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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운 매화향기 책표지
ⓒ 정병진
최근 여중생 두 명이 미군의 궤도차량에 치여 무참히 숨진 일에 수많은 사람이 분노하고 있다. 그러나 미군은 이런 엄청난 범죄를 저지르고도 뻔뻔한 거짓말과 변명으로 일관한다. 어디 그뿐인가. 정부는 미군 측에 50년만에 겨우 재판권 포기를 요청한 것만도 마치 대단한 일이나 한 것처럼 야단이다.

대체 이 나라는 누가 주인일까? 왜 미군은 이 땅에서 상전 노릇을 하며, 범죄를 일삼으면서도 오히려 큰소릴까? 또 우리는 이런 일에 대해 자라나는 아이들에겐 뭐라고 설명해줄 수 있을까?

이 한 권의 책은 매향리의 사례로 그 모든 대답을 시원스럽게 하고 있다. 분단 이후 현재까지도 미군에 의한 전쟁이 계속되는 매향리의 피맺힌 역사를, 이 책은 어린이를 위한 소설로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비록 소설이지만 상당 부분 사실에 근거하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작품에 소개된 미군에 의한 주민 피해 사례는 실제보다는 오히려 가벼운 것에 지나지 않으리라.

경기 남양반도에 있는 매향리라는 마을은, 그 이름에 나타나 있듯이 본디 매화가 많아 그 향기가 물씬 풍기는 조용한 어촌이었다. 그런데 한국전쟁이 끝나자 조용했던 이 마을에 느닷없이 미공군의 사격장이 들어섰다. 전쟁이 끝나고 나면 다시 평온을 되찾으려니했던 마을 사람들의 기대가 여지없이 무너진 것이다. 이때부터 마을 가까이 있는 농섬은 "쿠니 사격장"으로 불리면서 항상 미 폭격기의 표적이 되었다.

주인공 진수는 어렸을 때 사격장 근처에 꼴을 베러갔다가 불발탄을 발견해 만지면서 눈 한쪽을 그만 잃게 된다. 그의 숙모는 임신한 몸으로 갯벌에 일 나갔다가 미군이 잘못 쏜 포탄에 맞아 사망하는 끔찍한 일도 일어났다.

▲ 매향리 갯벌에 버려진 미군 포탄. 멀리 보이는 섬이 미공군 국제 폭격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농섬.
ⓒ 노순택
이런 일이 벌어지는 데도 사격장이 없어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넓어졌다. 덕분에 매향리 사람들은 조상 대대로 이어 받은 양식장과 농지까지도 미군에 헐값에 팔거나 빼앗겨야 했다. 한미상호 방위조약에 따라 미군은 자기네들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땅을 제멋대로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항의하고 문제를 제기할라치면, 반공이 국시이던 때에 빨갱이로 몰리기 십상이었다. 귀청이 찢어질 듯한 포성이 싫고 미군이 보기 싫으면 다른 곳으로 떠나는 게 최선으로 보였다. 그래서 상당수의 사람들이 고향을 등졌고, 잘 사는 동네였던 매향리는 어느덧 살기 괴로운 천형의 땅이 되어 버렸다.

87년 이후 어느 정도 사회 민주화에 대한 희망이 여기 저기서 생겨나자, 진수는 마을의 젊은 사람들과 함께 대책위를 구성하고 사격장 문제에 대한 진정서를 청와대를 비롯한 관련 부처에 냈다. 그러나 정부에서는 주민들이 납득할 만한 아무런 답변도 대책도 내놓지 않았다.

기다리다 못한 주민들은, 88년 12월 사격장으로 모두 몰려가 항의 농성까지 벌였으나 돌아온 것이라곤 수많은 전경들이 동원된 삼엄한 경비였다. 게다가 이런 식으로 계속 항의 농성을 하면 훈련 없는 날 주민들이 들어가 농사를 짓도록 배려(?)한 사격장 내의 농지를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하겠다며 시위포기를 강요받았다. 주민들이 땅을 버리고 떠나게 만들기 위한 저들의 술책이었던 것이다.

대책위는 주민들이 농사를 지을 수 없으면 더 이상 땅을 지키고 살기 힘들다는 것을 잘 알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항의시위를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약속과 달리 미군은 덤프 트럭을 동원하여 사격장 안에 심어둔 볏모에 모래와 자갈을 덮어 버리는 만행을 저지른다.

▲ 매향리 쿠니 사격장 앞에서 경찰과 대치중인 시위대(2000.6.6)
ⓒ 노순택
분노한 농민들이 사격장에 몰려가 항의 시위를 벌였으나, 다음 날 신문에는 미군측 주장을 그대로 빌어 "주민들이 까닭 없이 미군 사격장 문을 뜯어내고 들어가 불법적인 절도와 약탈 및 파괴행위를 벌였다"는 터무니없는 기사가 났다. 뿐만 아니라, 진수나 그의 친구 경호는 주동자라고 "특수공무집행 방해 치상, 폭력 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군사시설 보호법 위반"등으로 구속된다.

그러나 매향리 사람들의 이런 투쟁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매향리의 진실이 전국 방방곡곡에 조금씩 알려졌고, 이제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들의 싸움에 지지를 보내고 동참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매향리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이제 겨우 미군측에서 89년 폭탄 투하장 폐쇄에 이어 육상의 기총 사격을 중지하기로 했을 뿐이다. 저들은 월드컵 기간만이라도 사격훈련을 중지해달라는 주민들의 간절한 호소도 거절하면서 따질 게 있으면 대한민국 정부에 따지라고 했단다.

매향리의 치열한 싸움은 옛날처럼 이 마을에 매화향기가 진동하고 평화를 되찾기까지 계속될 것을 예고하며 이 책은 끝을 맺고 있다. 미군에게 빼앗겨 오염과 상처로 신음하는 우리네 땅을 도로 되찾아 회복하는 것은 매향리 사람들과 우리들이 반드시 해결해야 할 몫이다.

그리운 매화향기

장주식 지음, 김병하 그림, 한겨레아이들(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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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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