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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병진
종교학자들이 쓴 글들을 대할 때면, 종교에 대해 너무 학문적인 접근을 한 나머지 냉소적으로 비춰지거나 신뢰감이 가지 않을 때가 가끔 있다. 그들의 지적과 합리적 분석에 수긍은 간다고 하더라도 그런 감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왜 그럴까? 적절한 비교가 될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이런 감정은 일반인들이 기자들에게 느끼는 거랑 비슷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기자가 나름대로 현장 인터뷰를 하고 객관적인 정보와 자료를 가지고서 기사를 작성하더라도 그 사건의 당사자가 느끼기엔 다소 피상적인 수준의 미흡한 분석이 되거나 아예 자의적으로 왜곡하고 있는 것으로조차 보일 때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요컨대, 참여와 애정이 없는 분석과 비판은 공허한 것이기 쉽다. 특히 신과의 합일이라는 신앙체험을 핵심으로 하는 종교에 관해서 말할 때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의 경우엔 그와는 좀 다른 것 같다. 비교종교학자인 그는, 작년에 펴낸 <예수는 없다>라는 책을 통해 한국 기독교의 교조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신앙관을 통렬히 비판했다. 아직도 전반적으로 보수적인 풍토가 지배하는 한국 기독교의 실정을 감안한다면 그것은 하나의 모험에 속했을 것이다.

공공연한 자리에서 종교에 관한 토론을 되도록 피하는 것이 미덕으로 인식될 만큼 한국 사회는 여러 종교들 간의 충돌이 항상 잠재되어 있다. 그래서 종교를 내놓고 비판하는 것은 많은 경우 성가시고 욕먹는 일이기에 아무래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저자는 한국 종교 가운데 가장 활동적이라는 기독교를 정면으로 비판하였고, 그의 책은 적지 않은 파장과 호응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이는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그 만큼 한국사회의 종교 문제가 이제 한 단계 더 성숙한 길로 들어서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과, 또 이러한 종교 바로 세우기 작업이 절실히 요청되고 있음을 반영한다.

그리고 저자가 단순히 선정적인 차원의 접근이 아니라, 진지한 학문적 연구와 오랜 신앙 양심에 기초해 일반인도 이해하기 쉽도록 써내놓은 것이어서 더 주목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나온 책은 <예수는 없다>의 속편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순서로는 늦게 나왔지만, 저자가 오래 전에 선보였던 책을 지금의 상황에 맞춰서 많이 다듬고 증보하여 다시 낸 책이다. 그래서 따지고 보면 오히려 먼저 쓴 책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예수는 없다>가 미시적인 차원에서 기독교만 집중적으로 다루었다면, 이번 책은 좀더 거시적인 안목에서 기독교를 모델로 종교 일반을 아우르고 있다. 두 책이 몇 가지 서로 겹치는 부분도 없지 않지만, 대부분은 새로운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예컨대, 저자는 진리나 종교, 신, 믿음, 경전, 사랑, 전도, 헌금, 기도 등등 종교의 주요 주제들을 쉬우면서도 명쾌하게 설명해낸다. 편의상 기독교를 모델로 하고 있지만, 종교 일반에 대해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해주고 있기 때문에 신앙인, 혹은 어떤 이유에서건 종교에 관심하는 사람들이라면 꼭 읽어 볼만한 좋은 책이다.

무리하지 않은 깔끔한 문장과 저자의 특기라고 할 만한 우화, 속담 같은 적절한 예화가 곳곳에 곁들여 있어서 자칫 딱딱하고 지루하게 되기 쉬울 법한 주제들을 다루지만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독자들은 저자의 자상한 설득력에 힘입어 얼마 안가 저절로 글에 빨려드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며, 종교생활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하게 되리라 기대한다.

저자는 종교를 크게 "열린 종교"와 "닫힌 종교"로 구분하고 있다. 닫힌 종교는 오로지 자기들만이 진리를 보유하고 있다고 믿으면서 일방 통행식의 독백을 일삼고 대화를 거부한 채 배타적인 태도를 견지한다. 반면에 "열린 종교"는 끊임없이 진지하게 진리를 추구해가면서 실상(實像)의 새로운 면을 발견함으로써 날마다 새로워지고 타종교와도 대화에 적극적인 다원주의적 태도를 보인다.

그리하여 상대방 종교를 진리에 이르기 위한 길을 같이 가는 "길 친구"로 인정하고, 대화를 통해 함께 일하고 함께 생각함으로써 신앙과 사람됨의 이해가 더욱 깊어진다. 더 나아가 마침내는 진리 안에서 누리는 자유와 해방, 종교적 감격과 환희를 맛보는 데 이른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이 한 권의 책이 한국의 많은 종교인들을 깨침과 변화로 이끌고 열린 종교를 세우는데 기폭제가 되어 저자의 작업이 공허한 메아리로만 그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예수가 외면한 그 한가지 질문 - 열린 종교를 위한 대화

오강남 지음, 현암사(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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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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