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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노자 교수
민족주의 비판을 위한 '박노자'가 유행하는 것일까? 지난주 MBC 100분 토론에 토론자로 참여한 김갑수(문화평론가)는 이중국적을 반대하는 한국인들의 마음 속에는 정치권력자에 의해 만들어진 '배타적 민족주의'가 내재되어 있다고 말했다.

비틀즈의 멤버, 존 레논을 연상하게 하는 김갑수의 발언은 박노자가 최근 펴낸 <당신들의 대한민국>의 지론을 그대로 옮겨 놓은 인상을 준다. 박노자는 이 책에서 우리들의 민족주의란 독재자에 의해 세뇌된 '하나로 뭉쳐 타민족 눌러 이기기' 정신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는 서슴지 않고 광화문 앞에 서있는 이순신 동상과 야스쿠니 신사 앞에 서있는 일본의 오무라 마스지로 동상이 '어차피 속은 같은 것'이라고 치부해 버린다.

남한의 북한산과 관악산을 보고 커다란 감동을 느꼈다는 박노자, 북한의 춘향전 영화를 보고 한국의 고대 소설을 탐독했다는 박노자, 그렇게 이 땅의 자연과 문화를 사랑한 러시아인 티호노프 블라디미르는 한국인 박노자로 귀화한다. 그는 그토록 사랑하는 한국과 하나가 되기 위해 귀화라는 어려운 선택을 내렸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민족의 관점에서 바라본 '우리들의 대한민국'과 '박노자의 대한민국'은 박노자 스스로 말하듯 커다란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박노자의 논조를 보면 한국의 민족주의는 타민족을 지배하기 위한 제국주의의 씨앗과 다르지 않다. 아니면 그가 붉은 악마의 응원을 진단했던 것처럼 그에게 한국의 민족주의는 집단적 히스테리, 광기로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필자에게 박노자의 민족주의 비판은 '집단'에 대한 알레르기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박노자의 사상을 뭐라고 불러야 하나? 이름하여 사회주의와 동양사상이 가미된 정체불명의 공상적 무정부주의라고 해야 하나? 국가와 민족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폭력과 전쟁을 연상하는 그의 과민한 반응은 국가 사회주의의 모순과 분열된 민족주의로 점철되었던 러시아에서의 삶에서 형성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정치사회화가 어떤 과정을 거쳤든지간에 한국 민족주의의 역사적 기능과 역할마저 부정하는 박노자의 비판은 그의 민족사에 대한 몰이해를 탓할 수밖에 없다. 그는 자유와 독립을 위한 민족주의와 지배와 착취를 위한 민족주의를 혼동하고 있는 것이다.

박노자 류의 안티 민족주의자들은 민족주의의 역사적 근원이 오직 정치경제적 지배를 위한 허위 의식에 불과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현대의 민족국가 체제의 역사란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 300여년 밖에 되지 않은 짧은 것으로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이 자민족 중심적인 지배체제를 강화하기 위해서 민족주의를 내세웠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20세기에 들어서서 제3세계 국가의 독재자들이 국가 건설과정에서 민족주의를 악용해서 자신들의 권위주의 정치행태를 정당화했다는 것이다.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될 또 하나의 사실은 민족주의가 오직 강자의 노리개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박노자는 김구의 민족주의, 호치민의 민족주의를 허위의식 유포죄로 고발할 수 있는가? 박노자는 비판의 대상을 혼동하고 있다. 그가 비판하고 싶어하는 것은 약자의 자유와 평등을 짓밟는 제국주의와 권위주의가 아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노자는 단지 민족이 개인을 흡수해버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제국주의와 권위주의에 의해 악용되는 민족주의 그 자체를 비난하는 경향이 있다. 과연 박노자의 주장대로 한국에서 민족주의는 강자의 헤게모니로 군림해왔었나? 오히려 한국에서 민족주의는 독립과 통일을 위한 민초들의 힘을 엮어주는 정치이념이 아니었던가?

민족주의가 정치적 수단으로 악용된 것은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민족 동질감의 문화가 형성되어온 것은 인류 문명과 맥락을 같이 한다. 개인->가족->사회로 뻗어 나가는 민족 동질감은 사회 통합을 위한 인류 문명의 자산이다. 더구나 현대 한반도에서 민족주의는 폐기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계승 발전되어야 할 과제이다.

