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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국어연구원이 편찬한 '표준국어대사전'.
ⓒ 구영식
112억원의 예산을 투입하고 500명의 학자들이 8년간 작업해 내놓은 <표준국어대사전>이 중국사전과 일본사전의 합성품으로 주체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윤철상 민주당 의원(문화관광위)은 4일 문화관광부 종합감사에서 "50만 단어 중 우리말은 변용되거나 없어지고 반면 중국 한자어와 일본어 등이 다수 수록되었다"고 지적하고 "국어사전의 수정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 의원은 <표준국어대사전>에 나타난 문제점을 세 가지로 요약했다.

1) 우리말은 소홀히 다루고 한자 중심으로 사전을 만들면서 쓰이지 않는 한자말을 다수 첨가하여 단어수를 늘렸다.
2) 외래어와 파생된 외국어를 올려놓았다.
3) 일본에서도 잘 쓰이지 않는 일본말까지 표준말로 올려놓았다.


윤 의원은 '표준국어대사전'에 나타난 문제점을 잘 보여준 예로 '푸른 하늘'을 뜻하는 한자말이 21개나 수록된 점을 들었다. 즉 '푸른 하늘'이란 우리말은 찾아볼 수 없고, 궁창(穹蒼), 벽공(碧空), 벽락(碧落), 벽소(碧소), 벽우(碧宇), 벽천(碧天), 소천(所天), 창공(蒼空), 창천(蒼天), 청명(靑冥), 청천(靑天), 청허(晴虛) 등만 올려져 있다는 것이다.

윤 의원은 "이중 일상 생활용어로 쓰이고 있는 창공과 청천 외에는 모두 배제해야 할 한자말"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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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의원은 또한 '뛰어나다'는 뜻인 걸출(傑出), 발군(拔群), 발췌(拔萃), 도월(度越), 우수(優秀), 일군(逸群), 절군(絶群), 초탁(超卓), 출중(出衆), 탁발(卓拔), 탁월(卓越), 탁출(卓出) 등도 발군, 발췌, 우수, 출중, 탁월 정도만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이는 말이라고 지적했다.

윤 의원은 "'푸른하늘'이란 용어는 일본어사전 '광사원'에서 '아오소라(靑空)'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우리 표준국어대사전에 올라 있는 유사용어 21개 가운데 11개가 일본어사전에 쓰여진 것으로 보아 나머지 용어는 중국어사전 등에서 따온 것"이라며 "우리 사전의 용어들을 일본사전, 중국사전에서 옮겨온 단어들로 50만 단어를 채우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았나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윤 의원은 "중국 고전에 나오는 용어를 따와 우리말처럼 올린 사례도 있다"며 '유암(柳暗)'과 '화명(花明)'을 예로 들었다. 이들 두 단어는 송나라 시인 육우의 시에서 따온 것인데 윤 의원은 "이들 단어는 '∼하다' 동사로 표현될 수 없는데도 '유암하다' '화명하다'로 쓸 수 있다고 되어 있다"며 "이런 단어의 뜻을 이해하고 있는 국민이 얼마나 되면 통용될 수 있는 단어라고 보는지 사전편찬자에게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고 문제제기했다.

윤 의원은 또한 접미사 '∼하다'의 쓰임새가 잘못된 점도 지적했다. 즉 '강설'(降雪)과 '강우'(降雨) 등의 단어는 독립해서 쓰는 경우가 없고 '강설량'(降雪量)이나 '강우량'(降雨量) 등의 합성어로 쓰이는데도 '표준국어대사전'에는 '강설하다' '강우하다'로 쓸 수 있다고 되어 있다는 것.

윤 의원은 국어사전 편찬자들이 우리말을 한자어로 변용시킨 사례도 지적했다. 즉 개천, 건달, 변덕, 생판, 답답, 오밀조밀, 호락호락 등의 우리말을 開川(열 개 내 천), 變德(변할 변, 큰 덕), 生板(살 생 널조각 판), 沓沓(거듭 답), 奧密租密(아랫목 오 빽빽할 밀 쌓을 조 빽빽할 밀), 忽弱忽弱(깜짝할 홀 약할 약) 등으로 쓰고 있다는 것.

하지만 이 가운데 개천, 답답, 호락호락 등은 재판을 찍는 과정에서 고쳐진 것으로 확인됐다.

