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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일을 4개월 앞두고 대선구도가 중대한 변화를 맞고 있다. 이회창 후보 병역비리의혹 수사, 민주당의 분당 움직임, 정몽준 신당의 추진이라는 3대 변수의 급부상으로 올해 대선구도의 밑그림이 다시 그려지고 있다. 이 3대 변수는 대선판세에 과연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 급변하는 대선정국의 새로운 판세를 긴급점검해 본다.

현재 진행중인 대선구도 변화의 핵심은 다자(多者)구도로의 전환이다. 그 동안 유지되어오던 한나라당 이회창-민주당 노무현의 양자대결구도는 해체되고 이제 이회창-노무현-정몽준이라는 '빅3'에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표가 가세하는, 최소한 4자 구도가 굳어지고 있다. 이같은 다자구도로의 변화와 함께, 새로운 변수들이 돌출하며 그 동안의 대선판세를 흔들고 있다.

대선정국 뇌관, 병역비리의혹

당초 올해 대선에서 다자구도의 전개는 이회창 후보에게 유리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반(反)이회창 성향의 표가 노무현, 정몽준 두 사람에게 분산되면 이회창 후보의 고정표를 당해내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그러나 정작 다자구도로의 전환이 가시화되고 있는 요즈음, 한나라당 주변에는 긴장감이 돌고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검찰의 병역비리의혹 수사때문이다.

이회창 후보 아들 정연씨의 병역비리의혹에 대한 검찰수사는 순식간에 대선정국의 최대 뇌관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김대업씨가 제출한 문제의 녹음테이프 육성이 김도술씨의 것으로 드러나는가 하면, 병적기록표상의 수많은 의문들이 제기되고 있다.

면제판정과 관련된 절차상의 여러 의혹들도 제기되고 있다. 비리의혹과 관련된 10여 가지 이상의 정황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나오고 있는 양상이다. 당초 '상처내기 수사' 정도로 간주했던 한나라당 인사들의 입에서도 "이러다가 정말 뭔가 나오는 게 아니냐"는 긴장감이 드러나고 있다.

만약 병역비리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이회창 후보는 그 자리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게 된다. 우리의 국민정서상 병역비리의 당사자가 대통령후보직을 유지하는 상황은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의 가장 유력한 후보가 낙마하는 사태는 대선구도의 혁명적 변화를 몰고오게 될 것이다. 실제로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 사이에서는 '만약의 사태시' 정몽준 의원 영입에 나서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사석에서 오가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검찰수사가 현재의 수준, 그러니까 병역비리의 여러 의혹과 정황은 발견되지만 확증은 발견되지 않는 수준에서 끝날 경우에는 어떻게 될까. 이는 병역비리의 실재 여부에 대한 결론이 여전히 유보되는 상황을 의미한다. 이때에는 한나라당과 민주당간의 공방이 격화되는 가운데 이회창 후보의 자리는 유지될 것이다.

그러나 이회창 후보 지지율의 저하 현상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기존 이 후보 지지층의 경우에는 그에 대한 공격에 역(逆)결집 현상을 보여 지지율의 하락이 급격한 정도로까지 있지는 않겠지만, 부동층 흡수의 차질은 판세에 적지 않은 영향을 초래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이회창 후보의 일방적 우세는 불가능해지며, 대선판세는 예측불허의 대혼전 양상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또 한 가지 경우는 검찰수사 결과 병역비리의혹이 근거 없는 것으로 밝혀질 경우이다. 이때에는 그 동안의 검찰수사와 민주당의 공격이 정치적 음모로 인식될 것이며,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은 다시 반등하는 양상을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미 많은 의혹들이 제기된 상태에서, 검찰이 '무혐의' 결론을 내리는 것은 어쩌면 확증을 발견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일지 모른다. 검찰로서도 그 동안 제기된 각종 의혹들이 아무런 이상이 없는 문제임을 설명해야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진행중인 병역비리의혹 수사는, 그 결과가 결정적 타격이든 아니면 상처의 수준이든간에, 이번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의 일방적 우세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것으로 보인다.

태풍의 눈, 정몽준 신당

정몽준 의원은 최근의 여론조사들에서 지지율 1위를 기록하며 기염을 토하고 있다. 아직 출마선언도 하지 않은 무소속의 정치인이, 정당공천을 받은 유력후보들을 젖히고 1위로 나선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정 의원의 지지율 상승을 단순히 거품이라고만 생각한다면 올해의 대선판세를 읽는 데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그것은 이미 진행중인 현상이며, 세력화의 단계로 들어선 추세이기 때문이다.

정몽준 의원은 최근 들어 대선출마를 기정사실화한 데 이어 독자적인 신당창당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가 말하는 신당은 현재의 민주당과는 별개의 비(非)노무현 신당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가 어떤 세력과 함께 신당을 만들 것인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관심의 초점은 정몽준 신당이 이른바 '반이회창-비노무현' 세력을 하나로 묶는 세력으로 발전할 것인가 여부이다. 정 의원과 한국미래연합 박근혜 대표, 민주당 이인제 의원, 이한동 전총리, 자민련 김종필 총재가 손잡는 5자연대가 이루어질 경우 이들 세력의 규모는 만만치 않은 것이 된다.

그러나 정 의원의 입장에서는 이같은 5자연대가 자신의 지지율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올지, 아니면 거꾸로 지지율 추락을 가져올지를 확신할 수가 없다. 세력은 분명히 커지지만, 구정치세력과의 연대에 따른 이미지 실추가 초래될 수 있다. 그래서 정 의원은 이들과의 연대에 대해 시종 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는 그가 처해 있는 딜레마를 반영하는 것이다.

