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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은 무실(務實)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입니다. 이제 그가 어떤 뜻으로 그 말을 사용했고 또 스스로 그것을 실천했었는지 살펴보아야겠습니다. 그의 말뜻이 애매하거나 스스로 행동에 옮기지 않았다면 5백년이 지난 지금 그의 말을 붙잡고 씨름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이런 검토는 원래 계획된 것이기도 하지만 "율곡이 주장한 무실(務實)의 알맹이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어온 한 독자 분의 요구에 따
른 것이기도 합니다. 시의 적절한 질문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율곡이 무실(務實)이라는 말을 쓴 것이 남들 듣기 좋으라거나 멋있으라고 한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는 무실을 자기를 수련하고(修己) 나라를 다스리는 데((治人)에 반영하고자 애쓴 사람입니다. 지금부터 그런 증거들을 하나씩 찾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율곡의 무실(務實)이 어떤 것이었는지 살피기 전에 앞에서 정리된 실(實) 개념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되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실(實)이라는 한자의 어원과 용례를 살펴서 그 개념이 "있는 그대로여서 참되고, 씨가 있어서 힘이 있고, 꽉 차서 쓸모가 있다"는 뜻이라고 이해했습니다. 참됨(眞)과 힘있음(强)과 쓸모 있음(用)이 실(實)의 요체이고, 일을 처리할 때에 그것을 과정과 목적으로 삼는 것이 곧 무실(務實)이라고 보았습니다.

율곡은 과연 무실(務實)을 그런 뜻으로 사용하고 행동에 옮겼을까요? 저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 점을 보기 위해서 황의동 교수(충남대, 철학)의 <율곡사상의 체계적 이해>라는 저술을 참고했습니다. 황의동 교수는 제가 사용한 어원(語源)과 용례(用例)분석의 방법과는 전혀 다른 문헌분석의 방법을 사용했지만 제 결론과 완전히 같은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입니다.

황의동 교수는 율곡의 무실을 실심(實心)과 실공(實功)과 실효(實效)라는 개념으로 요약했습니다. 물론 율곡의 여러 저서를 분석한 끝에 도달한 결론입니다. 실심(實心)은 참됨을, 실공(實功)이란 힘있게 행동함을, 실효(實效)는 쓸모있는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을 가리킵니다.

1574년 우부승지(右副承旨)로 재임 중이던 율곡은 시국을 바로잡기에 필요한 국정 자문으로 <만언봉사(萬言封事)>를 저술해 바쳤습니다.

봉사(封事)란 중국 한대(漢代)에 신하가 임금에게 상주할 때 글을 검은 천 주머니 속에 넣어 봉하여 올림으로써 그 내용이 사전에 밖으로 누설되는 것을 방지한 데서 생겨난 말이요 제도입니다. 비밀이 보장되므로 솔직하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상소제도입니다. 한자로 일만(一萬)자 내외로 구성돼 있으므로 <만언봉사>라고 했습니다. 실제로는 1만1천6백80자로 되어 있습니다.

율곡의 <만언봉사>는 선조의 요구에 따라 저술된 것입니다. 당시 천재지변이 자주 일어나는 것을 자신의 부덕(不德)때문이라고 여긴 선조는 조정의 신하들과 초야의 선비들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다음은 선조의 말입니다.

"아! 하늘의 형상을 우러러 살펴보고 사람들의 일을 굽히어 살펴보건대, 나는 훌륭한 임금이 되지 못하고 끝내 위태로움과 혼란을 면치 못하는 임금으로 귀착되고 말 것이 분명한 일이다. 그리하여 여러 의견을 듣고자 하는 교지(敎旨)를 여러 번 내렸으나 소장(疏章)이 올라왔다는 말이 들리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수교(手敎)를 내리어 의견 듣기 바라기를 목마른 자가 물 구하듯 하고 있으니, 이제 그대들 대소(大小) 신하들은 위로는 조정의 대관들로부터 아래로는 초야(草野)의 인사들에 이르기까지 마음과 성의를 다하여 모두 말하고 숨기지 말아 달라." (출처: <율곡전서>,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율곡은 선조의 교지(敎旨)와 수교(手敎)에 부응하고자 서술한 <만언봉사>의 제일 첫머리에서 다음과 같이 상소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정치에는 때를 아는 것이 소중하고, 일에는 실(實)에 힘쓰는 것이 필요합니다."
(政貴知時 事要務實)

