전보다 더욱 반개혁적이면서도, 문화면에서는 '다양성'을 보여 주려고 하는 교묘함을 보이고 있으며, 좀 이질적인 문인들에게는 단 몇 매짜리의 칼럼 한 편에 다른 신문의 무려 다섯 배 가까운 원고료를 지급하고 있다. 어려운 시기에는 냉전적 공격과 터무니없는 폭로로써 '권력'을 누리고, 이제는 또 다른 방식으로 이를 유지해보려 하는 것인가?..."

"문학상의 상업주의와 사이비 권력놀음 따위의 문제점이 지적된 것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실상은 <조선일보>가 특정 문인 몇 사람을 동원하여 한국문단에 줄 세우기 식의 힘을 '종신토록'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무슨 경품 뽑기 대회도 아니고 불량품 가려내기도 아닐진대, 편 가르기와 줄 세우기 식의 사이비 권력놀음을 당장 걷어치워라. 심사에 동참한 동료 문인들에게도 엄중히 항의하건대, 나는 변변치는 않지만 떳떳하게 살 권리가 있는 한 사람으로서 더 이상 욕을 보이지 말아 주기를 부탁하는 바이다..."('동인문학상 심사대상을 거부한다' 중에서 발췌.인용, 2000.7.20, <한겨레>)


뿐인가? 2001년 7월 소설가 이문열씨가 칼럼 '신문없는 정부 원하나'와 '홍위병이 판친다'를 <조선> <동아>에 기고하여 사회적으로 큰 물의가 일었을 때,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 전화 인터뷰에 출연(7.10), "지식인과 언론의 유착은 이익을 취하려는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려 <조선일보>의 심사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또 7월 17일에는 <한겨레신문>에 "침묵이 지겹다"는 글을 게재하여 <조선일보>를 비롯한 족벌언론들의 횡포를 보고도 무기력하게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는 민족문학작가회의를 질타하기도 했던 인물이다.

이러한 황석영씨가 '20세기 최고 소설가'로 선정됐으니 <조선일보>의 눈길이 고울 리 없었으리라는 것은 불문가지. 모든 신문들이 황석영씨의 이름을 제목으로 뽑을 때, 오직 <조선일보> 홀로 <난.쏘.공>을 부각시키고, 황석영씨의 이름을 기사 맨 마지막에 거의 눈에 띄지 않도록 은근슬쩍 처리한 것 아닌가? 내 시각이 잘못됐다면 반박하라.

나는 <조선일보>의 불행에 연민을 금치 못한다. <조선일보>가 총애하는 작가 - '누구라고 말하지는 않겠어' - 대신 <조선일보>의 '페르소나 논 그라타'(기피인물)가 최고 소설가의 영예를 차지한 것에 대해.

덧붙이는 글 | 위 기사는 '하니리포터'에도 송고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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