과거색이 짙거나 경선불복 시비가 따르는 이들과의 연대는 분명 여러 정치적 부담이 따르는 문제이다. 5자연대를 통한 신당이 추진될 경우 이회창 후보와 노무현 후보측에서는 구정치세력과 재벌2세가 야합한 과거회귀의 정경유착당이라고 집중적인 공격을 퍼부을 것이고, 그러한 공격이 국민들에게 먹혀들 경우 정 의원의 지지가 급격히 하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정 의원의 경우 일단은 현재의 상태가 지지율의 1차적 꼭지라고 보는 것이 상식이다. 이제 이회창 후보와 노무현 후보측의 공격이 시작되고, 특히 재벌출신 대통령의 문제점이 집중적으로 부각될 경우 그의 지지율은 일단 조정을 받게 될 가능성이 커보인다. 그런 상황에서 5자연대를 통한 신당창당은 그에게는 일대 모험과도 같은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정 의원은 원내정당의 필요성을 말하였다. 신당을 창당한다면 원내교섭단체는 되어야 한다는 뜻을 담은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자민련, 민주당 탈당 인사들까지 망라한 5자연대를 성사시키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정 의원은 망설이며 주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지금의 상황에서 세력도 얻고 이미지도 보존하는, 그러니까 꿩먹고 알먹는 길이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그는 두 가지 가운데 과연 어느 것을 선택할까. 그 선택의 순간부터 대선주자 정몽준에 대한 국민의 검증은 시작될 것이다.

분당위기, 노무현의 반등은 가능할까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은 일단 바닥을 쳤다는 것이 노 후보측의 시각이다. 실제로 최근 여론조사 결과들에서는 이회창 후보와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 격차가 좁혀진 것이 나타난다. 그러나 아직 바닥을 쳤다고 속단하기는 이른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내분사태의 추이라는 변수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분당 위기에 직면한 내분사태의 결과에 따라 노 후보의 지지율은 반등에 성공할 수도 있고, 반대로 다시 추가하락할 수도 있다.

이것을 가르는 계기는 노무현 후보 주도의 민주당을 이탈하는 숫자가 얼마나 될 것인가 하는 데 있다. 아직까지는 민주당 탈당을 결심한 의원들의 숫자가 그리 많지 않은 상태이다. 탈당 이후 자신들이 모색할 제3신당의 장래 역시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3신당 추진이 5자 연대로 발전할 경우 탈당세력의 숫자가 크게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만약 탈당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 민주당 잔류세력이 소수세력이 되어버리는 최악의 경우, 노 후보는 집권의 꿈은 포기하고 차제에 개혁신당의 길을 택하는 상황으로 내몰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추세로 볼 때 그 가능성은 그리 커보이지 않는다. 일단은 국민경선으로 선출한 후보는 지켜야 한다는 논리가 명분적 우위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민주당 내 중도파세력의 상당 수는 결국 당잔류를 선택할 가능성이 커보인다.

노 후보의 입장에서는 탈당할 사람들은 탈당한 뒤, 당의 간판을 바꾸어 달고 전열을 재정비하여 나아가면, 다시 지지율의 회복을 가져올 기회를 엿볼 수 있다. 차라리 내부적 불안요인이 제거되고 나면 노후보의 진면목을 국민에게 다시 보일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며, 이회창-정몽준 두 사람과 대별되는 노 후보의 이미지 부각이 가능하다는 것이 노 후보측의 기대일 것이다.

실제로 노 후보가 반노세력의 탈당 유도공세 앞에서 민주당 수성(守成)에 성공하기만 한다면, 지지율 상승의 기회는 열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민경선 이후 하락일로를 걸었던 그의 지지율은 그래도 20퍼센트대를 지지선으로 하는 기본적인 안정성은 보였으며, 이회창-정몽준 두 사람과의 차별적 위치선정에 따라서는 다시 상승세를 탈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그같은 지지율의 회복이 가능해진다 해도 과거의 바람과 같은 급상승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이탈했던 부동층의 재흡수를 통한 지지율 상승의 정도는 어차피 제한적일 수밖에 없으며, 이는 제한적 반등의 수준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가을 대선정국은 혼전양상

대선정국의 3대 변수로 부상한 병역비리의혹 수사, 민주당 분당위기, 제3신당 창당은 모두 9월 상순경이면 그 매듭이 지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가을 대선정국의 구도가 다시 그려지게 된다.

앞의 분석을 종합해보면 가을 대선정국은 대혼전 양상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지지율이 앞서 있는 후보의 경우 하락요인이 부각되는 반면, 현재 뒤져 있는 후보의 경우 상승요인이 부각되는 상황이 예상되며, 이는 후보간 지지율 격차를 좁히거나 엎치락 뒤치락하는 상황을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물론 이같은 혼전양상은 일시적인 것이 될 것이며, 후보들에 대한 국민적 검증이 본격화 되면서 결국은 양자대결구도로 압축되는 상황을 예견할 수 있다.

여기서 승부의 척도는 과연 무엇이 될까. 올해 노풍(盧風)과 정풍(鄭風)을 가능하게 했던 배경을 돌아보면 그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국민의 정치변화 욕구에 부응하는 일관된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이 이 혼전 속에서 최종 승자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2002년 대선에서 국민의 정치변화 욕구는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라, 거대한 트렌드이다. 이 사실을 읽는 사람만이 이번 대선의 포인트를 제대로 읽으며 최후에 웃는 승자가 될 수 있다. 그것이 누가 될지는 이번 가을, 후보들의 언행을 통해 국민 앞에 드러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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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종양 수술 이후 방송은 은퇴하고 글쓰고 동네 걷기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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