때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 것은 율곡의 시대 인식 때문입니다. 율곡은 당시를 일대 경장(更張, 즉, 개혁)이 필요한 시기라고 보았습니다. 조선 건국 초기의 역동성은 사라지고 문물은 잦아들고 백성의 삶은 피폐해지고 국방력은 소진되어 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율곡은 조선 창업기에 "조종(祖宗)들께서 입법(立法)하시던 당초에는 극히 빈틈없었던 것"이라도 "200년이 지나는 동안 때로 바뀌고 일도 변화하여 폐단이 없지 않게 되었"다고 분석하고 이제 이를 "불을 끄고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듯 서둘러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다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한다(窮則變 變則通)"는 옛말을 인용해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곧바로 변(變)하고 통(通)하게 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무실(務實)을 제시하고 설명합니다.

1. 실심(實心: 진실함, 있는 그대로 참됨)

우선 율곡은 일을 이룸에 있어서 실(實)에 힘쓰기 위해서는 사람이 먼저 실(實)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율곡이 강조해 마지않던 실심(實心)을 가리킵니다.

<만언봉사>에는 그 말이 나오지 않지만 그의 이기론(理氣論)에서는 성(誠)의 개념으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즉 성(誠)은 천도로서의 실리(實理)와 인도로서의 실심(實心)으로 구별한 것입니다. 실심은 실리가 인간에게 "온전히 주어진바 그대로"를 말한다. 그것은 곧 "있는 그대로의 참됨"을 가리키며 꾸미거나 거짓됨이 없는 것을 가리킵니다.

우주 자연이 실리를 본질로 하듯이 인간의 심성 세계도 참을 그 본질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거짓되지 않은 실심은 실공(實功)을 통해 실효(實效)를 기대할 수 있는 근본전제가 됩니다. 그래서 율곡은 실심(實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한 마음이 진실하지 아니하면 만사가 모두 거짓이니 어디에 가서 행할 수 있으며, 한 마음이 진실로 참이라면 만사가 모두 참이니 무엇을 해서 이루지 못할 것인가?"

2. 실공(實功: 실천, 씨가 있어서 힘이 있음)

율곡이 강조하는 두 번째의 실(實)은 실공(實功)입니다. 그는 <만언봉사>에서 "실공(實功)이란 일을 하는 데에 성의가 있고 헛된 말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명확히 밝힙니다.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가리킵니다. 황의동 교수는 율곡의 실공(實功)을 다음과 같이 해석합니다.

"실공이란 실질적인 노력이요 실천성을 의미한다. 말뿐이 아닌 행동이요 이론만이 아닌 실천궁행을 의미하는 말이다. 적어도 율곡은 당시대의 모순을 경장(更張)함에 있어서 이 실천성의 미흡, 공리공론의 폐단을 통감했던 것으로 보인다." (황의동, <율곡사상의 체계적 이해>)

실제로 율곡은 자계황씨의 말을 인용하면서 실공(實功)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은 예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물을 구하려면 깊게 파는 실공이 있어야 하고, 열매를 먹으려면 그 뿌리를 북돋우는 실공이 있어야 한다."

이런 예에서 분명히 볼 수 있듯이 물을 구하려고 "깊게 파는 것," 그리고 열매를 먹으려고 "뿌리를 북돋우는 것"이 바로 실공(實功)입니다. 무엇이든 참되고 유용한 결과를 얻어내려면 힘써 노력하는 실천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실천적인 노력이 수반되지 않고서는 어떠한 실효도 거둘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런 실공(實功)에는 '힘'이 필요합니다. 힘이 없으면 실천할 수가 없습니다. 이때 힘은 원칙에서 나오고 원칙에 따르는 힘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앞의 글에서 그런 힘을 열매(實)의 '씨'에서 찾았습니다. 씨는 작고 죽은 것 같지만 싹터서 자라고 다시 열매를 맺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연의 섭리에 따르는 힘입니다. 그런 힘이 바로 실공(實功)의 바탕이 됩니다.

