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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베이징 변두리 골목
ⓒ 노순택

글 박현숙 / 사진 노순택

어느 날 외출을 하려고 보니 마땅히 신을 신발이 없습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여름샌들을 신을 수도 없고, 오랫동안 신지 않아 먼지가 뽀얀 운동화를 신자니 또 영 기분이 찝찝할 것 같습니다. 그마나 남은 한 켤레의 신발은 왼쪽 옆구리가 터져 있습니다.

난감한 기분이 되어, 애꿎은 신발들만 쏘아보고 있는데 순간 머릿속에 좋은 '해결사'가 떠올랐습니다. 아파트 입구에 매일같이 앉아 있는 신발고치는 아저씨입니다. 그 아저씨라면, 옆구리 터진 신발을 멀쩡한 새 신발로 바꿔놓을 게 틀림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 신발은 올 봄에 새로 산 것이라 수선만 한다면 아직도 몇 년은 거뜬히 신을 수 있습니다.

비닐봉지에 신발을 싸들고 아파트 입구로 나갔습니다. 다행히 아저씨는 아직도 그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매일 그 앞을 지나칠 때마다 손님들이 맡긴 '고장난' 신발들을 고치느라 눈 한번 제대로 마주친 적이 없었는데 그 날은 웬일인지 아저씨의 손이 한가합니다. 두 손을 턱 위에 올려놓은 채 넋놓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왠지 쓸쓸함이 묻어나는 모습이었습니다.

비닐봉지에 싼 신발을 내밀자, 그때서야 아저씨가 '기척'을 느끼는 듯 합니다. 옆구리 터진 신발 한 짝을 받아들더니, 상황을 다 알겠다는 듯이 아무 것도 묻지 않은 채 터진 신발을 수리합니다.

아저씨의 '침묵'때문인지 나도 수선비가 얼마인지 물어볼 엄두가 안 납니다. 그렇게 아저씨 혼자 수선하는 모양을 멀뚱히 지켜만 보고 있자니 그만 지루해지는 게 입이 간질간질해져 옵니다. 그래서 먼저 '운'을 뗐습니다.

"신발수선 일은 언제부터 하셨어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했어요. 한 열일곱 여덟 살 때부터인가?"

아저씨는 의외로 '얘기'하는 걸 좋아했습니다. 먼저 그렇게 운을 떼자마자 그 뒤로는 술술 묻지도 않은 얘기들을 계속 하니 말입니다. 아저씨는 올해 38살이고, 고향은 중국 허베이(河北)라는군요. 올 4월에 베이징에 와서 이 동네 저 동네로 떠돌면서 신발 수선하는 일을 한답니다. 말하자면 베이징의 많은 민공(民工, 농촌에서 도시로 돈벌이를 떠나오는 노동자들)들중 한 명인 셈입니다.

그런데, 이 아저씨는 그러한 일반적인 민공들과는 조금 다릅니다. 노점에서 신발을 수선하는 자영업을 해서가 아니라, 장애자이기 때문입니다. 아저씨는 두 다리가 불편합니다. 언뜻 보면 두 다리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 가까이서 자세히 보면 오므라들 을대로 오므라든 깡마른 두 다리가 보입니다.

"여섯살 때 소아마비에 걸렸어요. 학교도 못 다녔지요. 집에서 공부시킬 형편도 안되었지만 가뜩이나 농사일로 바쁜 부모님들이 매일같이 어떻게 날 업고 학교를 다닐 수가 있었겠어요."

철이 들기 시작하면서, 불편한 두 다리로도 먹고살 수 있는 밥벌이를 위해 신발 수선하는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더 나이 들어 그나마 이 일도 할 수 없을 지경이 되기 전에 부지런히 돈을 벌기 위해 베이징으로 왔다는군요. 부모님 돌아가시고 혼자되는 게 가장 두렵다는 말도 덧붙입니다.

"누가 나같은 사람하고 결혼을 하려고 하겠어요. 아가씨 같으면 하겠어요? 혼자서 살아가려면 부지런히 돈을 벌어 놔야죠. 그런데 요즘에는 공안들이 단속을 심하게 해서 그걸 피해 이 동네 저 동네로 돌아다니는 일이 아주 피곤해요. 머지않아 베이징에서 돈벌기도 힘들 것 같아요."

아저씨의 말마따나 요즘 베이징 시는 도시환경미화 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습니다. 마치 70년대 우리의 군사작전과도 같았던 새마을운동 풍경이 연상되는 것들입니다.

도시미관을 해치는 것들은 가차없이 '철거'하라는 지시가 내려졌고 그 중에는 노점상에 대한 단속 강화 항목도 들어 있습니다. 베이징 신문들에서는 이를 일컬어 대대적인 도시정형수술이 시작되었다고도 하더군요. 아저씨의 유일한 밥줄인 노점 신발수리점도 도시의 정형을 위해서 '철거'를 당해야할 운명입니다.

그러고 보니, 요즘 베이징에서 사라지는 것들이 너무나 많은 것 같습니다. 베이징의 전통적인 후통(골목)들이 사라져가고 있고, 집 앞에 있던 큰 재래시장도 올초에 완전히 철거되어 그 자리에 반듯반듯한 상점들이 들어섰습니다. 집 구할 때마다 제법 요긴하게 써먹었던 전봇대나 담벼락의 '셋방있음' 등과 같은 쪽지광고들도 철퇴를 맞았고요. 어느날 이 아저씨도 그렇게 우리집 아파트 입구에서 사라져 갈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당분간 아저씨의 '밥줄'은 길거리에서 신발을 수선하는 일입니다. 돈을 모아 정식 가게를 내기 전까지는 말이죠. 그러기 전까지는 제발 이 아저씨의 '거리'들이 철거를 당하지 말아야 할텐데요. 아저씨의 '밥줄'은 또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삼륜자전거랍니다. 사진 속 골목길에 세워둔 삼륜자전거가 보이시죠? 불편한 두 다리를 대신해, 약간 개조해서 만든 삼륜자전거는 항상 아저씨 옆에 덩그마니 놓여 있습니다. 마치 벗어둔 신발이 얌전히 주인을 기다리는 것처럼 말이에요.

해질 무렵, 아저씨의 삼륜자전거는 수선용 공구들을 뒤에 싣고서 아파트 뒤쪽 후미진 곳에 있는, 아직 철거되지 않은 낡은 가건물같은 셋방으로 아저씨를 퇴근시켜줍니다. 아침 출근길에도, 또 공안들한테 쫓겨다닐 때도 그 삼륜자전거는 늘 아저씨의 발이 되고 있습니다.

아저씨의 손을 거치니, 옆구리 터진 신발 한 짝이 어느새 멀쩡한 새 신발이 되었네요. 그냥 일어나기가 섭섭해서 마지막으로 쓸데없는 질문하나를 던져봅니다.

"언제까지 이 일을 하실 거예요?"
"생활이 지속되는 한 계속 해야죠."

'생활이 지속되는 한', 그 삼륜자전거도 계속 아저씨의 발이 될 수 있을까요? 옆구리 터진 신발이 다시 멀쩡한 모습으로 나의 발에 신겨져 생활을 지속하게 하는 것처럼 말이죠.

덧붙이는 글 | 이 사진을 모니터 바탕화면으로 사용하는 방법

* 별로 어렵지 않아요. 사진위에서 마우스 오른쪽 버튼을 누르신 후 '배경무늬로 지정'(또는 '배경으로지정')을 선택하시면 곧바로 사용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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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현숙 님은 베이징에서 중국정치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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