윤 의원은 "우리 고유의 말을 그대로 살리지 않고 한자어로 표기해 거꾸로 한자어에서 나온 말처럼 오인하게 하고 있다"며 "국어사전을 편찬한 학자들의 우리말을 한자어로 만드는 재주가 놀라울 뿐"이라고 개탄했다.

윤 의원은 이어 일본에서도 쓰지 않는 말을 국어사전에 수록된 점을 지적했다. 대표적인 단어로 '담후청'(曇後晴: 날씨가 흐린 뒤 개임), 진유(眞鍮: 놋쇠), 원앙계(鴛鴦契: 금실이 좋은 부부 사이), 은문(恩問: 남의 찾아옴의 높임말) 등을 들었다.

윤 의원은 "1975년 삼성출판사에서 발간된 <새우리말 큰사전>에는 35만 단어가 수록되어 있다"며 "이보다 15만 단어가 늘어난 그 자체가 중국과 일본사전에서 도용된 단어들이 아닐까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 '표준국어대사전'의 문제점을 지적한 윤철상 의원.
ⓒ 윤철상 의원실
윤 의원은 또한 '국어사전의 사대주의'도 지적했다. 즉 우리 말인 '나라'와 한자어인 '국가'가 각각 합쳐진 합성어의 비율이 70년대 국어사전에서는 10 대 60이었던 데 반해 80년대에는 11 대 96으로 한자어 합성어 비율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는 것. 윤 의원은 다음과 같은 단어를 예로 제시했다.

횡문(橫文: 가로글) 영추(迎秋: 가을맞이) 추공(秋空: 가을하늘) 경중(鏡中: 거울 속) 동야(冬夜: 겨울밤) 노상(路上: 길위) 식육(食肉)하다(고기먹다) 음주(飮酒)하다(술마시다)

윤 의원은 이같은 '표준국어대사전'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1) '국어사전'이란 말을 '한글말사전'으로 바꾸어야 한다.
2) 우리말을 중심으로 낱말을 정리하는 기준을 세워야 한다.
3) '표준국어대사전'과 북한의 '조선말대사전'의 우리말 쓰임새는 2 대 8 정도로 차이가 나고 있어 우리말을 찾아야 한다.
4) 우리말을 한자어로 변용시켜 한자어가 주(主고) 우리말이 종(從)으로 전락했는데 그것을 되찾아 우리말로 표기해야 한다.
5) 일본말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 쓰지않는 말도 사전에 수록되어 있는데 모두 배제해야 한다.


등의 5가지 개선점을 제시했다.

윤 의원의 지적에 대해 박용수 이사장(한글문화연구회)은 "우리말은 대략 35만개가 한계"라며 "50만개의 단어는 무분별하게 외래어를 수록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윤 의원쪽에 따르면 국립국어연구원은 70만개의 단어도 가능하다는 조금 '무모한' 의견까지 보이고 있다고 한다.

'국어사전 바로잡기'의 지은이인 정재도 한글학회 부이사장 겸 한말연구회장은 "일본말을 다 넣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라며 "우리 말에 없는 일본말은 써도 되지만 우리 말이 있는데도 굳이 일본말을 쓰는 것은 그 정신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방죽골'이라는 우리말이 있는데도 '윤중제'(輪中堤)라는 일본말을 사전에 올려놓은 것은 잘못이라는 얘기다. 그는 "물론 과학이나 철학 처럼 우리 말에 없는 일본말은 쓸 수밖에 없고 사전에 올릴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김갑수 문화관광부 국어정책과장은 "'표준국어대사전'은 한번이라도 사용한 말은 다 넣은 걸 원칙으로 해서 만든 사전"이라며 "생소하거나 지금은 쓰이지 않은 말을 수록한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그는 "백과사전식 나열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앞으로 학자들하고 논의해 개선해나가겠다"고 밝혔다.

'표준국어대사전'은 91년 설립된 국립국어연구원에서 92년 8월부터 99년 8월까지 저명한 국어학자 500여 명을 참여시켜 만든 사전이다. 이 사전을 만드는 데 들어간 예산만 해도 112억원(국고 92억원, 두산동아 20억원)에 이른다. 50만개의 단어가 수록돼 있고 두께만 해도 7328쪽에 이르는 국내 최대의 국어사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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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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