3. 실효(實效: 실용, 꽉차서 쓸모가 있음)

지금까지 본 율곡의 실(實) 개념은 전제조건으로서의 실심(實心)과 과정으로서의 실공(實功)입니다. 그것을 황의동 교수는 진실(眞實)과 실천(實踐)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저 역시 앞의 실(實)개념을 밝히는 데서 '있는 그대로 참됨'과 '씨가 있어 힘이 있음'이라고 풀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전제조건과 과정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결과(結果)가 있어야 합니다. '결과'라는 말 자체가 '열매(實)를 맺는다'는 말입니다. 실심과 실공, 진실함과 실천은 반드시 유용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게 바로 율곡이 강조해 마지않은 실효(實效)입니다. 실제적인 효과(效果)가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황의동 교수는 그것을 실리(實利) 혹은 실용(實用)이라고 재해석했고, 저 역시 앞에서 '꽉 차서 쓸모 있음'이라고 풀이했습니다.

당시 율곡은 말뿐인 경장(更張)이나 형식적인 개혁(改革)이 아니라 실질적인 변통(變通)을 통해서 실효(實效)를 거두고자 했습니다. 그는 조정이 재앙(災殃)에 대처하는 일에나 백성을 교화하는 일에나 인재를 등용하는 일에 형식과 겉치레에 치우쳐서 실효(實效)를 거두지 못하고 있음을 누누이 비판했습니다. 그리고 실효(實效)가 없다면 실심(實心)이나 실공(實功)이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황의동 교수도 이 삼실(三實)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습니다.

"실심을 가지고 실공을 통해 실효를 추구하는 것이 율곡 무실의 요점이다. 실심은 실공과 실효를 가능케 하는 근본 요소요 실공의 주체가 된다. 실공은 실심이 실효에 이를 수 있는 방법이다. 만일 실심만 있고 실공이 없다면 실효는 기대할 수 없다. 실심의 관념성이 실공을 통해 실효로 현실화되는 것이다. 실효는 실심으로 실공을 통해 추구하고자하는 목표라 할 수 있다. 실효야말로 무실론의 궁극적 가치가 된다." (황의동, <율곡사상의 체계적 이해>)


*무실(無實)이 판치던 16세기 조선 사회

삼실(三實) 개념을 정리한 후에 율곡은 당시 조선 사회를 '실(實)없는 사회'로 비판합니다. 그는 <만인봉사>에서 당시 조선사회의 '실없음(無實)'을 다음과 같이 일곱 가지나 지적해 놓았습니다.

1) 위 사람과 아래 사람 사이에 서로 믿는 실(實)이 없다 (上下 無交孚之實)
2) 신하들에게는 일을 책임지려는 실(實)이 없다 (臣인 無任事之實)
3) 경연(經筵)에는 무언가 성취하는 실(實)이 없다 (經筵 無成就之實)
4) 현명한 사람을 끌어들이는 데에는 거두어 쓰는 실(實)이 없다 (招賢 無收用之實)
5) 재앙을 만나도 하늘의 뜻에 대응하는 실(實)이 없다 (遇災 無應天之實)
6) 여러 정책에는 백성을 구제하는 실(實)이 없다 (群策 無救民之實)
7) 인심(人心)에는 선(善)을 지향하는 실(實)이 없다 (人心 無向善之實)

율곡은 이 같은 '실(實)없음'이 조선 사회를 중쇠기(中衰期)에 접어들게 했다고 봅니다. 따라서 경장(更張)이 필요하며 그것은 일곱 가지의 무실(無實)을 삼실(三實, 즉 實心과 實功과 實效)을 힘써 추구하는 무실(務實)로 바꾸어 놓아야 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한마디로 "무실(無實)을 무실(務實)로 경장(更張)하자"가 율곡의 슬로건입니다.

물론 이런 결론은 율곡이 조선 중기 사회를 면밀하게 관찰함으로써 얻어진 것입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좀 추상적인 것 같고 뜬구름 잡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다음 글에서는 율곡이 예로 든 조선시대의 폐단들과 그것을 개혁할 수 있는 방법으로 내놓은 정책들을 몇 가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율곡의 경장론(更張論)이 '참'으로 '실효'를 낼 수 있는 '실천'할 만한 것이었는지 검토해 보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야 그의 경장론이 참으로 무실(務實)에 바탕을 둔 것인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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