한민족에게 민족주의는 과거 해방의 원동력이었고, 미래 통합의 추진력이다. 제국주의에 의해 침탈당한 많은 약자들이 독립과 해방을 위해 뭉치고 투쟁할 수 있었던 정서적 기반은 민족이었다. 일본 제국주의가 일본의 자민족 우월주의와 결합한 게 사실이지만 역설적으로 일제에 항거한 한민족의 민족의식은 민족 문화의 보존과 독립 국가 건설을 위한 투쟁을 지탱해주던 힘이었다.

반백년 동안 서로 다른 이념에 의해 단절되었던 우리의 민족의식은 지금 현재, 미래의 민족 통일을 위한 사상적 토대가 되어야 한다. 박노자는 민족주의를 배제하고 통일운동의 축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노동자 계급, 소외 받는자? 그렇다면 자본가와 기득권층은 통일 과정에서 배제되어야 하나? 그런 분할의 과정에서는 과거 역사에서 반복해왔던 다툼과 반목만이 있을 뿐이다. 통일을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를 아우를 수 있는 민족 공동체의 통일 이념을 필요로 한다.

박노자는 '민족 공동체'라는 말이 실체없는 허위의식의 반영이라고 치부할지도 모르겠지만 이 땅에서는 그 한마디의 말이 통일의 가능성과 통일 운동의 길을 열어준다. 민족주의는 강자에 의해 악용되고 약자에 의해 선용될 수 있는 소중한 정서적 자산이며 적어도 이곳 한반도에서 민족주의는 희망이다. 그 모든 것을 무시하는 박노자의 민족주의 비판은 한민족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전망을 결여하고 있다.

한편, 한국인 박노자의 안티 한국 민족주의는 민족주의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종류의 정치적 폭력을 거부하는 순간 극에 달한다. 특히 비폭력에 대한 불교적 신념을 가지고 있는 그는 종교가 민족주의와 결부되어 폭력을 허용하는 것에 극단적인 반론을 편다.

박노자에게 왜적을 멸하기 위해 선봉에 섰던 사명대사는 비극적 파계승이며 오늘까지 지속되는 호국 불교의 전통은 종교의 파시즘적 일탈이다. 박노자의 논리를 따라가 보면 천주교 신자 안중근의 의거는 당시 조선교구 주교 뮈텔에 의해 비하되었던 것처럼 살인자, 테러리스트 안중근, 그 이상이 아니다. 나아가 사정은 약간 다르지만 지구 건너편에서 계급 해방을 위해 혁명전선에 뛰어든 콜롬비아의 토레스 신부 역시 박노자에게는 '오버 액션'으로 비춰질 뿐이다.

박노자의 폭력에 대한 반감은 무소유, 비폭력, 무저항의 선(禪) 사상에 뿌리를 두면서 동시대의 세계사회적인 연대의식과도 관계를 맺고 있다. 박노자는 결국 어떤 종류의 억압과 폭력을 거부하는 자유주의를 지지하며 국경과 계급, 민족과 이념을 초월하는 평등의식을 사랑한다. 스스로 국적을 바꾸면서까지 사랑하는 한반도에 자유와 평등을 심고 싶어하는 박노자의 의식적 노력에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고맙고 또 찬사를 보내고 싶다. 그러나 박노자는 이 땅의 자유와 평등이 스스로 목숨을 내던지면서 까지 싸웠던 투사들에 의해 쟁취되어왔다는 사실은 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역설적으로 이 땅에서 박노자가 그토록 사랑하는 자유와 평등은 그 가치를 짓밟으려 하는 제국주의, 파시즘에 대한 민족주의적 항거에 의해 지켜져 왔음을 직시해야 하는 것이다.

독립과 해방을 위한 민족주의와 침략과 지배를 위한 민족주의를 혼동하는 박노자의 민족주의 비판은 그런 의미에서 설득력이 없다. 박노자의 폭력에 대한 무차별적 비판도 마찬가지다. 박노자가 이 땅에서 누리고 있는 사상의 자유는 억압에 대한 정당한 항거와 투쟁에 의해 쟁취되었음을 깨달아야 한다. 초야에 묻혀 중생의 구원을 기원하는 승려가 아름답다면 중생을 위한 현실적인 투쟁의 전선에서 그들의 고통을 어루만지고 함께 싸우는 승려도 존중받아야 한다.

박노자가 '당신들의 대한민국'이라고 부르는 '우리들의 대한민국'은 그런 사람들의 피의 역사로 씌여져 왔다. 이순신과 오무라 마스치로를 동일시하는 박노자의 시선에서 '우리들의 대한민국'과 '박노자의 대한민국'이 만나기란 쉽지 않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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